# 29
리그너스 대륙전기 029화
“취치칙!! 취에엑!!!”
“옥스 아너!!! 가자! 오크의 영광을 위하여!”
“케켁!! 케케엑!!!”
“돌을 던져!”
페릴 예노스의 뒤를 따라 오크와 고블린들이 용감무쌍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서지 않는 건 호 하나뿐이었다. 저런 거대한 거인 앞에서 깝죽댔다가 발에 밟히기라도 하면 쥐포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촤라라라락!!!
페릴 예노스의 손에서 떠난 채찍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수렁거인 듀케이션의 목을 휘감았다. 채찍에 박혀 있는 날카로운 쇠붙이들이 수렁거인 듀케이션의 피부를 갈기갈기 찢어발겼고, 그럴 때마다 듀케이션은 흉흉한 기세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마족 병사들을 발로 짓밟았다.
“쿠에엑!”
“키에에엑!!!”
“휘유. 무시무시한 놈이네.”
수 미터나 되는 거대한 덩치가 오크와 고블린들을 짓밟는 모습은 마치 코끼리가 소형 동물을 짓밟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리고 전투가 계속될수록 듀케이션이 발에 짓밟혀 압사당하는 병사의 수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서 살아남은 병사의 수를 체크해 보니 팔백의 병사 중 반 수 가까이가 지하 수렁에서 시체가 되어 양분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정도라면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 듀케이션과의 전투는 끝나지 않고 있었다.
“오크 전사 2소대는 뒤로 빠지고, 3소대가 자리를 메운다. 고블린 투척병은 우측에서 공격하도록.”
호는 병사들을 지휘하며 수렁거인을 바라봤다. 계속된 전투로 피해가 누적된 모양인지 몸의 이끼들은 어느새 죄다 떨어지고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듀케이션이 만들어내는 이끼 몬스터들 또한 수가 크게 줄어들고 없었다.
“확실히…….”
고작 E, F랭크의 병사들만 이끌고 왔다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터였다.
그에 반해 페릴 예노스는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만 느려 터진 수렁거인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페릴 예노스의 날렵한 움직임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마장기라도 있었으면 더욱더 공략이 수월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호는 쩝 하며 입맛을 다셨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강력한 병기인 마장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건담을 떠올리는 형태를 한 거대한 강철 거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전장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그중에서도 최하위에 속하는 C등급 마장기 한 기 정도면 수렁거인 듀케이션쯤은 가볍게 짓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커티삭의 현재 상황으로는 마장기는커녕 마장기의 부속품 하나도 생산할 수 없었다.
“좋아! 좌측면으로 파고들어 넘어뜨려!!!”
호가 듀케이션의 모습과 아군의 위치를 확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페릴 예노스의 채찍에 휘감긴 듀케이션이 그녀의 채찍을 무리하게 벗겨내려다가 한쪽으로 기우뚱 균형을 잃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취에에엑!!! 취익!!!”
“캬캬칵! 케켁!!!”
호의 명령에 오크 전사와 고블린들이 힘을 합쳐 수렁거인 듀케이션의 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하기보다는 넘어뜨린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렸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수렁거인이지만 수십의 병사가 한꺼번에 달려드니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였다.
“아하하하핫!!! 죽어버려!!!”
게다가 허공에서 채찍을 휘두르는 페릴 예노스 때문에 듀케이션은 자신의 발밑으로 달려드는 마족 병사들에게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흐리야아아압!”
그리고 페릴 예노스가 기합과 함께 강하게 채찍을 잡아당기자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듀케이션의 거대한 몸이 땅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었다.
푹!! 푸욱!!!
눈을 붉게 물들인 오크 전사와 고블린 투척병들이 쓰러진 듀케이션의 동체를 미친 듯이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듀케이션이 팔을 휘두르며 반격하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지하 수렁의 공략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좋아! 더러운 엘프의 하수인을 물리쳤다! 모두 승리의 함성을 외쳐라!!!”
“취에엑!!! 옥스 아너!!!”
“오크의 영광을 위하여!!!!”
“케케케켁! 한 건 올렸다!”
페릴 예노스가 손을 높게 쳐들자 살아남은 병사들이 한 몸처럼 함성을 치르기 시작했다.
띵동.
-D급 던전 지하 수렁의 ‘수렁거인 듀케이션’을 물리쳤습니다.
-전투 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 2…… 1. 결산 완료. 이번 전투의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680 획득했습니다.
-총대장 페릴 예노스에게 활약상을 인정받았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D급 던전 지하 수렁을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경험치 1,000을 획득했습니다.
-‘이끼 청소야 간단하지!’의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를 150 획득했습니다.
“우와아아아!!”
그중에는 호도 끼어 있었다. 미친 듯이 큰 목소리를 내는 호의 모습에 병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호는 그들의 반응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D급 던전 ‘지하 수렁’을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얻은 경험치는 무려 2,500이 넘었다.
* * *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30
6. 직업 : 하사관(E)
7. 세부 능력
통솔 : 20 / 50(D)
무력 : 30(+4) / 30(+4)(E)
지력 : 6 / 30(E)
정치 : 10 / 10(F)
매력 : 10 / 30(E)
8. 특성 : 부대 강화
9. 스킬 : 호통
10. 보유 경험치 : 2,516
“후후후…….”
지하 수렁 원정을 마치고 커티삭으로 돌아온 호는 자신의 방 안에서 정보창을 확인하고는 실소를 흘렸다. 원정을 통해 획득한 경험치를 보니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2,516. 지하 수렁으로 떠나기 전 예상했던 경험치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기껏해야 800 정도를 생각했는데.”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와는 다르게 ‘총대장의 인정’과 ‘던전 클리어’라는 생각지도 못한 시스템이 나타나더니 거의 두 배가량이나 경험치를 뻥튀기해 줬다.
전투 등급이 A랭크라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비록 SSS랭크가 아니라는 것은 아쉽긴 했지만, SSS랭크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마장기가 포함된 전력으로 압도적으로 몬스터들을 찍어 눌러야 했다.
이번 전투의 성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지하 수렁 공략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커티삭은 총 17,100리스라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전리품을 판매하면 수입은 더더욱 늘어났다.
또한 계획했던 대로 병사의 수를 줄이는 데도 성공했다.
지하 수렁에서 목숨을 잃은 커티삭의 병사는 거의 육백에 달했다.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는 전체 병력 중 반수에 가까운 병사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딱 호가 줄이기로 계획했던 병사 수였다.
“좋아!”
침대에 누워 보유 경험치의 숫자를 즐기던 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제는 저 경험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차례였다. 먼저 호는 자신의 통솔 수치를 50으로 높이기로 결정했다. D등급으로 클래스 상급 사관으로 전직을 하려면 먼저 통솔 수치가 50이 되어야 했다.
지휘관 계통의 클래스로 전직하기로 한 결정은 아직까지는 성공적이었다. 지하 수렁 전투에서 호는 별다른 위험 없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직접 몸을 맞대며 전투를 펼치는 게 껄끄러운 만큼 어느 정도 능력 포인트를 높일 때까지는 이렇게 병사들을 지휘하며 경험치를 쌓을 생각이었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은 용맹한 장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호는 천천히 자신의 통솔 포인트에 경험치를 투자하기 시작했다.
20의 통솔 포인트가 50이 될 때까지 경험치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500에 가까운 경험치가 남아 있었다.
이어서 호는 지력과 매력 포인트에도 경험치를 투자하기 시작했다.
D등급 클래스부터는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직업이 있는 만큼 스킬의 위력에 영향을 주는 지력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매력은 별달리 필요가 없어 보였지만, 상급 상관으로 진급하기 위한 조건에 끼어 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높여야만 했다.
“이게 바로 던전 공략의 맛이지.”
그렇게 지력과 매력까지 한계치인 30까지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치는 아직도 500 가까이나 남아 있었다.
[상급 사관(D) - 대륙을 누비며 적국의 부대를 상대하는 선봉대장인 상급 사관은 하사관의 상급 직업으로 많은 수의 부대를 지휘하는 데 특출한 능력을 보입니다. 하사관과는 다르게 이들은 전술적으로도 뛰어난데다가 용맹스럽기까지 합니다. 전투 시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상승한다.
전직 조건 - 전 종족 가능. E등급 하사관의 직업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레벨 30, 통솔 수치 50, 무력 수치 30, 지력 수치 30, 정치 수치 10, 매력 수치 15를 만족할 경우 전직 가능.]
띵동.
-D등급 클래스, 상급 사관 전직에 따른 모든 능력치를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잠시 상급 사관에 대한 능력치를 살펴보던 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급 사관 전직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호의 눈앞에 나타났다.
띵동.
-상급 사관(D) 전직에 성공했습니다.
-등급 변경에 따라 능력치가 한계가 상승했습니다.
-‘나도 이제 D등급!’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 200을 획득했습니다.
-카리스마라는 새로운 능력이 오픈되었습니다.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D등급 클래스로 전직을 하니 오히려 경험치가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새로 얻은 경험치를 다시 통솔에 투자하려던 호는 잠시 멈칫하고는 자신의 상태창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카리스마라…….”
자신만의 세력이나 군대가 없는 당장은 필요가 없는 수치였다. 하지만 지휘관이라면 그 어떤 능력보다도 중요시 여겨야 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 * *
페릴 예노스와 호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커티삭을 떠났지만 커티삭의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당연히 커티삭에 머무르고 있는 소환자들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꺄악!”
“시현아!!!”
와장창 소리와 함께 시현이 자신의 손가락을 부여잡는 모습에 야채를 썰던 시진이 시현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고통스러운 표정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불에 손을 데인 것 같았다.
“취이익! 췩?”
뜨거운 조리실의 열기 속에서 육수를 흘리며 요리를 하고 있던 오크 한 마리가 거친 콧김을 내뱉으며 말했다.
“취익! 빨리 요리해라! 취익!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잠깐만. 시현이가 다쳤어요.”
“취익?! 그게 뭐? 침 바르면 낳는다.”
“으앗?! 지금 더러운! 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낳는다가 뭐예요! 낫는다지?!”
울퉁불퉁한 자신의 손가락을 침으로 푹 적시고는 시현의 손을 잡으려는 오크의 행동에 시진은 기겁하며 시현을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그런 시진의 행동에 오크는 잠깐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곧 짜증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취익. 곧 점심시간이다. 췩! 식사가 완성이 안 되면 멜리아 비쉬 님에게 우리 다 죽는다.”
“그…… 그래도 혹시 약 같은 거 있나요? 화상 치료약이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오크를 향해 시진이 외치듯 말했다. 으으거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취익. 그런 게 있을 리가. 우리는 시간 지나면 다 낫는다. 췩췩! 커티삭에는 치료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도 없다.”
“…….”
“언니, 나 아파…….”
“시…… 시현아. 조금만 참아.”
계속해서 아픔을 호소하는 동생의 모습에 한시진은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약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영주성 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엄청난 체벌을 받았다.
그러던 도중 시진의 눈에 동생이 쓰고 있던 칼이 들어왔다. 투박한 외형이지만 날만큼은 충분히 생명체의 목숨 정도는 어렵지 끊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