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리그너스 대륙전기 025화
띵동.
-‘서큐버스의 부탁’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등급은 A랭크입니다. 각자 경험치를 8씩 획득했습니다.
-‘클루토의 심부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등급은 A랭크입니다. 각자 경험치를 9씩 획득했습니다.
“어…… 어어?”
갑작스럽게 눈앞으로 나타난 메시지를 보며 아스트리드 벨이 당황한 얼굴로 호를 쳐다보았다.
“경험치를 꽤 많이 주죠?”
호는 너스레를 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호의 모습을 보며 벨의 푸른색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메이드로 하루 종일 힘겹게 일하면서 얻은 경험치보다 방금 전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경험치가 훨씬 많았다. 무려 두 배, 아니, 세 배에 가까운 경험치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호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혼자서 영지의 일을 해결해 낸다면 이것의 몇 배나 되는 경험치도 획득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경험치를 획득한 후에 직업 등급을 높인다면 이 세계에서 더욱더 대단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영지를 우리에게 맡길지도 모르죠. 또한 혹시 우리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호의 말에 아스트리드 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에 보일 정도로 파르르 떠는 움직임과 가빠진 호흡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이 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는 자신의 말에 따라 움직여 줄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영지의 퀘스트를 몇 개 더 끝낸 두 남녀는 땅거미가 질 때쯤이 되어서야 영주성으로 향했다.
“고마워요. 오늘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요.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 많은 것을 알려주셨으면 해요.”
벨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경쾌한 발걸음이 오늘 경험했던 일들이 제법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뒤로한 채 호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일단, 오늘 해결한 일들과 얻은 정보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호는 곧바로 식당으로 갔다.
끼이익.
문을 여는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호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세로로 놓여 있는 길쭉한 직사각형의 테이블에는 세 여인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시진, 한시현. 한씨 자매와 아스트리드 벨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호의 모습을 확인한 아스트리드 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호 또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오늘 벨의 하루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으리라. 메이드로 영주 성에서 잡다한 일을 하다가 자신의 조언에 따라 E등급 클래스인 회계사로 전직했고, 함께 영지 시내를 순찰했으며, 퀘스트를 통해 많은 양의 경험치를 보다 쉽게 획득하기까지 했다.
지금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떠올린 호는 묘하게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늘 저녁은 라우라우인가?’
라우라우는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큰 잎으로 감싸서 찐 요리였다. 현실 세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연잎 밥과 비슷하게 생긴 이 음식은 다름 아닌 오크들의 주식이었다.
포크를 이용해 큰 잎을 벗겨낸 후 뜨거운 육즙을 듬뿍 품은 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호는 자신의 눈을 동그랗게 떠야만 했다.
“어?!”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맛이었다.
“그래요? 아, 잘됐다. 제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음식인데 어때요? 입맛에 맞아요?”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한시현이 활짝 미소를 짓는 모습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옆으로 한시진도 빙긋 웃고 있었다.
“굉장히 맛있네. 진짜 맛있어.”
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시현의 체면을 세워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이 라우라우는 굉장히 맛있었다. 장사를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만약 오크 녀석들에게 미각이라는 게 존재했다면 그녀가 만든 라우라우는 정말 불티나게 팔릴지도 몰랐다.
어쨌든 영주성의 조리실에서 일을 하면서 음식 솜씨가 꽤 는 모양이었다.
“와, 잘됐다. 조리사로 전직해서 처음으로 만든 음식인데 칭찬받으니까 기분 좋네요.”
“……조리사?”
한시현의 입에서 나온 말에 호는 깜짝 놀라며 그녀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한시현
2. 성별 : 여(15)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10
6. 직업 : 조리사(E)
7. 세부 능력
통솔 : 7 / 10(F)
무력 : 6 / 10(F)
지력 : 9 / 10(F)
정치 : 8 / 10(F)
매력 : 10 / 30(E)
솜씨 : 13 / 50(D)
8. 특성 : 좋은 손놀림, 식칼의 감각.
가장 먼저 한시현의 직업인 E등급 클래스, 조리사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솜씨라는 세부 능력치도 새로 생겨나 있었다.
깜짝 놀란 호의 눈에 한시진이 그녀를 보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추천한 건가? 아니, 그 전에 어떻게 전직을 한 거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주성의 주방에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같이 일하는 마족들에게 정보를 얻었으리라.
그런데 하필이면 조리사라니? E등급 클래스라고는 하지만 조리사는 딱히 위험천만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정보창을 보아하니 메리트를 받는 능력치가 솜씨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매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페널티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존재하는 클래스들은 각자가 다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리사와 같은 생산직 또한 완전히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뭐, 상관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러나 자신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결코 추천하고픈 직업이 아니었다.
“네. 전직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오늘 주방에서 정보를 얻었어요. 사실 전직을 할 수 있는 여러 클래스가 있기는 했는데……. 그중에서 그나마 조리사가 제일 나을 것 같아서 전직을 했는데 아저씨 아니, 오빠의 모습을 보니 보람은 있는 것 같아요.”
환하게 웃는 한시현의 모습에 호 역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커티삭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행동을 생각하면 그래도 이제는 이 세계에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잘됐네. 그런데 여러 클래스라면?”
“너무 많아서 전부 기억은 못 하겠는데 궁수라든가 농부도 있었고, 초보 마법사도 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니가 조리사를 추천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그런 직업보다는 조리사가 제일 안전해 보인다고 해서요.”
“맞아. 조리사라면 계속해서 영지성에 머무를 수 있으니까, 밖의 위험에 노출될 일은 없을 거야.”
한시현의 입에서 나온 안전이라는 단어를 들은 한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그런 자매의 대화를 들으며 호는 가만히 둘을 바라보았다.
‘안전?’
아직까지도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잘 모르는 것일까? 한씨 자매의 대화를 들은 호는 그녀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리사가 안전하다? 만약 영주성에서 거주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었다.
영주의 기분 변화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상대는 칼을 들고 있는데, 후라이팬을 들고 덤빌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이들이 SSS등급의 영웅인 마왕 쉐르난비체가 있는 블라디션에 머무르고 있다면 조리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적어도 SSS등급 영웅이 거주하는 마왕성을 공격하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커티삭은 경우가 달랐다. 수인과 엘프들이 이 영지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뿐이었다. 오지랖이 넓은 것도 아니고, 그녀들에게까지 이것저것 코치를 해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조리사도 괜찮네.’
눈앞의 라우라우는 정말로 맛있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호는 옷가지를 옷걸이에 던지듯 걸어놓고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오늘 많은 일을 겪었던 탓에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호는 곧 몸을 일으켰다. 피곤함 때문에 당장에라도 잠에 들고 싶었지만, 잠이 들기 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전부 영지에 관련된 일이었다.
호는 방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문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리스의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서 내일이라도 당장 공사에 들어가야 했다.
현재 커티삭에서 리스를 벌어들이고 있는 건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쥐꼬리만 한 영지민들의 세금에 모든 것을 의지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당장 커티삭에서 지을 수 있는 건물은 시장밖에 없겠어.”
시장을 제외하고도 리스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건물은 몇 개가 더 있었다. 하지만 가성비로 따지자면 시장이 제일 좋았다. 아니, 시장밖에 선택할 수가 없었다.
현재 커티삭이 보유한 리스는 1,940에 불과했지만,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건설비용이 그를 훌쩍 넘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을 짓는 데 필요한 리스는 1,500. 그리고 목재 200개와 석재 150개.”
커티삭의 세부 정보를 살펴보니 시장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목재와 석재의 수량은 만족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장을 짓는 데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단지…….
“시장을 지으면 병사들의 유지비가 없어 영지가 일주일 만에 파산한다는 점이지.”
호는 팔짱을 끼곤 턱에 주먹을 대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영지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릴 예노스가 자신에게 제법 권한을 주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스의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건물은 무조건 지어야 해. 그리고…….”
호는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에 붉은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서류의 내용은 병사가 너무 많아서 불편하다는 민원이었다.
호의 생각에도 커티삭은 확실히 인구에 비해 병사가 너무나도 많았다. 적대적인 두 종족의 영지와 붙어 있다는 지리적인 면을 감안해도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결국은 병사를 줄여야 해.”
호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계속해서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리스의 생산량을 높이더라도 결국 병사의 숫자를 줄여 군대의 유지비를 낮추지 않는다면 밀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행위에 불과했다.
즉, 돈과 같은 리스를 걷어 들일 수 있는 건물들을 건설하고, 영지의 자금을 빨아먹는 병사들의 유지비를 줄인다. 이 둘만 적절하게 조화시킬 수 있으면 커티삭의 파산은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페릴 예노스가 병사들의 수를 줄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지.”
피를 좋아하는 마족의 영웅이기 때문일까? 호는 페릴 예노스가 굉장히 호전적인 서큐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도 그런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녀는 커티삭의 지배자라 불리는 영주임에도 불구하고 휘하 영웅인 멜리아 비쉬보다 두세 배는 많이 출정을 나가곤 했었다.
어쨌든 페릴 예노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사의 수를 줄인다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병사의 수보다 자신이 수명이 줄어들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았다.
“…….”
한창 생각하던 호는 손가락을 까닥여 눈앞에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 커티삭과 커티삭이 자리 잡고 있는 영토인 ‘붉은 핏빛의 대지’에 대한 내용을 띄웠다. 그리고 어느 한 부분의 정보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지하 수렁 - D등급 던전
등장 보스 - 악취 나는 라포지아, 수렁거인 듀케이션>>
커티삭 근처에 위치한 던전. 이곳을 공략하면 아이템과 경험치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리스 및 자재들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가 노리는 것은 단순히 그런 아이템만이 아니었다.
“던전을 공략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병사들의 희생을 불러오게 마련이지. 좋아. 내일 페릴 예노스에게 건의를 해봐야겠어. 전투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충분히 관심을 보일 거야.”
병사의 수는 줄이고 돈과 아이템을 획득한다. 일석이조, 아니, 피와 전투를 좋아하는 페릴 예노스 또한 만족시킬 수 있으니 일석삼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녀나 멜리아 비쉬가 함께 나선다고 하면 더더욱 좋았다.
B등급 영웅인 그녀들 중 하나라도 합류하게 되면 안전하게 지하 수렁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러면 세부 계획을 짜볼까?”
던전 공략의 허락이 떨어진다 해도 막무가내로 돌격할 생각은 없었다.
커티삭의 병사들은 기껏해야 E, F등급. 그에 반해 지하 수렁은 D등급 던전이었다. 무턱대고 돌격을 했다가는 공략은커녕 던전의 위험에 잡아먹힐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