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17화 (17/522)

# 17

리그너스 대륙전기 017화

“고맙다. 췩. 수로가 정비되면 우리 오크들이 농사를 짓기가 더욱 편해진다. 취익."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아니다. 취익. 이제까지 몇 번이나 수로를 고쳐달라고 이야기했었지만, 그 누구도 고쳐준 적이 없었다. 취익. 인간! 당신은 우리들의 은인이다. 췩!”

햇볕에 피부가 거뭇하게 탄 근육질의 오크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머리에 밀집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게 전형적인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런 오크의 모습을 보며 호는 오크 병사들을 이용해 자신이 고친 수로를 바라보았다.

판타지 소설에서 등장하는 대부분 오크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몬스터로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오크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제 남편도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허리를 숙이는 여성의 모습에 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오크의 부인이 다크엘프라니. 인생 아니 오생 성공했네.’

자신이 살던 현실 세계였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키가 160 이 조금 넘는 근육질의 추남 농부가 웬만한 섹시 아이돌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미모와 육체미를 지닌 여자와 결혼한 셈이니 말이다.

“이이는 정말 멋진 오크랍니다.”

호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다크 엘프이 여성이 보기 좋은 미소로 말했다.

그렇게 둘을 뒤로하고 천천히 주둔지로 이동을 하면서 호는 방금 전 자신이 완료했던 수로 정리 퀘스트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띵동

-‘수로 정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의 보상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17 획득했습니다.

‘좋았어.’

17의 경험치. 만약 커티삭의 공사 현장이었다면 사흘의 시간을 보내야만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였다.

그러나 호는 오크 전사들을 이용해 손 하나 제대로 까닥하지도 않고 순식간에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러한 퀘스트들은 하루에 한 번만 클리어가 가능하다는 쓸데없는 조건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띵동

-‘도로 정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의 보상 등급은 B랭크입니다. 경험치를 11 획득했습니다.

-‘오크 쿠르착의 부탁’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의 보상 등급은 S랭크입니다. 경험치를 23 획득했습니다.

퀘스트를 하나하나 클리어 할 때 마다 경험치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정보창에 쌓이는 경험치를 보며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지휘할 수 있는 부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컸다.

“하사관으로 전직한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어.”

한 달이 넘게 커티삭의 공사 현장에서 고생했던 게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는 이렇게 획득한 경험치들을 전부 통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임무를 잊어서는 안 되지.”

병사들을 이용해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도 호는 자신이 가장 중요시해야 되는 임무가 식량 창고의 방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유저의 통솔 능력은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상승시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다가닥! 다가닥!

호가 탄 말이 오크 전사들이 주둔하고 있는 주둔지의 길을 가르며 지나갔다. 털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호의 흑마는 그가 이 오크 전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 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10

6. 직업 : 하사관(E)

7. 세부능력

통솔 : 19 / 50(D)

무력 : 10(+4) / 30(+4)(E)

지력 : 6 / 30(E)

정치 : 9 / 10(F)

매력 : 8 / 30(E)

8. 특성 : 부대 강화

9. 스킬 : 호통

“이제까지 아무 일도 없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호가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로서 자신이 지키는 식량 창고 주위의 모든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할 수 있었다.

퀘스트의 정보 하나하나가 모두 다 적혀 있는 공략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었을 일이었다. 정말 이 세계로 오기 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을 다운받기를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공략본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만약 공략본이 아니었다면, 이 근처에 어떤 퀘스트가 존재하는지 혼자서는 도저히 알아낼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는 수천, 수만 개나 되는 퀘스트가 존재했을뿐더러 호는 마족으로는 플레이를 해본 적도 없었다.

운도 좋았다. 페릴 예노스가 이곳으로 자신을 보낸 이유는 엘프나 수인의 기습에 식량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호가 이 근처의 모든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동안 그 두 종족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성과는 또 있었다. 호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제련된 강철 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1 강화된 강철 검(E 등급 무기)

효과 - 무력 3 증가 (+1)

잘 제련된 철로 만들어진 강철 검입니다. 마법적인 효과를 받아 날이 조금 더 날카롭습니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획득한 +1 강화된 강철검. 강화 효과로 인해 무력 포인트가 4나 증가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렇게 잠시 검을 바라보던 호는 검집을 매만지며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여기에 내 +9 루디안 소드만 있었어도…….”

통솔 150, 무력 200을 증가시켜주는 SSS 등급의 아이템이자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존재하는 궁극의 무기 중 하나인 루디안 소드.

거기에 수많은 마정석과 강화석을 쏟아 부어 최대치까지 강화를 성공시킨 전설의 무기가 호 제국의 황제였던 시절 호가 사용하던 무기였다.

그런 루디안 소드에 비하면 강화된 강철 검 따위는 쓰레기에 불과한 별 볼일 없는 무기지만, 어찌되었든 지금의 자신에게는 아주 소중한 아이템이었다.

“일단 이 주위의 퀘스트를 모두 끝내기는 했는데…….”

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침대 위에 누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관우는 내 여자’라는 유저의 공략본에 따라 오크 전사들을 이용해 퀘스트를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획득한 쏠쏠한 경험치를 생각하면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퀘스트도 공략하고 싶었다.

“지금은 무리겠지.”

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필연적으로 많은 수의 오크들이 자리를 비워야 될 테고 다른 종족이 식량 창고를 기습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지금은 상황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커티삭에는 총 여덟 개의 식량 창고가 있었다. 그중 호가 지키고 있는 식량 창고는 영지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이 식량 창고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수레를 이용해 보관하고 있던 곡물들을 커티삭으로 보내곤 했다.

“이런 것은 또 리그너스 대륙전기하고는 다르네.”

호가 피식 웃었다. 게임 내에서는 무조건 한 달에 한 번씩 식량을 보급 받았었다.

벌써 커티삭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두어 달. 그리고 오크 부대를 이끌고 식량 창고를 지킨 지도 벌써 열흘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동안 호는 자신의 통솔 포인트를 19까지 올릴 수 있었다. 모든 경험치를 통솔에 투자한 까닭이었다.

무력 수치는 14. +1 강화된 강철 검을 장비한 효과 덕분이었다. 아직 올려야 할 수치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퀘스트를 모두 클리어 한 터라 지금 당장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하릴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럼, 오늘도 오크들과 대련을 벌여볼까?”

퀘스트의 보상으로 강화된 강철 검을 손에 넣은 이후부터 호는 오크 전사들과 조금씩 대련을 벌이고 있었다.

혹시나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유저로써 흉측한 오크의 외형은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또한 그들이 내뿜는 살기와 흉포한 기세 역시 이미 가상현실게임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본능을 못이긴 오크 전사가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할 때도 있었지만, 전투 경험이 많은 호의 실력은 F등급인 오크 전사에게 당할 정도로 어설프지 않았다.

다만, 게임에서 느끼지 못했던 고통을 비롯해…….

“큿!”

호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SSS등급의 영웅 마왕 쉐르난비체의 엄청난 살기를 떠올리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가상현실에서의 수많은 경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그녀의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조차 되지 못했다. 마왕 쉐르난비체의 앞에서 자신은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였었다.

“그래도…….”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이 상황에 이 구절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호는 이렇게 계속해서 성장만 할 수 있다면 SSS등급의 영웅 또한 언젠가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이 세계에서 탈출하면 더욱 좋겠는데.”

이미 반쯤은 포기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온몸을 감각을 끌어올리며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능력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 * *

“췩! 대장을 만나야 한다! 취익!”

식량 창고에 주둔한 지도 보름, 오늘도 오크들과 격한 훈련을 하던 호의 눈에 거친 숨소리를 몰아쉬며 소리를 지르는 오크 전사 하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란이지?”

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췩! 취이익!”

그리고 호의 앞으로 다가온 오크 전사는 거칠게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손짓과 발짓까지 동원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췻! 수인들 백 마리! 쳐 들어온다! 취잇! 다람쥐와 개 봤다! 췻! 수가 많아서 동료들 도망치고 있다!”

호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람쥐와 개. 수인족의 병사들이 확실했다. 호가 재빠르게 말했다.

“수인족 병종의 수는 각각 어떻게 되지? 다람쥐가 더 많았나? 개가 더 많았나?”

“췻! 다람쥐가 더 많다! 손가락 여덟 개 보다 많았다.”

“……씨발.”

자신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오크 전사의 모습에 호는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어찌되었든 이 오크는 수인 종족이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주었다.

잠시 후, 정찰대로 보냈던 오크 전사들이 속속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해온 보고는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다람쥐 병사와 코르기.’

이곳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수인 병사들은 수인 종족의 F등급 병종인 다람쥐 병사와 E등급인 병종 코르기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수는 약 백 명가량이었다.

‘생각보다 많긴 해도…….’

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에게는 백오십의 오크 전사가 있었다. 게다가 하사관 클래스의 스킬을 사용하면 오크 전사들의 능력을 조금이지만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력이었다.

계속해서 호는 수인 병사들과 마주친 오크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다. 쓸모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오크 전사들은 호의 질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동원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호는 추가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더 조합해 낼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