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리그너스 대륙전기 014화
성에 도착한 호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한시진이 스프를 먹다가 말했다.
“오늘도 병영 공사에 다녀오신 거예요?”
“아, 응.”
“한 달 넘게 공사 현장에만 나가시는 거 같은데 힘드시겠다.”
“힘과 관련된 무력 포인트를 올려서 그런지 그럭저럭 버틸 만해. 그래봤자 한 자리 수지만.”
호는 시진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곧 성의 잡무를 처리하는 마족이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맛없는 식사였다.
남자라서 그런 것인지, 커티삭에 도착한 소환자 중 성의 외부로 보내지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휴. 오늘의 일과는 주방 청소였는데, 2밖에 경험치를 못 얻었어요.”
“주방 청소는 괜찮아. 주방에만 있으면 다른 괴물들과 마주치지 않으니까. 정원 관리를 하다가 그 날개 달린 악마가 나를 부르기라도 하면, 진짜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고.”
“…….”
다른 소환자들은 영주 성의 주방 정리, 정원 관리, 청소 등 다양한 일을 명령받았고, 그 일과를 수행하며 경험치를 획득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지.’
호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커티삭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가장 호전적이며 잔인한 성격을 지닌 마족의 도시였다.
게다가 군사 도시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거친 이가 굉장히 많았다. 호가 일을 하고 있는 공사 현장에서도 한 달 동안 열 명가량의 사망자가 나왔다.
호가 생각하기에 그런 모습들을 보기에는 그녀들은 아직 이 세계에 대한 내성이 부족했다.
“진짜 오늘 그릇을 몇 개나 닦았는지 모르겠어요.”
한시진이 푸념을 하듯 말했고, 아스트리드 벨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저도 주방 일을 해봐서 아는데 특히 고블린들이 먹고 난 그릇은 치우는 게 제일 고역인 거 같아요. 냄새도 지독해서 두 번은 닦아야 한다고요.”
그래도 대화를 들어보면 이 세계의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여전히 가끔은 표정이 어두워지곤 했지만,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처럼 하루 종일 울먹이던 모습은 아니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있으면 6레벨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와……. 엄청나네요. 전 아직 4레벨인데…….”
식사 도중 아스트리드 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고, 한시진이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봤다.
“후. 대체 레벨이라는 것을 올려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레벨을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상태창이나 레벨은 게임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아는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게임들은 만렙이라는 것을 찍으면 엔딩을 볼 수 있다고 했던 거 같아요.”
“아! 그러면 계속해서 레벨만 올리면 되겠네요!”
‘……그럴 리가 있나.’
나름대로의 희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들의 대화에 호는 묵묵히 앞에 놓인 음식만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아저씨는…… 몇 레벨이세요?”
호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여기서 가장 어린 소녀인 시현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아니고 오빠.”
“아! 죄, 죄송해요…….”
아저씨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리고 호는 시현이 처연한 모습으로 눈을 내리는 모습에 밀려오는 미안함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니. 아저씨가 맞긴 하겠네.”
“…….”
그런 호의 너스레에 시현은 아무 대답도 않았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아이, 그것도 중학생밖에 되지 않는 소녀의 저런 반응은 영 익숙하지 않았다.
“아, 레벨…….”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그녀가 했던 질문에 대답을 하려던 호는 잠시 멈칫하며 시현을 바라봤다.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들과는 달리 자신은 공략본도 있고 또한 어느 정도의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이제까지 획득한 경험치 역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능력 포인트를 올리는 것도 아니고, 레벨에만 경험치를 투자하는데도 한 달 동안 6레벨밖에 되지 못했어.’
어떻게 해야 일과 등급을 높이며, 많은 경험치를 획득하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시현아, 다른 사람의 정보에 대해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학교에서도 ‘시험 점수 몇 점 맞았어?’라고 친구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잖아? 이건 네가 잘못한 거야.”
“언니나 벨 언니의 레벨은 알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잘못 했어요…….”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시현은 보며 호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녀들은 자신과 같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이상한 세계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하물며 그녀들은 다른 소환자들과는 마족의 소환자로 이제껏 공통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동료들이기도 하지.’
이제까지 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그녀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상태창과 경험치, 능력 수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괜히 이 세계에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꺼냈다가 쓸데없는 의심 및 우려를 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험치를 획득하고 어떻게든 이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다른 이들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아니, 가장 중요한 이들은 이들이 소환자라는 점이지.’
하지만 호는 곧 고개를 저었다.
‘흐응. 이 녀석들이 소환자? 전승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데? 뾰족한 귀를 가진 녀석들이나 강아지보다도 못한 느낌이잖아?‘
커티삭의 영주인 페릴 예노스가 자신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호는 그녀가 말한 전승과 소환자의 관계가 무엇인지 함께 일을 하는 몬스터들을 통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
‘대륙을 통일시킬 수 있는 존재. 창조신 리그로우와 세리너스의 계시를 받은 존재. 우리는 그들을 가리켜 소환자라 부른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호가 모를 리 없었다. 이들이 말하는 전승에 따르면 소환자라 불리는 이들은 유저를 가리키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전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선택받은 존재, 오직 하나의 이만이 세계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니. 그와 함께하는 생명들에게 영원한 영광이 있을 것이다.’
애꾸는 오크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었다. 이들의 전승에 따르면 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선택받은 소환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결국 소환자들은 하나하나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나 다름없었다. 엔딩을 보기 위해 이 대륙의 통일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유저.
그 엔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호는 아마도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던 호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10레벨. 그리고 며칠 후에는 E등급 클래스로 승급을 할 생각이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도 선명했다.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정도로 높은 레벨을 보유하고 있다는 호의 대답에 세 명의 소환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시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목격한 호는 재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이상한 오해는 받고 싶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면서 괴물들과 대화를 나눴어. 그들을 통해 어떻게 해야 경험치를 많이 획득할 수 있는지, 또한 직업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괴…… 괴물들하고요?”
“응. 생김새는 무서워도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어느 정도 대답은 해주더라고.”
호는 그렇게 둘러댔다. 공략본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기에, 괴물의 이름을 파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러네요. 이 세계는…….”
한시진이 말을 흐렸다.
“괴물들이 사는 세계였죠. 그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본다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호는 가만히 세 여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녀들은 너무나도 쉽게 납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식당을 문을 활짝 열고 멜리아 비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와 소환자들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의 방으로 향했다.
* * *
호의 말대로 주민들을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지식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들은 경험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세부 능력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족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영주성에 있는 마족들은 그녀들의 질문에 퉁명스럽긴 해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큰 변화는 없었다. 호는 계속해서 공사 현장에 나갔고, 그녀들은 여전히 영주성의 잡무를 처리하며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녀들에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일과 등급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횟수가 조금 많아졌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호는 드디어 하사관 클래스의 전직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호는 상태창과 공략본을 열어 자신의 능력과 공략본에 적힌 전직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 E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겠어.”
전직을 하는 데 이벤트를 거치거나 특수한 아이템이 필요한 직업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직업들은 대부분 등급이 높았다.
E등급에 불과한 하사관은 유저가 간단한 명령어로 쉽게 승급할 수 있었다.
“클래스 체인지, 하사관.”
띵동.
-E등급 클래스, 하사관 전직에 따른 모든 능력치를 만족하고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다행이네.”
눈앞으로 떠오르는 반투명한 메시지를 확인하며 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사용하던 명령어가 이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전직한다.”
띵동.
-하사관(E) 전직에 성공했습니다.
-등급 변경에 따라 능력치가 한계가 상승했습니다.
-‘나도 이제 E등급!’의 업적 보상으로 경험치를 50 획득했습니다.
“오?!”
연달아 이어지는 메시지에 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업적 보상으로 50의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보이고 있었다.
“이건 나쁘지 않은데?”
50의 경험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공사 현장에서 일주일이 넘게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메시지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띵동.
-하사관(E) 으로 전직하면서 특성 (부대 강화)와 스킬 (호통)을 획득했습니다.
호는 재빠르게 자신의 정보창을 열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10
6. 직업 : 하사관(E)
7. 세부 능력
통솔 : 10/50(D) 무력 : 10/30(E)
지력 : 6/30(E) 정치 : 9/10(F)
매력 : 8/30(E)
8. 특성 : 부대 강화
9. 스킬 : 호통
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통솔 능력의 한계 등급이었다. 하사관이라는 직업의 보정으로 인해 D등급이 된 통솔 능력은 이제 최고 50까지 성장시킬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일과 등급에 영향을 주는 정치 능력의 한계는 변함이 없었지만, 무력을 포함한 다른 능력들 역시 한계 등급이 높아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