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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3화 (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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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13화

“아무래도 초보자의 선물은 받은 것 같고.”

호에게 배정된 방은 10평 남짓한 크기였다. 그런 방을 소환자인 호가 혼자 독차지하고 있었다.

가구가 낡은 것은 흠이었지만 크게 불편을 느낄 만한 것도 없었다. 게다가 청소 역시 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 층을 쓰는 만큼 다른 소환자들의 방 역시 자신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초보자의 선물까지 있다니. 빌어먹을, 게임 같은 현실.”

다시 복잡해지는 머리를 뒤로한 채 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을 펼쳤다.

커티삭에서 도착을 한 지도 벌써 일주일. 게임이었다면 슬슬 직업을 선택할 시기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는 만큼 호는 직업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직업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스킬과 세부 능력치의 한계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높은 등급의 직업은 까다로운 전직 조건을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모든 직업의 전직 조건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지.”

하지만 호에게는 이 세계로 오기 전 다운받은 공략본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략본에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이 지닌 세부 능력치의 한계, 획득할 수 있는 스킬, 직업을 획득하는 방법 역시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호는 천천히 공략본에 나와 있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획득할 수 있는 직업의 정보를 읽어갔다.

“만약 이 상황이 게임이었다면…….”

그렇게 공략본을 읽어내려 가던 호가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랬다면 화려한 액션을 펼칠 수 있는 근접 전투가 가능한 직업을 골랐을 터였다. 호가 게임을 플레이할 때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다.

호 제국의 황제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첫 엔딩을 보았을 때 그가 보유하고 있던 직업은 검을 끝을 본 SSS등급의 클래스, 소드 엠페러였다.

강력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 클래스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전투 계열의 직업도 각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다.

물론 전투 계열의 직업만이 아니라 상인과도 같이 영지 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직업들도 있었지만,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호는 보조 계통의 직업으로는 전직할 생각을 접었다.

공략본을 바라보는 호의 눈빛이 점점 진지해졌다.

어쨌든 지금 당장 직접 전투를 펼쳐야만 하는 직업은 피하고 싶었다.

선택의 신전에서 마왕 쉐르난비체에게 죽을 뻔했던 경험이 아직도 트라우마 비슷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이 세계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똑같은 배경이라면 분명 그녀 못지않은 괴물들이 존재할 터였다.

“그런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치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세부 능력치를 한계까지 올릴 수 있는 높은 등급의 직업이 필요했다.

아니, 높은 등급의 직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목숨을 걸고 이 세계의 존재들과 무기를 맞댈 자신이 없었다.

적어도 이 세계가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호는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는, 혹은 상대와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계획이었다.

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공략본을 훑기 시작했다.

[하사관(E)-분대, 혹은 소대라 부르는 소규모의 전투 집단을 지휘하는 클래스.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상승한다.

전직 조건-전 종족 가능. 레벨 10과 통솔, 무력, 매력 수치가 10, 10, 8을 만족할 경우 전직 가능]

그러던 도중 하나의 직업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하사관?”

지휘관 계통의 하위 클래스로 보였다. 가상현실게임에서 경험해 본 클래스는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특히 부대를 지휘한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그 말은 즉, 부하들을 이용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커티삭이 위치한 ‘붉은 핏빛의 대지’는 두 개의 엘프 종족 영지와 하나의 수인 종족 영지가 위치한 교전 지역이었다.

호가 알고 있는 게임의 설정에서 이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대화보다는 무기를 먼저 휘두르기로 유명한 관계였다.

결국 언제 교전 및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전쟁터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그런 전쟁터에서 하사관이라는 직업은 자신의 생존율을 조금이나마 높여줄 수 있었다. 정 수틀리면 부하들을 미끼로 던져놓고 혼자 도망을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서두르지 말자.”

마음으로 하사관 클래스를 점찍은 호는 다른 직업들의 정보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사관만큼 호의 마음을 흔드는 직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있다 하더라도 전부 근시일 내에는 전직이 불가능한 상위 등급의 직업들뿐이었다.

“하사관으로 전직해야겠어.”

그렇게 결정을 내린 호는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세부 능력과 보유한 경험치를 확인했다.

공략본에 따르면 하사관으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통솔과 무력 수치가 10, 매력 수치가 8이 필요했다.

“조건을 만족시키는 게 하나도 없네.”

하지만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시스템에 따르면 유저는 자신이 획득한 경험치를 이용해 레벨과 세부 능력을 높일 수 있었다.

세부 능력이 점점 높을수록 능력을 상승시키는 데 필요한 경험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지금 당장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호가 하사관으로 전직하기 위해서는 10레벨을 만족시키는 것과 동시에 7과 6밖에 되지 않는 통솔 및 무력 수치를 10으로 만족시켜야 했다.

결국 지금 당장은 전직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요 며칠 공사 현장에서의 노동을 통해 획득한 경험치가 있었다.

“일단…….”

잠시 고민을 하던 호는 자신이 획득한 경험치를 투자해 레벨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치를 모조리 투자한 결과 레벨 1이 3으로 변했다.

“이거 너무 짠데?”

호는 자신의 레벨을 확인하며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의 경험을 생각하면 적어도 5레벨은 되어야 하는 경험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세계가 게임도 아니고, 자신의 경험이 정확히 맞아떨어질 리도 없었다.

오히려 게임처럼 경험치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지덕지해야 했다.

어찌 되었든 하사관 전직이라는 목표가 생겨난 만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호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아무 일 없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랐다.

* * *

“취익!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가, 호? 췩?”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애꾸눈 오크의 말에 호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 및 계획 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오크에게 그런 사실에 대해 말을 해 줄 필요는 없었다.

“싱겁기는. 취익.”

오크는 호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시간 참 빠르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탈을 쓴 이 이상한 세계로 끌려와 마족에 소속되어 커티삭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호는 멀쩡하게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푸르르르! 어이! 조심해!”

호는 대답 대신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석재를 등에 진 미노타우르스가 거친 콧바람을 내쉬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즐기던 게임이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이야.”

덕분에 호는 몬스터들과 함께 공사 현장에서 일한다는 황당한 상황에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괴물들이겠지만 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인지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병영 공사 진척도-89%]

“더럽게 오래 걸리네…….”

다만, 공사의 진행 속도는 속이 답답할 만큼 더뎠다. 한 달이 흘렀지만 처음과 비교해 고작 50%가 넘는 수치만이 상승했을 뿐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그 이유를 아는 호에게는 답답한 일이었다.

‘왜 공사 현장에 담당 영웅을 배치하지 않는 거지?’

영웅의 명령에 따라 현장의 인부들이 효율적으로 달려들면 일주일, 아니, 길어봤자 보름이면 완공시킬 수 있는 게 바로 병영이었다.

하지만 오크들은 병영 건설보다는 엘프 종족이나 수인 포로들을 괴롭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커티삭의 영주인 페릴 예노스나 또 다른 영웅 멜리아 비쉬는 이 현장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저 녀석들이 없었으면.”

“음푸우?!”

미노타우르스가 하나가 고개를 들어 커다란 눈망울로 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호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소와 비슷하게 생긴 종족이라 그런지 공사 현장의 미노타우르스는 그 어느 인부들보다 열심 그 자체였다.

공사 도중 수인 노예 하나를 힘으로 찢어버리는 모습만 보지 않았더라면 더 호감이 갔을 테지만 역시나 그들도 몬스터였다.

“상태창.”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10

6. 직업 : 파이터

7. 세부 능력

통솔 : 10/10(F) 무력 : 8/10(F)

지력 : 6/10(F) 정치 : 9/10(F)

매력 : 7/10(F)

8. 특성 : 획득하고 있는 특성이 없습니다.

9. 스킬 :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 없습니다.

상태창은 전과는 다르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하사관으로 전직하기 위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병영 건설에 몰두하면서 얻은 경험치를 투자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호는 하사관으로 전직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면 전직할 수 있겠네.”

그리고 오늘의 노동을 마치고 경험치를 획득하면 무력 포인트 하나를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호가 경험치를 이용해 레벨과 능력 포인트를 높이는 동안 호와 함께 커티삭에 도착한 다른 소환자의 행동 역시 예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현실에 대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한씨 자매와 아스트리드 벨 역시 상태창의 존재를 깨닫고는 경험치 획득해 능력 포인트를 올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들은 커티삭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서도 상태창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눈치챈 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넌지시 상태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그제야 그녀들은 화들짝 놀라며 경험치를 획득하는 데 열중했다.

띵동

-오늘의 일과 등급은 A입니다. 경험치를 9 획득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열심히 땀을 흘린 대가가 호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노동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는 그날의 일과 등급에 따라 최소 6, 최대 10씩 주어졌는데, 호는 매일 A등급 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취익! 취익! 퇴근이다!!!”

“췩! 취이익!”

“취칙!”

오늘의 공사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듯 노란색의 안전모를 쓴 오크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자신이 등급을 결정짓는 감독관이라면 저 오크들의 일과 등급은 F, 아무리 좋게 봐줘도 D였다.

물론, 미노타우루스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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