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리그너스 대륙전기 011화
“……꿀꺽.”
“으…… 으으…….”
인구 삼천의 마을은 단순히 수치로만 봤을 때는 상당히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커티삭을 실제로 본 일행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존재가 마을 내를 오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모습은…….
“괴…… 괴물!”
“쉿. 한시연! 조용히 해!”
사람의 허리 정도 크기에 눈이 하나밖에 없는 붉은 피부의 몬스터를 발견한 시현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재빠르게 시진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에 호 역시 몸을 움찔했다. 여기서 비명을 질렀다가는 마을 내에 있는 모든 존재의 시선을 끌게 분명했다.
“뀨륵?”
두려움이 가득한 눈망울로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시현을 향해 몬스터는 자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여주고는 몸을 돌렸고, 두 여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족과 마수라 불리는 몬스터들이 함께하고 있는 커티삭은 지옥에서나 등장할 법한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게임 속 유명한 몬스터 오크였다.
“취이익?”
“취에엑? 인간? 인간인가?”
“취익? 아니다. 냄새가 다른데? 대체 어디에서 온 인간이지?”
대륙에서 살아가는 인간들과 다른 생김새에 특이한 옷을 입은 호와 일행은 금방 커티삭 내를 돌아다니는 생물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렇게 수레가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일행을 향해 수군거리는 몬스터들의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대화 자체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험상궂은 모습들은 게임을 통해 익숙해진 호를 제외한 나머지 여인들에게 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수레가 커티삭의 영주성에 도착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페릴 예노스
2. 성별 : 여(721)
3. 종족 : 서큐버스
4. 소속 : 마족
5. 레벨 : 162
6. 직업 : 블랙 서큐버스
7. 세부 능력
통솔 : 162/200(B)
무력 : 292/300(A)
지력 : 126/200(B)
정치 : 139/200(B)
매력 : 472/500(S)
8. 특성 : 채찍 마스터, 침대 위의 폭군, 사랑스러운 미녀, 자라나라 남성남성
9. 스킬
<밤에도 일해라> S랭크
누구든 한눈에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한 몽마 서큐버스는 남성들의 꿈에 찾아가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이런 서큐버스의 행위는 남성 개체의 번식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밤에도 일해라’ 스킬은 오직 서큐버스 종족만이 습득할 수 있습니다.
-효과 : 스킬을 보유한 영웅이 주둔하는 도시의 인구 증가율이 20% 상승합니다.
<저를 때리시려고요?> B랭크
아름다운 서큐버스를 공격하는 행위는 남자로서 하기 힘든 굉장히 가슴 아픈 일입니다. 자신의 무기로 인해 그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을 듣는 것은 고통이나 다름없는 일이죠. 아, 물론 여성들은 예외입니다. 오히려 엄청난 분노를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효과 : 남성 영웅이 이끄는 부대에게 공격받을 경우 피해량이 15% 줄어들지만, 여성 영웅이 이끄는 부대에게 공격받을 경우 피해량이 45% 늘어납니다.
10. 호감도 : 91/1000
‘후아…….’
눈앞에 보이는 여인, 아니, 자신을 커티삭의 지배자라고 소개한 서큐버스 영웅 페릴 예노스의 능력치를 살핀 호는 진심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그녀는 호가 처음 이 세계로 끌려 들어왔을 때 만났던 인간 종족 영웅 벨리네 크로아트와 동급인 B등급 영웅이었다.
하지만 만약 자신에게 둘 중 누군가를 휘하로 삼을 수 있다고 물어본다면 호는 백이면 구십 정도 페릴 예노스를 선택할 터였다.
페릴 예노스가 보유한 S등급 스킬 밤에도 일해라 때문이었다.
‘인구수가 부족한 낙후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는 필수적이나 다름없는 스킬이잖아?!’
그와 함께 그녀가 보유한 특성 중 하나인 자라나라 남성남성과의 시너지를 잘 이용하면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인구수를 늘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는 쉽고 빠르게 영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런 커티삭의 지배자, 페릴 예노스의 옆에는 서양 귀족의 가정교사 느낌을 물씬 풍기는 외알 안경의 서큐버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멜리아 비쉬라는 이름의 B등급 영웅이었는데, 페릴 예노스와 마찬가지로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는 영웅으로 보였다.
‘B등급 영웅이 두 명이 있는 영지라…….’
어째서일까? 아무리 커티삭의 발전도가 개척 도시 수준으로 낮다고는 해도 다른 종족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의아할 정도로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호는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가 파르르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시현?’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서큐버스들을 보고 선택의 신전에서 있었던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른 것으로 보였다.
“아!”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호는 한시현의 손을 꽉 잡았다. 시현의 입에서 당황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호는 잡고 있던 손을 놓지 않았다.
“흐응. 이 녀석들이 소환자? 전승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다른데? 뾰족한 귀를 가진 녀석들이나 강아지보다도 못한 느낌이잖아?”
호의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여기서 자신들의 생사는 저 서큐버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페릴 예노스의 말에는 실망감이 아주 가득 담겨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하신 만마의 지배자 쉐르난비체 폐하께서 이들을 예노스 님에게 맡기신 게 아닐까요?”
“그런가?”
“물론입니다. 만마의 지배자인 쉐르난비체 폐하께서는 예노스 님을 굳게 신뢰하시는 게 분명합니다. 중요한 국경 지역인 커티삭과 창조신의 계시를 받은 소환자들을 예노스 님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폐하께서 예노스 님을 신뢰하고 믿고 계신다는 증거죠.”
멜리아 비쉬가 하는 말을 들으며 호는 속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신이 모시는 영주에 대한 칭찬이 아주 수준급이었다.
“흐흐흥…….”
“일단 쉐르난비체 폐하께서 맡기신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예노스 님께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밖으로 돌렸다가는 그냥 죽어버리겠지?”
“제 생각이지만 이들은…… 떠돌이 오크가 나타나도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쉐르난비체 폐하께서 맡기신 애들이니까 쉽게 죽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영주성에서 생활을 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멜리아 비쉬의 말에 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다행히 선택의 신전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소환자라 불리는 자신들에게 적대감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당장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이상, 그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있는 종족들이 자신들에게 호의를 가져주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쉐르난비체 폐하께서 이들을 커티삭에 보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들이 계시에 나오는 존재인지 예노스 님께서 알아내기를 바라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계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 한 명. 하지만 여신 라헬이 이 세계로 데리고 온 소환자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죽여도 딱히 상관이 없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라면 분명 계시에 나올 만한 존재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화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던 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는 웃는 얼굴로 계속해서 소환자들의 처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오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호의 몸이 통제를 잃은 듯 움직이고 있었다.
대화에서 알 수 있는 묘한 분위기에 시진, 시현 자매와 아스트리드 벨의 표정도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역시나 마족이었다.
“히이잇!”
그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카타리나 아키네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몽롱하게 풀린 아키네의 눈을 본 순간 호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서큐버스의 마력이 발작한 것이다.
“어라라? 얘 봐라? 어쩌다가 우리 종족의 마력에 중독된 거지?”
“아무래도 쉐르난비체 폐하와 선택의 신전에 함께했던 동족의 행동으로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상태를 보아하니 중독이 제법 심각해 보이는군요.”
“음음. 얘를 어떻게 해야 할까?”
페릴 예노스가 싱글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마력에 중독된 아키네의 모습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커티삭의 시설로는 치료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내가 먹어도 될까?”
히죽히죽 웃는 페릴 예노스의 모습에 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녀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키네의 몸을 중독시킨 서큐버스의 마력을 흡수하면 페릴 예노스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카타리나 아키네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인데, 페릴 예노스의 반응을 보아하니 그런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뜻대로 하시죠.”
“좋아! 얘는 여기에 두고 나머지 애들은…….”
말을 멈춘 예노스의 눈동자가 소환자들을 빤히 훑었다.
“지금 당장은 무엇을 시켜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손님이 머무는 방으로 보내도록 해.”
그렇게 커티삭에서의 처우가 결정이 되었다.
* * *
커티삭에 도착한 다음 날, 호는 커티삭의 건설 현장에 인부로 투입이 되었다. 병사를 양성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시설인 병영의 건설 현장이었다.
[건물 정보
병영-병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설입니다. 영지를 지키는 병종을 육성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건설되어야 하는 시설이며 병영의 업그레이드를 바탕으로 고급 병종의 육성이 가능해집니다.
건설 조건-9,200리스, 목재320, 석재330]
“으음.”
눈앞에 나타난 화면을 주시하던 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눈앞에 보이는 공사 현장의 건물 정보를 살펴본 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상현실게임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는 마스터 메뉴를 불러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엘프와 수인 종족, 그리고 오크들을 비롯해 마족을 이루는 다양한 종족이 목재와 석재와 같은 자재들을 나르며 현장을 오가고 있었다.
마족에 속하는 오크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엘프 종족과 수인 종족들은 노예로 건설 현장에 투입되었는지 다들 눈동자가 흐릿했다.
“음푸우! 커티삭의 영주 페릴 예노스 님의 명령에 따라 너는 오늘 하루 병영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 푸르르. 저기 보이는 팀에서 일을 하면 된다. 왼쪽 눈을 다친 애꾸 오크가 있는 팀이다.”
“……네.”
호는 콧바람을 거칠게 내쉬며 말하는 미노타우르스에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는 만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