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리그너스 대륙전기 009화
따아악!
“크아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아픔에 호는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자 수레에 있던 여자들이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호의 뒤통수를 강타했던 커다란 나무 곤봉을 든 리자드맨이 쉬익 거리며 말했다.
“쉬엑. 시끄럽다, 인간. 커티삭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더 이상 시끄럽게 하면 혀를 잘라내겠다.”
“크으으…….”
리자드맨은 그렇게 경고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아픔과 함께 뒤통수에서 뜨뜻한 감각이 느껴졌다. 아마 쉐르난비체에게 다쳤던 부위가 또다시 찢어져 피가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잠시 리자드맨의 눈치를 보던 말총머리의 여자가 조심스럽게 호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괜찮아요?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는데, 잠시 가만히 있어봐요.”
“으읏……!”
찌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호의 귀에 들려왔고, 여자는 능숙하게 호의 머리에 난 상처를 동여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상황에 깨끗한 천이 있을 리는 만무, 호는 여자가 무엇으로 자신의 머리를 동여매는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이럴 때일수록 서로 도와야죠.”
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여자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인 동생의 옆으로 돌아가 앉았다.
수레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빈말이라도 승차감은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몸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은 조금씩 호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 * *
수레를 타고 이동을 한 지도 벌써 며칠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는 여자 친구인 혜연과 부모님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여기서 살아남아야 했다.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호랑이 굴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다.
일단은 구출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호는 이 세계에 대해 소환자 중 누구보다도 익숙했다.
다행히 긍정적인 것은 이 이상한 세계로 끌려오기 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관한 모든 공략본을 다운받았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 세계에서도 자신이 다운받은 공략본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공략본이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100%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게임과 이 이상한 세계는 달라 보이면서도 똑같은 점이 제법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호는 게임 속의 공략본이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는 맞아떨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운받은 공략본을 살펴보던 호는 자신과 똑같이 마차에 갇혀 있는 신세인 소환자들을 바라봤다.
이들 또한 자신처럼 이 이상한 세계에 빠져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씁쓸한 미소가 배어 나왔다.
네 명의 여자는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마차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호를 치료해 줬던 말총머리 여인과 그녀의 동생은 서로 바짝 붙어 있었는데, 종종 여인이 동생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일까? 동생의 반응이 영 미적지근했기에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아!”
오른편에서 들려오는 묘한 소리에 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소리의 주인공은 머리를 와인빛으로 염색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서큐버스의 마력에 당했다고 했지?’
그녀는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 종종 눈이 풀려 있었는데, 호는 그 모습이 서큐버스의 마력에 오염되었을 때 볼 수 있는 나타나는 증상이라는 것을 가상현실게임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약쟁이처럼 시시때때로 추욱 늘어지는 그녀의 모습에 모두들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
호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에게로 향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서양 여성이었는데 언뜻 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호의 눈을 확 잡아끄는 게 있었다.
‘……드레스?’
놀랍게도 그녀는 중세시대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영화 속 의상과는 외형이 조금 다르긴 했다.
영화 속 드레스는 굉장히 불편해 보였지만, 눈앞의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은 활동하기 편하게 개량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개량 한복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드레스라니? 대체 뭐 하던 사람이야?’
굉장한 강렬함을 안겨주는 의상이었다. 게다가 옷의 주인과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어쨌든 드레스의 주인은 지금의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호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단순한 생각일지 놀라도,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마치 영화 속의 히로인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궁금함이 들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아스트리드 벨
2. 성별 : 여(23)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1
6. 직업 : -
7. 세부 능력
통솔 : 10/10(F) 무력 : 5/10(F)
지력 : 10/10(F) 정치 : 9/10(F)
매력 : 9/10(F)
8. 특성 : 획득하고 있는 특성이 없습니다.
9. 스킬 :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 없습니다.
‘헐?’
헛웃음과 함께 호는 드레스 여인의 정보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녀의 능력치가 좋다거나 혹은 본인이 알고 있는 여인이라서 나온 반응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정보와 너무나도 비슷한, 아니, 똑같다시피 한 그녀의 정보창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면 이런 정보창이 보일까? 내친김에 호는 수레에 함께 갇힌 남은 여인들의 정보도 살펴보았다.
역시나 셋 다 자신과 비슷한 정보를 지니고 있었다. 맨 위에 나타나는 ‘플레이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설이 들어맞았네.’
결국 선택의 제단에 있던 수많은 사람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NPC가 아닌 자신과 동등한 유저, 아니,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호는 그것이 이 세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그리고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았다.
덜그럭덜그럭.
여전히 수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했다. 가끔 주먹보다도 큰 돌덩이에 걸려 수레가 크게 덜컹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그래도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문제는 음식이었다.
“으읔.”
“언니, 나 먹기 싫어…….”
“안 돼. 한시현. 먹어. 무조건 먹어야 돼.”
냉정한 여인의 말에 시현이라는 이름을 한 소녀가 울상을 지었고, 호 역시 자신의 손에 들린 고기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리자드맨이 건네준 고깃덩이는 비린내가 역겨울 정도로 풍겨나고 있었는데 게임에 익숙한 호도 정체를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시스템의 힘을 이용해 맛 좋은 음식을 먹기만 했지 이런 음식은 먹을 일이 없었다.
“큽…….”
고깃덩이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역겨운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얼굴을 박으면 이와 비슷한 맛을 느낄 것 같았다.
하지만 뱉어낼 수는 없었다. 리자드맨이 주는 음식은 이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딱 두 번 이 고깃덩이를 줬다. 그리고 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어김없이 자신들의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렇게 호를 포함한 소환자들이 리자드맨이 건네주는 고깃덩이를 먹는 도중에도 수레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가까스로 식사를 마친 호는 수레의 철창 역할을 하는 성인의 팔목만 한 두께의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댔다.
‘커티삭.’
리자드맨이 이끄는 수레의 목적지는 커티삭. 다행히 호의 기억 속에 있는 지명 중 하나였다.
‘수인 종족 및 엘프 종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마족의 소규모 개척 도시.’
기억 속에 있는 커티삭은 조그마한 도시였다. 아니,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이었다. 어쨌든 지명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호가 호 제국의 황제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보았을 때, 커티삭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조그마한 도시에 불과했었다.
하지만 호는 이 세계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만능 도우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관우는 내 여자’라는 유저가 작성한 공략본이었다.
<<커티삭-마족의 개척 도시
수인 종족과 엘프 종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개척 도시로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한 B등급 서큐버스 영웅인 페릴 예노스가 도시를 지배합니다.
특산품은 미노타우르스의 뿔입니다.
장점-서큐버스가 도시를 지배하는 만큼 남성 게이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도시 곳곳에 널려 있다. 또한 페릴 예노스의 미모가 상당하다.
단점-호전적인 성격을 지닌 수인 종족과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 엘프 종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시시때때로 전투가 벌어진다. 직업 등급을 비롯해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면 상당히 고달프다.>>
“…….”
친절하게 커티삭의 장단점까지 설명해 놓은 정보를 보며 호의 얼굴이 천천히 구겨지기 시작했다.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나도 크게 와 닿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전투가 벌어진다고?!’
F등급의 직업을 가지고 각 종족의 영웅들을 상대한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백이면 구십 정도는 자살행위라고 말할 만한 행위였다.
수인족의 하층 계급이자 귀여움을 담당하는 다람쥐 종족이야 상대할 만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공략본을 살피는 호의 눈동자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즐기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치를 상승 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본인의 능력치를 상승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경험치를 획득하고 직업의 등급을 높이는 방법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직업은 수백, 수천가지에 다다랐는데, 이러한 직업은 F부터 SSS까지 각각의 등급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유저들은 자신이 획득한 직업에 따라 그 성장이 제한되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템! 아이템이 가장 중요해!’
하지만 호가 찾는 것은 커티삭 근처에 위치한 던전, 혹은 특별한 아이템을 보유한 몬스터들의 존재 유무였다.
직업의 등급에 따라 세부 능력치의 한계가 제한되는 것에 반해 아이템의 경우에는 그러한 제한이 없었다.
최소한 10, 아니, 20 정도의 능력치를 높여주는 아이템만 얻을 수 있어도 좋았다.
<<지하수렁-D등급 던전
등장 보스-악취 나는 라포지아, 수렁거인 듀케이션>>
다행히도 호는 공략본을 통해 플레이어가 공략할 수 있는 커티삭 주위 던전들의 위치와 그에 따른 공략 방법, 던전을 클리어했을 경우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호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이 세계에서 공략본의 내용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중 몇 개라도 정보가 맞는다면 이 세계를 살아나가는 데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