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리그너스 대륙전기 007화
[키릿?]
90도에 가깝게 목을 꺾은 멘티스라 불리는 사마귀 괴물과 눈이 마주치자 호는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영웅들은 우리에게 관심만 보일 뿐이지. 그것도 좋은 의미로 보이지는 않지만.’
초보자의 선물처럼 게임과 비슷한 설정이 남아 있다면 소환자가 멘티스에게 목숨을 잃는 것을 그냥 방관할 리 없었다.
“으으…….”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저 남자 역시 그냥 두지 않았으리라.
치료 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저런 부상쯤은 가볍게 치료할 수 있는 이들만 해도 대략 잡아 스무 명 이상으로 보였다.
‘초보자의 선물이 없다면…….’
호는 그런 영웅들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거 야단났는데?”
실시간 롤플레잉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여러 장르가 크로스되어 있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는 간단히 말해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었다.
게임을 시작한 유저는 공통적으로 아무런 클래스도 보유하지 못한 채 F등급의 보잘것없는 능력치로 이 세계에 내던져진다.
그런 유저들보다도 못한 각 종족의 영웅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인족 중 가장 하층 계급이자 귀여움을 담당하는 게임의 마스코트인 다람쥐 종족이나 붙어볼 만한 수준.
‘별다른 이름조차 없는 일회성 엑스트라 영웅들도 대부분이 F등급보다 강한 E등급 영웅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들은 자신이 선택한 종족의 영웅들과 친분을 맺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세부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했다.
그러면서 던전을 공략해 능력치를 올리고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 대륙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을 길러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 대륙을 통일해 엔딩을 보는 것이 이 게임의 일반적인 성장 루트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소환자들이 종족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같은 종족 영웅들의 도움은 기대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에서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 만큼 괜히 겁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빠졌다는 것 자체가 겁을 먹기에는 충분했지만 말이다.
화아아아악!
그렇게 호가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정리하던 도중 선택의 제단에 환한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어렴풋하지만 예전 선택의 신전에서 있었던 일들이 기억나고 있었다.
‘선택의 시간이다!’
호의 얼굴 위로 안도감이 떠올랐다. 소환자들을 향해 광기에 찬 고함을 지르던 일곱 종족의 목소리가 음소거라도 된 듯 사라졌다.
제단 위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사람들도 빛줄기가 내리쬐는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1회 차 소환자들의 소환이 끝이 났습니다. 총 인원은 138명입니다.]
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신전에 웅웅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게임 지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 목소리는 라헬이 분명한데?’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그리고 유저가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존재인 여신 라헬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소환자들의 소환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빛무리를 향해 호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계속해서 라헬은 선택의 시간을 진행해 나갔다.
[인간의 여덟 국가를 대표해 선택의 신전을 찾아온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 이레네 아르티아. 스무 명의 소환자를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여신 라헬의 음성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슴에 독수리의 문양이 새겨진 금빛의 갑옷을 입은 여성이 몸을 일으켰다.
에메랄드색의 찬란한 머리카락이 특징인 그녀는 8왕국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나라 중 하나인 골든 크로우의 지배자로 무려 SSS등급의 영웅이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로 유저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대표적인 영웅 중 하나였기에,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 언니. 어떻게 해?”
“쉿. 가만히 있어.”
“저건 또 뭐야. 시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소환자라니? 선택? 우리가 무슨 노예야?”
“돌아가는 상황이 불만스럽겠지만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요. 저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무기는 장식이 아닌 걸로 보이니까.”
“맞아요. 괜히 나섰다가 험한 꼴이라도 당하면 당신만 손해요.”
많은 기사를 대동한 채 사람들이 모인 원형 제단으로 걸어오는 이레네 아르티아의 모습에 제단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출해 냈다.
지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호 역시 이레네 아르티아를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호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혼란스러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인간 종족…….’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종족 중 하나로 단점은 없지만 딱히 장점도 없는 무난한 종족이었다.
그로 인해 유저들에게는 지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지금 호에게 있어 인간 종족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소속된 영웅들의 능력치도 적당했고 전쟁 시에 사용할 수 있는 병종 또한 큰 단점이 있긴 해도 밸런스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인간 종족은 처음 시작하는 유저가 활동하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초보자들이나 하는 종족이라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인간 종족이 가장 좋은 선택이야.’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게다가 인간 종족으로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보기까지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익숙한 환경을 선택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호는 살짝살짝 사람들을 밀치며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레네 아르티아의 눈에 들어 인간 종족으로 선택받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나이트 딕스, 저쪽부터 스무 명을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스, 마이 로드.”
선택의 제단에 올라선 이레네 아르티아가 왼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고, 곧 몇 명의 기사가 나서서 뭉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봐야만 했다. 이레네 아르티아가 가리킨 방향은 호가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티아의 명령에 따라 기사들이 자신들을 끌어내기 시작하자 몇몇 사람이 저항하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사마귀 괴물과는 달리 인간이나 다름없는 기사들의 익숙한 생김새에 용기가 난 것이다.
“이거 놔!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자식들! 내가 누군지 알아!!! 네놈들 대체 정체가 뭐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흑흑.”
“엄마! 엄마야!!!”
사마귀 괴물의 무서움에 짓눌려 숨죽였던 소리들이 순식간에 터져 나왔다. 그중에는 기사들을 향해 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아아…….”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의 기사들은 멘티스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 진정한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재앙이 일어났다.
“나이트 딕스, 혼란 상황을 만드는 주동자에게 검을 쓰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예스, 마이 로드.”
아르티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검광이 번쩍였고,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우웁! 웁!!!”
“끼야아악!!!”
검광이 번뜩이는 것을 본 호는 재빠르게 눈을 감고는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비명과 헛구역질 소리가 그들의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격렬하게 저항을 하던 중년의 남성이 양다리가 잘린 채 가축처럼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남성의 뒤로 열아홉의 사람이 라헬의 손짓으로 생겨난 문을 통해 포로처럼 사라졌다.
“미…… 미친…….”
“으으으……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엘프나 드워프, 마족 같은 종족과 달리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인간들이 보여준 행동은 남아 있는 사람들을 다시금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엘프 종족과 수인족의 선택이 이어졌고, 그들의 손에 선택된 사람들이 노예처럼 끌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게 모두의 표정으로 잔뜩 드러나 있었지만, 처음처럼 반항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항을 하면 어떤 꼴을 보게 되는지 이미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인족의 왕 아쉬토가 등장했을 때는 호를 비롯한 제단 위에 있는 사람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호랑이 머리를 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그는 수인족을 이루는 부족 중 하나인 호인족으로 게임이나 소설 속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종족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에게 있어 아쉬토의 생김새는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곧이어 정령 종족과 드워프 종족을 따라 사람들이 끌려 나갔고, 다음으로 성스럽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천족들이 스무 명의 사람을 선택해서 라헬이 만들어낸 문으로 사라졌다.
“큭…….”
이제 남은 종족은 단 하나. 그리고 호는 아직까지도 선택의 제단 위에 서 있었다.
‘빌어먹을!’
[블라디션의 군주이자 만마의 지배자 쉐르난비체. 남은 소환자들을 데리고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여신 라헬의 목소리에 따라 또각거리는 걸음 소리가 선택의 제단 위로 큼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차츰차츰 공포라는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선택의 제단을 구성하고 있는 돌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잠시 고개를 들었던 사람이 흠칫하며 다시 고개를 숙이는 움직임이 등 뒤로 느껴지고 있었다.
“으…… 으아악!”
그렇게 마족들이 선택의 제단 위로 올라섰고, 거대한 마수 베히모스와 마주친 남성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발걸음 소리가 멈췄을 때, 호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존재하는 SSS등급 영웅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마왕 쉐르난비체가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마족이라니?!’
유저인 호가 그 어떤 종족보다도 가장 선택받기 싫었던 종족이 바로 마족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성격을 지녔으며, 잔인하며 교활하기까지 한 종족이 바로 마족이었다.
그런 마족들을 가리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유저들은 모든 종족의 단점을 합쳐놓은 종족이라는 평가를 내렸었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영웅들의 전투 능력만큼은 모든 종족 중 최강!’
게다가 마족의 병사들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등장하는 병과 중 전투 능력만큼은 독보적인 원 톱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특히나 마족의 마법병과는 대마장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장기라는 전투 병기를 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스켈레톤, 구울, 오우거, 베히모스, 트롤, 서큐버스 등 다양한 마족 및 마수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상상 이상의 시너지를 자랑했고, 매력적인 스킬들로 아군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족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에게 있어 충분히 강력하지만 난이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종족이었다.
‘이게 정말로 가상현실게임이라면 괜찮겠지만…….’
그러나 이들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종족 중 가장 호전적이었고, 그에 따른 단점도 굉장히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