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 나의 적은 누구인가 (19/21)

17. 나의 적은 누구인가

수도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경비가 삼엄한 왕성 입구에 명문가의 마차가 즐비했다. 귀족들은 마차에서 나와 경비를 서는 기사들에게 호소했다.

“저희 남편이 이틀 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저희 형님도…….”

“저희 아버지도…….”

그들의 수는 수십이었고, 각기 다른 성별과 나이를 가지고 있었다.

‘뭐지?’

기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왕성으로 들어가는 마리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왕성의 분위기가 변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도대체 뭐가 달라져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그녀가 자세한 전황을 알게 된 것은 마리안을 만난 이후였다.

마리안을 통해 대강의 상황을 들은 마리엘라가 경악했다.

“귀족들을 모두 가둬 놓고 있다고요? 지금까지 계속?”

“심문 중이래. 내부에 납치범들과 내통 하던 첩자가 있다나.”

그녀는 그것이 가짜 명분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설사 진짜 첩자가 있었다고 해도, 영리한 요제프의 성정 상 다른 귀족들까지 모조리 가두는 악수를 두지는 않을 터였다.

‘우리가 납치된 사이, 룩센투크 내부에서 뭔가 큰일이 터졌군.’

정확한 것은 요제프를 만나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상태가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마녀의 단검이 심장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많은 출혈을 불러일으키긴 했다.

마리엘라는 그를 만나러 가기 전에 확인 차 그의 상태를 물었다.

“왕자 전하를 만나 뵈었나요?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다죠?”

그런데 돌아오는 마리안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리안은 빈정 상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팩 돌렸다.

“모르지, 그 재수 없는 놈 죽든 살든.”

“?”

마리엘라가 고개를 돌려 데이지를 쳐다보았다. 데이지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갑자기 마리안이 요제프에게 적대감을 내비치는지 의아했다.

궁금증은 곧바로 이어지는 마리안의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모두 해결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깜찍하게 날 속아 넘길 수 있지? 그 순진하고 말간 얼굴로 내 사랑, 나의 작은 새, 나의 꽃 거리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날 비웃었을까. 그러고 보니 예절 수업을 수락한 것도 그놈이었지?”

마리안이 분노에 못 이겨 씩씩댔다. 아무래도 죄책감에 시달리던 미하엘이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한 것 같았다.

마리엘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덤덤하게 말했다.

“저도 아가씨를 속였는걸요.”

‘그리고 아가씨도 요제프를 속이려했잖아요. 요제프가 안 속았을 뿐.’

마리엘라는 마리안이 이 상황에 화낼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리엘라, 마리안, 요제프, 미하엘.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열아홉 살짜리 청년 미하엘을 제외한 셋은 서로에게 철저한 가해자였다. 세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기만하고, 관계를 능멸했다. 때문에 억울해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마리엘라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리안이 그런 걸 다 염두 해서 판단 내릴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왕자비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리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넌 상황이 다르지! 내가 빼앗았던 걸 다시 찾아간 거니까.”

‘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마리엘라가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마리안은 합리화의 대가였고, 그 능력을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말은 곧 분노의 화살을 난데없는 데에 돌리는 것에 능하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요제프.”

마리안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리엘라는 그런 마리안을 말리거나, 회유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쓸데없는 일에 쏟아부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택했다.

“열심히 해 보세요. 그럼 전 갈 곳이 있어서.”

* * *

요제프는 침대 위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가 병문안을 온 마리엘라를 보자마자 밝게 웃어 보였다.

“이게 누구신가. 마녀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사랑하는 바이르 공작을 만나러 가 버렸던 우리 마리 아가씨 아니야.”

뼈가 있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의 대화 방식이 익숙해진 마리엘라가 귀찮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변명했다.

“사정이 따로 있었어요.”

“대체 그 대단한 사정이 뭔지 직접 들어 보고 싶은걸.”

자신이 납득할 수 있게 하나부터 열까지 상세히 읊어보라는 투였다. 요제프의 눈동자에서 강한 소유욕과 질투심이 느껴졌다.

마리엘라는 요제프가 원래 이렇게 아이 같은 성정을 보이는 사람이었던가,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녀의 내면에서 나온 대답은 ‘그렇다’였다.

그녀는 대답 대신 요제프의 가슴팍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단추로 여민 잠옷 사이로 붕대로 꽁꽁 동여맨 가슴이 보였다.

“부상이 심하신데 휴식을 취하시죠.”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마리엘라의 모습에 요제프가 양 눈썹을 위로 올렸다. 모르는 척 넘어가 줄까, 말까 고민하는 듯한 익살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무표정을 고수했고, 결국 그는 마리엘라에게 져 주기로 했다.

“괜찮아. 마녀의 검이 심장을 완전히 비껴갔거든. 저주로 딱딱해진 심장이 이럴 땐 도움이 좀 되는 모양이야.”

“그래도 멀쩡한 상태는 아닐 텐데요.”

“그래서 누워서 일하고 있잖나.”

“고집 부리지 말아요. 무리를 할 때가 아니에요.”

요제프가 안타깝다는 듯 눈썹 끝을 아래로 내렸다.

“슬프지만 맞아. 너를 구하려고 무리수를 좀 뒀었거든. 내 하나뿐인 사촌 형님을 죽이고, 귀족들을 가두고, 본성을 드러내고…… 뭐 그런 것들? 사고를 좀 크게 쳤기 때문에 당장 내일 죽는다 해도 뒷수습을 해 둬야 해.”

그 말을 들은 마리엘라의 언성이 높아졌다.

“에드먼드 파칼을 죽였다고요?”

요제프는 부정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심장이 필요했어. 그리너드 왕실이 하얀 돌을 원하는데, 죽은 조상들의 심장은 줄줄이 교단에게 빼앗긴 상황에서 살아있는 혈육이 내 사촌 형 하나였으니까.”

마리엘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에드먼드 파칼의 죽음이 앞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셈해보았다. 베르단 귀족들 사이에 요제프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자칫 잘못하면 아샤칼과의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귀족들이 나서서 그를 축출해 내려 할지도 몰랐다. 그런 큰일을 벌이고도 태연해 보이는 요제프의 모습에 마리엘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샤칼 왕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내가 바삐 일하고 있는 거지. 방금 아샤칼의 대사들이 왔다 갔고, 대화는 잘 끝났어. 이 사건을 묻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군. 내가 이 일을 ‘궁지에 몰린 파칼 공작이 아샤칼로 도망간 마녀들을 끌어들여 왕실 전복을 시도한 반역’으로 탈바꿈시켰거든.”

납치극이 벌어지기 전부터 요제프가 에드먼드 파칼을 ‘왕세손 독살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물이었다.

아샤칼 왕실은 에드먼드 파칼이 외척을 믿고 베르단에서 활개를 친다고 생각했고,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아도 그 전부터 내심 불쾌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파칼 공작이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 여겼고, 요제프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원래 사람을 속이고 이간질하는 일은 특별한 기교나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방이 원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을 뒷받침하는 교묘한 말 몇 마디만 보태주면 된다. 그럼 그자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을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마리엘라는 요제프가 일을 꽤 잘 마무리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또 다른 부작용이 존재한다. 그녀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파르니의 존재를 외부에 알릴 건가요?”

요제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면 일이 걷잡을 수 없게 커져. 베르단이 또다시 내전을 겪게 할 수 없지. 조용히 묻기로 아샤칼 왕실과 합의했어. 야샤칼 대사들이 그러더군. 어쨌든 파칼 공작 역시 데르샤바크 왕실 사람인데, 신민들에게 왕자비 납치의 배후가 같은 혈통이라는 사실을 알리긴 껄끄럽지 않겠냐고. 나는 안 그래도 그 사실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척했고, 그들은 파칼 공작이 급사한 것으로 조용히 넘기기를 제안했지. 그 대가로 그리너드의 영토를 조금 주기로 했어. 크게는 아니고, 영지 한두 개 정도? 나 참, 우습지 않나? 지네 땅도 아니면서.”

요제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조소했다.

“그리너드는 우리와 직접 땅을 맞대지 않았기 때문에 영향력을 끼치기 미미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벌인 일이겠지. 멍청하긴, 우리가 그리너드 내부에서 무슨 일을 벌일 줄 알고.”

요제프의 눈이 위험하게 번뜩였다.

마리엘라는 그가 아샤칼과 그리너드와 관련해 또 어떤 꿍꿍이를 모색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적당히 모르는 척했다.

“아렐 후작은요? 에드먼드 파칼의 심장을 가지고 그리너드로 돌아갔나요?”

요제프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답했다.

“그건 여기 있어.”

“예?”

알 수 없는 소리에 그녀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했다.

“에드먼드 파칼의 심장 말이야. 우리가 이번 인질극에서 파르니의 가주를 잡았잖아. 그 여자를 통해 알아내고 싶은 게 몇 개 있는데 아시다시피 마녀들에게 감옥은 그저 문이 열려 있는 빈집에 불과해.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몇 주간 빌리도록 했지.”

마리엘라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가 순순히 빌려주던가요? 목숨을 걸고 강탈하려 했던 물건인데?”

“두 가지 정치적 계산을 한 거지. 신뢰를 저버린 그리너드 왕실에게 파르니의 마녀들이 충성할 리 없는 데다, 마녀들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하얀 돌의 파괴인데 그걸 마녀들의 눈 밖에 난 상태의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싶기도 했을 거고. 거기다가, 정보를 얻으려고 내가 건네준 것이 하얀 돌 뿐만은 아니었거든.”

“또 뭘 건네줬죠?”

“둘이 합쳐 아샤칼을 치기로 했어. 내가 왕위의 오른 뒤 일이긴 하다만.”

그제야 아렐 후작이 마녀들을 배신하면서까지 요제프의 편에 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야 마녀들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경우에는 마녀들의 개입을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것이 좋았다. 흑마법사에 예민한 교단이 그리너드의 독립 전쟁에 끼게 될 여지가 상당했고, 과거 베르단의 경우처럼 마녀들이 정계에 난입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 역시 높았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요? 오다 보니까 그들의 가족들이 성문 앞에서 아우성이던데.”

“파칼 공작과 연계됐는지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지하 감옥에서 심문 중이지. 쓸 만한 몇 명 빼고는 싹 다 갈아 치울 거야. 이제 저쪽 우두머리를 알아내야지. 너무 오래 기다렸어.”

‘저쪽 우두머리라.’

눈물을 보였던 율리안의 모습을 떠올려 본 마리엘라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모두를 요제프와 공유하지 않았다.

원래도 본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성향이 아니었을뿐더러, 확신을 하고 정보를 공유하기에는 율리안의 행동에 무언가 석연치 않은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대화가 끝나면 바로 그를 만나러 가야겠어. 잘하면 진실을 말해 줄지도 몰라. 나한텐 꽤 괜찮은 패가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책장에 고이 꽂혀 있을 그레타의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던 요제프와 눈이 마주쳤다.

“뭘 그리 보세요.”

“우리 사이에 너무 차가운 말 아닌가. 그대가 내 연인이라는 건 이제 파르니의 마녀들도 아는데.”

능청스러운 대답에, 마리엘라는 톡 쏘는 한마디를 할까 하다가 멈칫했다. 자신을 향한 진득한 눈빛에, 아렐 후작에서 마지막으로 내보였던 그 모습이 덧씌워졌기 때문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 봐.”

그녀는 답지 않게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힘겹게 서두를 뗐다.

“왜…… 본성을 그들에게 드러내신 거죠? 더 적합한 시기가 있을 텐데.”

진지한 질문에 요제프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는 붕대를 칭칭 감은 심장을 부여잡고, 서운한 티를 한껏 냈다.

“속상해. 우리 마리 아가씨는 끝까지 내 순정을 짓밟는군.”

그러나 그의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리엘라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처 하나 받지 않은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언젠가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할 줄 대충 예상하고 있었던 듯했다.

마리엘라의 얼굴이 귀까지 붉어졌다. 그녀가 입을 꾹 다물고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요제프가 그녀와 눈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숙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를 외면했다.

얼굴 위에 장난기를 지워버린 요제프가 진솔하게 답했다.

“네가 위험에 처했는데 뭘 숨기고 있겠어? 난 널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패를 다 버릴 수 있어. 목숨도 내어줄 각오를 했는데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가 마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엄지로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힘을 주어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한 번 잡은 손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가 통속 소설에나 나올 법한 멋들어진 말과 달달한 애정 행각을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진심이 오고 간다고 여겼는데, 아닌가?”

“…….”

마리엘라는 끝까지 그를 외면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두드려도 마음의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요제프가 다소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조약돌 같은 새끼손톱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얕은 한숨을 내 쉬고는 방금 전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억지로 밝은 표정을 지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래, 꼭 말로 해야 정의 내릴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렇게 해 주지 뭐.”

마리엘라가 다급하게 막아섰다.

“아니, 그러지 말아주-”

“사랑해.”

그러나 요제프가 한발 빨랐다.

그가 진지한 눈으로 마리엘라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리덴부르크 시골 영지에서 만난 그 순간부터, 그대는 내 인생의 모든 것이야.”

“…….”

“그대는 그렇지 않을지라도.”

마음속에 드리워진 짙은 음영과 두려움까지도.

* * *

“많이 늦었군.”

마리엘라가 바이르 공작가에 들리자마자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책망이었다.

율리안의 눈동자에 불안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읽어낸 마리엘라가 저도 모르게 변명을 했다.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있어서요.”

곧 정신을 다잡은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약한 모습을 보듬어 주면 안 된다. 그를 이용할 이유가 사라졌을뿐더러, 그녀의 마음이 확실히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없는 상대에게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가지고 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부러 자아내며 쌀쌀맞게 굴었다.

“사실 이곳에 되돌아올 필요는 없죠. 제가 공작께 약속드렸던 온기는 단 하루였으니까요.”

그 말에 율리안의 고개가 떨궈졌다.

“여태까지는 필요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공작의 마음을 모른 척했어요. 그 부분은 사과드리죠.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어요. 왜 그런지는 잘 아시죠?”

“마음을…… 정한 건가?”

“제 사적인 감정은 여기서 드러내지 않겠어요.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마음을 받아 줄 수 없다는 거예요. 공작의 마음이 진심인 것을 알아요. 그러나 그건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아…….”

그의 입에서 부정도 긍정도 아닌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마리엘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알겠다. 이쪽의 율리안이 진짜라는 것을.

“이곳에 온 것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그 전에 이 말을 먼저 하죠. 요제프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그 말에 숙여졌던 그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마리엘라는 들고 온 가방에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빈 책 하나를 꺼냈다.

“그레타의 책이에요.”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다른 정보에 혼란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그레타는…….”

“죽은 걸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아니었어요. 그녀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시골 지방에 숨어 살았고, 저는 그 시골 지방이 다름 아닌 리덴부르크라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게 되었죠.”

율리안의 손끝이 책 표지로 향했다. 조심스레 표지 위를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펼쳐 그 안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당혹스러워하며 물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작동법을 가지진 않았을 거예요. 전 어릴 적 그레타의 돌봄 속에서 자라왔고, 그레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이 책을 제게 넘겨줬다는 건, 제가 다룰 수 있을 만큼 쉽게 만들었다는 뜻일 거예요. 파르니의 가주를 불러와 같이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율리안이 말없이 책장만 만지작거렸다.

마리엘라가 그에게서 책을 받아내며 말했다.

“제 패를 다 보여줬으니, 이제 당신의 패를 보여줄 차례예요.”

“내 패?”

“당신은 요제프를 지키고 싶어 하죠. 동시에 그를 위협하고 적대시했어요. 공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줬다는 건, 둘 중 하나는 당신의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제 말 틀렸나요?”

정곡을 찔렀는지 그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 기세를 몰아 그를 밀어 붙였다.

“우리의 진짜 적을 말해요. 당신을 뒤에서 조종해서 요제프를 견제하게 만들었던 자가 대체 누구죠?”

한 참의 시간 후 그가 얕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얄궂군.”

자포자기와 환멸이 섞인 것 같은 미소였다. 누군가를 비웃는 것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상황을 비관하기 위한 웃음.

“네?”

그가 이마를 짚으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운명이라는 게…… 참 얄궂기 그지없어. 그토록 요제프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를 포기하자마자 찾아오다니.”

“포기하다니, 왜 갑자기, 아니, 그 전에 왜 하필 지금…….”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말에 마리엘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그녀를 힘들게 했던 여태까지와 다르게, 그의 대답이 바로 들어왔다.

“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

마리엘라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 아렐 후작의 저택에서 파르니의 마녀들에게 감금된 이후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자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게 된 것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여태까지의 신념을 저버리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커다란 차이였다.

그녀가 죄책감에 휩싸이는 사이, 율리안이 말을 이었다.

“마리엘라 코부르덴을 구해내려면 소중한 친우를 지키기 위해 구축해놓았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고, 결국 그 선택을 했지. 지금 룩센투크 정세만 봐도 알 텐데. 내가 완전 정치에 손을 뗀 상태라는 걸.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으로부터 요제프를 지키지 못해.”

“그 사람?”

그러나 죄책감은 죄책감이고. 지금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제3의 인물에 마리엘라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요제프를 암살하고 싶어 했어. 베르단을 통째로 집어 삼키기에 데르샤바크 만큼 걸림돌이 되는 게 없으니까. 내가 뒤에서 요제프와 귀족들을 잘 조종해 보겠다고 그를 설득했고, 그 결과는…….”

“설명은 나중에 하고,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요. 혹시…….”

마리엘라는 율리안의 말을 끊었다. 그녀가 그의 팔뚝을 잡고, 조심스레 율리안이 생각하고 있을 인물을 타진해 보려 할 때, 문밖에서 다급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작 각하! 지금 바이르 공작가에 교황 성하께서 타신 마차가, 앗, 교황 성하……!”

뚜벅, 뚜벅, 뚜벅.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끼이익.

문이 열렸다.

마리엘라는 넋을 놓고 새로운 손님을 바라보았다.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중년 남성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율리안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구나, 율리안.”

“……아버지.”

교황 로베르토 가르뎅.

그녀가 예상했던 바로 ‘진짜 적’이 지금 이곳에 있다.

* * *

전날 새벽이었다.

리덴부르크 백작가에서 모든 진실을 발굴해내고 수도로 올라오는 길.

마리엘라는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왜 속단했을까.’

리덴부르크 백작의 진짜 정체와 그를 둘러싼 과거사에 한정된 생각은 아니었다.

물론 그 일이 생각의 확장을 가지고 오긴 했다. 가족들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후, 마리엘라는 두 가지 인생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리덴부르크 백작 부부에 대한 복수였고, 또 하나는 귀족의 정부가 되어 신분 상승을 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조금 많이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목표하던 바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나약해질 것 같을 때마다, 가족들이 처형되던 날 느꼈던 분노와 무력감을 떠올렸다.

그날의 일은 그녀의 인생과 인성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그 사건에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을 종교처럼 신봉했던 확신이 가차 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마리엘라는 그간 자신이 믿어온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감정, 혹은 편견 속에 숨어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 진실들.

‘나는 요제프를 지켜야 했고, 그것은 그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전날 밤을 함께 했던 율리안이 떠오르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리엘라는 과거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머릿속에서 모든 정황이 착착 맞춰졌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바이르 공작, 갑자기 꺼진 수많은 양초들, 앞에선 요제프를 위협하는 척하면서 뒤에선 그에게 걸린 저주를 풀려던 율리안의 노력들…….

마침내 그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그 뒤의 배후자가 그려졌다.

마리엘라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탄식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바레뎃샤와 흑마법사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라고.

서로가 서로를 증오해 마지않기 때문에 절대 서로를 죽이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거라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용할 수 있는 요소가 수백, 수천 가지나 되는 것을.”

그녀는 교황 로베르토 가르뎅이 율리안을 양아들로 삼은 것에는 모종의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 * *

비슷한 시각, 룩센투크 지하 감옥에 딸려 있는 심문실.

요제프와 알폰스 후작이 마주 보고 있었다.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거만하게 앉은 요제프의 모습에 알폰스 후작이 작게 웃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에 요제프의 한쪽 눈썹이 쓱 올라갔다.

“뭘 그리 웃나. 나도 좀 알려주게.”

“안도의 의미였습니다. 왕실의 운명이 어찌 되나 했는데, 다 쓸데없는 고민이었나 봅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가 전하께 그리 믿음을 드리지 못했나 자괴감도 듭니다.”

“서운해할 필요는 없네. 그대는 이미 저쪽 편에 섰지 않나.”

알폰스가 변명할 의지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전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요.”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는 자치고는 태도 같은 것들에 묘한 구석이 있었다. 요제프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럼, 아니란 말인가? 사실 그대의 충심은 별 관심이 없어. 내가 원하는 정보는 하나야. 누가 나를 방해하려 하는가. 힌트라도 주게. 귀족파 뒤에 숨어 날 좌지우지하려던 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그럼 내 그간의 정을 봐 후작만은 별 탈 없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하지.”

요제프의 회유에 알폰스 후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여기서 살아 돌아가서 무얼 하겠습니까. 자식 셋을 모조리 앞서 보낸 아비에게 삶에 대한 미련은 가을에 지는 낙엽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럼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순간 알폰스 후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삶에 대한 모든 미련을 저버린 수도승 같았던 그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것 같은 노장의 표정을 지었다.

“바리 신의 영예, 베르단의 영속, 데르샤바크의 영광.”

요제프는 후작의 마음이 고작 면책 따위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알폰스 후작은 약점이 없는 자고, 요제프는 가능성 없는 일에 미련을 잘 두지 않았다.

“……알겠네. 그 결심이 사그라지면 그때 다시 대화를 나누지.”

그가 뒤에 있던 기사에게 이제 그만 알폰스 후작을 데려가라는 손짓을 했다.

알폰스가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고, 텅 빈 심문실.

요제프는 책상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바리 신, 베르단, 데르샤바크라…….”

저렇게 신념이 강한 사람을 회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데르샤바크는 나고, 베르단은……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니 일단 제치고, 바리 신…….”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율리안.”

왕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베르단과 데르샤바크를 수호하며, 교황의 양아들이자 성기사단의 단장으로서 바레뎃샤의 수뇌부에 속하는 자.

설마 싶으면서도 아니겠지, 하며 꾹꾹 눌러왔던 의심들이 한계점을 맞이하며 폭발했다.

요제프는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율리안이…… 왜?’

한번 율리안이라고 단정을 지어버리자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지 않았고, 의심의 빗장을 여니, 그동안 애써 넘겨 버렸던 여러 정보들이 봇물처럼 쏟아 내렸다.

시력을 잃기 직전, 그의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보였던 것은 번뜩이는 검은 빛이었다.

누군가 흑마법으로 저주를 걸었단 소린데, 왕성으로 돌아갔을 때 그의 눈을 치료했던 건 바레뎃샤의 백마법을 쓸 줄 아는 신관이었다.

그 두 개의 마법은 상성이 좋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어 아무 의심도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납치 사건 때 파르니의 가주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랏 데르시의 정신 마법이야.’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수천 마리의 뱀 같은 검은 그림자.

미하엘을 비롯한 왕성 기사들은 그것이 율리안의 초소에서 시작된 검기였다고 했다.

‘흑마법사가 왕성 내부에 있다는 증거는 그뿐만이 아니었어.’

요제프는 왕성 정원에서 발견되었던 푸른 반점의 시체를 떠올렸다. 시체가 발견되자마자 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리안을 마녀로 몰았었다. 우연히 왕성을 방문한 마녀가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죽이고 도망쳤을 리가 없다. 애초에 마리안을 끌어내리기 위한 살인이라는 뜻이다.

당시 그들에게 맞서 싸우기 급급해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것도 하나의 신호였다.

‘그리고…….’

그날 일을 떠올리니 자연히 연계되는 기억이 있었다.

‘지난번 마녀들의 방계 가문을 조사했을 때 자료, 아직 폐기하지 않았죠?’

‘저 좀 보여주세요. 지금 당장.’

지그리트 후작이 눈앞에서 죽어 버린 날, 갑자기 마리엘라가 수상한 요구를 했다.

“…….”

회상이 끝났다.

요제프는 심문실 밖으로 나가 문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푸른 늑대 기사단장을 불렀다.

“조셉.”

“예, 전하.”

조셉이 그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내 아내가 마녀로 몰렸을 당시, 우리가 찾았던 정보들을 기억하나?”

“기억합니다.”

“아직 서재에 문서들이 남아 있을 거야. 지금 당장 그걸 가지고 오게.”

“예.”

조셉이 기사 몇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요제프가 씁쓸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첩자를 잡았으나 마음이 좋지 못하군.”

* * *

초저녁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진짜 적과 교우하고 온 마리엘라는 서둘러 요제프의 처소를 방문했다.

“왕자 전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가 문을 벌컥 열자마자 보인 것은 테이블 위로 한가득 쌓인 서류 뭉치였다. 평소답지 않게 너저분한 모양새에 마리엘라가 멈칫했다.

“이게 다 뭐죠?”

그녀는 제가 나간 사이 또 룩센투크에 무슨 일이 터졌다고만 생각했다. 지금 룩센투크는 터지기 직전의 폭탄과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요제프의 질문은 그녀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언제부터지?”

“그게 무슨 소리세요.”

마리엘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요제프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상황에 마리엘라의 등 뒤 털이 쭈뼛 섰다.

요제프가 픽 웃더니 들고 있던 서류를 마리엘라에게 건넸다.

“아, 이거부터 설명해야겠군. 이게 뭐냐고 물었지? 별것 아니야. 마리안이 마녀로 몰렸을 때 모았던 흑마법사 관련된 가문들에 관련된 서류인데 율리안 폰 바이르를 흑마법사로 몰 정황증거라고 볼 수 있지.”

“!”

그야 말로 낭패였다. 마리엘라는 놀란 표정을 숨길 생각도 못했다.

“자,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나?”

요제프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하게 올리며 물었다.

“언제부터 그가 왕가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음을 알았지?”

마리엘라는 진실을 실토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을 내리깔고 그의 시선을 피하던 마리엘라가,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공작은 왕가를 지키는 중이었어요.”

“웃기지도 않는 소리.”

비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그녀는 전혀 두려워하고 있지 않았다. 마리엘라는 고개를 들어 요제프를 보았다.

확신에 가득 찬 올곧은 눈이 요제프의 마음을 관통했다.

“정확히는 당신을.”

“…….”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서.”

그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누구에게 이득이 돌아갈지 계산을 했다.

제국 아르겔이 멸망한 뒤 가장 오랫동안 대륙의 패권을 쥔 베르단.

그곳에서 가장 강하거나, 혹은 왕 다음인 자.

답은 금방 도출되었다.

“교황인가?”

마리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는 없지만.”

비로소 두 사람은 자신의 진실된 적을 인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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