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콘스탄틴이 정보원이라고 확신하는 데에 딱히 증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 정보가 필요할 때는 누굴 이용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둘러봤더니, 첫눈에 보이는 게 콘스탄틴이었다.
그때부터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는데, 하는 일 족족 정보원 냄새가 났다.
사근사근하게 말을 걸어와서 내용과 관계없이 괜히 감동하게 한다든가.
“아직 다리가 불편하신데…. 또 어딜 바쁘게 다니시는 거예요.”
이것도 봐라.
곰곰 따져보면 가만히 죽치고 있을 것이지,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고 있냐는 힐난 아니냐.
그런데 아픈 다리를 생각해주는 고마운 말 같단 말이지. 매사 이런 식이란 말이다.
콘스탄틴이 곱게 흘겨보더니 프리스가 잡지 못한 반대쪽을 부축해 왔다.
순간 보드라운 콘스탄틴의 가슴이 느껴지고 향이 덮쳐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흐음, 모리츠는 입 안의 살을 짓씹으며 신음을 참았다.
이, …이것도 정보원이라는 증거다.
온몸으로 덤벼들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자작님이 바쁘셔서, 오히려 집사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뭐, 그렇게까지 고생은 아닌데….”
프리스 놈도 느끼는 바가 있어서 콘스탄틴만 보면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린다. 식은땀도 흘리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닐스 놈도 홀렸겠지. 이렇게 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다 갖다 바치게 했겠지.
“신경 써줘서 고맙군. 기왕 하는 김에 마차까지 부탁할까?”
“얼마든지 해드려야지요. 또 어딜 가시나 보죠?”
이것도 정보원이라는 증거이겠다.
질문이 많아.
자신의 행동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예전엔 없었단 말이지.
그래도 모리츠는 넙죽넙죽 대답을 잘 해줬다. 가서 이야기를 전하라고.
“이제 북부 행궁으로 가서 폐하를 뵈어야지.”
“어머, 그래요?”
콘스탄틴이 눈꼬리를 접으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소문이 맞나 보네요?”
“무슨 소문?”
“레이디 산샤께서 황후가 되실 거라던데요.”
콘스탄틴이 몸을 바짝 붙이고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레이디 산샤는 황후가 되시면 제도의 황궁으로 들어가 사시려나요? 디아머드는 아주 떠나시는 거예요?”
“글쎄, 그거는….”
모리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 보드라운 몸과 진한 향기는 아무래도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다.
“황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이 영광이겠지만, 그조차도 산샤가 결정할 문제이니….”
“어머? 가문의 영광인 길이 있으면 그 길로 가게 하셔야지요. 그게 가문의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어요?”
모리츠는 가만히 콘스탄틴을 봤다.
왜 이러는 것인가.
누구의 사람이기에 이런 발언을 일삼아?
정보원인 건 확실한데 누구의 정보원인지는 알 수 없는 콘스탄틴을 보며 모리츠는 불안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혹시 호레스 밀란?
…그럴 리 없다. 모리츠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호레스 밀란은 진작에 달려왔다.
디아머드에 ‘바람을 다스리는 자’가 나타난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진 지가 언젠데….
원래도 디아머드 것들은 다스리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디아머드 백작 가문에서 애초에 버릇을 잘못 들였지.
밀 농사고 마정석이고 막 퍼주면서 먹고살 걱정 없이 만들어주니, 윗사람 무서운 줄을 몰랐다.
모리츠는 아랫것들의 기강을 제대로 잡아서 군림하고 싶은 마음에 디아머드를 갖겠다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후견인으로서 지내는 동안 목적한 바를 이룬 것 같았다.
세금이니 뭐니 때려 박으니까, 설설 기더란 말이지.
역시 먹고살 것을 쥐고 있으면 복종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산샤가 또 다 풀어줘 버려서 도로 원점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거기에 ‘바람을 다스리는 자’의 소문까지 돌았으니….
지금 디아머드 백성들은 거의 반역의 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라인하르드 제국에서 독립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
호레스 밀란이 알면 눈이 뒤집힐 소리이겠으나, 모리츠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산샤가 죽어버리면 자신이 독립국의 왕이 될 테니까.
그렇다고 콘스탄틴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게 둬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너 뭐냐?”
모리츠는 콘스탄틴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너 뭔데,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누구의 끄나풀이야?”
콘스탄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거렸다.
꿀꺽, 프리스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말해. 누구의 지시를 받고 나에게 접근하는 거지?”
콘스탄틴의 미소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어기…. 자작님. 손목이 아픈데….”
손목을 비틀어 잡아 빼려는 것을 모리츠는 확 당겨 끌었다.
콘스탄틴의 가는 허리가 꺾일 듯 휘청거렸고, 얼굴은 이미 울상이 되었다.
“자, 자작님…. 갑자기 왜 화를 내시는지….”
“네가 화를 내게 하지 않느냐. 분명 숨겨진 꿍꿍이가 있어. 오늘 배후를 밝히고야 말겠다.”
“허엉, 무슨 꿍꿍이에 무슨 배후가 있다는 거예요?”
콘스탄틴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클라이드의 최고 인기 배우답게 울림통이 좋아서 호텔 로비가 쩌렁쩌렁 울렸고, 모여 앉았던 사람들이 죄다 쳐다봤다.
타마라커를 중심으로 아델라이드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쫓겨난 사내들이 새로 둥지를 튼 곳이 이곳이었다.
사내라면 꽉 잡고 있는 게 콘스탄틴이 아니던가.
크든 작든 콘스탄틴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구원하는 기사가 되고 싶은 사내는 차고 넘쳤으니까.
프리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모리츠를 불렀다.
“자, 자작님…. 그만 손을 놓으시는 게…. 아무래도 저 사람들 분위기가….”
모리츠는 이를 빠드득 갈며 주변 사람들을 노려봤다.
“감히 디아머드 주인인 나를, 저것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겠느냐?”
프리스가 눈동자를 굴리며 한숨을 삼켰고,
콘스탄틴이 울먹이며 말했다.
“주인은 아니시죠. 주인은 레이디 산샤….”
“입 닥쳐! 시끄럽다. 입을 다물라고.”
이 계집이 확실히 수상하다.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디아머드의 주인이 산샤인 것을 확인시키다니.
“배후를 밝히란 말이다! 네가 누굴 믿고 이렇게 방자하게 구는지 알아내고야 말겠다.”
그때였다.
“자작님?”
나직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아드리안이었다.
돌아본 그곳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레이디 콘스탄틴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자,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자작님이야말로 웬일이신지…. 치료사들이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던데….”
“그, 그건 그렇지만…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하면서 모리츠는 저도 모르게 힘을 풀었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콘스탄틴이 얼른 손을 빼내고 멀찌감치 물러섰다.
불끈 모리츠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저게 아드리안의 정보원이었나?
아드리안이 왜? 무엇 때문에 나에게 정보원을 풀지?
모리츠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비켜 주게. 내가 이 계집과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콘스탄틴이 후다닥 물러서며 외쳤다.
“자작님, 정말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자작님하고 저하고 해결할 일이 뭐가 있다고요? 뭐 착각하시는 거 아니에요?”
“뭐?”
모리츠가 콘스탄틴 쪽으로 한 발 딛는 순간, 콘스탄틴이 꺄악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움직였다.
그러나 아주 멀리 도망가 버릴 생각은 없는 듯 모리츠가 잡지 못할, 딱 그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며 또 떠들었다.
“그러니까 몸이 아픈 사람은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잖아요. 괜히 꼼짝 말고 누워 있으라 그러겠어요? 사람이 아프니까 헛소리를 하고 그래.”
“너, 이리 오지 못하냐?”
모리츠가 한 발로 훌쩍 뛰어 콘스탄틴의 머리채를 잡았다.
빙글 콘스탄틴이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빠져나갔고, 언제 저 벽에 문이 있었나 싶은 곳으로 달려 나갔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곳은 호텔의 뒤쪽 골목인 것 같았다.
모리츠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 발로 깽깽이걸음을 해 골목으로 나갔고, 콘스탄틴이 들어간 건너편 집의 문을 열었다.
‘어?’
모리츠는 긴장하며 멈췄다.
방금 들어간 콘스탄틴은 보이지 않았는데, 들어선 집이 어딘가 이상했다.
호텔의 뒷골목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집이었다.
깊은 산 속에나 있을 법한, 작은 오두막 같달까.
창밖엔….
모리츠는 거칠게 제 눈을 비비고 창밖을 뚫어지게 봤다.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눈이 내리고 있다!
모리츠가 미처 닫지 못한, 아니, 닫지 못하게 바짝 따라왔던 아드리안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모리츠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저게 보이지 않나? 눈이 내리고 있어. 한여름에 눈이 온다고!”
아드리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뒤틀려 있으니까요.”
“…뭐라고?”
“여긴 클라이드의 은신처입니다. 콘스탄틴이 제대로 숨었군요.”
“아, 그래! 콘스탄틴!”
잠시 눈에 정신이 팔려 콘스탄틴을 쫓아 들어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모리츠는 급하게 반대쪽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손잡이를 돌리기도 전에 아드리안에게 저지당하고 말았다.
“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선 들어왔던 문으로만 나갈 수 있어요.”
“뭐, 뭐?”
“콘스탄틴은 우리와 다른 장소에 가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간의 틈에 빠져 버릴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시간의 미아가 되어 버린다고요. 현실 세계로 절대 돌아올 수 없어요.”
모리츠는 손잡이에서 얼른 손을 뗐다.
아주 위험한 짓을 할 뻔했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모리츠는 아드리안을 돌아봤다.
“…자,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여기 이런 게 왜 있어?”
“클라이드의 수호자니까요.”
아드리안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지만, 모리츠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클라이드의 수호자가 뭐길래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마법을 씌워놓은 은신처가 필요하지?
이런 건 도망 다니는 황태자에게나 필요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