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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속 봉투를 만지작대는 차문엽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제 눈앞에 화려하게 솟아오른 빌딩의 꼭대기를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며 퍽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무언가 크게 한 건을 잡은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정확히 그게 뭔지 몰라 답답한 까닭이었다.
얼마 전 제 형 차선엽이 자신의 범죄 사실을 자백하는 녹음 파일을 내밀었을 때까지만 해도 저들이 제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또 다른 대화를 녹음한 파일과 당시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수집해 가져갔을 때의 반응은 분명 처음의 그것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의 일만 해도 그랬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라이언 서를 직접 만나 내심을 떠보려 했으나 그의 비서에게 빌딩 입구에서부터 길이 막혀 버린 거였다. 비서는 제 보고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잠자코 차선엽의 행적만 쫓으면 된다며 시답잖은 금액의 돈 봉투만 던져 줬을 뿐이었다.
그간 기를 쓰고 지켜본 차선엽은 딱히 행적이랄 게 없는 수준이었다. 여전히 그는 집과 회사, 간혹 딸을 만나러 왔다 갔다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이들의 목적이 꼭 쓸데없는 일을 시켜 제 발을 옭아 묶어 놓는 데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거였다.
차선엽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이 뭔가를 잘못 짚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점점 더 아리송한 기분만 더해 갔다.
뭘까.
차선엽과 서정혁. 자신이 모르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야만 이 문제의 답이 풀릴 성싶었다. 그래야 이 탐나는 돈줄을 계속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을 테고.
뚜두, 뚜두.
파란 보행자 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차문엽은 외투의 모자를 푹 눌러쓰며 발을 내디뎠다.
***
쿵,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좁은 공간에 한 몸으로 뒤엉킨 남녀의 열기가 뜨거웠다. 닫힌 문을 등진 현서의 몸이 제 앞의 남자에게 완전히 갇힌 채로 몰아세워졌다. 더 말릴 새도 없이 고개를 숙인 그가 뜨거운 숨을 불어 넣으며 입술을 열었다.
“흐으, 음…!”
늦은 밤 제 사무실로 직접 찾아온 그에게 괜스레 보고 싶었다 고백을 한 게 기폭제가 됐다. 그 자리에서 당장 몸을 붙이려는 걸 경비업체 직원의 순찰 시간이 다 됐다며 애원을 해 겨우 진정을 시켰다. 덕분에 이렇게 좁은 탕비실 안까지 끌려 들어오게 되긴 했지만.
입술을 붙이기 무섭게 도톰한 혓바닥이 밀려들어 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만을 의지한 채 혀를 얽었다. 압박하듯 입술 전체를 삼키고 빠는 키스에 하릴없이 가빠지는 숨을 힘겹게 몰아 내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 품에서 파들파들 떨어 대는 여자를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뜨끈하고 축축한 타액이 목젖 너머로 쉴 새 없이 넘어 들어왔다.
결국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입 안 가득 차오른 액체가 진득하게 새어 흘렀다. 축축하게 젖은 살덩이가 쉼 없이 음란하게 비벼지고 문대졌다. 쩌억, 쩍 농도 오른 야릇한 마찰 소리가 여과 없이 공간을 채운다. 키스만 했을 뿐인데도 좁은 공간이 더운 열기에 완벽히 잠식당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키스에 숨이 막혀 저도 모르게 그의 드레스 셔츠를 꽉 움켜쥐자, 입술을 떼어 낸 그가 상체를 세우고 넥타이 매듭을 툭 당겨 풀어낸다. 현서는 쌔액 쌕, 참고 있던 밭은 숨을 내뱉으며 그를 올려다봤다.
“하아, 숨 막혀 죽겠어요, 하!”
“폐활량이 왜 이거밖에 안 돼?”
“본부장님이 비정상적으로 키스를 길게 하시니까….”
“당신이 적응해, 비정상적으로 키스 길게 하는 개자식한테.”
뒤끝이 긴 남자의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눈동자를 들어 그의 입술을 바라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꼬리도 슬며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작은 웃음소리가 맞닿은 입술을 타고 잘게 흩어졌다.
“참, 박신우 교수랑 저녁 약속 잡으셨다면서요.”
“억지로.”
“듣기론 보통 만만한 분 아니라던데요. 금 회장님도 두 손 두 발 다 드신 거 보면.”
“상관없어. 설득할 마음 없으니까.”
“그럼, 왜요?”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굴렸다. 사실상 박신우를 앞세운 양재숙과 조인호에게 경고를 하겠단 소리인데, 도대체 뭘 어쩔 생각인 건지 아리송했다.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는 생각에 눈동자를 부풀렸다.
“맞아.”
눈빛만으로 생각을 읽어 낸 그가 기특하다는 듯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답했다.
지금 태성에 안달이 난 건 정작 궁지에 몰린 양재숙이었다. 한국 시장 정착을 목표로 한 골드스톤도 태성이라는 큰 발판을 잃으면 손해는 제법 막심할 수 있겠으나 영 감수 못 할 정도는 또 아니다. 그저 시기의 문제일 뿐, 그 조력자가 누구인지는 하등 상관이 없는 거였다.
서정혁은 지독한 실리주의자였다. 아무리 체급 좋고 화려한 스펙의 조력자가 있다 해도 이용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버렸다. 의사 결정에 있어 체면과 자존심 같은 너절한 감정의 부산물 또한 전혀,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발붙여야 한다는 성공욕이 어떻게든 눈앞에 얼쩡대는 것들을 죄 발밑에 짓밟고 봐야 한다는 승부욕보다 앞선다는 착각. 그들이 서정혁에 대해 단단히 오해를 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이었다.
“값을 높여 놔야 판돈이 커지니까. 인간이란 게 원래 자기 예상보다 판돈이 커지고 나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더 쉬워지고.”
가만히 그를 올려다봤다. 굳이 이런 손해까지 감수하는 이유에 분명 저란 존재도 없진 않을 것 같단 확신이 들어서였다.
“왜 또 이런 표정이실까?”
“죄책감 들어서요. 아니라고 하시겠지만, 저 때문에 괜히 쉽게 끝날 수도 있을 일이 더 꼬인 것 같아서.”
“그러게. 부당한 불행이지.”
농담 어린 그의 답에 피식, 헛웃음을 흘리자 그가 다시금 입술을 맞붙였다. 그러곤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블라인드를 툭툭 끌어 내렸다. 좁은 공간에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는 계속해 입술을 비비며 목덜미와 허리를 받쳐 든 채 천천히 구둣발을 움직였다. 그대로 그녀는 그의 목에 매달려 안겼다.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손이 제 엉덩이를 받쳐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이윽고 좁은 소파에 등이 닿아 뉘어졌다. 어둠 속에서 눈꺼풀을 떠 올리며 그를 올려다보자, 잘생긴 콧날이 제 코앞에 맞닿아 있었다.
“그래. 애초에 차현서 씨 아니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접었을 판이야. 당신 때문에 굳이 이 코딱지만 한 판에 발 들인 것도 맞아. 근데 딱 거기까지. 당신 눈엔 내가 누구 때문에 희생할 사람으로 보여? 차현서 덕에 잠잠하던 승부욕이 자극된 것뿐이지, 굳이 손해 보는 장사까진 안 한단 소리야. 알아들어?”
“알아요. 아는데….”
“알면 그만 떠들고 키스나 해. 넌 나랑 이런 짓 하면서도 일 얘기가 잘도 나오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며 가만히 입술을 감쳐물었다.
“얼른.”
느른히 들려오는 재촉에 결국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삼켰다. 커다란 손이 제 무릎을 세우고는 스커트 아래로 밀려들어 와 스타킹과 팬티를 한 번에 죽 잡아 내렸다. 성교를 암시하는 그 노골적인 행동에 배꼽 아래가 찌르르 울었다.
입술을 부딪치고 키스에 열중하는 동안 스커트가 허리 위까지 말려 올라가 하얀 허벅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밭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꽤 못마땅한 얼굴로 셔츠 단추를 풀어내고 있었다.
“발정 나서 몸 달아 있는 남자 앞에 두고 딴생각하는 여유나 부리고.”
발정이 났다는 원초적인 단어 선택에 가슴이 야릇하게 뛰었다. 평소엔 빈틈 하나 없을 것처럼 구는 남자가 제 앞에서 이렇게 본능을 숨기지 않고 무너져 내린단 게 이상한 희열을 몰고 왔다.
“제가 그렇게 좋으세요?”
“자꾸 비생산적인 질문을 하는 이유는 확인을 하고 싶어서야? 아니면, 내가 영 믿을 구석 없는 인간이라?”
“몰라요. 자꾸자꾸 확인하고 싶어져요, 유치하게.”
그가 픽 웃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달카닥, 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그의 바지 지퍼가 내려간 걸 알아챈 그녀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단단하고 거대한 형체의 그림자가 선연했다.
“확인해, 그럼.”
다시금 허리를 숙인 그가 쪽, 입술 위를 스치고 지났다. 동시에 단단한 성기가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깊게 와 닿는다. 더 딱딱해질 수 없을 만큼 강직한 기둥 끝엔 이미 미끈하게 흘러나온 체액이 흥건했다.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왜, 벌써 이렇게….”
그가 여봐란듯이 제 것을 판판한 제 배 위에 길게 쓸어 문질러 비볐다. 성기에 잔뜩 도드라진 핏줄이 제 여린 살갗을 스치는 감각이 선연했다. 그가 스치고 지난 자리마다 델 듯이 뜨거운 열꽃이 피어났다.
번들대는 입술을 꾹 눌러 물며 진정하라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축축한 살덩이가 귓구멍 속으로 뜨겁게 밀려 박혔다.
“여유 있는 차현서 씨가 날 좀 진정시켜 보든지.”
그 동굴 같은 목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움푹 들어간 무릎 아래가 번쩍 들어 올려진 건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