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정말로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셨음 그냥 버리셨겠죠. 근데 그거, 접은 거 펼치지도 못하고 갖고 있었잖아요, 지금껏.”
그녀의 말에 정혁의 눈꺼풀이 느른히 움직였다.
“내내, 동생이 보고 싶으셨던 거죠.”
제게로 쏟아질 다음 말을 충분히 예상했다. 건방지다, 까분다, 주제 넘는다. 비웃음과 조롱, 아니 어쩌면 짜증을 넘어 화를 낼지도 몰랐다. 어쨌건 동생은, 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이며 가장 아프고 예민한 약점이니까.
제 약점을 구태여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완전무결해 보이는 이 남자에겐 더더욱 끔찍한 일일 테고 말이었다.
“독심술에 취미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제넘었다면 죄송해요. 근데, 옆에서 보기 안타까워서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는 꽤 오래 침묵을 지키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빤히 직시했다.
“어릴 때 동생이랑 같이 유괴를 당했었어.”
짐작했던 반응 대신 뜻밖의 이야기가 돌아왔다. 가라앉은 표정만큼이나 침착하고 차분한 어조였다.
“아마도 범인은 나랑 동생을 유괴하고 아버질 협박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 낼 작정이었겠지. 아버진 필연적으로 적이 많은 사람이었거든. 직업이 직업이었던지라.”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검사.”
동그란 눈동자가 짐짓 부풀어 올랐다.
“것도 자기 혼자 대한민국 정의 구현 다 하고 다녔던 꼴통 검사. 유명했어.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 피의자들한테고 고소인들한테고 신변 위협 받는 일이 꽤 흔해서 어린 내 기억에도 어머니가 늘 불안해하셨던 게 생생해. 그래서 늘 조심하고 경계를 하셨던 것 같은데. 근데도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마나 보더라고. 그게 참 운명의 엿 같은 부분인 거지.”
담담하게, 오래전 자신의 가장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제게 더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겠단 뜻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고백이 그 어떤 고백보다 진실되고 성실하게 느껴졌다. 너를 많이 믿는다는.
어둠 속 그의 눈동자를 위로하듯 올려다봤다. 무슨 이야기든, 어떤 아픔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양 따뜻하게.
“그날따라 어머니가 잠깐 시장에 간 사이 집에 둘만 남아 있었어. 거실에서 숙제를 하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난 동생이 놀이터에 머리핀을 놓고 왔다고,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거라고, 당장 찾으러 놀이터엘 가야 한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냥 나 혼자 갔어야 했는데. 집에 혼자 있기 무섭다고 또 우는 동생을 외면하지 못해서 손을 잡고 같이 나갔어. 당연히 급하게 나가면서 약도, 흡입기도 챙기질 못했지. 행여나 갑작스럽게 천식 발작이 시작되면 언제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렸지. 아니, 어리석었어.”
자조하는 목소리가 고저 없이 이어졌다.
“아주 더운 여름이었는데, 눈을 떠 보니 어딘지 모를 지하 창고에 갇혀 있더라. 거기서 이틀 가까이를 버텼어. 건강한 나도 더위에 숨이 막히고 무섭고 갑갑했는데 나보다 어리고 아팠던 내 동생은 어땠을까.”
“…….”
“옆에서 죽어 가는 동생 보면서,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쳐 나왔어.”
“손등에 그 상처.”
“맞아. 그때 생긴 거야. 머릿속에 온통 흡입기 생각뿐이어서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었어. 내 딴엔 꼭 살리겠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질 못했지. 그렇게 동생 죽고, 그 충격을 추스르기도 전에 아버진 당시 맡고 있던 사건에 이상하게 휘말려서 비리 검사로 낙인까지 찍혔고. 그날 이후 우리 집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지. 결국, 더 이상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버진 자살을 선택하셨어.”
죽음을 말하는 남자의 표정이 여전히 차분했다. 꼭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침착하고도 덤덤했다. 그래서 더 아프고 안타깝고 짠했다.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기막힌 이야기에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범인은요? 잡았어요?”
질문을 하자 이제껏 동요 없이 무감하기만 하던 남자의 눈동자에 일순 높은 파고가 일어났다.
“못 잡았어.”
“왜요?”
“고작 열 살쯤 된 어린아이한테 연쇄적인 불행이 미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꽤 엄청나. 그땐 나도 애였으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나한테 범인에 대해서 묻는데 아무 대답도 못 했어. 똑똑히 봤다고 생각했던 얼굴은 전혀 못 떠올리겠고, 그때부터 한 2년쯤은 말을 아예 못 하겠더라고. 입 밖으로 목소리가 전혀 안 나왔어.”
“그럼 지금까지도 그때 그 범인을 못 잡았단 말씀이세요?”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 것의 의미는 긍정이었다.
이마 위에서 덤덤히 깜빡이는 새카만 동공에 슬픔과 쓸쓸함이 가득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많이 아팠냐 물을 게 아니라 얼마나 슬펐냐를 위로해야 했다.
분명 예기치 않은 불행이었고, 뜻하지 않은 사고였으며, 범인을 제외한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이야기라고. 당신에게 들이닥친 그 모든 불행 중 어떤 것도 당신 탓인 건 없다고.
“있잖아요.”
미약하지만 이 남자에게 제가 실낱같은 위로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왜 하필 나일까,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일어난 걸까.’ 그런 생각 저도 아주 많이, 아니 실은 지금까지도 매 순간 하고 있거든요.”
“…….”
“부당한 불행. 저는 그걸 그렇게 불러요.”
누군가에겐 겪지 않았어도 될 불행이 정확히 저를 조준해 들이닥쳤단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을 괴로워하고 삶을 저주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을 낭비하며 버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창에 처박힌 제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없었을 테니. 돈은 악마보다 무서웠고 빚은 삶을 포기하지도 못하게 그녀를 옭아맸다. 그게 모두 다 제게 닥친 부당한 불행 탓이었다.
“근데요. 그냥 딱 거기까지예요. 내가 떠안은 이 부당한 불행이 그 누구의 탓이라고도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아버지 얼굴도 그렇게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거고.”
“네.”
“잘하면 사리 나오겠다. 명당으로 자리 알아봐 줘?”
“안 그래도 부당한데 그걸 누구 탓으로 돌리기까지 하면 내가 화병 나고 억울해서 못 버틸 것 같아서요.”
“요는. 그래서 내가 이 꼴이라 이건가.”
“네, 맞아요.”
남자의 한쪽 입꼬리가 씁쓸히 말려 올라갔다.
“엄청난 빚만 남긴 우리 아빠도, 날 이용하고 버렸던 작은 아빠도, 나한테 벌레만도 못한 삶이라고 조롱했던 그 많은 사람들도 전부 다 내 불행의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전.”
“…….”
“말 그대로 ‘부당한’ 불행이니까. 그냥 지나가다 돌을 맞은 거라고. 신, 아니 악마가 아무 이유 없이 집어 던진 그걸, 하필 지나가던 내가 재수 없게 맞은 것뿐이라고, 그렇게 여기기로 했어요.”
이마 위로 낮은 한숨이 쏟아졌다.
“언제부터.”
느릿하게 되묻는 목소리에 언제부터였던가를 떠올렸으나 정확한 기억은 없었다. 그저 버티기 위한 생존 본능이었을 뿐.
“당신답다, 정말.”
그는 느른한 탄식을 내뱉으며 작게 웃었다.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뭘.”
“죽은 동생한테 본부장님은 어떤 오빠였을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걸 먼저 떠올렸다면 지금껏 이렇게 아픈 기억에만 시달리고 있지도 않았을 테니.
그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범인 이야기를 했을 때처럼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그게 명확한 답으로 들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본부장님이 기억하기로 선택한 건 가장 아픈 순간의 죄책감이고요. 그런데, 직접 물을 순 없지만 동생 분은 아마 전혀 다른 기억으로 본부장님을 기억하고 있을걸요. 가령, 다정한 오빠라든지, 부모님 말씀 지지리도 안 듣는 장난꾸러기 오빠라든지…. 혹은 죽어 가는 순간에까지 자길 살리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오빠로요.”
“…….”
“저는요. 본부장님 짧은 순간의 기억에만 잠식돼서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조금 더 오지랖을 떨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서정혁은 나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라는 근거 충만한 자신감으로.
“지금껏 충분히 슬펐잖아요.”
어둠에 잠식당한 그의 얼굴 위로 손을 뻗었다. 이마에서부터 오뚝 솟은 콧날 그리고 조각처럼 팬 인중과 입술 위를 천천히 훑고 쓰다듬었다.
작게 움직거리는 제 손 위로 남자의 커다란 손이 겹쳐졌다. 시선 끝, 여전히 선명한 손등 위 흉터가 까칠하게 걸려 들었다. 더없이 매끈한 손에 난 길고 거칠거칠한 요철이 꼭 바짝 말라 죽어버린 나뭇가지 같았다. 손끝을 더듬어 그의 지난 불행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가슴 끝이 버석하게 갈라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니. 얼마나 아픈 걸까.
짧은 침묵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가만, 답 없이 느릿한 시선만 깜빡거리는 그를 올려다보고 매만지다 저도 모르게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개 맞췄다. 쪽, 하고 짧게 맞닿았다 떨어져 나간 온기가 어이없다는 듯, 그제야 무겁게 닫혀 있던 남자의 입술이 설핏 벌어졌다.
“이제 동생 얼굴 실컷 보세요. 제가 어렵게 펼쳐 놨으니까.”
감정에 휩쓸려 이상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해 놓곤 어쩐지 좀 머쓱해 동그란 눈알만 또르르 굴렸다.
“차현서.”
시선을 피하려는데 떨어지는 턱 끝이 단단히 잡혀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당신 아주 날 작정하고 망쳐 놓네, 진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가 그대로 입술 위를 덮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