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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플로우-72화 (72/115)

♬(72)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기어 도망쳤다. 그렇게 잠시 잠깐, 그의 마수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다.

“잠깐! 잠깐만요…!”

어느새 등 뒤에서 다가온 커다란 손이 갑옷처럼 둘둘 말아 감은 이불을 단번에 걷어 내고, 제 마른 복부 아래로 들어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적나라하게 헤 벌어진 구멍에서 그가 앞서 사출해 놓은 정액이 새어 나왔다. 식겁한 눈동자로 그를 돌아보자 어느새 다시금 젖은 둔부에 하체를 맞댄 그가 거대한 그림자로 저를 내려다보고 섰다.

“이러면 저 내일 출근 못 해요, 진짜.”

“그럴래? 그럼 나랑 종일 이러고 뒹굴든지.”

배꼽 아래에 바짝 붙은 기둥을 잡아 선단을 입구에 맞춰 비벼 대는 손길이 음험했다.

“이게 몇 번째인 줄은…!”

“너나 몇 번이겠지. 너 혼자서만 몇 번을 갔어? 공평해야 한다며. 대답해 봐, 공평한 거 찾던 분?”

“하읏!”

꺼떡이며 입구를 밀고 들어온 성기가 쭈욱, 안쪽 깊숙한 곳까지 단번에 밀려들었다. 정확히 세 번째 삽입이었다. 지친 기색도 없이 발기해 잔뜩 몸집을 부풀린 기둥의 표피는 내벽 세포 하나하나를 샅샅이 긁고 지났다. 성말라 사납게 안을 치받았던 처음과 달리, 조금은 부드러워진 삽입이 더 감질나 애가 타는 기분이었다.

“그러게 왜 자극을 해.”

허리를 깊숙이 숙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올린 그의 목소리가 귓바퀴에 축축이 달라붙었다.

“아아, 내가 언제…!”

“또 해 봐. 파트너니 뭐니, 어디 계속 건방 떨어 보라고.”

협박조의 말과 달리 움직임은 느릿했다. 계속된 마찰로 벌겋게 부풀어 오른 여린 점막을 어르고 달래듯 느긋이 비볐다.

귓바퀴를 핥던 입술이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등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미끈한 타액으로 부드럽게 핥았다가도 이를 세워 날갯죽지를 콱 깨물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 야릇한 감각에 온몸이 무너져 내렸다. 제 복부를 받쳐 든 그의 손에 의지해 겨우 엉덩이만 치켜든 채로 천천히 흔들렸을 뿐이었다.

“하아, 이상해, 요, 흣, 흐응.”

성기를 맞끼운 채 얼마나 움직였을까. 묵직이, 저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밀려오는 오르가즘의 전조에 애원하듯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작은 턱 끝을 잡아 쥔 그가 말캉한 혀를 내밀어 뺨이며 입술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 순간, 제 안을 가득 채우던 묵직한 물건이 쑤걱 빠져나갔다. 둥글게 입을 벌린 구멍으로 서늘한 공기만 황망히 느껴졌다.

“하, 뭐, 하는… 거예요?”

당황해 미간을 좁히며 묻었으나 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제 뒤집힌 몸을 원래대로 돌려 누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올려다본 남자의 시선은 벌어진 제 가랑이 사이에 꽂혀 있었다. 그는 허옇게 거품이 일어나 추저분하기 그지없는 음부를 감상하고 훑어 댔다. 마치 자신이 만들어 놓은 광경이 퍽 만족스럽다는 듯, 샅샅이 훑고 지나는 그 시선에 벌름대는 입구가 덴 듯이 뜨거워졌다.

결국 견디다 못해 제 눈을 질끈 감아 버린 현서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터져 나왔다.

“알았, 어요. 내가. 내가 잘못했어요.”

“뭐를.”

“아까 장난친 거요.”

“또.”

기어코 반성문을 받아 내 가면서도 노골적인 시선을 멈출 줄 모른다. 야릇한 수치심이 빗발쳐 내렸다.

“본부장님 놀린 거….”

“말고.”

“건방 떤 거…?”

“제일 큰 죄목만 빼고 말하기로 한 거야?”

밀려오는 불안한 예감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허리를 굽힌 남자가 본격적으로 무릎 뒤 여린 살갗에 손바닥을 붙여 추켜올린 거였다.

“하지, 마, 흐으, 이, 변… 흐응!”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정혁이 벌겋게 익어 벌어진 곳으로 입술을 붙여 왔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제 아래에 이렇게 입을 대고 빨아 재끼는 건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됐다. 왠지 원초적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그의 성기가 교합하는 제 가장 은밀하고 본능적인 공간에 그가 입술을 붙이는 건, 정말이지….

“하아, 읏!”

키스라도 하듯 부어오른 음핵 전체를 삼켜 쭉 빨자 작고 하얀 발끝이 바짝 웅크려졌다. 이윽고 아득한 감각이 뒤따라 붙었다.

그는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음부 전체를 개처럼 핥아 댔다. 퉁퉁히 부어오른 음핵이 그 높은 콧대에 눌려 아프도록 자극됐다. 츄릅츄릅, 질척하게 아래를 빠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쉴 새 없이 물을 흘리는 구멍 주변을 달래듯 혀끝으로 하나하나 핥고 지나치더니 별안간 혀끝을 세워 구멍을 찌르고 후볐다. 각자의 몸에서 흘린 체액과 타액이 그의 입 속과 구멍을 드나들며 정신없이 뒤엉켰다.

오래, 깊은 갈증에 시달린 개처럼 핥고 쑤시는 집요한 애무에 앓는 소리가 절로 흘렀다.

“아앙, 응!”

현서는 시뻘건 욕정에 전 굵은 살덩이가 제 갈라진 틈을 비벼 핥는 음탕한 광경을 내려다봤다. 치욕스러운 흥분감이 치솟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눈앞이 번뜩거려 하릴없이 그의 머리칼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에 바득 힘을 주자 그가 벌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를 치켜떴다.

“자, 다시 고해성사의 기회를 줄게.”

남자의 뜨거운 숨이 고스란히 벌어진 구멍 안으로 훅 밀려들었다.

“말해, 뭘 잘못했어.”

찰나의 침묵이 머무는 사이, 뜨거운 숨이 질구에 와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살이 떨렸다.

“…나도….”

눈꼬리에 생리적 물기를 매단 채, 흥분에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좋아요. 너무.”

그가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그에게 진 게 아니다. 그저 진심으로 하는 말일 뿐이다. 그저 솔직한 제 감정이다.

현서는 쾌락에 잠식당해 흐릿해진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은 채 그렇게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며 말을 이어 갔다. 초점 잃은 눈동자엔 오롯이 제 앞의 남자, 서정혁만이 가득 담겼다.

“좋아서… 미치겠어요.”

작게 읊조리는 입술이 탐스러운 붉은색으로 번들댔다.

“이제야 공평하네.”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린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가 갈라진 틈새로 스며들었다.

***

고요에 잠긴 새벽. 그의 품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려던 현서의 허리가 붙잡혀 맥없이 뒤로 끌려갔다.

“어디 가.”

이윽고 잠든 줄 알았던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자는 거 아니었어요?”

흘긋, 고개를 돌리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정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어디 가냐고.”

“이제 씻고 집에 가려고요.”

“뭐?”

푹 잠겨 있던 목소리가 별안간 높아지며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여자의 몸을 제 쪽으로 돌려놓는다. 감겨 있던 눈꺼풀이 스륵 올라가고 어둠 속 형형한 눈동자가 새카맣게 시선을 맞춰 왔다. 저를 훑는 집요한 시선에 몸이 바짝 움츠러든다.

“뭐 이런 게 다 있을까.”

“…왜요…. 뭐?”

정말로 뭐가 문제인지 몰라 되묻는 그녀의 동공이 설핏 흔들렸다.

“자다 말고 이 시간에 어딜 간다고. 네 구멍에 밤새 싸지른 정액이 아직도 이렇게 줄줄인데.”

뻐근한 허벅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기다란 손가락이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입구를 톡톡 찌르며 물기 어린 소리를 냈다.

“그새를 못 참고 나 자는 틈에 또 도망칠 궁리나 하셨어.”

“하, 도망이 아니라…. 옷 갈아입어야죠, 같은 옷 입고 어떻게 출근을 해요. 이제 곧 나갈 시간인데.”

“회사 가는 길에 당신 집에 들러. 들러서 옷 갈아입고 나와. 그럼 됐지.”

정혁의 팔이 옭아매듯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제 앞으로 바짝 붙여 당겼다. 한 품도 남을 자그마한 몸이 탄탄하고 너른 가슴에 갇히듯 안겨 버렸다.

“옆에 있어라, 좀.”

동굴 같은 목소리가 말을 잘랐다.

“당신 없는 동안 제대로 잠 한숨 못 잤어.”

나른한 숨소리와 섞여 가슴을 진동하는 울림에 저도 모르게 가만 숨을 죽였다.

“눈만 감으면 악몽이라.”

“…많이 아팠어요?”

“아프다기보단 끔찍했지.”

“…….”

“그래서 슬펐고.”

담담한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날렵하면서도 단단한 턱선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더니 그가 다시금 눈을 맞췄다.

“누구 때문에 열심히 잊고 있던 얼굴이 똑똑히 기억나서 말야.”

“…….”

“너 내가 허락 없이 내 물건에 손대는 거 질색하는 거, 알아 몰라.”

그제야 말뜻을 알아챈 현서의 잇새에서 작은 탄식이 샜다. 서재 서랍 속에 넣어 뒀던 액자를 말하는 거였다.

어느 때인가, 그가 시킨 심부름을 하다 서랍을 열어 우연히 사진을 봤다. 어린 서정혁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까지 함께 찍은 아주 오래된 사진이었다. 사진 속 네 사람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상 속 행복을 누리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일 뿐이었다. 마치 언젠가의 그녀와 그녀 가족처럼.

“설명해.”

“…….”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놨는지.”

모든 불행은 갑자기 들이닥친다. 아마도 무사평온한 그의 일상이 깨진 것 또한 눈 깜짝할 순간이었으리라.

그래서였다. 일부러 동생의 얼굴만 뒤로 접어놓은 게 분명한 그 낡아빠진 사진을 한참 바라만 보다가 쓸데없는 오지랖을 한번 부려 봤다. 그에겐 서슬 퍼런 기억일 동생의 사진을 버리지도 못한 채 고이 접어 서랍 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이유를 어쩐지 잘 알 것 같아서.

“그 사진.”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고요히 입술을 뗐다.

“꼭 누가 펼쳐 주기를 바라고 있으셨던 것 같아서요.”

일순간 남자의 눈동자가 심해처럼 깊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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