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제가 현서랑 좀 각별하긴 합니다. 워낙 저한텐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각별한 사이. 중요한 사람.
적의 가득한 눈으로 저를 보던 김준한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다. 차현서를 바라보면서는 애틋하고 그리워 어쩔 줄 모르던 눈빛이었고.
대놓고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남자를 일컬어 친한 선배라니. 순진한 건지 둔한 건지. 아님 알면서도 앙큼을 떨며 사람 속을 뒤집으려는 건지. 도통 모를 여자였다.
왜 이렇게 짜증이 치밀고 기분이 바닥을 치는 건가. 김준한 앞에서 무장 해제라도 하듯 해사하게 짓던 미소가 영 못마땅했다. 끝도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준 사람이 누군데, 감히 허락도 없이.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뿌연 연기를 내뱉었다. 급히 털어 넣은 약 기운이 이제야 좀 도는지, 욱신대던 손의 통증이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실체 없는 통증의 원인은 분명 급격한 감정의 변화일 거였다. 속이 잔뜩 뒤집힌 건 역시나 차현서, 그 조그마한 여자 때문이었고.
“안 추우세요?”
등 뒤에서 불쑥 들려온 잠긴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숙한 검은색 블라우스에 펜슬 스커트. 불과 조금 전까지 제 밑에서 흥분에 울먹인 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깔끔한 차림새였다. 이제 고작 새벽 6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건만 지금 바로 출근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어떻게든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 여자가 괘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는 못 하겠다 애원할 때까지 잡고 있을 것을.
“그러게. 누구 때문에 밤새 열이 나서 추운 줄도 모르겠어.”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그녀를 길게 응시했다. 새카만 눈동자가 제 타박을 피하지도 않고 동그랗게 깜빡이기만 했다.
“어디 갑니까, 이 새벽에.”
“오늘은 먼저 출근하겠습니다. 오전에 대주은행 미팅 자료, 미리 검토해 놓으려고요.”
“체력 대단하시네. 밤새 나랑 뒹굴어 놓고 일찍 출근할 힘도 남아 있으시고.”
“안 남아 있어도 해야죠. 저한테 원하시는 게 이런 거잖습니까.”
“원하는 게 그것뿐일까.”
코웃음을 치곤 인상을 푹 구겼다. 누구 때문에 지금 머릿속이 터져 나갈 것처럼 복잡한데 어디서 말장난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청순하기만 한 그녀의 얼굴을 다시 엉망으로 울려 놓고 싶어졌다.
“저한테 원하시는 거, 손해 하나 없이 결국은 다 얻어 가고 계시잖아요. 아니에요?”
잠시 망설이듯 벌어진 잇새에서 뜻밖의 반문이 돌아왔다.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제 입술을 앙다문 여자가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우는 아닌 모양이었다. 오히려 둔한 곰이면 곰이었지.
담배를 비벼 끄고 천천히 다가갔다. 가린다고 가린 것 같았지만 스카프 아래 여자의 흰 목덜미가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부러 화풀이하듯 밤새 물고 빨아 자국을 남긴 탓이었다. 소유에 대한 마킹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는 여자인 것 같아서. 지나치게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차현서. 참 쉽지도 않지.
작은 턱을 가볍게 들려 말간 얼굴을 찬찬히 훑어 내렸다. 내뱉는 숨마저 달큼한 여자의 향기에 다시 아래가 뻐근해지고야 만다. 이 와중에도 대체…. 상황이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낯선 혼란에 얼굴이 절로 차갑게 굳었다.
“반반하긴 해도 특별히 헤프고 쉬워 보이는 인상은 아닌데.”
여자의 새하얀 미간이 깊게 팼다.
“원래 남자가 많이 꼬이고 그러는 타입인가?”
“네?”
“조인호. 김준한. 장기용. 대체 주변에 차현서 껄떡거리는 새끼들만 몇이야.”
“하, 껄떡….”
“말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엿 같고 더러워요. 그러니까 차현서 씨가 알아서 좀 기어 줬으면 좋겠어.”
“대체 무슨 말씀이신데요.”
“신경 쓰이게 하지 말라고. 여차하면 꼴리는 대로 다 엎어 놓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봤잖아, 조인호 조지기 시작한 거.”
“조인호 패 버린 게 순전히 본부장님 기분 때문이다는 소리세요?”
“그럼 내가 당신 복수라도 대신해 준 줄 아셨나.”
코웃음을 치자, 깜찍하게도 입술을 꾹 눌러 깨무는 얼굴이 요요했다. 더 짓궂게 건드리고 찔러 보고 싶게끔.
“의외네요. 전 본부장님께서 감정 같은 거 없이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으로만 판단하고 행동하시는 분인 줄 알았는데요.”
“잘못 아셨네, 내가 얼마나 감정적인 인간인데.”
“…….”
“내 기분이 좆같으면 거래 안 해요, 나는.”
꽁꽁 싸맨 스카프 매듭을 툭, 끌어내고 흰 목덜미를 한 손에 휘어 쥐었다. 한 줌도 안 될, 가느다랗고 여린 목을 내놓은 여자의 눈동자가 턱밑에서 흔들거렸다. 그런 주제에 끝까지 시선은 피하지도 않는다.
“그거 아세요? 같은 말을 해도 백 배쯤 기분 나쁘게 말하는 능력이 있으신데.”
“그게 내 셀링 포인트라는 것도 알아?”
“아. 욕쟁이 할머니 집에 가서 굳이 욕 얻어먹고 돈 내는 심리. 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고양이처럼 발톱을 바짝 세운 채 하악질하는 게 귀여워 픽 실소가 터졌다.
“저도 말씀드렸지만,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준한 선배랑은 아무 사이 아니에요, 정말.”
“변명 고맙네. 앞으로도 계속 그 관계 유지하길 바라요. 뭐. 아예 끊으면 더할 나위 없겠고.”
침잠하듯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하는 붉은 입술을 빤히 내려다봤다. 밤새 빨고 핥았던 입술 맛이 혀끝에 맴돌아 뻐근해진 아래가 완전히 솟구쳐 발기했다. 정숙하게 목 끝까지 채운 블라우스 단추를 부러 툭툭 뜯어 벗겨 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게 옷은 왜 입었어요. 끝은 내가 내는 거지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닌데요.”
“본부장님.”
덥석, 작은 손을 가져와 험악히 솟아오른 제 페니스를 겹쳐 쥐었다. 검은 동공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그 호칭 꼴린다니까.”
“…….”
“모르지. 요즘은 회사에서도 차현서 씨가 부를 때마다 아래가 서.”
우둘투둘, 굵은 핏줄이 탱탱하게 불거진 기둥 위, 말랑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진득이 비벼졌다. 이 무자비하게 흉악한 걸 밤새 제 다리 사이에 품은 채 신음한 주제에 또다시 무구해진 두 뺨이 복숭아처럼 벌겋다.
“나만 이래?”
브래지어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젖가슴을 흘긋 내려다보며 물었다. 울긋불긋, 제가 빨아 놓은 자국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의 눈매가 길게 휘어졌다.
“솔직히 말해도 되나요.”
“해요.”
“전 많이 버거워요.”
“어떤 점이.”
“얼결에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이런 식의 관계는 전혀 익숙하질 않아서요.”
“어떤 관계.”
“이렇게, 천박하고 야만적인….”
마주 겹친 손바닥에 힘을 더 단단히 주고 문질렀다. 여자의 손안에서 부피를 한계까지 키워 낸 자지가 흉흉히 상하 운동을 시작했다. 귀두에서부터 흐른 끈끈한 쿠퍼액이 그녀의 손바닥을 적셨다. 본능적 위기를 직감한 여자가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구체적으로 뭐가 천박하고 뭐가 야만적일까. 딴에는 충분히 신사적으로 참고 인내했다고 생각하는데.”
“인내요?”
현서는 기가 막힌 듯 헛숨을 내뱉곤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매번 시작하면 너무 오래, 또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고요. 지금처럼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난 안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고.”
이 말간 얼굴만 보고 있어도 이렇게나 강한 사정감이 들 만큼 욕정이 치솟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고.
“기껏 봐줬더니. 이거 봐, 차현서 씨. 진짜 천박하고 야만적이었음 지금도 이렇게 안 해.”
거칠게 몰아붙인 탓에 시뻘겋게 헐어 있던 속살이 안쓰러워 더 건드릴 생각도 말았건만. 이 괘씸하고 조막만 한 여자를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최 감도 잡히질 않는다.
“그냥 바로 당신 구멍에 갖다 박고 싸지르기나 했겠지.”
상스러운 언사에 경기하듯 내빼려는 작은 손을 더 꽉 가져와 그러쥐었다. 그대로 잡은 손을 빠르게 위아래로 마찰하며 자극을 올렸다. 태연한 얼굴로 작은 손바닥 위에 좆질을 하자, 그녀의 가늘고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 댔다.
화장기 없이 순결한 얼굴과 정숙한 차현서의 경계를 여전히,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싶었다. 혼자만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인 게 어쩐지 여간 손해 보는 느낌이라.
“원래, 이렇게 성욕이 왕성한 타입이세요?”
“그럴 리가. 어지간해선 잘 세우지도 않아요. 귀찮아서.”
“거짓말.”
하얀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부장님이야말로 여자라면 그동안 주변에 차고 넘치게 많았을 텐데요. 제가 들은 소문만 해도….”
“어디서 뭘 들은 거야.”
달싹이던 입술이 가만히 다물렸다. 가늘게 흘기는 눈매는 항의의 뜻인 게 분명했다. 너는 실컷 다 즐겨 놓고 왜 내 사생활에 간섭하냐는 의미로도 보여 더 밉살맞았다. 발갛게 부은 입술을 그대로 다 물어뜯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내리며 습해진 기둥을 쓸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속하고, 또 구속하는 일이라면 진저리부터 쳤었다. 그래서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벌고도 전부 사치스럽게 소비하고 치워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 여자에게만큼은 어울리지도 않을 욕구가 이토록 치솟는가.
내내 품에 안고 뒹굴었던 여자이건만 여전히 새롭고 생경해 조급증이 일었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제 안에 가둬 놓고 싶었다. 좆 달린 다른 어떤 놈과도 말도 못 섞게, 아니, 눈알도 마주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차현서에 대한 소유권을 끊임없이, 완벽하게 주장하고 싶어진 거였다.
아무래도 미친 거지.
그대로 여자의 뒷덜미를 당겨와 입술을 맞붙였다. 말캉한 입술에서 취할 것처럼 아찔한 단 즙이 쯔읍, 터져 나왔다. 진동하는 단내에 불끈거리며 맥동하는 기둥 끝, 열린 귀두 구멍에서 진득하고 희뿌연 액이 솟구쳐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