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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목적지까지 데려다줘야겠다는 준한의 고집에 현서는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불쑥 솔의 집으로 향할 수도, 준한과 함께 서정혁의 집으로 갈 수도 없었으니까.
로비 앞에서 결국, 준한과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급한 일 아니면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지. 그런 일까지 당했으면서 이렇게 밤늦게까지 위험하잖아.”
“나 애 아니거든요?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언제든 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기다릴까? 일 끝내고 나올래? 나 여기 있을게.”
“괜찮대도. 가, 얼른. 응?”
어색하게 웃으며 어서 가라는 듯 손을 내젓는데도 어쩐지 준한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그냥 다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스레 죄라도 지은 기분이라, 영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 왜 또 서정혁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깊은 한숨이 절로 터졌다. 꼭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그가 어찌나 고마운지 말문이 다 막혔다. 눈을 마주친 그가 성큼성큼, 긴 다리를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를 불길함에 흐르는 머리칼을 길게 쓸어 넘겼다.
“급한 용무가 김준한 씨랑 있었던 모양이네요.”
남자는 주머니에 한쪽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삐딱하게 턱을 기울여 눈썹을 들썩였다. 불량했다.
“이제 그만 가, 선배.”
행여 준한 앞에서 말실수라도 할까 싶어, 떠밀듯 작별 인사를 다시 건넸다. 제발 준한이 순순히 자리를 피해 줬으면 하고.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서정혁을 꼿꼿이 응시하는 준한의 굳은 표정 또한 썩 불길하기만 하다. 알 수 없는 냉랭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또 뵙네요.”
아니나 다를까, 준한이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말을 걸었다.
“지난번 불미스러운 사건 때 본부장님께서 우리 현서, 도와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큰일 없이 무사했다고요. 고맙습니다.”
정혁의 한쪽 입꼬리가 느긋이 말려 올라갔다. 분명 웃고 있음에도 소름 끼치게 차가운 느낌이었다.
“두 분이 굉장히 각별한 사이인가 봅니다. 감사 인사까지 대신 하시고.”
“네. 제가 현서랑 좀 각별하긴 합니다. 워낙 저한텐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 그러시구나.”
의미심장한 준한의 말에 그가 픽,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제게 들으란 듯 일부러 내보이는 준한의 내심이 퍽이나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정혁은 휙 고개를 돌려, 불안한 표정으로 선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만 들어가죠. 늦었는데.”
“전 할 일이 남아서 좀 더 있다가….”
“같이 들어가려고 기껏 기다렸더니.”
“…….”
“내일 합시다, 보고 늦어도 뭐라 안 할 테니까.”
우려했던 남자의 말에 현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 준한의 표정을 살폈다. 준한의 미간이 움푹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꾹 눌러 아프게 물었다. 이렇게 금방 들통날 걸, 역시나 괜한 거짓말을 했다 싶었다.
“그만 가자고. 피곤하니까.”
커다란 손이 망설이며 얼어붙은 현서의 손목을 덥석 잡아끌었다. 갑작스러운 힘에 어쩌지 못하고 그에게 그대로 끌려가는데 불쑥 그만큼이나 강한 손이 반대편 손을 잡는다. 돌아본 준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선배.”
현서는 다급히 준한을 불렀다. 그러나 준한의 시선은 현서가 아닌 그녀 너머의 정혁에게 가 붙박였을 뿐이다. 노려보는 눈빛이 억세고 사나웠다.
“뭡니까?”
정혁의 낮은 목소리가 위압적으로 묻는다.
“혹시나 현서 걱정돼서 데려다주시려는 거면, 그런 수고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있으니….”
“선배.”
결국, 참다못한 그녀가 불쑥 준한의 말을 잘랐다.
“나 요즘 본부장님 댁에서 지내.”
내뱉듯 사실을 털어놓곤 그대로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가 영 부질없었다.
준한의 미간이 움푹 패고, 현서의 손을 쥐고 있던 힘이 스르륵 풀렸다.
“뭐?”
준한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정혁과 현서를 번갈아 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처음부터 서정혁이라는 인간에 대해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녀를 옆에 두려 한 것도, 거슬리는 모든 사건 속에 서정혁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런데 그게 그저 예감이 아니었단 사실에 준한은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었다. 도대체 왜. 차현서가 서정혁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건지. 이게 무슨 의미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각별한 사이라면서, 말 안 했나 보네요. 나랑 같이 있다고.”
남자는 느물대며 긴 입매를 끌어 올렸다. 준한이 황망해 맥없이 현서의 손을 놓친 걸 흘긋 확인한 뒤 다시 고개를 완전히 꺾어 돌린다. 그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갑게 굳은 서늘한 얼굴로, 가녀린 손목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
아무 말 없이 드레스 룸으로 곧바로 직행하는 그를 따라갔다. 넥타이를 툭툭 당기고, 셔츠 단추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는 남자의 뒷모습이 어쩐지 짜증스러워 보였으나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간신히 준한의 마음을 풀고 달래 놨는데, 또 이런 쓸데없는 거짓말을 한 걸 들켜 버렸으니 울컥 화가 치밀어서였다. 괜스레 억울하기도 했고.
“왜 그러셨어요. 안 그래도 제 걱정 많은 선배한테, 짐 더 보태기 싫어서 일부러 말 안 한 거였는데. 왜 선배 앞에서 그런 얘길 하셔서….”
“무슨 얘기.”
셔츠를 완전히 벗어 낸 그가 불쑥 몸을 돌려 시선을 맞춰왔다. 깎은 듯한 근육이 단단하게 잡힌 상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새까만 현서의 눈동자가 시선 둘 곳을 찾아 잘게 흔들렸다.
“저 여기서 지내고 있다는 얘기요.”
“아. 김준한한테는 비밀로 하기로 했던가. 우리가 합의하에 계속 박고 싸는 사이인 거?”
“본부장님.”
“왜. 친하게 지내는 선배라면서, 비밀이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각별한 사이에?”
입꼬리를 비틀어 조소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야멸찼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 모르지 않으면서 일부러 비아냥대는 그가 미워 눈을 있는 대로 흘겼다.
“혹시 김준한 좋아해요?”
“네?”
얼토당토않은 질문이 돌아왔다. 어느새 성큼 다가온 그가 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화난 듯 굳은 얼굴에 긴장이 돼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꾹 말아쥐었다.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안달이 나셨을까. 기분 엿 같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마 위에서 낮게 울렸다. 왜 기분이 엿 같은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읊조린 그의 눈을 가만히 마주했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늘, 끝 모를 검은 블랙홀에 깊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말아쥔 손가락이 저릿저릿했다.
“말했었는데요, 내가. 난 내 거 다른 놈이랑 공유 안 한다고.”
또 물건 취급. 불쾌함이 급격히 치솟았다.
“꼭 제가 본부장님 소유의 물건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니야?”
“본부장님.”
“알아? 당신 사람 속 뒤집어 놓는 재주 있는 거.”
이건 또 무슨.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불현 그가 몸을 바짝 붙여 왔다. 도망칠 수도 없게, 단단한 팔뚝이 허리를 옭아매고 순식간에 코트와 카디건을 벗겨 냈다. 얇은 블라우스 위, 그의 커다란 손안에 풍만한 젖가슴이 고스란히 잡혀 들어갔다.
“나한테 저당 잡힐 거 다 잡혀서 팔려 온 주제에, 차현서가 내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나 들어야 하냐고. 내가.”
위압적인 시선이 수직으로 쏟아졌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마저 느른히 내뱉는 남자의 목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왜 이렇게까지 심기가 불편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또 제 어떤 행동이 그의 속을 뒤집은 건지.
차갑게 굳은 남자의 표정을 살피는 사이, 허리 아래로 그의 손이 밀려들어 왔다. 그는 브래지어 호크를 가볍게 풀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방어할 틈도 없이 젖가슴이 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얇은 블라우스 천까지 함께였다.
“하…!”
하늘거리는 얇은 실크 위로 볼록 솟아오른 젖꼭지를 이로 꾹 눌러 잘근댔다. 그가 머금은 젖꼭지를 중심으로 연분홍색 블라우스가 둥그런 모양으로 젖어 갔다. 젖어 살갗에 찰싹 달라붙기 시작한 천의 감촉이 고스란히 닿아 젖꼭지에 쓸렸다.
그 위를 그의 혀가 휘감고, 흡 빨고 씹어 대며 끊임없이 자극했다. 단번에 젖꼭지가 발딱 솟아올랐다. 밀어내듯 그의 팔을 붙잡아 허리를 꺾었지만, 되레 몸이 번쩍 들렸을 뿐이었다.
“흐, 응…!”
가슴을 빨기 좋은 높이로 맞춘 남자가 본격적으로 젖꼭지를 탐해 왔다. 블라우스 아래로 축축하고 뜨거운 혓바닥이 거칠게 달려들었다. 불거진 꼭지를 끊어 놓을 듯 물고 빨고 씹는 자극에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읏, 아파…!”
단단한 어깨 근육에 손톱을 푹 박아 넣자, 그가 타액이 흥건한 입술을 움직여 조소했다.
“다 말해 줘요, 김준한한테.”
젖은 천 조각 위, 그의 손끝이 무자비하게 음핵을 짓눌렀다. 구멍에서 밀려 나온 물기가 찌르릅, 척척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정신없이 가슴이 빨리는 통에 남자의 손이 가랑이 사이를 활짝 벌려 놓은 줄도 몰랐다. 다리를 움츠려 보지만, 남자의 완력에 도리어 허벅지가 더 넓게 벌어질 뿐이었다.
“나랑 이러고 잘 놀고 있다고.”
손가락 움직임에 뻐끔뻐끔, 질 구멍이 본능적으로 잘게 오므라들었다. 푹 젖은 얇은 팬티까지 다 집어삼킬 듯이.
“각별한 차현서 씨 걱정할 텐데. 안 그래?”
빈틈없는 남자의 눈빛이 더없이 음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