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다시 허벅지를 움켜쥐는 커다란 손바닥의 감촉에, 현서는 놀란 토끼처럼 몸을 웅크렸다.
“제가! 하아… 제가, 할게요.”
가쁜 숨을 다 고르기도 전이었다. 다시 그에게 붙잡히기라도 할까, 그녀는 얼른 손을 뻗어 바닥에 나뒹구는 제 속옷부터 주워 올렸다. 후들대는 무릎을 겨우 움직여 허리를 세우자, 깊이 고여 있던 남자의 정액이 덩어리째 왈칵 쏟아졌다. 엉덩이며 허벅지며 이루 말할 수 없이 난잡한 꼴이다. 어찌할 바를 몰라 입술만 앙다무는 두 뺨이 타들어 갈 듯 시뻘겠다.
가만히 하는 양을 구경만 하고 있던 남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다시 그녀의 허벅지를 벌려 들었다.
“제가 할…!”
주르륵, 남자의 손아귀에 끌려가듯 몸이 들렸다. 순식간에 그의 허벅지 위에 올라 마주 앉은 자세가 됐다. 양다리를 활짝 벌린 채.
“나도 한 고집 하는데 당신 고집은 진짜.”
나른하게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몸이 다시 찌르르 울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들어간 그의 손이 여유롭게 척척한 물기를 훔쳐 닦는다. 한 움큼 젖어 나오는 티슈 뭉치에 온통 난잡한 정사의 흔적들이 흥건했다. 시큰하고 비릿한 냄새가 차 내부에 진동하고 있었다. 습기로 희뿌옇게 흐려진 차창의 상황은 또 어떠한가. 쾌락의 여운이 다 끝나기도 전 밀려든 수치심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저도 모르게 자꾸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그러게 왜 여기서…. 집에 가서 해도 됐잖아요.”
“허. 이렇게 싸 놓고 지금 할 말이야?”
다리 사이, 닦아도 닦아도 계속 젖는 티슈를 새로 뽑아낸 그가 기막히단 듯 눈을 치켜떴다.
“제… 제가 아니라 본부장님이….”
“나는 당신 여기, 보지에다 쌌지. 아무 데나 싸고 시트 다 적신 건 차현서 씨야.”
“말… 말을 좀….”
맨정신에 듣는 저속한 단어에 얼굴에 열이 훅 올랐다. 활자로도 제대로 본 적 없는 단어를 이렇게나 능글맞은 얼굴로,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나 싶다. 이 야생마 같은 남자가 점점 더 버거운 느낌이었다.
“말이 왜.”
남자는 무슨 뜻인지 뻔히 다 알면서도 능청을 떨었다.
“그런 단어 사용은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무슨 단어.”
하, 진짜.
“미안한데 내가 한국말이 좀 서툴러서. 말을 고상하게 못 해요. 보지를 보지라고밖에 말 못 하겠어. 차현서 씨가 그건 이해를 좀 하시고.”
현서가 시뻘건 얼굴로 눈을 흘기자, 그가 느물대며 입꼬리를 올렸다. 엉망이 된 저와 달리 여전히 말끔한 남자의 얼굴에 아이 같은 장난기가 어렸다.
“팬티랑 스타킹은 너무 젖어서 다시 입지도 못하겠고. ”
다리 사이의 물기를 다 닦아 내고, 허리까지 말려 올라간 스커트를 손으로 톡톡, 내려 무릎 위로 다시 덮어 주는 손길이 크고 따뜻했다. 놀리듯 저를 흘긋 바라보는 눈동자 또한 이상하리만큼 다정히 느껴져서, 현서는 저도 모르게 꿀꺽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몸을 겹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그와의 거리. 비현실적으로 코앞에서 아른대는 잘생긴 얼굴. 묵직하게 풍겨 오는 짙은 향수 냄새까지.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결코 거부할 수 없을 남자가 제 눈앞에 저를 안고 있는데.
덜컥 두려워지고 있었다. 정말로, 혼자서만 모든 게 다 진심이 되어 버릴까 봐.
“진심이세요?”
“뭐가요.”
“이런 관계…. 진심으로 저랑 이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길 원하시는 거냐구요.”
“섹스 한 번 하고 났더니 얘기가 도로 원점으로 갔네.”
“본부장님한텐 이런 게 별거 아닌, 익숙한 일이시겠지만 저는….”
“이런.”
“…….”
“내가 평소에도 그렇게 발정 난 개새끼로 보여요. 이거 큰일인데.”
도무지 속 모를 새까만 블랙홀 같은 눈동자가 깜빡임도 없이 길게 휘어졌다.
“나를 뭐 어떤 개새끼로 생각하시길래, 우리 차 팀장님이.”
“그런 말이 아니라요.”
“그럼 차현서 씨도 별거 아닌, 익숙한 일로 만들어 보든가.”
“…….”
“손해 볼 거 없잖아. 나랑 일도 하고, 섹스도 하고.”
그게 어떻게 당신 말처럼 쉽겠느냐며 따져 물으려던 찰나, 그녀의 입술이 멈칫 벌어졌다. 그의 커다란 손이, 제 뺨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다정하게 쓸어 넘긴 탓이었다. 더운 뺨을 슬쩍 스치고 지난 그의 체온에 쭈뼛쭈뼛, 온몸의 세포가 반응했다.
조금 전까지 짐승처럼 성기를 끼워 맞추고 할 수 있는 난잡한 행위는 다 했던 남자인데. 고작 잠깐 스친 손길 한 번에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울렁거리는 거였다.
“또 생각이 많죠.”
남자의 입매가 매끈히 말려 올라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눈을 피하고 그의 무릎 위에서 내려왔다. 귓불까지 더운 열이 올라, 얼른 차창을 열었다. 차가운 바깥바람이 작은 뺨을 두드려 왔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하고, 이런 관계를 맺어 왔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농담을 즐길 만큼 자연스럽고 능숙한 그의 표정과 행동들이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저 또한 그를 스친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다정한 손길과 자꾸 착각하게 만드는 눈빛 같은 건 다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러니, 아무 의미도 없는 일에 이토록 열을 쏟을 이유조차 없는 거라고.
그의 말대로, 생각이 너무 많다.
***
“계속 전화를 안 받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쨍그랑!
조인호가 들고 있던 골프채가 휙 날아가 유리 장식장을 모조리 깨부쉈다. 사색이 되어 일그러진 얼굴이 분노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 씨발년놈들이!”
머리를 바득 움켜쥔 그의 잇새에서 상스러운 욕지거리가 마구 새어 나왔다. 틀어 놓은 티브이 화면에선 골드스톤이 경영 위기의 은성제약을 인수 합병하기로 했다는 뉴스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다. 벌써 이틀째, 골드스톤 인사들이 모두 제 전화를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최종 임상 리포팅 자료까지 알차게 넘겨줬으니, 이용은 당할 대로 당하고 뒤통수를 맞은 거였다. 서정혁과 차현서에게.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은 놀랍게도 라이언 서. 핸드폰을 움켜쥔 조인호의 손이 부들거렸다.
- 어떠세요. 이제 좀 믿겨지시나, 내 말이.
수화기 너머, 태연하고 뻔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선명해진 상황에 조인호는 어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그날, 호텔에서 그렇게 저를 대놓고 조롱했을 때 다 뒤집어 놨어야 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양아치일 줄은 몰랐던 까닭이었다.
“너 이 새끼! 어떻게 사람 뒤통수를 이렇게 쳐!”
- 글쎄요. 조성호 사장도 그 말 똑같이 하던데.
빈정대는 서정혁의 말에 조인호는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배신을 이제 아버지와 형이 알게 됐으니 제대로 제 몫을 챙기기도 전에 모든 걸 잃고 쫓겨날 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안성태의 딸과 제대로 결혼을 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던 거야? 차현서 그년하고 둘이서 작당을 하고 날….”
- 그럴 리가요. 네깟 게 뭐라고.
“뭐?!”
-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알아들으실까. 차현서는 너 같은 거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니까.
차현서라는 버튼이 눌린 조인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한순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는 사실보다, 차현서가 자신을 거부한 이유가 서정혁이라는 사실이 그를 더 분노하게 했다. 가진 건 쥐뿔도 없는 주제에 감히.
“씨발,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조인호는 이를 바득 갈았다.
- 아. 안성태 의원님께서 만지작거리고 계시는 그 법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인호의 동공이 당황으로 부풀었다. 안성태와 단둘이 나눴던 이야기를 도대체 서정혁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싶어서.
마지막 순간 골드스톤이 제 뒤통수를 칠 걸 대비해 마련해 놓았던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그는 그 히든카드가 자신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버틸 수 있게 도와줄 거라 철석같이 믿었었다. 일단 법정 관리인으로 지정만 되면 그 이후에 골드스톤을 몰아낼 유일한 무기라고도 생각했었고.
- 그 전에 본인 결혼식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 의원님이 화가 많이 나셨던데요.
“이! 이 새끼, 너 설마!”
- 그러게 손 내밀었을 때 얌전히 굴었어야지. 왜 같잖은 짓을 해서 사람 심기를 건드리십니까, 이사님. 그 여자가 그날 그 비를 맞고 며칠을 앓았는데요.
황망해 말을 잃은 조인호의 눈알이 시뻘건 분노로 달았다. 결국 이 모든 게 차현서 때문이다. 그 여자 하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후회스러웠다. 애당초 왜 차현서를 그냥 놔뒀던 건가.
“아악!!!”
조인호는 끊긴 핸드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