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늘 꾸는 악몽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장면. 꿈속에서 정혁은 늘 24년 전 그날, 그 공간, 그 끔찍한 광경 한가운데로 내몰리곤 했다.
차가운 지하 시멘트 바닥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가던 어린 여동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그의 목을 조였다. 쌔액쌔액, 밭은 숨만 내뱉으며 저를 올려다보던 그 얼굴. 슬픔과 애원이 그득하던 그 눈빛. 아이가 죽어 가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 살려 달라, 도와 달라 오열하는 게 전부였던 그날의 악몽.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댔다. 머리 위에 난 작고 더러운 유리창으로부터 실낱같은 빛이 스며 들어오고 있었다. 열한 살, 어린 정혁의 눈엔 그게 꼭 구원처럼 보였다.
쿵! 쿵! 쿵!
주먹으로도, 몸으로도, 여기저기 널브러진 철근 덩어리들로도. 그렇게 얼마나 죽기 살기로 그 유리를 두드려 댔을까.
쨍그랑…!
결국, 유리창은 산산이 부서져 깨졌다. 작고 여린 주먹은 시뻘건 피로 물들고, 찢긴 살갗이 깊게 벌어졌으나 통증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아이의 숨이 점점 더 가빠지고 있었다. 정혁은 이를 악물고 창문 위로 기어올랐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 흡입기를 가져와야 한단 생각뿐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절었으나 결코 멈출 수 없었다. 제 손에 동생의 목숨이 달려 있었으므로.
한여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정혁은 뛰고 또 뛰었다. 가쁜 호흡에 숨통이 턱 막힐 때까지.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기어코 눈앞이 핑그르르 돌 때까지.
“으, 윽, 흐…! 윽!”
질식할 것 같은 선연한 감각에 번뜩 눈을 떴다.
정혁은 제 오른손을 움켜쥔 채 침대 위를 기며 신음했다. 오른손이 통째로 잘려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들었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들이닥친 고통은 무자비했고, 악독하리만치 끈질겼다. 눈앞이 시허옇게 질려 가고 있었다.
“하! 으…!”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죽을힘을 다해 기었다. 숨을 헐떡이며 덜덜 떨리는 왼손을 뻗었다. 안간힘을 쓰며 사이드 테이블 위 약통을 움켜쥐었다. 흡사 약물 중독자처럼 약통을 통째로 뒤집어 쏟았다. 금방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질식감을 느끼며, 물도 없이 약을 넣어 삼켰다. 목에 걸린 알약 덩어리들이 마른 식도를 거칠게 긁고 지났다.
쓰러지듯 시트 위에 온몸을 푹 파묻었다. 악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통증에 사지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이렇게, 숨죽여 고통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은 제자리. 무기력했다.
결국, 그날 동생은 그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숨을 헐떡이며 홀로 눈을 감았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다. 자신과 동생을 납치해 가뒀던 차선엽의 탓도, 세상과 조금도 타협할 줄 모르던 부모님의 탓도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다 제 탓이었다. 끝까지 뛰지 못하고 등신처럼 길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버렸던 저 때문에 동생이 죽은 거였다.
24년째, 고통의 크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삼킨 약 기운이 빠르게 돌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의 통증이 사라지고, 호흡도 안정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시트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들어 몸을 뒤집어 누웠다. 땀으로 흠뻑 젖은 시트가 축축했다.
“하.”
천장 조명을 올려다보며 탁한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반복돼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 내일 아침 이 침대 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잘려 나가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던 오른손을 들어 바라봤다. 다행스럽게도, 손은 여전히 멀쩡히 붙어 있었다. 손등 위 흉한 상처 자국만 여전히 선명할 뿐.
주치의는 이 병을 끔찍한 트라우마에 의한 환상통이라 진단했다. 그저 환상에 불과한 통증 즉, 진짜가 아닌 고통이란 뜻이었다.
그게 얼마나 웃기는 개소리인지. 결국, 진짜도 아닌 환상 속 통증이 평생 제 삶을 갉아 먹고 있단 소리였다.
“씹….”
욕지기를 내뱉으며, 누운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깊이 쓸어 묻었다. 무자비한 환상통이 끝난 뒤엔, 그보다 더 잔혹한 후회와 자책이 노도처럼 밀려들곤 했다. 여지없이도.
지잉, 지이잉.
그렇게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머리맡에 올려놨던 핸드폰이 울었다. 무심히 손을 뻗어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차현서. 그 이름 세글자에 시선이 못처럼 고정됐다. 익숙지 않은 감정이 생경하게 피어올라서였다. 미간에 바득 힘이 들어갔다. 마른침을 삼키는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깊게 움직거렸다.
“네.”
침잠하듯, 푹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차현서입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만, 조금 전에 김경욱 사장 비서한테 급히 연락을 받았습니다. 본부장님과 오늘 오찬, 꼭 함께하고 싶으시다구요. 아무래도 결심이 서신 것 같습니다.
조근조근, 차분히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며 오물조물 움직이고 있을 핑크빛 입술을 상상했다. 흑요석처럼 동그랗게 반짝일 눈동자를, 말갛고 투명한 이마를, 다소 상기되어 볼록해졌을 뺨을, 차례로 하나씩 떠올렸다. 저를 빤히 바라보던, 하마터면 그녀가 누구인지 까맣게 잊을 뻔했던 그 얼굴을.
여자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자, 텁텁하게 말랐던 입 안 가득 쓴 침이 고였다. 낯설게 피어오른 감정이 명치 언저리에 얹혀 체한 것만 같았다.
정혁은 저도 모르게 이를 바득 물었다.
- 듣고 계세요?
천진하고 뻔뻔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현서 씨가 시간, 장소 적당히 정해서 그쪽에 통보하죠. 자세한 얘긴 이따 출근해서 하는 걸로 하고.”
핸드폰을 툭, 내던지고 이마에 손등을 얹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레오의 말이 맞았다. 과했다. 차현서에 대한 관찰, 관심, 감정, 모든 게 다. 단순히 증오와 원망에서 발로한 호기심이었다고 치부하기엔 확실히 지나친 데가 있었다. 저와 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던 악마의 핏줄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까닭이 전혀 없는데도.
“후….”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
거울 앞에 선 현서는 입술 아래 붙어 있던 작은 밴드를 조심스레 떼어 냈다. 보기 좋게 터져 있던 상처가 어느새 거의 다 아물고, 이젠 아주 작은 흔적만이 남았다.
불현, 남자의 손가락이 닿았던 입술 위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제 턱을 쥔 채 속을 훤히 들여보는 듯 제 얼굴을 훑던 그 빽빽한 시선 또한 눈앞에 선연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도 없을 만큼.
“늘 이런 식으로 죄책감 덜고, 당위성 부여하고, 자위하고. 그랬나?”
“왜 자꾸 센 척을 하실까. 감당도 못 하는 주제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어요. 어울리지도 않는 가면 쓰고 버티느라 얼마나 애를 썼을까.”
기억의 왜곡인 걸까. 당시엔 조롱과 빈정거림이라 여겼던 말들이 돌이킬수록 모호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원래 엿같이 돌아가는 거라고, 그러니 감당할 만큼만 버티고 살라는 위로 같았다. 혜성이 떨어지던 지난 어느 밤처럼, 기시감이 드는 안도였다.
손이 스쳤던 입술과 얼굴에 열감이 올랐다. 그 촉감을 떠올리면 저도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거였다. 아무래도 보통의 사람보다 훨씬 더 뜨거운 남자의 체온 탓인 게 분명했다.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다, 거울 속 발그레 달아오른 제 두 뺨을 멍하니 바라봤다. 천천히 깜빡이는 동그란 눈동자엔 여전히 떨쳐 내지 못한 상념이 그득했다. 붉은 입술이 꾹 맞물려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언제 들어온 건지, 거울 속 현서의 얼굴을 흘긋 확인한 솔이 수도꼭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쏴아,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히도 고요를 깼다.
“뭔 생각을 하시길래 얼굴까지 빨개지셨어요? 뭐, 또 흥분할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솔이 재차 추궁하자, 현서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물을 틀었다.
“안성태 차명 계좌는, 좀 찾아봤어?”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심장이 뛰는 기분이라.
다행히 솔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처남인 강준기 JD 하이닉스 부사장 쪽 파다가 수상한 계좌를 하나 찾았어요.”
“무슨?”
“강준기 내연녀 어머니 명의 통장에 지난 2년간 수십억이 꽂혔다 빠졌더라고요. 송금자는 해외 법인인데, 알아보니 페이퍼 컴퍼니에요. 은성제약이랑 외국 제약 회사 사이에서 중개 무역을 몇 번 주선한 적이 있는. 냄새가 많이 나죠?”
기대치 않았던 솔의 정보력에 놀란 현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동그랗게 응시했다.
“어떻게 알아냈어? 쉽지 않았을 텐데.”
“이게 다, 늘 쉽지 않은 일만 골라 시키시는 변호사님 덕분이죠.”
솔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거들먹댔다. 그런 그녀가 기특하면서도 고마워 현서의 입꼬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갔다.
함께 일한 지 벌써 4년. 검찰청 수사관으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던 솔이 돌연 사표를 내고 현서에게 온 건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돈으로도 다 갚지 못할 빚이었다. 아마도 현서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지금쯤 아버지를 죽였단 살인 누명을 쓴 채 지옥에 있었을 테니. 그녀에게 현서는, 진창을 구르던 제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은인, 아니. 구원자 그 이상의 존재였다.
“아참. 좀 전에 본부장 비서실에서 전화 왔었어요. 오늘 오찬, 변호사님은 동행할 필요 없으시겠다고요. 본부장님 혼자 가신다던데요?”
페이퍼에 물기를 닦아 내던 하얀 손이 움찔, 멈췄다.
“그래?”
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공간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