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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47화 (147/149)

리치, 헌터가 되다! 147화

패배, 그리고 1년(1)

“……루더슨, 네가…… 네가 대체 왜……?”

-이렇게 한 녀석이 가버렸구나. 가엾은 어린 양이여.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라. 너 또한 곧 저 녀석의 곁으로 가게 될 테니까.

“……닥쳐라. 닥쳐라. 닥치란 말이다!”

콰아아아!

분노가 담긴 최진혁의 목소리가 공허한 어둠 속의 심연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토스는 허허롭게 웃을 뿐이었다.

마치 노인이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는 듯 말이다.

분명 최진혁의 목소리에 담긴 힘은 평범하지 않았음에도 아자토스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어 보였다.

-아이야, 재롱은 거기까지다.

그 말과 함께 아자토스의 거대한 동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산, 아니, 여러 개의 행성이 통째로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아자토스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아자토스에게서 등을 보이지 않았다.

“으아아아!”

수십 개의 마법이 동시 연산되며 아자토스의 몸에 날아가 꽂혔으며 심연에서 솟아난 수백 기의 어비스 나이트와 수천 기의 둠 나이트들이 심연을 박차고 아자토스를 향해 날아갔다.

데스 오라와 데크의 죽음과 어둠이 섞인 그들의 힘은 하나의 행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파스스스…….

“말도…… 말도 안 돼…….”

-고작 그뿐의 힘으론 내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다. 그러니 더 이상의 재롱은…….

최진혁의 모든 공격을 무위로 되돌린 아자토스는 피식 웃으면서 최진혁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어느새 최진혁의 머리 위에 나타난 거대한 본 스피어에 흠칫했다.

-……루프르스의 힘인가.

아자토스가 흠칫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저 거대한 본 스피어에 서려 있는 힘이 평범한 힘이 아니라 루프르스의 힘으로 이루어진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프르스의 힘은 제아무리 아자토스라고 할지라도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자토스 무언가 제스처를 취하기도 전에 최진혁의 본 스피어가 심연을 날아 아자토스의 몸을 꿰뚫었다.

퍼어어엉!

그리고 본 스피어는 아자토스의 몸에 닿기 무섭게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면서 터져 나갔다.

거기에 더해서 그 폭발로 인해 아자토스의 몸 중 10분의 1가량이 먼지가 되어서 심연에 흩어졌다.

-크…… 크아아아!

“큽…….”

자신의 몸이 터져 나가는 고통은 제아무리 아자토스라고 한들 견딜 재간이 없었는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다.

하지만 심연의 주인답게 비명에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다. 비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최진혁의 귀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아자토스의 주의를 돌린 최진혁은 심연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루더슨의 시체를 수습했다.

-아…… 아빠…….

“……괜찮아. 괜찮을 거다. 절대 이 녀석은 내가 죽게 두지 않는다.”

그리고 루더슨의 시체를 수습하던 도중 루더슨의 몸에서 루미가 뽀르르 날개를 팔락이면서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

그런 루미를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다른 쪽 어깨에는 루더슨을 들쳐 멘 최진혁은 곧장 뒤로 몸을 날렸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아자토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지금 당장 도망치지 않으면 루더슨을 치료하는 데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았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전투보다는 후퇴를 택했다.

“……아저씨? 루더슨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진혁…….”

“모두…… 모두 도망친다.”

“뭐…… 뭐라고? 여태까지의 희생은? 그 희생은 어쩌고!”

그리고 루더슨을 들쳐 메고 나타난 최진혁의 모습에 심연의 존재들과 싸우던 김혜진과 엘리쟈가 최진혁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최진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김혜진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의 생각은 확고했다.

“……알았어.”

“그래, 내가 게이트를 만드는 동안 부탁한다.”

“후우……. 다 덤벼!”

그걸 눈치챈 김혜진은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몰려오는 심연의 존재들을 막아내기 위해 사라졌고, 엘리쟈만이 남아서 최진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아?”

“……후우, 괜찮다.”

하지만 그리 말하는 최진혁의 안색은 백지장처럼 새하얬다. 그것을 알지만 엘리쟈는 두 주먹을 꾸욱 말아쥘 뿐 딱히 무어라 최진혁에게 말을 하지 않았고 이내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도…… 나도 혜진이를 도와주고 올게.”

“……부탁한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엘리쟈는 최진혁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고는 먼저 사라진 김혜진의 등 뒤를 쫓았다.

그렇게 다시 혼자가 된 최진혁은 곧장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기 시작했다.

‘……루더슨, 죽지 마라. 내게 빚을 지우고 떠나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최진혁의 신경은 온통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루더슨에게 향해 있었다.

물론 따가울 정도의 시선을 받고도 루더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본래라면 두 눈을 번쩍 뜨고 ‘뭘 그렇게 노려보나?’라고 한 소리를 했겠지만 최진혁의 얼굴보다 더욱 하얗게 변한 루더슨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루더슨에게서 신경을 끄고 게이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루더슨을 구하려면 게이트를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진혀어어어억!

바로 그때 아자토스의 고함이 최진혁의 귀를 때렸다.

울컥-

그리고 그런 고함이 최진혁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거기에 게이트 작업이라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기에 그 타격은 더욱 커다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을 이를 악물고 게이트를 생성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쿵쿵쿵!

그렇게 게이트를 만드는 동안 저 멀리 최진혁이 도망쳐 온 심연의 끝에서 무언가가 쿵쿵거리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만 들어도 저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예측이 갔기에 최진혁은 진땀을 흘리면서 게이트 생성에 박차를 가했다.

“끄아아악!”

“살려줘!”

그러는 사이에도 헌터들 사이에서는 피해가 급증하고 있었다. 아자토스가 다가오면서 심연의 존재들의 기세가 강성해진 탓이었다.

거기에 잦은 전투로 떨어진 체력도 한몫을 했다. 그렇게 점점 늘어나는 피해에 헌터들이 하나둘 최진혁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살아남은 모든 헌터들은 최진혁의 주위에 옹기종기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자토스가 더더욱 가까워져 이제는 그 모습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완성이다.”

쓰쓰쓰…….

하늘이 도운 탓인지 바로 그때 게이트도 완성되어 특유의 어두컴컴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게이트가 만들어지기 무섭게 최진혁이 소리쳤다.

“다들 지구로 귀환한다! 내 뒤를 따라라!”

그리 외치고 최진혁은 곧장 루더슨을 다시 들쳐 메고 게이트로 뛰어들어 갔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을 보면서 아자토스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도망치는 거냐! 최! 진! 혁! 네놈을 죽여 버릴 거다! 네놈이 기거하고 있는 지구라는 하찮은 행성도 부숴 버릴 거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자토스의 협박성이 짙은 말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최진혁이 사라지자 다른 헌터들은 물론이고 김혜진과 도경수 그리고 엘리쟈도 차례차례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다.

물론 그 와중에 심연의 존재들에게 붙잡혀 영혼까지 갈가리 찢겨 나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헌터들은 다행히 게이트를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김민혁을 비롯한 성지혁과 윌리엄 에반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하아…….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 같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후우,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고.”

“늙은이에게는 힘든 전장이었네.”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뒤, 세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땅바닥에 드러누웠고, 그것은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에 무사히 돌아오긴 했으나 그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40만에 달했던 헌터들의 수는 20만 가까이로 팍 줄어 있었고 무엇보다 심연의 존재들을 눈앞에서 보고 전투를 했던 것이 크게 다가왔다.

지난 1년간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을 했지만 결국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헌터들에게 다가오는 인영들이 있었다.

“이보게들 어떻게 되…… 말하지 않아도 알겠군. 최진혁! 최진혁은 어디 있지?!”

“엘리쟈! 괜찮은 게냐?”

다름 아니라 그들은 지구에 남아서 지구를 지키기로 했던 드워프 킹 두르간과 엘프 킹 엘라드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헌터들의 모습에 사색이 되어 최진혁과 엘리쟈를 찾았다.

“오오, 엘리쟈. 다친 데는 없느냐?”

“……네, 저는 괜찮지만.”

“……? 저는? 그럼 설마 누가 피해를 본 이가 있느냐?”

엘리쟈의 말에 엘리쟈와 해후를 나누던 엘라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엘리쟈를 바라보았고, 엘리쟈는 그런 엘라드의 시선을 맞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하게 굳은 엘리쟈의 얼굴과 더불어서 침울해 보이는 엘리쟈의 표정에 엘라드는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최진혁이 다친 거냐?”

“아뇨, 진혁이는 무사해요. 다만…… 루더슨 경이…….”

“허……. 그럼 지금 루더슨 경은 최진혁과 같이 있는 건가?”

“아마도요. 아마 어딘가에서 루더슨 경을 치료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로군. 그 녀석이라면 분명 죽기 직전의 사람이라도 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수 있을 테니까.”

최진혁은 신이기 전에 네크로멘서였다. 그리고 훌륭한 네크로멘서는 신체에 대해서 해박하다.

의사보다 더욱 신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 네크로멘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네크로멘서 중에서 절정에 닿아 있는 것이 바로 최진혁이었다.

그렇기에 최진혁의 의술은 정말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이만 아니라면 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신의에 가까운 최진혁의 의술을 잘 아는 두 사람이었기에 마음을 놓으려고 할 때였다.

“……끄으아아아!”

“……이거 최진혁의 목소리 아니…….”

“진혁아!”

고통에 가득 찬 최진혁의 비명이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최진혁의 비명에 엘리쟈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리쟈는 루더슨을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최진혁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엘리쟈는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루더슨에게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엘리쟈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루더슨이…… 루더슨이 죽었다…….”

루더슨이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지구는 심연의 존재들과의 전쟁에서 도망치듯이 귀환했고, 20만에 가까운 최고 전력의 헌터들이 증발하듯이 죽었으며, 그중에는 루더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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