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46화
전쟁(3)
쾅!
“……역시 만만치 않군.”
“정신 차려라. 어차피 승리는 우리가 한다.”
“하…… 못 본 사이에 많이들 거만해지셨군요. 고작 제 분신 하나에 정령왕들에 예비 정령신까지 합세하셔놓고 말입니다.”
“그냥 분신? 그냥 분신이 아닐 텐데? 분명 그 힘은 일개 분신으로서는 낼 수 없는 힘이었다. 분명 네가 다른 곳에서 활동하기 편한 화신체일 터. 그리고 화신체라면 본신이 낼 수 있는 힘의 8할가량은 사용할 수 있다. 안 그런가?”
“……계속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최진혁, 당신은 절 언제나 놀라게 해주는 군요. 하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그런다고 한들 당신들이 8할의 힘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제 화신체를 상대로 고전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최진혁의 말에 니알라토텝은 순순히 수긍했다.
사실 니알라토텝이 정령계에서 최진혁의 무리와 싸움을 벌일 때, 죽기 전 분신이라고 한 것은 그들을 뒤흔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원체 영민한 최진혁을 오랫동안 속이지는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들킨 니알라토텝은 딱히 당황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도 이런 얕은수로 그들을 오래 속이지 못할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숨겨서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 좀 수가 많이 부족했던 것 같군.”
“그렇습니다. 당신 둘이서 저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적…….”
“그럼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뭐?!”
“나와라, 어비스 나이트.”
쿵! 쿠구구구…….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은 자신이 들고 있던 스태프 심연의 바닥을 쿵! 하고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심연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심연이 흔들리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지구에 있는 동안 새로운 언데드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심연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언데드들을 만들 수 있었지.”
“…….”
“궁금하지 않나? 심연의 기운을 받아들인 언데드라니 말이야. 사실 나도 만들고 나서 무척이나 놀랐지. 다만…… 중요한 점은 어비스 나이트의 재료로 소드 엠퍼러 급 기사의 시체가 필요하다는 점이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것도 내가 루프르스의 힘을 완숙하게 다루면서 상관없어졌다. 내가 만들면 되니까. 때마침 나타나는군.”
그 말과 함께 어두운 심연의 기운이 뭉클뭉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심연의 기운들은 이내 하나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고 그곳에 나타난 것은 수백 기의 어비스 나이트였다.
“이 정도로는 아직 네게 부족하겠지……. 그럼 어쩔 수 없군. 양념을 조금 쳐줄 수밖에. 데스 오라.”
“……그만.”
“아, 부족한가 보군. 데크. 죽음과 어둠을 부탁한다.”
-알았어!
“그만하라고 했다! 최진혀어어억!”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군.”
처음 나타날 때만 해도 꽤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하던 니알라토텝이었지만 거기에 여러 버프들과 데크의 힘인 어둠과 죽음이 더해지자 그 정도가 더더욱 심해졌다.
심연의 2인자인 그에게 충분히 위협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내 버프란 버프들은 전신에 치덕치덕 바른 어비스 나이트들이 니알라토텝을 향해 발걸음 내디뎠다.
쿵……! 쿵……! 쿵……!
심연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커다란 발걸음이었다.
* * *
“…….아저씨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빨리 앞이나 봐. 진혁이는…… 분명 알아서 잘할 수 있을 거야. 우린 우리 일에 집중하자.”
“하아, 알겠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엘리쟈는 자신들의 앞에 있는 해파리와 같은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커다란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분명 커다란 해파리에 불과한 그들은 1년간 초인의 수준으로 단련된 헌터들을 학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학살이 아니라 삼키고 있었다.
헌터들의 공격들은 해파리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 못하고 관통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조그마한 피해조차도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금세 회복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해파리들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주거나, 나아가서 죽일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혜진과 엘리쟈 그리고 도경수였다.
파앙!
도경수의 주먹이 내질러질 때마다 예의 해파리 괴물들이 터져 나갔다.
“후우,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방심하지 마라. 녀석들은 심연의 존재들 중에서도 정예에 속하는 이들이다. 방금까지 싸웠던 이들과 저 녀석들을 동급으로 취급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한숨을 내쉬면서 주먹을 돌리고 있던 도경수는 투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다시 자신의 앞에 몰려 있는 해파리 괴물들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의 옆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꾸드드득!
-……끼에에엑!
“뭐 이렇게 많아? 엘리쟈! 거기도 간다!”
“알았어.”
꾸득! 꾸드득!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갑자기 커다란 나무뿌리 같은 것들이 솟아오르더니 수십 마리의 해파리 괴물을 휘어 감는 모습은 괴상망측했다.
하지만 그런 괴상망측한 모습 덕분에 헌터들이 지금 살아남은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쟈가 있는 방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수십만 헌터들을 속수무책으로 몰아붙이던 해파리 괴물들은 마찬가지로 세 사람에 의해서 속수무책으로 몰아붙여졌다.
“……천외천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 같은 놈들이 날고 기어도 못 넘을 벽이라는 건 실존하는 것 같다.”
“……그게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혁과 성지혁, 윌리엄 에반스는 혀를 차면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저런 사람들보다 더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을 한 김민혁은 저 멀리서 니알라토텝과 싸우고 있는 두 명의 인영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천외천이라는 말은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죠. 저쪽의 일은 저희가 간섭할 수 있는 성질의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러도록 하지.”
“부디 이 전쟁의 끝에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기를.”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다시 묵묵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앞선 세 사람에 비하면 많이 처지는 실력이지만 그들도 이곳에 있는 다른 누구에게는 천외천이었기에.
* * *
“……최진혀어억!”
“꼴이 말이 아니군. 니알라토텝. 그래서야 우리를 막아설 수 있겠나?”
“으득, 감히 뒤에 서서 쫑알대기만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 녀석도 네 녀석의 부하들을 그리도 이끌고 와놓고는 내게 그걸 따지는 건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닥쳐라!”
최진혁의 말에 전신이 난도질당한 니알라토텝은 이를 갈았지만 무어라 반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진혁의 말대로 그도 셀 수 없이 많은 부하들을 이끌고 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하들은 헌터들에 의해서 잡혀 있는 상태였고, 그 결과 그는 혼자서 수백 기의 어비스 나이트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어비스 나이트들의 힘은 과연 경천동지할 만한 힘이었다. 그 대단하던 니알라토텝조차 그들의 손에 의해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어비스 나이트들의 합공 또한 만만치 않았다.
카앙! 캉! 카앙카앙카앙!
무쇠로 이루어진 것처럼 단단하던 니알라토텝의 몸을 마치 두부 가르듯이 갈라 버리는 어비스 나이트들의 합공에 니알라토텝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비스 나이트뿐이었다면 니알라토텝이 이렇게까지 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촤악-
“……루더슨!”
“나를 잊으면 매우 섭섭한데 말이야. 니알라토텝.”
니알라토텝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루더슨 때문이었다.
신성력을 지니고 초월적인 검술까지 지닌 루더슨의 참전으로 본래 어비스 나이트뿐이었다면 진즉에 그들을 쳐부수고 최진혁의 앞에 도달했을 니알라토텝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수백 기의 어비스 나이트들의 합공과 루더슨의 추가 참전. 이런 것들이 맞물리고 또 맞물려서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모든 일들이 맞물린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크어어…….”
니알라토텝의 죽음.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열 명에 가까운 이들이 합공을 잡았지만 이번에는 단둘이서 그것을 해낸 것이다.
그것도 화신체가 아닌 나머지 2할의 힘마저 쓸 수 있는 본체를 말이다.
루더슨의 검에 복부를 찔린 채, 죽어가고 있는 니알라토텝은 두 사람을 바라보면 중얼거렸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분께서 살아계시는 한 나는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말이다!”
“그래, 하지만 다음은 없을 거다. 오늘…… 아자토스는 죽는다.”
“흐하! 흐하하하! 그래, 지켜보겠다. 하지만 내가 예언 하나 하지 너희들은…….”
촤악-!
하지만 말을 하던 니알라토텝은 휘둘러진 루더슨의 검에 의해서 목이 날아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푸스스…….
그렇게 니알라토텝은 죽음을 맞이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자토스가 존재하는 한 그는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니알라토텝을 죽였다!”
“우와아아아!”
그리고 적장의 목이 베어진 결과는 참혹했다. 그런대로 분전에 분전을 거듭하던 해파리 괴물들은 여태까지 분전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분쇄되었다.
그렇게 어두컴컴한 심연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은 헌터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진혁의 입이 열렸다.
“우린 이제 아자토스를 죽이러 간…….”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아아, 니알라토텝.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 하지만 결국 막아내지 못했구나. 하지만 이미 그건 예견된 일일 뿐. 너는 곧 다시 태어나 나를 위해 일하게 될 것이다.
“……쿨럭!”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울리고 나아가 박살이 나는 것 같은 울림이 최진혁의 머릿속을 꿰뚫었다.
“끄아아악!”
“머리가! 머리가아아악!”
그리고 그것은 비단 최진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자토스의 목소리를 들은 헌터들이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자…… 토스…….”
-그래, 내가 모든 심연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이며 심연의 주인이다. 네가 루프르스의 후인이라는 녀석인가? 참으로 볼품없군. 너에겐 그 힘의 자격이 없다.
“닥쳐라! 내 힘의 자격은 네가 아니라 내가 정한다. 어비스 나이트! 저 녀석을 죽여라!”
-주인님의 뜻대로.
최진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니알라토텝을 난도질한 수백 기의 어비스 나이트들이 아자토스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날파리들이 감히 누구의 옥체에 손을 대려는 것이냐.
파스스…….
“……이런 말도 안 되는.”
니알라토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어비스 나이트들이 아자토스의 말 한마디에 먼지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최진혁이 얼이 빠진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그럼 이제 네 차례다.
푸슝!
아자토스의 그 말과 함께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속도로 무언가가 최진혁에게 쏘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최진혁의 머릿속에는 경종이 울렸다.
‘피할 수 없어. 죽는다…….’
실시간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모습에 최진혁은 갖가지 방어 마법들을 사용하며 그것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런 최진혁의 모든 수단을 박살 내고 최진혁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사실에 최진혁은 삶을 포기하고 눈을 감았다.
‘나는…… 나는 실패했다…….’
죽음을 직감한 최진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무언가를 꿰뚫는 듯한 피륙음이 최진혁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분명 소리는 들렸음에도 고통이 없자 최진혁은 의아해하면서 눈을 떴다.
“……루더슨.”
“……한 번의 실패에…… 모든 걸 포기하지 마라……. 넌……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최진혁을 대신해서 아자토스의 공격을 맞고 죽어가는 루더슨의 모습이 있었다.
“……뒤를 부탁한다.”
그 말을 끝으로 루더슨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고개가 다시 들려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