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39화
정령계 그리고 지구(1)
니알라토텝, 아니, 그의 분신을 처리하고 난 뒤로 정령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니알라토텝의 힘으로 더러워진 정령계를 씻어내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정령계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령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령왕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벽하군.
-완벽하다 못해서 감동적일 지경인데?
-이게 다 저 녀석들 덕분이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렇게 말을 하는 정령왕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두 꼬마 정령왕들을 바라보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 둘의 힘이 아니었다면 정령계를 되돌리기는커녕 되찾지조차 못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럼 정해진 거지? 모두?
-그래. 저 아이들이라면 가능할 거다.
-후우,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만…… 그래도 정령계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렇게 말을 하면서 정령왕들은 즐겁게 놀고 있는 데크와 루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그런 의미로 우리들은 이제 은퇴하겠다.
“……은퇴라? 아직 한창때지 않나?”
-한창때는 무슨. 전성기는 진즉에 지났다. 어차피 이번에 정령계가 크게 망가지면서 우리의 힘도 많이 손실되었다. 우리 전성기는 끝났어. 이젠 후세대에 정령계를 물려줄 차례라고 생각한다.
“하아, 어차피 여기서 내가 뭐라고 말을 한들 듣지 않을 게 분명하겠군.”
-역시 너는 우리를 잘 알아. 우리가 너를 잘 아는 것처럼 말이야.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가 낄낄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최진혁은 한숨을 쉬면서 데크를 불러들였다.
마찬가지로 최진혁의 옆에 서 있던 루더슨도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루미를 불렀다.
두 사람의 부름에 정령계에서 뛰놀던 두 정령왕들은 뽀르르 날아와 자신의 부모나 다름없는 최진혁과 루더슨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아빠, 왜 불렀어?
-왜 부르셨나요?
“저 녀석들이 너희에게 할 말이 있다더군.”
“그래, 너희에게 나쁜 일들은 아닐 거다.”
무려 정령왕들의 힘을 물려받을 기회였으니 나쁘다 못해 인생에 다시없을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데크와 루미에게 실피드가 대표로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너희에게 우리의 힘을 건네줄 생각이다. 물론 자연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니다. 그저 왕으로서의 격만 유지할 힘 정도는 남길 생각이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으음, 좋은 건가?
-너희에게 힘을 넘긴다는 의미는 이제 정령계에도 빛과 어둠이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지. 좋은 의미로 말이야. 수만 년 동안 제대로 된 빛도 어둠도 없는 세계에서 이제 드디어 그것들이 생긴다는 것은 우리는 물론이고 너희들에게도 좋은 일일 거다. 뭐든지 처음은 자신의 격에 도움이 되니까 말이야.
-……?
실피드의 말에도 자신들에게 정말 좋은 것인지를 파악을 못 하고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둘에게 최진혁과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좋은 일이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두 정령왕은 밝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게.
-저도요.
-축하한다. 이제 정령계는 너희들의 손에 달렸다.
그 말과 함께 실피드는 양손으로 각각 데크와 루미의 손을 잡았고, 이내 어마어마한 힘이 실피드의 몸에서 데크와 루미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갑자기 큰 힘이 몸 안에 들어오자 데크와 루미가 흠칫하면서 놀랐지만 적응이 되었는지 이내 평온한 얼굴로 실피드의 힘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실피드는 자신의 힘을 건네주고는 살짝 허탈해진 얼굴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걸로 내 몫은 끝났다.
힘을 전달해 준 실피드는 중년인의 모습에서 초등생 정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쿡쿡 웃음 짓고 있을 때, 뒤이어 다른 정령왕들도 하나둘 앞으로 나와 자신들의 힘을 건네주었다.
불, 물, 땅순으로 힘의 전승이 되었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네 정령왕들은 완벽하게 자신들의 힘의 이전을 마쳤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두 데크와 루미에게 전달된 네 명의 정령왕들은 모두 초등생과 같은 모습이 되었고, 반대로 데크와 루미의 경우에는 확 자라서 고등학생 정도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갑자기 자식들이 장성해 버린 듯한 애매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였다. 겉모습이야 어찌 되었든 그 둘은 최진혁과 루더슨 그 둘이서 만들어낸 자식 같은 존재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령왕들의 힘을 온전히 소화해 낸 두 정령들을 두 사람은 대견한 얼굴로 끌어안아 주었다.
“수고했다.”
“대견하구나.”
-……응! 나 대견해!
-감사합니다아…….
하지만 몸은 커져도 정신은 똑같았기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그리 큰 괴리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렇게 짧은 포옹을 마치고 최진혁과 루더슨 쪼그매진 정령왕들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할 거지?”
“그도 그렇군. 이제 너희들의 힘은…….”
-그래, 볼품없지. 겨우 신격을 유지하는 정도니까. 우리는 정령계의 내실을 다지면서 저 두 아이에게 지식을 전수해 줄 생각이다.
“지식?”
-우리가 수만 년 동안 정령계를 다스려 온 지식. 그것들을 전수해 줄 거다.
“괜찮겠군.”
-거기에 우리 네 명의 힘이 모조리 녹아 있으니 저 아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사대 속성의 힘도 다룰 수 있게 될 거다. 그걸 대비해서 사대 속성의 힘을 다루는 방법도 익히게 할 생각이다.
“흐음……. 그래주면 우리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로군.”
-우리에게도 필수적인 일이다. 그래야 정령계가 건강해지고 정령들이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처해서 두 정령왕들의 스승 노릇을 하겠다는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살짝 꾸벅이면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실피드는 당연한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고 말이다. 그렇게 손사래를 치는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도 감사 인사를 그만두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감사는 더 이상 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너희는 이제 지구로 돌아가는 건가?
“그렇게 되겠지. 그리고 심연의 존재들과 싸울 거다.
-……어려운 길로 가는군.
“예정된 수순이다. 어차피 우리가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우리가 하는 게 좋지 않겠나?”
-크, 네 자신감 하나만은 알아줄 만하군.
니알라토텝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분전을 했는데 이제는 나아가 심연의 존재들 전부와 싸우겠다는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는 박수를 치면서 칭찬했다.
비꼼이 담긴 칭찬이었지만 최진혁의 얼굴에 담긴 진심을 읽은 실피드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이냐?
“내가 거짓을 말한 적이 있었나?”
-……하아, 바라는 거나 말해라.
“역시, 전대 정령왕답게 눈치가 빨라서 좋군.”
자신이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곧장 눈치챈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실피드는 떨떠름하다 못해 썩어버린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령계를 원한다.”
-……뭐?
그리고 최진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상상도 못 한 말에 실피드가 얼이 빠진 얼굴로 되물었고, 지금 들은 게 맞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이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들은 게 맞다.”
-하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정령계를 원한다니.
“방금 말한 대로 나를 비롯한 이들은 심연의 존재들과의 전쟁을 할 거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지구는 비게 되고 빈집털이를 당할 수도 있다.”
-……너희들이 없는 지구는 많이 약하기는 하지.
이종족들과 헌터들이 많이 강해지고 있고 신에 다다른 이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그들에 비하면 한 수, 아니, 몇 수는 쳐졌다.
그렇기에 그들로는 심연의 존재 중 한 명만 침공해도 초토화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부디 정령계가 지구와 하나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망할, 괜히 들어준다고 했군. 두 정령신께 말씀은 드린 거냐?
실낱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고 김혜진과 엘리쟈까지 들먹인 실피드였으니 이어진 최진혁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엘리쟈의 고향인 엘프 왕국은 지구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있고, 마찬가지로 김혜진의 고향도 대한민국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이 사는 나라, 나아가서 세계를 구할 일을 내버릴 것 같으냐. 이미 진작에 허락을 다 구해놓은 상태다. 너만 수락하면 정령계는 지구와 하나가 된다.”
-……철두철미한 자식.
“칭찬으로 듣도록 하지.”
-칭찬 맞다. 후우, 꼭 이렇게 무거운 것들만 내게 물어보지. 왜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힘들 때마다 담배 같은 것들을 찾는지 알 것도 같군.
그렇게 말을 하면서 한참을 투덜대던 실피드는 이내 생각에 빠졌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가면 될 것 아니냐. 어차피 정령계도 혼자서 살기에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그 녀석들에게 얻을 것도 있겠지.
“그래, 정령들은 계약자가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니까 말이야.”
-우리 같은 왕급은 필요 없다.
“누가 너라고 콕 찝어서 말했나? 나는 다른 정령들을 말한 거다.”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짜증을 내는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큭큭 웃으면서 실피드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고맙다.”
-……됐다.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어이! 실피드가 허락했다!”
-……무슨?!
“오케이! 여기도 준비 끝!”
“……나도 끝났어.”
-아빠! 우리도 끝났어!
-……끝났습니다.
실피드의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진혁이 목청껏 외쳤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김혜진과 엘리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기에 더해서 데크와 루미의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실피드가 한껏 당황한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냐! 최진혁!
“방금 말하지 않았나? 정령계는 지구와 하나가 된다. 바로 지금!”
쿵! 쿵! 쿵! 쿵!
최진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실피드 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귀에 무언가 박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실피드가 욕을 하는 것도 들렸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모든 소리가 잠시간 사라졌고, 이내 다시 눈을 뜬 최진혁의 눈엔 더 이상 정령계의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매캐한 공기가 가득한 서울. 그런 서울에 최진혁은 서 있었다.
“아저씨! 성공! 성공!”
“……얼마 만에 지구인지. 아버지는 잘 계시려나……?”
그리고 그런 서울은 정령계와 하나가 되었다. 정확하게는 동화되었다. 정령계가 지구가 되었고, 지구가 곧 정령계였다.
두 개의 세계가 하나가 된 진풍경을 보면서 최진혁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