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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36화 (136/149)

리치, 헌터가 되다! 136화

니알라토텝(2)

콰아앙!

-으어어, 그분을 위하여어…….

-죽…… 여…….

-그분이 오신다……. 그분을…… 찬양…… 하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벽의 일부분이 터져 나갔고, 그 구멍으로 타락한 정령들이 꾸역꾸역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내 타락한 정령들이 정령왕들의 영토에 발을 들였다. 그런 타락한 정령들의 등장에 다른 정상적인 정령들이 몸을 날려 그들을 막아섰다.

-막아라! 절대 이들을 뒤로 보내지 마라!

-……곧 왕께서 도착할 거다! 그때까지만 버텨라!

맨 앞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는 최상급 정령들의 모습에 다른 정령들도 힘을 얻었는지 점점 타락한 정령들을 막아내는 정령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최상급 정령이 말했던 것처럼 정령왕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왔다!

콰과과곽!

당찬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흙빛 피부의 사내. 땅의 정령왕은 힘차게 외치면서 발을 한 번 굴렀다.

그리고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 동작이 불러온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수십 미터 크기의 돌산이 타락한 정령들의 진영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악!

-……그분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아…….

그렇게 땅의 정령왕의 공격이 그들을 뒤덮었고, 타락한 정령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내면서 쓰러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이다! 몰아쳐!

땅의 정령왕의 공격에 자신감을 얻은 정령들이 타락한 정령들을 향해 파상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땅의 정령왕의 공격으로 인해서 기세 넘치게 밀고 들어온 타락한 정령들의 기세가 주춤거렸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정령들이 타락한 정령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전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아아악! 뭣들 하는 거냐! 그분께서 우리를 필요로 하신다!

-죽여라! 그런 이들만이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니!

-사…… 상급 정령들이다!

다른 타락한 정령들과는 달리 어눌하지 않은 말투로 말을 하는 상급 정령들의 등장에 전황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쯧, 그래 봐야 상급 정령이지.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에도 땅의 정령왕은 혀를 차면서 다시 한번 발을 굴렀다.

쾅! 콰과곽!

방금과 같이 수십 미터 크기의 돌산이 또 한 번 타락한 정령들의 무리를 휩쓸었다.

-……막았어?

아니, 휩쓸 뻔했다. 타락한 상급 정령들이 막지 않았다면 말이다.

분명 대충 한 공격이기는 했으나 상급 정령들에게 정령왕인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땅의 정령왕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꾸드드득! 콰앙!

-끄아악! 왕이시여!

-피…… 피해!

타락한 상급 정령은 땅의 정령왕이 만들어낸 돌산을 뽑아내더니 이내 정령들의 무리를 향해 던졌다.

그리고 거대한 크기의 돌산이 정령들의 무리 한가운데에 떨어지자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땅이 크게 파였다.

거기에 많은 정령들이 그 파편에 얻어맞고 빈사 상태에 빠졌다.

물론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정령들은 하급에서 중급의 정령이었지만 단번에 수십 명의 정령이 리타이어되자 땅의 정령왕은 인상을 쓰면서 전면에 나서려고 했다.

“당신은 저랑 노시죠?”

-……니알라토텝!

그의 앞에 가면을 쓴 사내, 니알라토텝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의 앞에 홀로 모습을 드러낸 니알라토텝의 모습에 땅의 정령왕은 이를 으득 갈면서 외쳤다.

-내가 만만하기는 한가 보군. 이렇게 혼자 모습을 드러내다니 말이야.

“아아, 당신이 가장 만만하기는 하죠. 공격력은 변변찮지~ 그렇다고 제 공격을 제대로 막아낼 정도의 방어력을 가졌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잖아요?”

-……이 개자식이!

땅의 정령왕이 은연중에 품고 있던 생각을 여실히 말하자 땅의 정령왕은 분개했다.

니알라토텝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땅이라는 특성 탓에 방어력이 높았지만 니알라토텝의 앞에서 그런 방어력은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공격력은 다른 정령왕들에 비해서 떨어지는 편이었다. 즉, 니알라토텝의 앞에서 가장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정령왕이 바로 그였다.

그렇기에 평소에 자격지심이 조금 있던 땅의 정령왕이 발끈하면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크…… 크크큭, 이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한다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땅의 정령왕의 모습에 니알라토텝이 낄낄대면서 손을 내저었다.

쿠구구구!

그와 함께 니알라토텝의 전신에서 영문 모를 힘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 힘은 이내 땅의 정령왕의 주위를 뒤흔들었다.

“크헉…….”

이미 여러 번 당한 공격이었지만 언제나 끝은 같았다. 피할 수도 없는 공격에 전신을 유린당하는 것 말고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니알라토텝의 공격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충분히 자신이 유리한 상황인데도 공격을 거두는 니알라토텝의 모습에 땅의 정령왕이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치켜들었고, 이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인영을 볼 수 있었다.

……실피드, 이프리트 그리고 아쿠아.

바로 그를 제외한 세 명의 정령왕들이 그의 앞에 서서 니알라토텝과 대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 돌덩이. 빨리 일어나지? 힘들어 죽겠다. 인마.

-……다 불태워 버릴까? 어차피 우리 이제 뒤도 든든하겠다…… 상관없잖아? 목숨 하나 이럴 때 쓰라고 하나 있는 거 아니었어?

-……진정하세요. 이피. 저자는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쳇, 알았어.

아쿠아의 말에 이프리트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짱을 낀 채로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들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니알라토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거북이처럼 웅크린 자세로 니알라토텝의 공격을 받아내던 땅의 정령왕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머쓱한 얼굴로 그들의 옆에 나란히 서며 말했다.

-……미안하다.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당연한 소리하지 마. 우리들이 모두가 달려들어도 무리였어. 그런데 너 혼자 싸워놓고서는 뭘 탓해? 당연한 일이었고 당연한 결과였어.

담담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실피드의 모습에 땅의 정령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과를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욱한 나머지 상대가 되지 않는 상대에게 무작정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나 혼자서 싸우다가 죽기라도 했으면…….’

정령왕은 영원불멸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동급 혹은 상위에 존재에게 그런 영원불멸은 딱히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렇기에 땅의 정령왕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합체는 끝난 겁니까? 하아, 이래서 악당은 피곤하단 말이죠. 이렇게 변신까지 기다려 줘야 한다니…… 귀찮기 그지없네요. 하하하!”

-……죽기 싫으면 이때 공격했어야지.

“죽어요? 제가? 여러분한테?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군요. 수만 년을 살아왔지만 지금 농담보다 재밌는 건 들어보지 못한 것 같군요.”

마치 재밌는 농이라도 들은 것처럼 깔깔대며 웃는 니알라토텝의 모습에 잠잠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실피드의 이마에 실핏줄이 섰다.

-그 오만함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지켜보겠다.

“수만 년 동안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만 년 정도는 지켜질 것 같군요.”

-…….

니알라토텝의 광오한 발언에 실피드를 비롯한 다른 세 정령왕의 이마에 실핏줄이 돋아 올랐다.

그리고 이내 네 명의 정령왕은 아무런 말 없이 니알라토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니알라토텝은 진심으로 즐거운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을 향해 팔을 벌려 맞이해 주었다.

“오늘…… 정령계는 사라집니다. 위대하신 그분의 아래로 들어가는 겁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지! 정령계가 사라질지언정 정령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피드와 니알라토텝의 말과 함께 서로 격돌했고.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정령계를 뒤흔들었다.

* * *

콰아아앙!

“저쪽은 벌써 시작했나 보군.”

“……그럼 우리도 빨리 시작하도록 하지. 저들이 열심히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말이야.”

“두말하면 입 아플 소리를 하는군.”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발음에 최진혁과 루더슨의 고개가 절로 그쪽을 향해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였다.

이내 자신들이 할 일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은 그쪽에서 신경을 끄고 자신이 맡은 일들을 하기로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두 사람과 두 정령이 말이다.

“데크, 시작하자.”

“루미, 부탁한다.”

두 사람이 부탁하고.

-응! 우리만 믿어.

-……맡겨만 주세요!

두 정령이 그 부탁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두 꼬마 정령왕들은 두 손을 맞잡았다.

쓰쓰쓰…… 파아앗……!

그리고 두 정령왕이 손을 맞잡자 그들에게서 어둠과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어어어……?

-무슨……?

그리고 갑작스레 빛과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전투를 벌이던 타락한 정령들과 그냥 정령들은 싸우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로 그때 데크와 루미의 몸에서 흘러나온 빛과 어둠이 서로 얽히고설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얽히고설키던 빛과 어둠은 이내 하나의 커다란 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구 안에서는 빛과 어둠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빛과 어둠의 구는 점점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그리고 이내 빛과 어둠의 구의 크기가 과장을 보태서 태양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때였다.

콰아아아앙!

방금 정령왕들과 니알라토텝이 맞붙었을 때 들렸던 소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폭발음이 정령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으어?

-……뭐지?

그리고 폭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는 밝고 어두운 부스러기들을 바라보면서 정령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투욱…… 툭…….

하늘에서 떨어진 눈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타락한 정령들과 정령들 모두에게 흩뿌려졌다.

-……뭐지?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그리고 그것에 닿은 일반 정령들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타락한 정령들의 반응은 달랐다.

-그으으아악!

부스러기에 닿은 타락한 정령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이내 서서히 거뭇했던 부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완전히 검은 부분이 지워졌다.

그리고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쓰러진 타락한 정령들을 바라보던 정령들은 쓰러진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타락한 이들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어?

다름 아니라 쓰러진 그들은 본래 타락하지 않았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그들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두 명의 꼬마 정령왕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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