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35화
니알라토텝(1)
-으아아아…… 힘들어…….
-나도…….
“수고했다. 데크.”
“루미도 쉬어라.”
한번 불이 붙은 정화 작업은 쉼 없이 계속되었다. 한 무리를 정화하면 두 무리가 오고 두 무리를 정화하면 네 무리가 왔으니 당연히 끝이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이 안 보일 것만 같던 타락한 정령들의 행진도 밤이 되자 끝을 맺었다.
“……잠시만, 밤이라고? 정령계에 밤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그렇군. 본래 왔을 때는 24시간 내내 밝은 하늘이 아니었나……?”
하지만 밤이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처음 정령계에 왔을 때를 생각해 내고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정령계에 왔을 땐 밤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둘의 의아함을 누군가가 풀어주었다.
-정확하게는 밤이 아니다.
“……실피드?”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니라 타락한 정령들을 잡으러 갔던 실피드였다. 그리고 실피드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에 들려 있는 타락한 상급 정령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실피드가 배달한 타락한 상급 정령 둘은 감옥으로 곧장 이동되었다. 오늘은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에 루미와 데크가 더 이상 정화를 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실피드는 잡아 온 상급 정령들을 감옥에 가두기만 할 뿐 따로 정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탁을 하지는 않았지만 감옥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으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너희들의 말대로 원래 정령계에는 밤이 없다.
“그럼 지금 이건 뭐지?”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이 손을 들어 어둑어둑해진 정령계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손짓에 실피드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건 밤이 아니다. 저건 니알라토텝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의미지 결코 밤이 되어 어두워진 것이 아니야.
“니알라토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다. 이렇게 하늘이 어두워지면 니알라토텝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거고 그렇게 되면 타락한 정령들의 힘이 배로 급증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타락한 중급 정령도 상급 정령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 물론 서너 명 정도 붙어야겠지만 말이다.
“허어…… 그 정도라고……?”
중급 정령들의 힘과 상급 정령들의 힘의 차이를 생각했을 때, 실피드의 말은 놀라웠다.
본래라면 중급 정령들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상급 정령 하나를 이기기 어려웠다. 그 둘 사이에는 커다란 벽 하나가 존재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니알라토텝의 등장 하나만으로 그 벽을 부수거나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은 최진혁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막말로 중급 정령과 상급 정령의 차이는 9서클일 때의 자신과 권능을 얻었을 때의 자신 정도의 차이였으니까 말이다.
-중급 정령만 해도 그럴 진데 상급 정령은 어떻겠나?
“……끔찍하군.”
평범한 중급 정령을 상급 정령에게 비빌 정도로 강화했으니 마찬가지로 상급 정령도 중급 정령 정도의 폭으로 강해진다면 정령계에 몇 없는 최상급 정령들마저 노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상급 정령 정도쯤 되면 타락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지.
“그건 그렇겠군.”
정령왕 바로 아래 단계인 최상급 정령이었기에 그들이 타락하게 된다면 그들이 몰고 올 후폭풍을 실피드는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타락의 힘은 대단했고, 무척이나 위험했다. 그렇기에 실피드는 최진혁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러니 절대로, 어둠이 드리웠을 때는 이곳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곳을 벗어나면 무슨 위험이 닥쳐도 우리는 너를 도와주지 못한다.
“……정령들에게 당할 정도로 나와 내 언데드들은 약하지 않다.”
-그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분하기는 하다만 내 정령들은 물론이고 타락한 정령들조차 너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거다. 루프르스 님의 힘을 흡수한 너는 이미 우리 네 정령왕의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뭘 걱정하는 거지?”
-니알라토텝. 그자가 어두워진 정령계를 돌아다닌다. 그 탓에 순찰을 나갔던 최상급 정령 여럿이 죽임을 당했어. 제아무리 네가 강해졌다고는 하나 니알라토텝 그자는…… 괴물이야.
“……알았다.”
니알라토텝의 이름이 거론되자 최진혁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딱히 나가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니알라토텝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원래도 없었던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후우, 하지만 어쨌든 그 녀석은 우리가 잡아야 할 적. 언젠가는 부딪치게 되겠지. 둘 중 누군가가 죽든 간에 말이야.’
앞으로 있을 니알라토텝과의 결전을 생각하던 최진혁은 정령왕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성벽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자신에게 배정된 잠자리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실피드도 이내 스르륵 모습을 감추었다. 정령계가 이리 변하고 나서부터 존재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렇게 어두워지면 더더욱 가중되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정령왕들마저 힘을 보충하러 가야 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모두가 잠들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밤. 바로 그 밤에 정령계가 격동하기 시작했다.
* * *
“아아……. 드디어 길고 긴 시간을 지나서 정령계에 도착했구나……. 최진혁.”
여자라고 의심이 될 정도로 높은 목소리를 가진 사내의 목소리가 어둑한 정령계의 밤 아래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루프르스의 힘. 그걸 가져간다면 그분의 위대한 과업이 시작된다.”
꾸드득…….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사내, 니알라토텝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황홀한 얼굴로 어둑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것도 잠시 니알라토텝이 고개를 숙여 하늘이 아닌 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령왕들의 아래에서 지루하게…… 그리고 따분하게만 살아왔던 정령들이여. 이제는 나의 힘으로 마음껏 자유를 느껴라. 그리고 그 대가로…… 너희를 가두었던 정령계를 부수어라.”
-크으으……. 파괴……. 정령계…….
-그분을 위해서…….
그리고 그런 니알라토텝의 눈에는 자신의 앞에 모여 있는 수십만이 넘는 정령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정령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었다. 투명해 마치 거울 같았던 눈동자는 진흙탕처럼 더러워져 있었고, 입을 헤~ 벌린 채였다.
그렇게 벌어진 입에서 검은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침은 땅에 닿기 무섭게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녹아내렸다.
척 보기에도 정상은 아닌 그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니알라토텝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짙어졌다.
아니, 애초에 지금 그들의 모습을 만든 장본인이 니알라토텝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의 눈에는 저 모습이 제대로 된 그들의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니알라토텝의 입이 열렸다.
“가라. 가서 너희들이 세계를 부수어라. 오늘 안에 정령계는…… 사라진다.”
-쿠와아아!
그 말이 마치 시작 신호라도 되는 듯이 수십만이 넘는 정령들이 미친 듯이 전방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방향에는 정령왕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방벽이 세워진 곳이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하급 정령과 수만의 중급 정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천 명의 상급 정령들이 한 방향을 향해 내달리는 광경은 무척이나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정령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정령들의 내달림을 보면서 니알라토텝도 천천히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럼 저도 정령계의 멸망에 한 손 거들어야겠군요.”
그렇게 말을 하는 니알라토텝의 전신에서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쿵쿵쿵!
“……으음, 이게 대체 무슨 소리…….”
-최진혁! 큰일이다!
“무슨 일이지?”
잠결에 들리는 무언가 두드려 대는 소리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최진혁이 두 눈을 비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몽롱한 기분도 잠시 급박함이 담긴 실피드의 목소리에 최진혁은 신력을 사용해 졸음을 날려 버리고는 멀쩡해진 정신으로 되물었다.
최진혁의 질문의 실피드는 마지막으로 보기 전과는 달리 한껏 죽어버린 얼굴로 답했다.
-……타락한 정령들이 습격해 왔다.
“……그 녀석들이 뭉쳐 다녔었나?”
-아니,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겠군.”
여태까지는 뭉쳐서 다닌 적이 없던 이들이 갑자기 뭉쳐서 이곳을 공격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니알라토텝.”
-……역시 그자인가.
바로 니알라토텝의 존재였다. 그들이 타락한 이유인 그라면 이 모든 것이 아귀가 들어맞았다. 그렇기에 실피드는 침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최진혁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실피드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진혁은 이내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음……. 아빠?
“데크, 일어나라. 적의 공격이다.”
-……알았어. 흐아암.
옷매무새를 정리하느라 생긴 인기척 때문인지 잠이 들어 있던 데크도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최진혁의 말에 데크도 정신을 차리고는 최진혁의 어깨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렇게 데크를 데리고 방에서 빠져나온 최진혁은 바쁘게 돌아가는 바깥 상황을 보고는 혀를 찼다.
“……개판이군.”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어둠이 드리우면서 타락한 정령들의 힘이 더 강해진 탓인지 정령왕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벽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쿵쿵 울려대고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하급부터 최상급 정령까지 모두가 달려들어서 성벽을 사수하고 있었다. 각자의 능력을 흩뿌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최진혁이 바라보고 있을 때, 최진혁의 옆에 누군가 다가와 서며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왔나? 루더슨?”
최진혁의 옆에 선 사내는 다름 아니라 루더슨이었다. 최진혁과 마찬가지로 어깨에는 루미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한 탓인지 루미의 얼굴에도 피곤함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꼭 저들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말 거예요!
-응응! 맞아!
그리고 그런 루미의 말에 친구인 데크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두 어린 정령왕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실피드의 입이 조심스레 열렸다.
-……미안한 말이지만…… 도움이 필요하다. 최진혁 그리고 루더슨.
그도 그럴 것이 니알라토텝이 움직였다면 최진혁과 루더슨조차 목숨을 제대로 보장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그들이 이 부탁을 거절해도 실피드는 그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실피드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고개는 끄덕여졌다.
“저 녀석들이 저렇게 말하는데 우리가 몸을 뺄 수는 없지.”
“그래, 그래서야 저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지 않겠나.”
-……고맙다.
두 사람의 참전이 기정사실이 됨과 동시에 정령왕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성벽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