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32화
정화(1)
이프리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장 먼저 감옥을 향해 달려갔고, 그런 이프리트의 뒤를 최진혁을 비롯한 이들이 뒤따랐다.
-저렇게 해맑게 웃고 있지만 정령계가 이렇게 되고 가장 슬퍼하고 앞장서서 정령계를 되돌려 놓으려고 했던 건 이프리트 본인이야.
“……일단 빨리 가보도록 하지. 지금 감옥에 있는 정령들의 수는 얼마나 되지?”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감옥에 억류되어 있는 정령들의 수를 물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질문에 실피드는 손가락을 접어가면서 수를 헤아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상급 정령의 수는 약 180명가량이고 중급은 3,900명 정도……?
“그럼 하급은 몇 명이지?”
-하급 같은 경우에는 만 단위가 넘어가서 제대로 모르겠군. 가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가보긴 해야 하나 보군. 그럼 가서 마저 얘기하도록 하지.”
그리 말하면서 최진혁은 성큼성큼 걸어 이프리트의 뒤를 빠르게 쫓았고, 그런 최진혁의 어깨 위에는 데크가 걸터앉아 있었다.
그렇게 최진혁이 빠르게 걸어가자 마찬가지로 머리 위에 루미를 얹고 있던 루더슨도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루더슨과 최진혁이 사라진 자리에는 3명의 정령왕과 김혜진과 엘리쟈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나는 경수 오빠를 돌봐야 해서 못 갈 것 같으니까 엘리쟈랑 같이 다녀와.”
“그럴게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곧장 부르세요.”
“응, 고마워 엘리쟈.”
그렇게 말하고는 김혜진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기절해 있는 도경수의 상태를 확인하러 떠났다.
아까부터 말은 안 했지만 김혜진의 생각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엘리쟈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이 피식 웃으면서 나머지 정령왕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갈까요? 100년간의 전쟁을 끝내러?”
지금은 감옥에 국한되어 있는 일이지만 이 일이 잘되고 잘 풀리게 된다면 이 일은 감옥에서 나아가 정령계 전체를 정화시키는 일에 일조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100년간 이어진 니알라토텝과의 전쟁을 끝낼 방법이 생기는 것이었기에 엘리쟈는 밝은 미소와 함께 감옥을 향해 걸어갔고, 그런 엘리쟈의 뒤를 세 명의 정령왕들이 마치 왕을 보필하는 신하처럼 뒤따랐다.
* * *
쾅쾅쾅!
-으아아악! 나를 풀어라! 풀란 말이다! 나는 그분의 종……. 그분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단 말이다!
-……으으으, 난 잘못되지 않았어……. 잘못되지 않았다고!
-크흐흐, 종말…… 종말이 온다……. 그분께서 종말을 가지고 오실 거다! 그때가 되면 너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정령왕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감옥의 창살을 부술 듯이 흔들어대는 타락한 정령들의 모습에 한 발짝 먼저 감옥 안에 들어간 이프리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침울해져 있었다.
탁탁
“뭘 그렇게 침울해하고 있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정말 치료할 수 있는 건 맞지?
“일단 해봐야 알겠지. 데크.”
-응! 아빠.
“할 수 있겠나?”
-음, 아까 치료했던 만큼은 힘들고 저기 있는 애들 정도는 무더기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루미한테도 물어봐야 하긴 하지만!
“그래, 알았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데크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타락한 하급 정령들을 가리켰다. 가장 약한 정령들인 만큼 하급 정령들의 수는 무척이나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하급 정령들 정도라면 하나둘 정도가 아니라 한 번에 대다수를 정화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에 이프리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이프리트의 그런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데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최진혁의 손길이 기분이 좋은지 데크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최진혁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최진혁과 데크가 그러고 있을 때쯤 루더슨이 감옥 내부로 들어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세상 누구보다 순수하던 정령들의 뒤바뀐 모습에 아직 제대로 적응되지 못한 탓이었다.
“……쯧,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는군. 저 모습들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본래라면 이프리트가 들어왔을 때, 인사를 하거나 친근하게 다가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쑥스러워했겠지만 지금의 정령들의 모습은 파멸과 종말만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루더슨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루미가 자신의 요정 날개를 뽀르르 흔들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바로 정화 시작해요! 고통스러운 하는 저 애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네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거라.”
-……고마워요. 아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루미의 모습에 루더슨은 루미와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루더슨의 말에 루미는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루더슨의 허락까지 맡은 루미는 다시 뽀르르 날아 최진혁의 어깨에 앉아 있는 데크의 손을 잡고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감옥의 창살 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루미의 행동에 이프리트가 막으려고 들었지만 최진혁과 루더슨이 그런 이프리트를 막아섰다.
“저 아이들을 믿어라. 아직 어리지만 저 녀석들은 너희와 같은 정령왕이다. 가진바 힘은 적지만 말이다.”
“그래, 정말 위험해 보인다면 그때 손을 써도 늦지 않아. 거기다가 지금 들어간 감옥에는 하급 정령밖에 없지 않나? 충분히 저 아이들의 힘만으로도 가능할 거다.”
-……고맙다.
걱정을 해주는 두 사람의 말에 이프리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 감옥 안의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 감옥 안에서는 정화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할게.
-응!
먼저 아까 전 상급 정령을 치료했던 것처럼 데크가 먼저 앞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정화를 하는 정령에게 딱히 손 같은 것을 대지는 않았다.
다만 데크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들이 뭉클뭉클 빠져나오더니 이내 수십 명이 넘는 타락한 하급 정령들을 집어삼켰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이프리트가 최진혁과 루더슨을 바라봤지만 두 사람은 지켜나 보라는 식으로 이프리트를 진정시켰고,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 이프리트도 심호흡을 하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때쯤, 엘리쟈를 위시한 세 정령왕도 감옥에 들어와 정화 작업을 바라봤다.
“이게 그 정화……?”
“그래, 이제 시작 부분이니 딱 맞춰서 왔군.”
-……이미 한 번 봤지만 봐도 봐도 신기하군. 우리가 어떤 난리를 쳐도 타락한 정령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역시 세대교체를 할 시간인 건가…….
-영원한 삶을 사는 정령왕이 세대교체라니…… 우습군.
-하지만 어쩌겠나? 변해 버린 정령계를 고치기 위해서라면 세대교체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 않나?
-그건 그렇지. 이렇게 죽어버리면 선대 정령신이신 호른 님의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감옥 안으로 들어온 엘리쟈는 처음 보는 정화의 모습에 놀란 얼굴로 최진혁에게 질문을 하면서 구경하기 바빴고, 마찬가지로 정화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세 정령왕들은 자신들끼리 모여서 앞으로의 정령계를 위한 소규모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진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은 관심이 없는지 그저 묵묵하게 데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데크의 몸에서 빠져나온 어둠이 수십 명의 정령들을 감싼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급 정령들을 감쌌던 어둠이 다시 데크의 몸으로 천천히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고, 이내 어둠이 완전히 데크의 몸 안으로 사라지자 어둠이 있던 자리에는 한결 깨끗해진 하급 정령들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조금 창백해진 얼굴로 데크가 웃으면서 외쳤다.
-나는 끝! 이제 루미 차례야!
-……후우, 나도 준비 다 됐어! 흐으으읍!
파아아앗!
창백해졌지만 하급 정령들의 타락한 부분을 흡수한 탓인지 힘 자체는 늘어난 데크와 바톤터치를 하고 이번에는 루미가 앞에 섰다.
그리고 조금 전에 데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루미의 전신에서 밝은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태양 빛처럼 밝은 빛은 이내 데크의 어둠이 하급 정령들을 삼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루미의 빛이 하급 정령들을 집어삼켰다.
조금 전에 본 모습 때문인지 이프리트는 이번엔 딱히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던 빛무리가 차츰 잦아들었고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타락하지 않은 정령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깨끗해진 타락한 정령들이 색색대며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정화가 되어 있는 정령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게 된 이프리트는 평소의 다혈질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소녀처럼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매달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프리트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만족스럽나?”
-……그래, 이거라면…… 저 아이들이라면 망가진 정령계를 구할 수 있겠어.
“그래? 나랑 생각이 같군. 그럼 일단…… 데크!”
-응, 아빠!
“정화는 끝난 건가?”
-음…… 타락이 오래 그리고 심하게 되어 있어서 아예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안정될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만 빼면…… 이제 건강해요. 다시 타락한 정령들에게 공격당하지만 않는다면요.
“그렇다는군.”
-아아……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그런 데크의 말에 이프리트는 이제 아예 완전히 눈물을 흘려가면서 데크를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그렇게 한번 터진 울음은 몇 시간이나 지속되었고, 최진혁을 비롯한 일행들은 정령도 울다가 지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정령왕이나 되는 존재가 말이다. 그렇게 수 시간 동안 주위를 울음바다로 만들던 이프리트는 이내 지쳐 쓰러져 잠들었고, 그런 이프리트를 실피드가 등에 업으면서 최진혁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자세한 건 회의실로 가서 얘기하도록 하지. 이 녀석도 조금 눕혀두고 말이야. 최근…… 은 물론이고 백여 년 동안 힘들어서 그런지 많이 지친 것 같군. 데크와 루미에 관한 건 현재 정령계에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제대로 회의를 할 것 같다.
“……금방 가도록 하지.”
-알았다. 다과와 같은 간단한 준비를 해놓도록 하지. 늦지 않게 와라.
그 말과 함께 실피를 비롯한 네 명의 정령왕들이 감옥에서 사라졌고, 종말과 파멸만을 외치는 타락한 정령들의 사이에서 최진혁과 루더슨 그리고 엘리쟈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럼 일단 우리도 가보도록 하지.”
“그래야겠지. 일단은 우리도 정령왕들에게 빚진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괜찮을 거야. 데크나 루미에게도 비단 나쁜 일은 아닐 거고. 방금 하던 말을 들어보니 정령왕들은 아마 데크와 루미에게 힘들을 넘겨주고 사대정령의 조화에만 힘을 쓸 것 같아. 둘 다 모두 진정한 정령왕이 되는 거지.”
엘리쟈의 말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의 존재와의 거대한 전쟁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까지는 평범한 전력이나 다름없는 데크와 루미가 현 정령왕들의 힘을 이어받는다면 든든한 전력이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천천히 감옥에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