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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31화 (131/149)

리치, 헌터가 되다! 131화

오염된 정령계(4)

츠츠츠…….

-으…… 으으으…….

상급 정령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데크는 이내 자신의 능력인 어둠을 다루기 시작했고 이내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몸에서 검은 무언가가 울컥울컥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데크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몸에서 검은 무언가가 빠져나올 때마다 거멓게 죽어 있던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몸이 점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후우! 일단 나는 끝!

“……나는 끝이라는 그게 무슨 의미지? 데크?”

-으음, 말 그대로인데…… 여기서부터는…….

-제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데크의 힘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몸에는 검은 반점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일은 끝났다면서 타락한 상급 정령의 이마에 올렸던 손을 내린 데크가 뽀르르 날아와 최진혁의 어깨에 안착했다.

그리고 그런 데크에게 최진혁이 데크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되물었고, 그런 최진혁의 물음에 데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였다.

루더슨의 주위를 맴돌던 루미가 이젠 자신의 차례라고 말하면서 루더슨에게서 멀어지더니 이내 타락한 상급 정령의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두 손을 타락한 상급 정령을 향해서 뻗었고, 이내 그런 루미의 두 손에서 환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흐아아아…….

-흐으으읍!

루미의 손에서 빠져나온 광채들은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몸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고, 광채가 흡수되기 무섭게 타락한 상급 정령은 기분 좋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루미에게는 그런 타락한 상급 정령의 모습을 볼 여력 따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타락한 상급 정령에게 자신의 힘을 쏟아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이 빠지고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령인 루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신의 기운을 쏟아부었고, 그런 루미의 모습에 그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루더슨과 루미와 같은 정령왕인 실피드는 안쓰러운 얼굴로 루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거 괜찮은 거 맞나?

“……나도 모른다. 다만 루미가 하는 일이니 무언가 생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지.”

-……지금 저 아이가 하는 일은 자신의 능력을 뽑아내서 정령의 내부에 있는 니알라토텝의 힘을 태워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자신보다 상위의 힘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척이나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앞서서 데크가 많은 양의 힘을 먹어치워 준 덕분에 가능한 일 같군. 아무래도 제거보다는 흡수가 힘이 덜 드니까. 그리고 흡수를 하면서 추가로 힘도 늘어나니 수월할 테고 말이야. 이번에 일이 끝나면 얘기를 좀 나누어봐야겠군.

“……같이 나누도록 하지.”

실피드의 말에 그제야 루더슨도 지금 루미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고 위험한 일인지를 깨달았는지 실피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에 타락한 정령을 되돌리는 일이 끝나면 다시 루미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후우, 끝났어요!

-으으…… 여긴? 실피드…… 님?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명랑한 루미의 목소리와 함께 마찬가지로 힘이 빠진 상급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상급 정령의 목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루더슨과 얘기를 나누던 실피드는 바람처럼 내달려 상급 정령의 앞에 도착해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느냐?

-당연…… 윽, 머리가…….

-괜찮다. 쉬어라.

말을 하던 상급 정령이 두통을 호소하자 실피드는 이해한다면서 얕게 웃으며 자신의 기운을 상급 정령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헉헉대고 있는 루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꼬마 정령왕.

-헤…… 헤헤, 이 정도는 가뿐해요.

-무리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일단은 이걸로 힘이라도 회복하거라.

힘겹게 웃고 있는 루미의 모습에 실피드는 상급 정령에게 불어넣은 것처럼 루미에게도 자신의 힘을 일부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자 핼쑥했던 루미의 안색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미의 안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실피드가 최진혁 등을 돌아보더니 이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가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그건 됐으니 일단 너희들이 있는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래…… 그러도록 하지. 그럼 일단 저번과 마찬가지로 손을 잡아라.

“알았…….”

그리고 실피드의 말에 둥글게 서서 실피드의 손을 잡으려고 했던 최진혁의 귀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수 오빠는 어디 있어!”

“……아!”

“아! 는 무슨 아! 야. 빨리 경수 오빠 데려와!”

“……알았다.”

김혜진의 비명에 가까운 뾰족한 목소리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그제야 버려두고 온 도경수를 기억해 내고는 도경수를 두고 온 장소로 가 도경수를 데려와 김혜진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기절해 있는 도경수의 모습에 도경수를 본 김혜진의 얼굴에 걱정의 빛이 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최진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경수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기만 해봐!”

“……알겠다. 하지만 괜찮을 거다. 도경수는 무사하다. 다만 투신이라는 녀석이 걱정이 될 뿐이다.”

“투신? 그 사람은 경수 오빠가 맨날 들고 다니던 책 속의 주인공? 아니야?”

“……그 투신의 영혼이 지금 도경수에게 붙어 있다.”

“뭐어? 그럼 오빠가 기절해 있는 게 그 사람 때문이라는 거야?”

“음…….”

김혜진의 말에 최진혁은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투신의 영혼에 담긴 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을 한 것도 맞았고, 투신이 마계에서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투신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서 최진혁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일단 가서 얘기해.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곳은 아니니까…….”

“고맙군. 가서 자세히 설명해 주도록 하지.”

김혜진 쪽에서 먼저 포기하는 식으로 말을 하자 최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는 실피드의 손을 잡았다.

마치 시원한 바람을 손으로 잡는 듯한 착각이 들었지만 이내 곧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그렇게 하나둘 손들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모든 손이 이어진 그 순간 어마어마한 광채가 그들을 휘감았다.

그리고 광채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파아앗!

아무도 없는 공간에 빛무리들이 모여들더니 이내 빛무리들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최진혁 일행들과 남은 세 명의 타락한 상급 정령들과 함께 순간 이동을 한 실피드가 멍하니 서 있는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많이 초라해졌지만 어서 와라.

“……대체 백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무리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는 하지만 실피드의 순간 이동으로 정령왕들의 현 거처로 오게 된 최진혁은 입을 쩍 벌리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본래에는 멋들어진 호수가 있던 자리는 메말라서 바닥이 보이고 있었고, 갖가지 모습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던 기암괴석들은 박살이 난 채 흉물스러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파란 불과 붉은 불이 뒤섞여서 아름다운 모습이었던 나무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으며 언제나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은 텁텁한 뜨거운 바람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다니던 정령들의 얼굴에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던 점이다.

최진혁의 그런 말에 실피드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누구나 믿을 수 없고 괴로운 일들이 닥치게 되면, 그리고 그것 백 년이란 시간 동안 지속된다면 제아무리 밝은 이들이라도 웃음을 잃게 되는 법이지. 그리고 그것이 정령들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씁쓸하게 웃던 실피드였지만 자신을 향해 하급 정령들이 날아오자 이내 힘겹게 웃으면서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진바 힘은 마계로 떠났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지만 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박살 나 있었으니 늙어 보이는 모습도 이해가 갔다.

-큼, 그럼 가도록 하지. 다른 정령왕들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이내 그런 감정들을 떨쳐낸 실피드는 저 멀리 허름해 보이는 집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실피드의 뒤를 김혜진과 엘리쟈는 자연스럽게 따라갔고, 최진혁과 루더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물론 기절한 도경수는 루더슨의 등에 고이 업힌 채로 말이다.

그렇게 실피드를 따라서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집과 마찬가지로 허름한 테이블 앞에 실피드를 제외한 세 명의 정령왕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차를 마시던 그들은 이내 실피드를 따라온 김혜진과 엘리쟈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를 마시려 했다.

하지만 김혜진과 엘리쟈의 뒤를 따라서 오는 최진혁과 루더슨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본래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백 년 만이야.

-우리가 가고 용케 잘 살아남았나 보네.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게 되었다.

“너희들도 건강해 보이는군.”

-우리의 세계는 병들어가지만 정작 우리는 건강해지고, 더해서 강력해지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모순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 이프리트의 말에 최진혁은 이프리트가 내민 손을 덥석 붙잡으면서 말했다.

“그것도 이제는 괜찮아질 거다.”

-……정령계의 근간이 되는 하급과 중급 정령들이 니알라토텝의 힘에 의해서 타락하고 나아가서 이제는 상급 정령들마저 타락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괜찮아진다는 말이냐.

“그 타락을 해결할 방법을 찾았으니까 하는 말이다.”

-……뭐? 그게…… 그게 사실이냐?

-그래, 사실이야. 방금 내가 직접 보고 왔다. 작은 꼬마 정령왕 둘이서 우리가 백 년 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더군.

-하…… 그렇게 쉽게 해내다니…… 지난 백 년간 우린 무얼 한 건지…….

실피드의 말을 듣고 자조 어린 미소를 짓는 이프리트의 모습에 최진혁은 수고했다며 이프리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답했다.

“수고 많았다. 너희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 노력이 있기에 지금 너희들과 내가 다시 정령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게 아니겠나?”

-……그래, 위로해 줘서 고맙다. 인간에게 이런 위로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야…….

최진혁의 위로에 이프리트는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닦아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바로 정령들을 되돌릴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거다. 녀석들만 괜찮다면 말이야.”

그 말에 집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최진혁과 루더슨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두 정령왕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시선에 두 꼬마 정령왕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두 정령왕의 힘찬 대답에 이프리트가 가장 먼저 집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말했다.

-그럼 바로 감옥으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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