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130화 (130/149)

리치, 헌터가 되다! 130화

오염된 정령계(3)

“아저씨!”

“진혁…… 씨……!”

-오랜만이군. 최진혁.

“……그래, 오랜만이군. 김혜진, 엘리쟈 그리고 실피드.”

불의 정령이 데리고 온 이들은 김혜진과 엘리쟈 그리고 실피드였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는 달리 꽤 달라진 모습이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청년과도 모습이었던 실피드는 중년인이 되어 있었다. 엘리쟈나 김혜진은 겉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의 내재된 힘은 완숙함의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지금의 최진혁과 비교를 해보아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두 사람의 힘에 최진혁은 반가운 것도 잠시 무척이나 놀랐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김혜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요? 많이 달라졌나?”

“……무척이나 달라졌군.”

“헤헤, 백 년이나 지났는데 이 정도도 안 바뀌면 안 되지.”

“……백 년이라고?”

김혜진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백 년이라는 믿을 수 없는 시간에 최진혁은 얼이 빠진 얼굴로 김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사실인가?”

“……에? 몰랐어? 난 당연히 아는 줄…… 잠깐만! 그러면 그때 마계에서 우리랑 헤어지고 아저씨는 얼마나 지난 거야?”

“하루도 안 지났다.”

“……헐.”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김혜진은 자신들이 정령계로 강제로 소환된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를 물었고, 마계에서는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니까 따지려고 하지 마라. 그런데 대체 여긴 어떻게 된 거냐?”

“아……. 그건 니알라토텝이라는 녀석 때문에…….”

“니알라토텝?”

김혜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니알라토텝이라는 말에 최진혁은 물론이고 루더슨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사람의 그런 반응에 김혜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니알라토텝을 알아?”

“……알다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낸 것도 니알라토텝이다.”

“에엑?”

“그리고 마신을 죽인 것도 니알라토텝이지.”

“에에엑?!”

그리고 자신의 질문에 믿을 수 없는 대답들이 튀어나오자 김혜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딱딱하게 굳은 두 사람의 얼굴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두 사람의 말에 거짓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혜진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대체 그 녀석은 뭐 하는 녀석이야……?”

“심연의 존재. 그중에서도 아자토스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녀석이라는군.”

-그러니 우리가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가……. 그런데 최진혁.

“뭐지?”

-왜 너에게서 루프르스 님의 힘이 느껴지는 거지?

“……?!”

루프르스의 기운이 최진혁에게서 느껴진다는 말에 최진혁과 루더슨과 대화를 나누던 김혜진은 물론이고 가만히 서서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엘리쟈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어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에 최진혁은 고개를 푹 숙이면서 말했다.

“그는…… 루프르스는…… 죽었다.”

-……?!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초월자가 죽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

최진혁의 그런 말에 실피드는 그럴 리가 없다며 최대한 부정했지만 이어진 최진혁의 설명에 결국 최진혁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본래라면 초월자는 죽으려고 한들 죽을 수 없겠지. 하지만 그 자신이 죽음을 택하고 그가 택한 이가 직접 그를 죽인다면 그를 죽일 수 있다.”

-……그 말은 네가 그분을 죽였다는 말인가……?

“……그래, 내가 이 손으로 그가 만든 단검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그리고 심장 부근에 단검이 꽂힌 루프르스는 꽃잎으로 변해 사라졌고, 그의 힘이 담긴 꽃잎들이 내게 흡수되면서 나는 루프르스의 힘을 흡수하고 초월자를 향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이 힘만 완벽하게 흡수하고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또 다른 초월자의 탄생이 되겠지.”

-하…… 하하하……. 그분께서 그리 허무하게 가실 줄이야…….

“그러고 보니 루프르스가 사라지기 직전 호른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는데 그게 누구인지 아나?”

-…….

이어진 최진혁의 말에 허탈하게 웃던 실피드가 입을 꾹 닫고 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한숨을 내뱉으면서 답해주었다.

-하아……. 호른, 그리운 이름이구나. 그 이름은 바로 전대 정령신님의 이름이다. 루프르스께서는 그분을 특히나 아끼셨지. 그런 만큼 그분도 루프르스님을 무척이나 잘 따랐고 말이다. 물론 두 분의 관계는 심연의 존재와의 전쟁 이후로 깨어지게 되었지만.

“……심연의 존재와의 전쟁으로 정령신이 죽게 되면서 말이냐?”

-그래, 호른…… 그러니까 정령신께서는 루프르스 님이 심연의 존재 중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입기 직전에 대신해서 그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신들보다 강력한 그들의 힘을 정통으로 받아냈으니 제아무리 정령신님이라고 한들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지. 긴 시간 동안 그분의 이름을 잊으셨을 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계셨군.

그렇게 말하면서 실피드는 백 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탁해진 하늘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도 마주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사라진 루프르스에 대한 생각을 털어내었다.

‘언제나 나에게 도움만 주다가 가는군. 루프르스.’

그렇게 루프르스의 대한 생각을 털어내면서 최진혁은 자신이 지구에 도착하고 난 뒤, 처음 루프르스를 만났던 기억과 자신이 위험할 때마다 히어로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거나 자신이 경지를 올릴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루프르스의 모습을 기억해 내고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털어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잘 가라…… 루프르스. 네가 없는 세상은 네가 내게 건네준 힘으로 지켜 보이겠다.’

꾸드득…….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두 손을 꾸욱 말아 쥐었다.

* * *

“그런데 저들은 왜 저렇게 된 거지?”

잠시 루프르스의 추모를 한 뒤, 최진혁이 손가락을 들어서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있는 네 명의 상급 정령들을 가리키자 루프르스와 호른에 대한 생각으로 착잡한 얼굴을 하던 실피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타락한 정령들을 포획했다는 말도 있었지. 저들은 니알라토텝의 힘에 감염된 거다.

“감염?”

-그래, 니알라토텝의 힘에 감염이 된 정령들은 나를 비롯한 나머지 정령왕들을 자신들의 상관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니알라토텝, 나아가서 아자토스를 우리처럼 취급하게 된다.

“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말한 건가?”

‘그분’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상급 정령들의 모습을 기억해 낸 최진혁은 실피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말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실피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감염이 된 정령들의 공격에 당하게 되면 다른 정령들도 타락하게 되어버린다. 물론 나나 다른 정령왕들 그리고 최상급 정령들 정도면 별 피해가 없지만 대다수는 상급 이하의 정령들은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나? 정령왕들이라면 방법이 있을 줄 알았건만…….”

-지금으로서는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우리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타락한 정령들을 모아두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왜지?”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는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변을 봐라. 네가 알던 정령계는 더 이상 없다. 타락한 정령들은 비단 정령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정령계 그 자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어. 나를 비롯한 네 정령왕이 있는 곳에는 침식이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그 말은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곳도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런 한정되어 있는 곳에 타락한 정령들만 가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너희들과 살아남은 정령들이 타락한 정령들을 수용하느라 사라진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 탓에 상급 정령들을 대부분 수용하고 남는 자리에는 중급 정령들을 가두어두고 있다. 그러다가 상급 정령들이 추가로 잡혀 오면 중급 정령들은 풀어주고 상급 정령들을 채워 넣고 있다. 후우, 타락한 정령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방법만 있다면 이런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테지만…… 진전이 없군.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타락한 이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그렇게 어렵냐는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당연한 걸 묻는군. 그들은 바뀐 것은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가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그 외부의 힘은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힘인 탓에 더더욱 건드릴 방법이 없다.

“과연 니알라토텝인가…….”

니알라토텝의 힘에 최진혁을 비롯한 이들이 침음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우리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아빠, 우리가 할 수 있어!

바로 빛의 정령왕 루미와 어둠과 죽음의 정령왕 데크였다.

두 어린 정령왕들의 말에 실피드가 깜짝 놀라면서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더니 그 말이 사실이냐며 물었고,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루미와 데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대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내가 빨아들이고!

-제가 불어넣을 거예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실피드에게 데크와 루미가 당차게 말했다.

데크가 빨아들이고 루미가 불어넣는다는 말에 실피드가 의아해하자 데크는 답답해하면서 최진혁에게 날아가더니 말했다.

-아빠.

“응? 뭐냐. 데크.”

-저기 감옥 없애도 돼요? 시범을 보여줘야 믿을 것 같은데…….

“그래, 한번 해봐라. 어차피 도망칠 방법은 없을 테니까.”

정령왕 한 명과 반 정령신 두 명 그리고 반 초월자 한 명과 신 한 명이 존재하는 곳에서 고작해야 상급 정령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는 탓에 최진혁은 데크의 말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고는 손을 한 번 까닥이자 불의 상급 정령이 갇혀 있던 감옥이 스르륵 녹아 없어졌고, 감옥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의 상급 정령이 땅바닥에 철푸덕 엎드린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죽음이 기운이 강력한 감옥에 오랫동안 갇혀 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런 불의 상급 정령에게 뽀르르 날아간 데크가 불의 상급 정령의 머리를 손에 얹고는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고, 그런 데크의 모습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던 최진혁 일행들은 이내 데크가 벌인 일을 보고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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