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29화
오염된 정령계(2)
콰앙!
타락한 상급 정령의 수는 정확하게 넷이었다. 그것도 사대 속성 정령들이 각자 한 명씩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먼저 최진혁과 부딪친 정령의 속성은 땅이었다.
쿠드드득!
“……쯧, 역시 밀리진 않는군.”
-적……? 죽인다…….
푸슉! 푸슉!
땅 속성 정령답게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던 정령은 거대한 덩치답게 최진혁과 부딪치고도 꽤나 멀쩡한 모습을 자랑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땅의 상급 정령이 발을 한 번 구르기 무섭게 최진혁이 딛고 서 있던 바닥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창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런 창조차도 타락한 정령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거멓게 죽어 있는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물론 주변 환경이 변한 탓에 그런 걸 수도 있었지만 최진혁의 감은 정령의 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최진혁은 손을 휘저어서 자신의 전신을 노리는 흙의 창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콰챵! 콰챵!
한 번 손이 허공을 수놓을 때마다 수십 개의 실드가 나타났고, 그런 실드들은 이내 실드를 두드리는 흙의 창에 의해서 유리처럼 깨져 나갔다.
하지만 자신의 실드들이 유리처럼 깨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의 표정은 변함없이 무뚝뚝했다.
최진혁은 막아내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반격까지 해냈다.
“본 스피어.”
-……그거…… 안 먹혀…….
“과연 그럴까?”
-……?!
최진혁의 손에 쥐어진 본 스피어를 보면서 히죽 웃는 땅의 상급 정령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답했고, 그런 최진혁의 말에 땅의 상급 정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최진혁은 그런 땅의 상급 정령의 얼굴을 향해 본 스피어를 던졌다. 자신에게 피해가 없을 거라고 확신을 하던 땅의 상급 정령은 본 스피어를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을 위해 전진을 해왔다.
하지만 그가 무시한 본 스피어는 평범한 본 스피어가 아니라는 점이 그에게는 안타까운 점이었다.
-으…… 으어…… 으아아악!
“수고했다. 데크.”
-이 정도는 껌이지!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워 오는 거냐.”
다름 아니라 최진혁이 쏘아낸 본 스피어에는 데크의 죽음의 힘이 담겨 있었다. 물론 죽이지 않겠다는 말 때문에 매우 극소량을 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상급 정령에 불과한 땅의 정령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기엔 충분했다.
-그분을…… 그분을 위해서어어…….
그리고 데크의 죽음의 기운이 담긴 본 스피어를 정통으로 맞은 땅의 정령은 바닥에 허물어졌다.
그걸 바라보던 최진혁은 손을 휘저어 신력이 담긴 뼈 감옥에 그런 땅의 정령을 가두었다.
그러고는 저 멀리서 불의 상급 정령과 싸우고 있는 루더슨을 향해 달려갔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
“……부탁하지. 내 능력으로 제압을 하기는 버겁군.”
루더슨의 능력의 원천은 검술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령은 물리적인 공격의 대부분을 흘려낸다. 마법적인 능력도 흘려내는 판국이니 물리적인 능력쯤은 정령에게 별다른 소용이 없다.
물론 그것도 일정 수준 이상이면 말이 달라지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루더슨 정도의 힘과 검술을 가진 이라면 실체가 없는 것들도 베어낼 수 있기에 정령들도 죽일 수 있다.
다만 지금 최진혁과 루더슨은 정령들을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제압을 하러 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루더슨의 힘은 제압에 중점이 둔 것이 아니라 멸하는 것에 중점을 둔 힘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아직 힘을 제대로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더더욱 제압은 힘들었다.
본래 최저나 최대 출력을 내는 것은 쉽지만 그 중간의 힘을 내는 것은 두 가지의 일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더슨은 불의 상급 정령을 어찌하지 못하고 방어 일변도로만 상대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최진혁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최진혁의 입에서 나온 도움이라는 말에 인상을 쓰기는 했으나 지금의 루더슨으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었으니 결국 루더슨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루더슨의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진혁의 주위를 본 스피어들이 수놓았다. 거기에 더해서 최진혁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데크의 손가락이 튕기자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본 스피어들이 시꺼멓게 변했다.
죽음이 덧씌워진 본 스피어들을 바라보던 최진혁은 이내 고개를 돌려 멍한 얼굴로 자신의 바라보고 있는 불의 상급 정령을 보면서 말했다.
“죽이지는 않으마. 네 녀석의 왕과 안면이 있어서 말이야.”
-으…… 으아아아!
그런 최진혁의 말에 불의 상급 정령이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최진혁의 손바닥 안이었다. 결국 도망칠 방위가 모조리 막힌 불의 상급 정령의 팔다리에 본 스피어가 꽂혔고, 그런 불의 상급 정령의 주위에 죽음의 기운이 담긴 본 스피어들이 둥글게 박혔다.
-크워어어어!
그리고 그런 본 스피어가 박힌 자리에선 본 스피어에 스며든 죽음의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불의 상급 정령의 전신을 옭아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전신을 파고드는 죽음의 기운에 불의 상급 정령은 옴짝달싹 못 한 채로 죽음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걸로 둘인가?”
“땅과 불, 둘이로군. 그럼 남은 건…….”
“바람과 물. 어느 쪽을 맡을 생각이냐?”
“바람 쪽을 내가 붙들고 있을 테니 네가 빠르게 물 쪽을 정리하고 바람 쪽으로 와라.”
“흠……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힘으론 제압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제압이 가능한 최진혁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것도 잠시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두 명의 상급 정령, 물의 상급 정령과 바람의 상급 정령을 보면서 두 사람은 찢어져서 각자 맡은 정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이게 신인가?
타락한 정령들을 피해서 몸을 숨기고 있던 정령 하나가 최진혁과 루더슨의 전투를 보면서 감탄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둘의 싸움은 무척이나 일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흐으아압!”
쾅!
-……으으, 도망…… 도망가야…….
“어딜 가는가!”
루더슨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힘만을 소모하던 바람의 상급 정령이 도주를 택했지만 그마저도 루더슨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결국 도망칠 수 없게 되자 바람의 상급 정령이 택한 것은 당연하게도 목숨을 건 전투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목숨을 불사르려던 바람의 상급 정령의 앞에 무언가 날아와 꽂혔다.
-……이건 뭐……?
푸확!
그리고 바람의 상급 정령의 앞에 꽂힌 무언가에서 죽음이 퍼져 나왔다. 갑작스레 퍼져 나온 죽음에 깜짝 놀란 바람의 상급 정령이 또다시 도망을 가려고 했으나…….
파바박!
-으…… 으아아악!
그런 바람의 상급 정령의 도주 경로에 꽂히는 본 스피어들에 의해서 바람의 상급 정령의 도주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사라진 도주 방법에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바람의 상급 정령은 저 멀리서 죽음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감옥에 갇힌 자신의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땅, 물, 불. 자신을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잡혀 있는 것을 확인한 바람의 상급 정령은 자신의 부하들인 하급과 중급 정령들을 부르려고 했다.
-나를…… 나를 지켜라! 나를 지키란 말이다!
“아쉽지만…… 네 부하들은 내 부하들이 막고 있어서 오기는 좀 힘들 거다.”
그리고 그런 바람의 상급 정령의 앞에 최진혁이 사뿐 내려앉았다. 아무런 보호도 없이 무방비하게 자신의 앞에 내려앉은 그의 모습에 바람의 상급 정령이 격분하면서 달려들었지만…….
덥석!
-놔! 놓으란 말이다!
-더러운 손이 주군에게 닿게 할 수는 없다.
땅을 뚫고 나타난 둠 나이트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런 바람의 상급 정령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렇게 바람의 상급 정령은 둠 나이트들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거세게 몸을 뒤흔들었지만 그런 바람의 상급 정령을 잡고 있는 둠 나이트의 손은 마치 태산처럼 굳건하게 그의 팔목을 우악스럽게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네가 마지막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도록.”
-그분이…… 그분이 모든 것을 소멸시키리라……!
“……들어가라.”
푸화아악!
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는 바람의 상급 정령의 모습에 최진혁은 인상을 한번 쓰고는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다른 상급 정령들을 가둘 때와 마찬가지로 뼈로 이루어진 감옥이 1차적으로 그를 가두었고, 그 위를 죽음의 기운이 뒤덮었다.
완벽하게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을 만들어낸 최진혁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언데드들이 제압시켜 놓은 타락한 하급과 중급 정령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거기, 너.”
-……저 말하시는 겁니까?
“그래. 불의 중급 정령, 너를 말하는 거다.”
타락하지 않은 불의 중급 정령이 최진혁의 부름에 두려움이 깃든 얼굴로 날아왔다.
-……저는 왜 부르신 겁니까?
“너는 실피드를 비롯한 정령왕들과 엘리쟈 그리고 김혜진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겠지?”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동료가 바로 나다. 당장 그들에게 안내하도록.”
자신을 적 취급하는 불의 정령의 모습에 최진혁은 인상을 쓰면서 신력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신력에 불의 정령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 정령은 입을 꾹 다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 그의 모습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기운을 거두고 말했다.
“……쯧, 괜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군. 그러면 네가 가서 그들에게 전해라. 최진혁이 왔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최진혁의 말에 불의 정령이 제압된 타락한 정령들을 가리키자 최진혁이 답해주었다.
“그 녀석들이 올 때 동안은 내가 보관하고 있도록 하지. 죽이지는 않을 테니 빨리 가서 그들을 불러오기나 해라.”
-……조금만 기다리시죠.
그 말과 함께 불의 정령은 어디론가로 사라졌고, 그런 불의 정령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루더슨에게 말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기에 정령들이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잘 모르겠군. 그래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쯧, 수십 년이 지난 것은 아니겠지?”
“모르지. 지금 상황만 보면 수백 년이 지났어도 이상하지 않다.”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짜증이 났지만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계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건강이 느껴지던 정령계였지만 지금은 마계와 별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뀐 정령계에 대해서 루더슨과 최진혁이 얼마나 얘기를 나누었을까? 사라진 불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군.”
익숙한 얼굴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