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28화
오염된 정령계(1)
파아아앗!
“이런 젠장맞을!”
“……후우, 진정해라 최진혁. 어차피 지난 일이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가 그와 싸움을 벌였다고 한들 우리가 졌을 거다.”
“……그래, 그 녀석 나와 싸웠을 때보다 더 강해졌더군. 하긴 그만큼의 시간 동안 그 녀석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을 테니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메마른 모래를 발로 걷어차면서 최진혁이 씹어뱉듯이 말하자 그런 최진혁을 루더슨이 말렸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투신이 조용히 자신만 들리게 말했다.
하지만 모기만 한 소리조차 들을 수 있는 두 사람에게 그것이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투신의 말에 최진혁은 짜증 내던 것도 잊고 투신에게 달라붙어서 그에 대해서 물었다.
“그 녀석이랑 싸워봤다고?”
“그래, 내 몸이 아직은 온전했을 때의 이야기이니 수천 년은 족히 지났을 테지만 그래도 들어볼 텐가?”
“물론이다. 빨리 그에 대해서 털어놔 봐라.”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지. 그의 이름은 너희들도 알다시피 니알라토텝이다. 영원한 잠을 자고 있는 아자토스의 충신이지.”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으니 본론부터 말해봐라. 그는 얼마나 강하지? 또 무슨 능력을 사용하는지 알고 있나?”
방금 니알라토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뱉어내는 투신의 모습에 최진혁은 한바탕 짜증을 내면서 말했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투신은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정확한 것은 모르나 니알라토텝은 무형의 기운을 다룬다.”
“……루프르스처럼 말인가?”
“내가 그분의 힘을 겪어본 것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거다. 다만 급의 차이는 있겠지. 그분은 니알라토텝의 주인인 아자토스의 대적자였으니까 말이야. 루프르스 님과 아자토스가 가진 힘의 크기 자체는 비슷했을 거다. 물론 최근에는 아자토스 쪽이 우세였겠지만.”
“후우, 그러면 대충 힘이 떨어진 루프르스보다 좀 더 약한 수준이라는 건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군. 그는 그래 보여도 2인자니까 말이야.”
“더 자세한 정보는 없나? 약점이라든가…….”
“그 녀석에게 패해서 영혼만 간신히 부지해 이렇게 있는 걸 보고도 그런 질문이 나오나?”
“……미안하군.”
무참하게 패배를 한 사람에게 약점을 물은 건 상처를 후벼 파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최진혁은 투신에게 미안함을 담아 사과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투신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 그 정도는 어차피 이젠 신경 안 쓰니 괘념치 마라. 그것보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
“……? 무슨 시간을 말하는 거지?”
갑자기 투신의 입에서 나온 시간이라는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투신이 빙그레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이 몸을 쓸 수 있는 시간.”
털썩!
그 말을 끝으로 투신, 아니, 도경수의 몸이 허물어졌고 루더슨이 그런 도경수의 몸을 받아내고는 혀를 차며 말했다.
“몸이 불덩이 같기도, 얼음장처럼 차갑기도 하군. 쯧, 대체 어떻게 된 몸인지 이해가 안 가는군.”
“몸이 담아낼 수 있는 격 이상의 존재가 장시간 몸에 머물렀으니 그 정도는 우리가 이해해 줘야겠지.”
“쯧, 빚진 게 있으니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하면서 루더슨은 기절한 도경수를 들쳐 메었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를 바라보던 최진혁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흐음, 여기는 사막인가? 쯧, 공기도 그렇고 푸석푸석하군. 대체 우리를 어디로 보낸 거지? 니알라토텝은? 여엉 감도 안 잡히는군.”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을 하던 최진혁을 바라보던 루더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최진혁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니알라토텝은 우리가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려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나?”
“설마…… 여기가……?”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말을 들은 최진혁이 흠칫하면서 주위를 다시 훑어보았고, 그제야 사막 같은 주위에서 눈에 익은 모습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삭막한 주위의 풍경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이곳이 정령계라고?”
그렇게 한참이나 주위를 둘러보면서 사막같이 삭막한 풍경을 샅샅이 뒤지던 최진혁은 그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바로 자신들이 떠나왔던 정령계라는 것을 말이다.
콰광! 콰앙! 쾅쾅쾅!
“이건?”
“전투 소리다. 저쪽이로군. 먼저 가겠다.”
타다닥!
멀리서 들려온 폭음과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에 기감이 최진혁보다 발달이 된 루더슨이 도경수를 들쳐 메고도 빠른 속도로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뒷모습을 보면서 상념에 빠져 있던 최진혁도 이내 루더슨의 뒤를 쫓아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자리를 비운 잠깐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무사한 거냐…… 김혜진 그리고 엘리쟈.’
* * *
콰앙!
-크윽, 정신을 차려라! 네 적이 누군지를 제대로 파악하란 말이다.
-으으으……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그래! 너는 자랑스러운 실피드 님의 상급 정령이다.
-아니야…… 내 주인은 오직 그분뿐…… 내 주인의 이름은 아자토스…… 실피드가 아니야아아아!
쿠오오오오!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한 정령의 팔이 풀어지면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냈고, 그 폭풍은 거침없이 날아가 그를 설득하던 정령들에게 적중했다.
-크아아악!
-……머리가…… 머리가아아악!
그리고 검은빛 폭풍에 적중당한 정령들은 하나같이 방금의 정령과 같이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폭풍을 피한 정령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 오지 마!
-으으으, 모두 도망쳐! 정령왕께서 계신 곳으로 도망가!
방금까지 동료였던 수십 명의 정령들이 이제는 순식간에 적으로 돌변해 버린 상황에 정령들은 혼비백산하면서 흩어졌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두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정령이 정령을 공격하다니 대체 정령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두 쌍의 눈동자의 주인은 다름 아니라 최진혁과 루더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벌어진 상황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본래 정령은 왕이 있는 종족이고, 그런 왕의 밑에 있는 모든 정령들은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 같은 속성의 정령은 물론이고 타 속성의 정령까지 모두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정령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말문이 턱 막혔다.
물론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켜보았을까?
그들을 바라보던 루더슨이 바닥에 기절한 도경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서 최진혁에게 말했고, 루더슨의 말을 들은 최진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도록 하지.”
“후우, 그래.”
“루미.”
-네! 아빠!
“정령들이 어딘가 이상해진 것 같으니 치료할 수 있겠느냐?”
-으음…… 잘은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들었나? 죽이지 말고 최대한 생포해라.”
“흐음…… 잘되려나 모르겠군.”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정말로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리고 튕기기 무섭게 정령계의 바닥을 뚫고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언데드들의 모습에 최진혁은 인상을 썼다.
“……안 될 줄 알았는데 소환이 되는군. 내가 강해진 건지 아니면 그만큼 정령계가 약해진 것인지…….”
“쯧,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군.”
루더슨의 말대로였다. 정령계가 약해지지 않았다면 정령들이 저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만 언데드들을 소환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반대로 정령계가 약해졌기에 이상하게 변해 버린 정령들을 막기 위해서 이렇게 언데드를 소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독한 모순에 최진혁과 루더슨 두 사람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들의 눈에 들어온 정령들을 보면서 말했다.
“내가 왼쪽을 맡지.”
“그럼 내가 자동으로 오른쪽인가…… 좋군.”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정령들을 향해 내달렸다.
-……적? 적이다! 그분의 적!
-말살! 말살이다!
평범한 정령들은 살생을 싫어한다. 그런 정령의 입에서 말살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최진혁과 루더슨의 얼굴이 자동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해 버린 정령들이 두 사람을 향해 쇄도해 왔다.
시작은 초중등생 정도의 크기를 가진 중급 정령들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을 향해 공격을 해오는 정령들이 중급 정령이라고 마냥 얕볼 수 없었다.
일단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정령들의 수도 수였지만 타락한 정령들의 힘은 도저히 그 정도 급의 정령이라고는 볼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두 사람은 정령들을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제압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당황하기는커녕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루더슨은 어이없는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 웃음이 나오나?”
“재밌는 상황 아닌가? 원래 일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재미있는 법이지.”
“……다른 이들이 걱정은 안 되나?”
“걱정이야 당연히 되지만……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혹시 질 걱정을 하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이 루더슨이 정령왕도 아니고 강해졌다고는 하나 고작 중급 정령에게 그런 걱정을 할 것 같나?!”
“그럼 누가 얼마나 제압하는지 내기라도 할까?”
“하! 그거 좋군. 내기에는 대가가 걸려야…….”
“좋아, 내가 진다면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도록 하지.”
“나도 그렇게 해주지.”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중급 정령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중급 정령들의 뒤에 있는 상급 정령들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급 정령이 상급 정령에게 비견될 정도의 강함을 가진 것으로 보아 상급 정령들의 힘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잠시 실피드와 김혜진 그리고 엘리쟈에 대한 걱정들을 내려놓았다.
‘전투에서 딴생각은 사치지.’
그런 최진혁의 생각을 읽었는지 가만히 있던 상급 정령들도 밀리기 시작하는 중급 정령들을 보면서 싸움에 참전했고, 마찬가지로 최진혁의 언데드들도 전투에 참여하면서 소수 대 소수의 싸움은 다수 대 다수의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