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27화
희생 그리고 초월(3)
콰가가가각!
-군주님의 적을 지워내라!
-우오오오! 내 검이 네 녀석의 몸뚱이를 가를 것이다!
수백 기, 아니, 이제는 천 기 가까이 되는 둠 나이트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류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방어에 전념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된다! 기껏해야 천 년도 살지 못한 녀석에게 이 내가…… 마신 류드가!”
처음 둠 나이트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만 해도 류드는 놀랐을지언정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개미가 수백, 수천 마리가 몰려든다고 해도 사자를 물어 죽일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절했던 데크가 깨어나면서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치이익…….
“크으으…… 이놈!”
콰직!
자신의 옆구리를 베어낸 둠 나이트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깨부쉈지만 마치 산이라도 들이부은 것처럼 녹아내리는 모습에 류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둠 나이트의 검에 녹아들어 있는 어둠과 죽음 때문이었다. 둠 나이트에게 녹아든 어둠은 둠 나이트가 류드의 눈에 잘 띄지 않게 해주었고, 죽음은 개미들에게 훌륭한 창칼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창칼을 쥐고 잘 정렬된 군대가 된 개미들은 사자를 물어 죽일 힘을 지니게 되었다.
촤악! 치이익! 촤악! 치이익!
그리고 개미들의 거듭된 공격에 사자의 전신에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하지만 상처 입은 맹수가 위험하다는 말처럼 상처가 늘어남과 함께 류드의 기운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물론 그에 비례해서 개미들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루프르스의 선물에 익숙해진 최진혁이 개미들의 수를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큭…… 크악…… 크아아악!”
키이이잉!
죽여도 죽여도 줄지 않는 둠 나이트들의 모습에 류드는 광폭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런 류드의 기분을 대변하듯이 류드의 전신에서 마기의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도 조금 전에 손에 모였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가진 광선들이 주위를 휩쓸었다.
츠츠츠츠!
“이런…… 망할 정령 녀석이……!”
하지만 그런 광선들은 둠 나이트들의 앞에 생긴 어둠의 벽에 의해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광선이 자신의 방어에 막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는 이가 있었다.
-흐헤헤! 꼴좋다! 아빠 어때?
“잘했다. 그대로만 하면 사자 사냥도 순조로울 것 같군.”
-히히히! 알겠어!
드드득! 츠츠츠!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의 주위에서는 또다시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를 이어서 데크가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들에게 어둠과 죽음의 속성을 걸어주었다.
그렇게 데크의 버프까지 끝마치자 둠 나이트들은 빈 공간에 자연스럽게 합류했고, 폭풍처럼 류드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아아, 죽어라! 죽어!”
그런 언데드들의 참전에도 불구하고 류드는 분전에 분전을 거듭했지만 좀처럼 둠 나이트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류드와 최진혁의 싸움에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 왔다.
“……최진혁, 아직 안 끝났나?”
“호오? 빨리 왔군. 도경수는?”
“이 몸의 주인이라면 아직 자고 있다.”
“……넌 누구지?”
“나? 투신.”
“……투신?”
“그래, 이 녀석이 맨날 들락날락하던 책의 주인공이다.”
“아…… 그래, 네 녀석 덕분에 룬 샤드를 잡을 수 있었나 보군.”
“……싸가지 없는 놈일세. 내 나이가 몇 갠데 반말을 하고 난리야!”
그렇게 말하면서 탄탄한 근육에 덮여 있는 가슴팍을 두드리는 투신과 루더슨의 등장에 최진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저 멀리서 언데드들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류드를 보면서 말했다.
“한 손 거들겠나?”
“호오? 저 녀석은 방금 녀석보다 더 강해 보이는군. 좋아! 내가 거들어주지. 흐하하하! 나 먼저 가겠다!”
타다닥!
그 말과 함께 도경수의 몸을 빌린 투신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애와 같은 표정으로 류드를 향해 달려갔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혀를 찼다.
“도경수의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뭔가 이상하군. 전신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야.”
“……사실 나도 그렇다. 무언가 평소의 모습과 정반대니…….”
“흠, 닮은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몇 년을 같이 생활했던 셈이니 닮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
“그렇겠군. 그래서 너는 안 갈 셈인가? 보아하니 딱히 한 것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으득, 안 그래도 이제 가려고 했다.”
최진혁의 비아냥거림에 루더슨은 이를 갈면서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어느새 저만치 사라진 투신의 뒤를 쫓아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뒷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걸로 마계도 정리가 되겠군…….”
* * *
“내가……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으냐! 이 내가! 마계의 신이자 모든 마족들의 우러름을 받는 마신 류드가 너 따위 녀석들에게 죽을 것 같냐는 말이다!”
“……그럼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만 말해보시지. 그렇다면 보내주겠다.”
“……크으.”
투신의 발아래에 깔려서 변신도 풀린 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류드는 이를 북북 갈았지만 최진혁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개의 둥근 원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원은 도경수의 몸을 빌린 투신과 루더슨 그리고 최진혁, 두 번째 원은 최진혁의 둠 나이트들이었다.
“사…… 살려줘라. 내…… 내 신격을 걸고 맹세하겠다. 그…… 그래! 심연의 존재들과 싸울 때도 내가 한 손 거들겠다! 나 정도 되는 상위의 신이 네 편에 서면 분명히 네게 도움이 될 거다. 최진혁! 아니, 최진혁 님!”
자신이 살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류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고민하더니 이내 자신을 살려달라며 최진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도망갈 구석이 없는 궁지에 몰린 류드가 어떻게 난동을 피울지 몰랐기에 경계를 하던 최진혁 일행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경계를 풀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거냐? 살릴 건가? 아니면 그냥 죽일 건가?”
“신격을 걸었다. 그러면 충분히 전방에서 고기 방패로만 사용해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내 생각도 그렇다. 이미 한번 싸워본 전적이 있기에 그 녀석들의 무서움은 잘 알고 있다. 저 정도 되는 인력, 아니, 신력은 분명 도움이 될 거다.”
바로 류드의 처우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우리는 점점 류드를 살리는 쪽으로 의견이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류드를 살림으로써 얻는 이득이 죽임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더욱 커다랬기 때문이다.
물론 본래 최종 보스나 다름없는 류드를 죽이지 않으면 조금 찝찝함은 생기겠지만 심연의 존재와의 전쟁은 그런 찝찝한 이의 손까지 빌려야 할 정도로 처절한 싸움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논쟁도 잠시 세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기감에 잡히는 찝찝한 기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찌이익!
“이런, 여러분들 모두 계셨군요. 인사드리죠. 제 이름은 니알라토텝. 그 이름도 존귀하신 아자토스 님을 모시는 시종입니다.”
“……심연의 존재.”
“오호, 투신도 있었군요. 오랜만입니다.”
“이 자식!”
“멈춰. 혼자서 그렇게 미친 듯이 들이박는 것은 도경수를 죽이는 일이다. 그 몸은 네 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라.”
“크으으…….”
투신을 향해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해오는 니알라토텝의 모습에 투신이 격분하면서 니알라토텝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를 막아선 최진혁의 손에 의해서 제지당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퍽이나 재밌는지 니알라토텝은 키득거리면서 우리를 향해 말했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밑에 깔려 계신 그분은 제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겠는데 말이야. 너희들을 족치는 데에 앞세울 예정이라서 말이야.”
“아쉽게 됐네요. 저분은 먼저 선약이 있어서요.”
까닥!
그 말과 함께 투신의 발밑에 깔려 있던 류드는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에 의해서 두둥실 떠올랐고, 이내 니알라토텝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투신이 아니었기에 곧장 손을 뻗었지만…….
휘익!
“……이게 무슨?”
투신의 손은 허공만을 가를 따름이었다. 마치 투명한 무언가를 만진 것처럼 투신의 손은 류드의 몸을 그대로 통과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류드는 어느새 니알라토텝의 손에 들려 있었다. 루프르스와 비슷하지만 정반대인 힘에 류드는 그제야 자신이 누구와 계약을 했는지를 상기했는지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류드의 모습을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보던 니알라토텝이 입을 열었다.
“정령계는 약속대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대가를 받아 가야 하는데…… 상황이 이러니 대신 다른 걸로 받아 가도록 하죠.”
“뭐……? 크허어억…….”
푸욱!
니알라토텝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류드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런 류드의 가슴팍을 니알라토텝의 팔이 관통했다.
한순간에 마족들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데몬 하트를 꿰뚫린 류드가 추욱 늘어졌고, 팔을 잡아 뺀 니알라토텝은 자신의 팔에 덕지덕지 묻은 류드의 붉은 피를 할짝이면서 최진혁 일행을 바라봤다.
그런 니알라토텝의 시선에 최진혁은 저도 모르게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을 바라보던 니알라토텝의 입이 열렸다.
“이제 계약은 끝났습니다. 이제 이 땅은 위대하신 아자토스 님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는 모든 힘은 그분을 깨우는 데에 사용될 예정이니…… 외부인은 이만 나가주시죠.”
“……뭐라고?”
“말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곧 다시 뵙게 되겠군요. 본래 있던 장소로 보내 드리죠. 아, 지금은 조금 다르려나…… 쿡쿡.”
따악!
그렇게 말을 하며 혼자 킥킥대던 니알라토텝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최진혁은 자신의 전신을 휘감는 무형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해치려는 기색은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항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격의 차이가 있었다.
‘……이 정도의 차이가 있는가? 아직 루프르스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도 흡수하지도 못했다지만…… 과연 심연의 존재라고 할 만한 힘이로군.’
그리고 그런 생각이 끝날 때쯤, 최진혁을 비롯한 투신과 루더슨은 씻은 듯이 자리에서 사라졌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니알라토텝은 이내 류드의 시체를 마계의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자리에서 사라지며 말했다.
“힘으로 환원되려무나.”
쿠구구궁!
짧은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니알라토텝의 그 말에 마계가 들썩이기 시작했고, 이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미소 지으면서 바라보던 니알라토텝도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