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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26화 (126/149)

리치, 헌터가 되다! 126화

희생 그리고 초월(2)

“……이게 최선인가?”

“그래, 이게 최선이야. 찔러.”

그렇게 말하면서 루프르스는 어느새 최진혁의 손에 들린 자신의 단검을 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루프르스!”

“쯧, 이제는 존대도 안 하는구나, 류드. 원래부터 싸가지 없게 만들기는 했다만…… 잠시 꺼져 있어.”

따악! 뻐어억!

“크아아악! 다…… 당신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으아아아아!”

자신의 앞에서 기고만장한 얼굴로 반말을 찍찍 내뱉는 류드의 모습에 루프르스는 불쾌하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함께 무형의 기운이 류드를 후려쳤다.

무형의 기운에 담긴 거력을 견디지 못한 류드가 허공을 훨훨 날아 저 멀리 사라졌다. 그런 류드를 바라보던 루프르스가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정도면 크게 인과율이 부여되지는 않았겠지. 뭐, 그 녀석들이 지금 정령계에서 깽판을 치고 있어서 이 정도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어서 나를 죽여라.”

“……정령계라니? 역시 정령왕들과 그 녀석들이 사라진 게 심연의 존재들 탓이었나?”

“그래, 류드와 룬 샤드 그 녀석들이 나 모르게 그 녀석들과 손을 잡고 있었다. 쯧,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진즉에 나섰을 텐데…… 미안하게 됐다.”

“쯧, 되었다. 어차피 우리 스스로 해결했어야 할 문제니까.”

“큭큭큭,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후우, 빨리 마계에서의 일들을 청산하고 정령계로 넘어가야겠군.”

“그러려면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지?”

“……여태까지 고마웠다. 그리고 나를 선택해 주어서 또 한 번 고맙다. 내 동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건네주어서…… 마지막으로 고맙다!”

푸욱!

“……어울리지 않게 웬 감사 인사야. 그냥 너는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호른…… 그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이제야 너를 다시 보러 가는구나…….”

호른이라는 처음 듣는 이의 이름을 씁쓸한 얼굴로 부르던 루프르스의 몸이 천천히 꽃잎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최진혁이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루프르스!”

“……류드인가? 너도 수고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마.”

“어딜 도망치는 거냐!”

꽃잎으로 변해 사라지는 루프르스의 모습에 루프르스의 공격에 당해 저 멀리 사라졌던 류드가 자신의 거대한 박쥐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아들었지만…….

파앙!

“후우…… 이미 죽은 녀석 건드려서 뭘 하려는 거냐.”

“……으득, 다 죽어가는 녀석이 감히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냐!”

그 앞을 최진혁이 숨을 헐떡이면서 막아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이어진 류드의 연격에 최진혁은 또다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모습을 본 류드가 껄껄 웃으면서 무어라고 말할 때였다.

“그럼 잘 있어라. 류드, 그리고 최진혁.”

“…….”

“…….”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꽃잎으로 변한 루프르스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고, 류드와 최진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씁쓸한 얼굴을 서로를 봤다.

“흥, 루프르스도 사라졌으니 너도 이만 죽어라!”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류드는 마지막 일격을 최진혁에게 먹이기 위해서 어지간한 성인 크기의 다리를 위로 들어서 내리찍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휘오오오!

“……이건?”

루프르스가 남기고 간 꽃잎들이 최진혁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거대한 바람을 만들어내었고, 그런 꽃잎의 방벽이 류드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루프르스! 죽어서도 방해라니…… 크아아악!”

쾅쾅쾅!

이제 막 한 걸음이었는데 그 공격이 막히자 류드는 격분해하면서 꽃잎의 방벽을 두드려 댔지만 꽃잎의 방벽은 부서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꽃잎의 방벽이 류드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꽃잎의 방벽에게 보호를 받던 최진혁은 점점 자신에게 흡수되기 시작하는 꽃잎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지만 이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꽃잎에 몸을 맡겼다.

츠츠츠츠!

그렇게 꽃잎들이 최진혁의 몸으로 흡수되면서 꽃잎의 방벽은 서서히 얇아져 갔고, 이내 꽃잎들이 모조리 최진혁의 몸속으로 흡수되자 꽃잎의 방벽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꽃잎의 방벽이 사라지자 그 안에 숨어 있던 최진혁의 모습이 드러났다.

최진혁의 모습이 드러나기 무섭게 방벽을 부술 듯이 때려대던 류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힘과 동시에 사람 머리 두 개만 한 류드의 주먹이 최진혁을 부술 듯이 내려꽂혔다.

“죽어라!”

그런 류드의 공격을 느꼈는지 두 눈을 감고 있던 최진혁의 눈이 스르륵 떠졌고.

“……?”

타다닷!

최진혁의 떠진 두 눈에서 느껴지는 최진혁의 힘에 류드는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면서 최진혁을 향해 공격하던 주먹을 회수하고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막상 뒤로 몸을 피한 류드는 자신이 왜 그러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지? 분명 방금은 절호의 찬스였다. 그것도 단 일격에 저 녀석을 세상에서 지워 버릴 절호의 기회였는데…… 왜 내가 죽음을 느낀 거지?’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다시 정신을 차린 류드가 고개를 부르르 털고는 최진혁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로 끝이다, 애송이!”

“…….”

그렇게 외치면서 류드는 물러났던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최진혁에게 달려들었고, 최진혁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흠칫……!

류드는 또다시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최진혁의 모습에 주먹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류드는 이를 악물면서 다시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런 류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루프르스, 선물은 잘 받았다.”

“……뭐라고?”

따악!

“커억……!”

최진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루프르스의 선물이라는 말에 류드가 놀란 것도 잠시 최진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방금 루프르스의 공격처럼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류드의 복부를 후려쳤다.

그리고 무형의 기운에게 공격을 당한 류드의 복부가 움푹 파였다.

물론 루프르스의 공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기도 하고 류드에게는 그리 큰 타격을 입힌 공격은 아니었지만 류드의 얼굴에는 놀람을 넘어서 경악이 담겨 있었다.

“그 힘은 분명…… 분명! 대체 네 녀석이 어떻게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거냐!”

“흐음……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딱히 내가 너에게 해줄 말은 없는 것 같군. 나도 그 이유를 모르니까 말이다. 뭐, 안다고 해도 말해줄 이유는 없지만.”

“……죽여서 흡수하면 될 뿐이다. 죽어라.”

키이잉!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류드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답했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했던 공격처럼 마기의 광선을 자신의 손에 모으기 시작했고.

푸슝!

이내 그것들을 쏘아냈다.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처럼 광폭하게 쏘아진 광선은 이내 최진혁의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그런 공격을 보면서 최진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광선이 자신을 꿰뚫기 바로 직전에 최진혁이 움직였다.

따악!

정확하게는 손가락만 움직였다.

최진혁이 손가락을 튕기기 무섭게 보이는 모든 것을 박살 낼 기세로 쏘아지던 광선은 눈 녹듯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최진혁이 류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2차전 시작이로군.”

드드득!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척박한 마계의 대지를 뚫고 일어난 존재들이 류드를 바라봤다. 그리고 솟아오른 수백 기의 언데드들을 바라보면서 류드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말했다.

“……전부 둠 나이트라고?”

하나하나가 성을 부수는 위력을 갖춘 둠 나이트들이 수십 기도 아니고 수백 기에 달했다. 그것도 최하급이나 하급 수준이 아니라 모두가 최상급의 둠 나이트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류드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다루기가 조금 힘들군. 겨우 이 정도인가?”

“……그 힘이 고작 겨우라고? 하…… 하하하!”

수백 기로도 모자라서 아직도 땅에서 기어 나오는 둠 나이트들의 모습에 류드는 허탈하다는 듯이 최진혁을 쳐다보았고, 그런 류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손가락을 들어 류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류드, 루프르스를 위한 장송곡의 악기가 되어줘야겠다.”

“……감히, 감히 나를 악기 취급을 하는가!”

콰과과과!

그런 류드의 말과 함께 류드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치솟았고, 그와 동시에 둠 나이트들이 류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백 대 일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최진혁은 고개를 들어 마계의 탁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네 의지는 잊지 않겠다, 루프르스.’

* * *

채앵!

그 시각 룬 샤드와 투신의 싸움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쿨럭…… 크허어…….”

“……왜 마지막에 공격을 피하지 않았지?”

“……피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 피한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룬 샤드는 반 토막이 난 자신의 검을 지팡이처럼 사용해 몸을 지지했다.

본래라면 룬 샤드의 어둠의 힘으로 만들어낸 검이기에 금방 복구가 되겠지만 투신과의 싸움으로 가진바 힘을 모조리 털어낸 룬 샤드에게는 그 정도의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룬 샤드의 모습에 투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안 피한 것과 못 피한 것의 차이도 모를 줄 아느냐?”

투신의 그 말에 그제야 룬 샤드는 낮게 웃으면서 투신의 말에 답했다.

“그저 이게 나에게 걸맞은 최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하지 않았다. 싸우다 보니 알겠군. 너는 확실히 나와 비슷하거나 우위라는 걸 말이야. 루더슨의 손에 죽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저 녀석은 아직 너 정도의 위치는 오르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런 룬 샤드의 말에 멀리서 쓰러져 있던 루더슨이 비틀거리는 몸으로 룬 샤드를 향해 다가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왜 아르말딘 대륙을 버린 거지?”

“그거야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저 내가 못난 탓이지…… 루를 질투하고 증오하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너희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다. 못난 신이지. 내가 싫어하는 이를 떠받든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다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자조 어린 미소를 짓는 룬 샤드의 모습에 루더슨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룬 샤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남길 말은 그뿐이냐?”

“그래, 아니, 하나 남아 있군.”

“……뭐지?”

“미안했다.”

“뭐……?”

푸욱!

룬 샤드의 말에 루더슨이 당황한 것도 잠시 룬 샤드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땅에 박힌 검을 뽑아내 자신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그와 함께 어둠의 신이라는 말처럼 룬 샤드의 시체는 어둠 속으로 허물어지듯이 사라졌고, 그런 룬 샤드의 모습을 루더슨은 허탈한 얼굴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끝까지 비겁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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