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24화
악신과 마신(4)
푸스스스!
“어두운 부분을 조심해! 룬 샤드는 악신이면서 달의 신이다. 어두운 부분은 그의 영역이다!”
“……크으, 보이는 공격을 피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제는 어두운 부분까지 걱정을 해야 하다니…….”
슈슈슛!
그렇게 말하면서 도경수는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룬 샤드의 검을 요리조리 유연한 몸놀림으로 피해냈다.
말과는 달리 꽤나 여유롭게 피하는 모습에 루더슨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도경수가 룬 샤드의 공격을 제대로 피해내지 못한다면 이 싸움은 룬 샤드와 자신의 1 대 1 싸움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척이나 힘든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룬 샤드는 엄연히 루더슨보다 상위의 신이었기에 아직 완전한 신격을 이루지 못한 도경수일지라도 루더슨에게는 꼭 필요했다.
“으아…… 루더슨! 빨리 좀 도와줘요!”
“금방 가지.”
타닷!
하지만 그렇기에 신격을 이루지 못한 도경수로서는 유의미한 타격을 룬 샤드에게 입힐 수 없었다.
물론 투신의 오의가 담긴 일격이라면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일 초에도 수십 번이 넘는 공방이 이루어지는 중에 그런 준비 동작이 큰 공격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면서 자신을 부르는 도경수의 목소리에 루더슨은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박차 룬 샤드를 향해 도약했다.
카가각!
“……네 실력으로 나를 단죄하기에는 부족하다, 루더슨.”
“부족하다면 내 영혼마저 불태워 너를 단죄하겠다, 룬 샤드. 너는 신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너는 너를 믿는 신도를 버렸으며, 네가 지켜야 할 대륙인들의 목숨을 마신에게 팔아넘겼다.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풀고야 말겠다.”
“……그래 줬으면 좋겠군.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납득할 만한 힘을 보여줘야 할 거다.”
“그럼 상관없겠어. 오늘 이곳에 너를 죽이기 위한 힘은 충분하니까 말이다. 루미!”
-네, 아빠!
흠칫!
그렇게 말하던 루더슨이 갑자기 루미의 이름을 불렀고, 그와 함께 루더슨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루미가 자신의 요정 같은 날개를 팔락이면서 날아올랐다.
키이잉!
-썬 저지먼트!
그리고 그런 루미의 이마에 빛이 모여들더니 한 줄기의 광선이 되어 룬 샤드를 향해 쏘아졌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빛의 응집체를 보면서 룬 샤드가 비식거리면서 말했다.
“태양…… 그래, 루. 루와 닮은 힘이로군.”
“루께서 내려주신 힘과 나의 힘이 결합되어 창조된 새로운 생명이다. 죽어라.”
루더슨의 말과 함께 루미의 이마에서 쏘아진 광선이 룬 샤드의 몸에 적중했다.
“……그거 아나 루더슨?”
츠츠츠츠!
아니, 적중한 것처럼 보였다. 루미의 광선이 룬 샤드의 몸에 닿기 바로 직전에 룬 샤드의 발밑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오더니 루머의 광선을 막아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흡수했다는 말이 맞을 거다.
루미의 광선은 있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공격을 막아낸 어둠은 마치 눈처럼 녹아내리면서 사라졌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던 룬 샤드가 루더슨을 보면서 말했다.
“아르말딘 대륙 시절부터 지닌 바 힘이며 상성은 내가 루보다 위였다. 그저 나는 달을 상징하고 루는 태양을 상징했다. 사람들이 주로 태양을 신성시 여기게 되면서 루의 힘이 나를 능가하기는 했으나 그런 루조차 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내 앞에서 루보다 나약한 태양의 힘을 사용하는가!”
쿠구구궁!
그렇게 말하던 룬 샤드는 진심으로 분노했는지 룬 샤드의 주위에 어둠들이 들끓으면서 거대한 소음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들끓던 어둠들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거대한 거인의 형상이 되었다.
갑옷이며 들고 있는 검까지 자신과 똑 닮은 거인을 만들어낸 룬 샤드가 루더슨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고작해야 반딧불만도 못한 태양의 힘이 나를 죽일 히든카드라고 생각한 것이라면…… 여기서 죽어라, 루더슨.”
“크윽…….”
어둠의 거인에게서 느껴지는 파괴적인 기운에 루더슨은 침음을 흘리면서 자신의 전신을 짓누르는 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보다 우월한 신인 룬 샤드의 힘의 집약체인 만큼 제아무리 루더슨일지라도 쉽사리 떨치기는 힘들었다.
-……아빠.
거기에 루더슨의 또 다른 힘이나 다름없는 루미는 압도적인 어둠의 힘에 제대로 힘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밝은 빛은 약한 어둠을 몰아내는 것처럼 강한 어둠은 약한 빛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빛을 삼키는 어둠처럼 서서히 어둠의 거인이 루더슨과 루미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였다.
파앙!
-그으어억.
“……그래, 네 녀석을 잊고 있었군.”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루더슨과 루미를 향해 거대한 검을 내려찍던 어둠의 거인의 하반신이 날아갔다.
사라진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면서 거인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고, 자신의 피조물의 고통에 룬 샤드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 범인을 바라봤다.
“……투신류 오의 신살권이다.”
“광오하군. 미친 듯이 광오해. 감히 인간의 입에 신살이라는 말을 담다니.”
“미안하지만 내가 이름을 붙인 건 아니라서 말이야. 투신류 오의라고 했잖아. 내가 만든 게 아니라고!”
그 범인은 주먹을 내지르는 자세 그대로 우뚝 서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도경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모습이 말해주듯이 현재 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부들부들…….
‘움직여! 움직이라고! 빌어먹을 몸뚱아!’
단 한 번의 주먹질이었지만 그 한 번의 주먹질을 도경수의 몸은 견뎌내지 못했다.
그 결과 전신의 근육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도경수의 몸은 삐그덕거렸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를 향해 룬 샤드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하지만 그런 룬 샤드를 피해 도망갈 힘 하나 남지 않은 도경수는 멍하니 식은땀만 흘리면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룬 샤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도경수에게 도망치라며 루더슨이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정작 도경수는 한 발자국 뗄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그런 도경수에게 룬 샤드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투신이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로군. 그 녀석 또한 머저리로구나. 감히 신살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기술에 붙이다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들어본 적조차 없으니 전장에서 쓸쓸히 죽어갔을 하찮은 녀석이겠지.”
부들부들…….
자신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투신에 대한 모욕에 도경수가 무어라 소리치려고 했지만 입조차 뗄 수 없었기에 그런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의 앞에 룬 샤드가 우뚝 서고는 자신의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나의 피조물을 죽인 대가, 신살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은 대가, 마지막으로…… 나를 단죄할 힘도 없이 나를 건드린 대가다.”
쐐에에엑!
“안 돼! 그자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다!”
거침없이 내려꽂히는 룬 샤드의 검에 루더슨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룬 샤드를 막으려고 했지만 방금까지 어둠의 거인에 의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그가 룬 샤드를 막을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파아앗!
“어?”
“……뭐지? 상관없다. 그저 베면 될 뿐.”
도경수의 가슴팍에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갑작스레 터져 나온 빛무리에 룬 샤드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룬 샤드의 검은 도경수에게 닿기 바로 직전에 우뚝 멈춰 섰다.
“……넌 누구지?”
-네가 방금까지 욕하던 광오한 미친놈이다.
“어…… 어어어!”
희끄무레한 누군가가 룬 샤드의 검을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인영은 도경수에게 무척이나 낯익은 얼굴이었다.
물론 자신이 알던 얼굴보다 무척이나 늙고 추레한 모습이었지만 젊은 모습과 대조해 보자 단박에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서…… 설마 투신입니까?”
도경수의 목숨을 구해준 희끄무레한 인영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도경수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투신이었다.
-그래. 제자라고 하기엔 뭐한 제자 놈아. 내가 투신이다.
“하…… 하지만 투신은…….”
-그래! 뒤졌다! 그걸 꼭 다시 말해야겠느냐?!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재확인시키는 도경수의 말에 투신은 버럭 화를 냈고, 그런 투신의 말에 도경수는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네가 수련용으로 사용하던 내 일대기에 내가 의탁하고 있었다. 심연의 놈들과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내가 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지.
“아……!”
투신의 말에 그제야 투신이 기나긴 시간을 넘어 자신의 앞에 설 수 있는 이유를 얼추 알게 된 도경수는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도경수의 의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태까지는 가만히 계시다가 갑자기 나타나신 이유가……?”
-쯧, 네 녀석이 내 오의인 신살권을 사용해서다.
“예? 그게 무슨?”
-자세한 건 설명할 시간이 없을 것 같구나. 그러니 네 몸부터 일단 넘겨라.
“예에에엑?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설마 제 몸을 가지시려고 저를 훈련시킨 겁니까?”
-지랄하지 말고 어서 넘기거라, 제자야. 나한테 몸을 넘길 테냐? 아니면 저기 있는 다 죽은 눈깔을 하고 있는 녀석에게 죽을 테냐?
“……정말 돌려주시는 거 맞죠?”
-이 녀석이! 평생을 속고만 살았나! 이 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그러니 냉큼 내놔!
투신의 외침에 도경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투신에게 자신의 몸의 통제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택지가 단 두 개였기 때문이다. 죽거나 넘기거나. 그렇기에 도경수는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흐으읍…… 하아아…… 이 공기…… 이 감각…… 좋구나.”
투신이 들어가기 무섭게 감긴 두 눈을 번쩍 뜨면서 도경수, 아니, 지금은 투신이 입을 열었다.
방금과는 달리 기세가 역변한 도경수의 모습에 룬 샤드는 눈에 띄게 놀랐다. 다 죽어가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 정도로 말이다.
“……넌 누구냐. 누군데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쯧,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말한 광오한 미친놈이라고 말이야.”
“설마…… 네가 투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냐?”
“주장이 아니라 내가 투신이 맞다. 흐음, 이 녀석 몸뚱이가 꽤 쓸 만하긴 하군. 아직 신격도 다다르지 못한 녀석이 신살권을 쓰고도 이 정도라니. 해볼 만하겠어.”
스트레칭을 하면서 말하는 투신의 모습에 룬 샤드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투신을 바라보면서 답했다.
“고작 몸뚱이 하나 생긴 걸로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 아니, 애초에 내가 전성기 시절이었으면 네 녀석은 나랑 눈도 못 마주쳤어! 잔말 말고 덤벼. 짬밥을 허투루 먹은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기대하겠다. 나불대는 입의 반만큼이라도 실력을 지니고 있으면 좋겠군.”
그 말과 함께 전신을 어둠으로 두른 룬 샤드와 전신에서 투기를 뿜어내는 투신이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