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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21화 (121/149)

리치, 헌터가 되다! 121화

악신과 마신(1)

“으그으윽, 글러트니…… 망할 놈…….”

“맛…… 있…… 었…… 다…… 행복해…….”

털썩!

결국 두 마왕 간 모순된 싸움의 승자는 엔비도 글러트니도 아니었다.

“끝났군.”

“후우, 다행이네요.”

-흐아아, 힘들어. 해제.

푸확!

-……정령신이시여, 이만 가보겠습니다.

-최진혁 혼자 너무 오래 둔 것 같은데? 위험하진 않겠지?

-……이만.

-나중에 뵙죠.

파파팟!

두 마왕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진이 풀린 김혜진은 정령왕들과의 합일을 해제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런 김혜진과 엘리쟈에게 인사를 하고 정령왕들은 혼자서 마족들을 막아내고 있는 최진혁에게 돌아갔다.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체력을 보충하던 김혜진은 자신이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오빠!”

바로 도경수였다.

타다닷!

힘이란 힘은 다 쓴 김혜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저 멀리 멍하니 서 있는 도경수를 향해 달려갔다.

짝짝짝!

“오빠! 일어나 봐!”

“……으, 볼이 왜 이렇게 뜨겁…….”

“오빠!”

“읍! 우읍! 혜진아? 여기서 갑자기 이러면 곤란…… 우읍!”

정신을 차린 도경수가 얼떨떨한 얼굴로 김혜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김혜진이 두 손으로 도경수의 양 볼을 잡고 고정시키더니 진한 키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루더슨과 엘리쟈는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다.

“큼, 마왕들 쪽은 끝났으니 최진혁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헤…… 부럽…… 아니, 그러죠. 걱정이 되네요. 하하하!”

진하게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 엘리쟈는 부끄러운지 손부채로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면서 루더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김혜진과 도경수를 내버려 두고 저 멀리서 열심히 마족들을 막아내고 있는 최진혁을 향해 다가갔다.

“잘 처리하고 왔나?”

“……당연하다. 그 정도야 손쉬운 일…….”

“그런 것치고는 다른 마왕들끼리 싸움을 붙여서 겨우 잡는 것 같던데…… 내가 잘못 본 건가?”

“크흠흠!”

최진혁의 날카로운 말에 루더슨은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고, 엘리쟈는 최진혁 주위의 참상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건?”

“아, 언데드들의 방어를 뚫고 내 앞까지 왔던 이들이다. 뭐, 지금이야 시체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앞에 널브러져 있는 마족 후작들과 마족 공작들의 시체를 발로 툭툭 찼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괜찮은 건가?”

“아아, 로브는 조금 찢어졌지만 탐 녀석한테 먹이 좀 주면 알아서 고쳐질 거다. 몸에 입은 상처는…… 마계 때문인지 마기에 당한 상처는 잘 낫지 않더군.”

제아무리 최진혁이라고는 하나 적의 홈그라운드인 마계에서 싸우고 거기에 더해서 마신에게 추가로 강화까지 받은 마족 후작, 그리고 마족 공작들과의 싸움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최진혁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로브는 더 이상 로브라고 부를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전신은 잔상처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최진혁의 표정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였다.

“그래도 정령왕 녀석들이 돌아오니 한결 낫더군. 상처들도 천천히 낫고 있고, 이 시체들을 탐에게 던져주면 로브도 곧 수리될 거다.”

“하아, 다행이다…….”

그런 최진혁의 말에 엘리쟈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김혜진과 도경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크흠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걸……?”

두 사람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몰려오는 마족들을 보면서 말했다.

“어쨌든 너희도 이제 합류해라. 마왕들도 처리했으니 이제부터 전속력으로 성까지 뚫고 간다.”

“알았다.”

“반격 시작이라는 거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고, 엘리쟈는 정령들을 소환하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자신과 함께 마족들을 막아서던 정령왕들을 향해 외쳤다.

“방어는 끝났다. 지금부턴…… 공격일변도로 간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말이로군.

-불태워 주마!

-……지상에서 익사하는 경험이 뭔지 알게 해주지.

-바위에 깔려 죽어라, 머저리들.

여태까지 별것도 아닌 마족들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하는 방어일변도로만 나선 탓에 독이 올랐는지 꽤 온순한 성격의 물과 땅의 정령왕마저 섬뜩한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정령왕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최진혁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반격 시작이다.”

콰릉! 콰과과광!

그와 함께 거센 자연재해들이 마족들의 진영에 작렬하기 시작했고, 루더슨의 검이 후작들을 비롯한 고위 귀족급 마족들의 목을 베어냈으며, 최진혁의 언데드들이 파도처럼 마족들을 몰아쳤다.

* * *

쿠당탕탕!

“마…… 마신이시여……! 적들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바닥을 구르면서 들어온 마족 후작의 모습에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한 미남자가 피처럼 붉은 와인을 홀짝이면서 불쾌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쯧, 그까짓 녀석들을 못 막아서야. 내가 너희들에게 건넨 마기가 아깝구나.”

쿠구구궁!

류드가 그렇게 말하면서 기운을 내뿜자 말을 하던 마족 후작은 바닥에 엎드려서 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그런 마족 후작의 모습을 바라보던 마신 류드가 혀를 차면서 손을 휘젓자 거대한 마기가 마족 후작의 전신을 감쌌고, 또다시 손을 휘젓자 그보다 더한 양의 마기가 궁전에서 뿜어져 나갔다.

“오…… 오오…….”

“그 정도로 해줬는데 이기지 못한다면 그냥 다시 돌아오지 말고 죽거라.”

“……알겠습니다. 마신이시여…….”

진심과 살기가 함께 담긴 류드의 목소리에 벌벌 떨던 마족 후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마족 후작의 모습을 바라보던 류드가 창가에 걸터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룬,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아니다.”

“설마 그 녀석 때문인가? 루더슨인가 하는 루를 찬미하는 광신도?”

“……하아,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류드의 말에 창가에 걸터앉아 있던 사내, 아르말딘 대륙의 악신이었던 룬 샤드가 거칠게 답했다.

그런 룬 샤드의 대답에 류드는 피식 웃으면서 잔에 남아 있던 와인을 한 번에 마시고는 잔을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

쨍그랑!

“그럼 왜 그딴 쓰레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냐는 말이다. 왜, 후회되나? 자신이 신으로 있던 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멸망시켜서?”

류드의 비아냥에 룬 샤드는 똥 씹은 얼굴로 류드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면서 답했다.

“후우, 됐다. 그것 또한 내 멍청함이고 그 멍청함 또한 나이니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

“큭큭큭, 그러면 너도 한잔하지그래? 아까 녀석의 꼴을 보아하니 그 녀석들이 이곳까지 오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텐데 말이야.”

“그런데 류드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현재 그 녀석들의 파티 수준은 우리 둘로는 위험하지 않나?”

룬 샤드의 걱정 어린 물음에 류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런 류드의 모습을 본 룬 샤드는 더더욱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류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 말라고, 룬. 방법은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안 그래? 니알라토텝.”

“……? 지금 뭐라고?”

으직! 으지직!

류드의 말에 룬 샤드가 의아함을 토해내기 무섭게 류드와 룬 샤드 사이가 일그러지면서 공간이 깨져 나가더니 얼굴에 가면을 쓴 사내가 나타나며 말했다.

“물론이다, 류드. 다만 대가는 네 녀석도 잘 알고 있겠지?”

“쯧,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알았다. 아자토스를 깨우는 일에 동참하도록 하지.”

“계약 성립이다.”

그 말과 함께 바람처럼 나타난 가면의 사내, 니알라토텝은 왔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일그러졌던 공간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갔고 완전히 공간이 수복되자 룬 샤드가 류드에게 물었다.

“네가 말했던 방법이 심연의 존재를 건드리는 거였나? 류드, 미쳤나?”

“미치긴. 난 매우매우 정상인데 말이야.”

“우리의 대적점에 서 있는 심연의 존재들과 손을 잡은 것도 모자라 아자토스의 잠을 깨우는 데에 동참을 해? 그가 깨어나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

“쉿, 룬…… 이 멍청한 친구야. 지금 우리가 그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미래에 아자토스를 깨워서 죽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손에 죽어. 그리고 약속은 깨면 그만이야.”

“뭐? 그러면 그쪽에서 가만히 있…….”

“가만히 있진 않겠지. 하지만 지금 오는 녀석들의 일행들을 잡아먹은 우리들이라면 그들도 쉽사리 우리를 건들진 못할 거다.”

류드의 말에 룬 샤드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니알라토텝이 우리와 같이 싸워주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그는 다른 곳으로 갔다.”

“하아? 그럼 대체 손을 잡은 이유가 뭐지?”

“룬, 양동작전이라고 알고 있나?”

“양동작전?”

“그래, 다른 곳을 흔들어주면 그들 중 일부는 무조건 그곳으로 갈 수밖에 없어.”

“누구를 말하는 거지?”

최진혁의 파티는 네 명의 정령왕들과 두 명의 정령신 후보생들, 그리고 최진혁과 루더슨, 그리고 도경수였다.

대체 이 중에서 누가 그곳으로 간다는 건지 도저히 유추할 수 없었던 룬 샤드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면서 류드에게 물었다.

“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이야?”

그리고 그런 룬 샤드의 말에 류드는 피식 웃으면서 답해주었다.

“누구긴 누구야. 멍청한 네 정령왕들과 정령신 후보생들이지. 니알라토텝은 정령계를 치러 갔다. 그러니 정령왕들을 비롯한 정령신 후보생들은 정령계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때 남은 최진혁과 루더슨, 그리고 한 명의 쩌리를 처리한다. 어때? 쉽지?”

“……대체 왜 정령왕들이 정령계로 갈 거라고 확신을 하는 거지? 그들이 빠르게 우리를 처리하고 갈 수도 있지 않나?”

“아니, 그 녀석들은 그러지 못해. 정령계에 걸린 제약 때문에 말이야. 그들은 외부에서 정령계를 침략하면 절대로 그걸 좌시하지 못해. 정령계 바깥에 있다면 자동으로 정령계로 돌아가게 될 거다. 그건 정령신 후보생 녀석들도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군.”

“해볼 만하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우리는 더더욱 강해졌고, 최진혁과 루더슨 그 둘도 가이아와 루의 힘을 어느 정도 이어받았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우리의 아래다. 우리의 승리는 기정사실이다. 그러니 마음 편히 있어도 된다.”

류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맡겼다. 입가에는 매력적인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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