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19화
세 마왕(3)
“끼아아악! 죽어! 찢어져! 찢어지란 말이야!”
“수만 년 동안 살았으면 곱게 죽어! 남의 연애사에 훈수 두지 말고! 아니, 훈수만 두면 몰라 왜 이렇게 남의 남자를 못 뺏어서 안달이야?”
“그게 재밌으니까! 성취욕이 있으니까! 너만 죽으면 돼!”
“누가 넘어가 준다고나 했냐?! 혜진아, 난 너밖에 없…….”
“앞이나 봐! 이 바보 오빠!”
“큽!”
엔비의 말에 당황해하면서 변명을 늘어뜨려 놓던 도경수는 김혜진의 뾰족한 비명 소리에 깜짝 놀라며 땅을 박차 엔비의 공격을 피해냈다.
카가가각!
그리고 도경수가 피한 자리에 날카로운 엔비의 손톱 공격이 작렬했고, 그 공격에 단단한 마계의 대지가 두부처럼 쑹덩쑹덩 썰려 나갔다.
피하지 못했다면 자신의 몸이 저렇게 됐을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도경수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또다시 공격을 해오는 엔비의 모습에 흠칫해하면서 팔을 교차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도경수의 팔에 엔비의 손톱이 제대로 적중했다.
스그극…….
“오빠!”
“버틸 만해! 걱정하지 말고 공격해! 어차피 지금 내 수준으로는 이렇게 고기 방패밖에 못 하니까!”
“……으이씨, 다치기만 해!”
“……이미 다쳤는데?”
성질을 부리면서 정령들을 소환해 대는 김혜진의 모습에 엔비의 손톱을 막아낸 대가로 피가 철철 흐르는 팔뚝을 보면서 도경수는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솟는 기분이었다.
설마 이미 다친 걸 보고 합법적으로 때리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엔비는 도경수가 딴 곳에 정신을 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으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수 있어! 자~기~!”
“……늙은 여자 사절!”
스아악! 스아악! 스아악!
엔비의 손톱들이 흔들릴 때마다 섬뜩한 소리를 내면서 도경수의 귀를 어지럽혔다.
그리고 그렇게 손톱에 시선이 끌린 도경수는 날아오는 발차기를 보지 못하고 제대로 방어를 하지 못한 채, 턱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빠각!
“컥!”
“명중~! 왜 손톱만 봐~ 그렇게 내 얼굴이 보고 싶었어? 자~기?”
“……퉤! 닥…… 어윽.”
휘청!
엔비의 말에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면서 비틀비틀 일어나던 도경수는 제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에 비틀대다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도경수의 모습에 엔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 자기가 이제 반신이라고는 해도 몸뚱이는 아직 인간이라서 턱을 좀 강하게 차 줬는데 내 진심이 조금은 전해졌으려나~?”
“크윽…… 이 정도쯤이야…… 으억!”
“아, 맞아. 혹시 그걸로는 내 마음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서 발끝에 마기를 담아서 찼는데 어때? 뇌가 막 흔들리고 그런가? 그게 내 사랑이야~ 자기~!”
“퉤! 그딴 사랑 줘도 안 가져!”
“왜~ 부족해? 마기가 부족했나~? 지금쯤 슬슬 효과가 돌 텐데?”
“뭐라……?”
엔비의 의미심장한 말에 도경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말을 하던 도경수의 말끝이 흐려지더니 도경수의 눈도 말끝처럼 흐리멍덩해졌다.
그러더니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엔비를 향해 걸어갔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멀리서 공격을 준비하던 김혜진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오빠?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야! 도경수! 멈추라고!”
정령을 소환하는 것도 뒤로한 채, 목이 터져라 도경수를 불러댔지만 결국 도경수는 뚜벅뚜벅 걸어가 엔비의 앞에 섰고, 그런 도경수를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엔비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나! 질투의 마왕 엔비의 능력이란다, 꼬맹아. 남자 관리를 잘했어야지.”
“……오빠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엔비의 손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도경수의 모습에 김혜진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그런 김혜진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엔비 계속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내 이명인 질투답게 내 권능은 무언가를 빼앗는 데에 특화되어 있지.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간에 내 마기에 노출되는 순간…… 그건 내 거나 다름없단다. 나보다 고위의 존재가 아닌 한 말이야. 그런데…… 아무리 봐도 너는 나보다 강해 보이지도 높아 보이지도 않는데…… 어때? 다시 뺏어 가볼 생각이야?”
“……내가 너보다 약해? 높아 보이지도 않아? 그럼 한번 겪어봐. 사랑을 가지고 장난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녀석 없다 그랬어!”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김혜진은 분노를 토해내면서 정령화를 시작했다.
-어? 뭐야?
-……?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일…….
-어떻게 된 일이야?
그것도 마족들을 막아내던 네 명의 정령왕 모두와 말이다.
“아저씨, 미안한데 혼자서 조금만 힘 좀 내줘. 저년만 때려눕히고 빨리 보내줄게.”
그 말을 끝으로 김혜진의 앞에 서 있던 네 명의 정령왕은 김혜진과 하나가 되었고.
콰과과과!
“……과연, 그게 네 본래 모습이니? 꼬맹아?”
-본래 모습 좋아하네. 십분의 일도 안 돼, 할망구.
정령화를 마친 김혜진의 목소리가 마치 정령들의 목소리처럼 머리에 직접 때려 박는 텔레파시 방식으로 들려왔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180도 달라진 김혜진의 기세에 엔비는 살짝 굳은 얼굴로 김혜진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런 엔비의 말에 김혜진은 코웃음 치면서 말했다.
실제로 지금 네 정령왕과의 합일로 강해진 김혜진의 힘은 전성기 시절 정령신의 힘에 비하면 십분의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엔비는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피식 웃으면서 김혜진을 바라보며 도발하듯이 멍청하게 서 있는 도경수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럼 뺏어봐. 나를 죽인다면 우리 자기는 네 곁으로 돌아갈 거야. 아무런 상처 없이~ 다만…… 네가 날 죽이지 못한다면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이고 말이야. 어때? 간단하지?”
-간단은 개뿔!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
그 말과 함께 김혜진의 주위에 폭풍과 푸른 화염 그리고 거대한 물기둥, 마지막으로 돌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가시들이 빼곡하게 솟아나 엔비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런 김혜진의 공격에 엔비는 도경수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자연재해들에 손톱을 휘둘렀다.
엔비의 손톱 공격에 하나하나가 재해, 재앙이라고 불릴 법한 공격들이 마치 두부처럼 썽둥썽둥 썰려 나갔다.
하지만 네 정령왕들의 힘을 온전히 몸에 품고 있는 김혜진의 힘의 끝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죽어!
“……하아, 역시 정령왕들의 힘은 대단하구나~ 우리 자기가 반할 만하네~.”
-누구 보고 자기라고 부르는 거야!
자연스럽게 도경수를 자기라고 부르는 엔비의 모습에 짜증을 내면서 김혜진이 손을 한 번 휘젓자 방금 만들어낸 재해들이 뒤섞이면서 엔비를 향해 날아갔다.
1+1, 2+2와 비슷했지만 만들어진 결과물은 결코 2나 4같이 단순하지 않았다.
능력 하나가 다른 능력과 시너지를 발휘하고 그렇게 시너지가 발휘된 능력에 다른 능력이 더해지니 덧셈이 아니라 곱셈, 나아가서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김혜진의 능력에 시종일관 태연했던 엔비의 얼굴이 살짝 굳었고, 이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하아, 어지간하면 본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아버리면 우리 사랑스러운 자기를 두고 죽어버려야 하잖아?”
그 말과 함께 엔비의 전신에서 시꺼먼 마기들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엔비의 전신을 물샐틈없이 감싸 알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마기의 알에 김혜진의 총공세가 작렬했다.
하지만 폭발이 사라지고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알이 멀쩡하게 놓여 있었다.
-이잇…… 깨져! 깨져! 깨지라고!
김혜진이 가만히 놓여 있는 알에 짜증을 내면서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했지만 마왕과 마신의 마기가 섞인 마기의 알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공격하기를 수십여 번.
쩌저적!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알에 금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김혜진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씨이…… 저거 내가 한 거 아닌데.
다름 아니라 저 금은 김혜진의 공격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안에서 깨고 나오는 것뿐이다.
그리고 저렇게 농도 짙은 마기의 알 안에서 힘을 응축시키고 또 응축시키면 대체 어떤 괴물이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김혜진이 알에서 나올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을 때, 알이 터져 나가면서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안녕~?”
다리가 여덟 개가 달린 징그러운 형상의 엔비의 모습. 김혜진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혐오감에 헛구역질을 해댔다.
-웩, 역겨워.
“……이래서 내가 본모습을 안 좋아한단 말이지.”
그런 김혜진의 모습에 엔비도 화가 나는지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쿵쿵쿵!
그리고 그런 발 구르기 한 번에 마계가 흔들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땅이 크게 울렸다.
알에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 엔비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같은 존재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서 엔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은 아무리 보아도 평범한 마왕의 수준을 넘어서 네 명의 정령왕들과 합일한 김혜진보다 살짝 처지는 수준이었기에 김혜진이 느끼는 놀람은 그 수준이 달랐다.
그런 김혜진의 놀람이 느껴지는지 엔비는 입가에 조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어때?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돌아갈래? 그러면 굳이 쫓지는 않을게~ 나도 이 모습을 그리 오래 유지하고 싶지는 않거든~ 저기 있는 우리 자기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고 말이야~.”
-……죽어도 너는 죽이고 죽어!
계속해서 도경수를 자기라고 부르며 벌써부터 자기 것인 양 행동을 하는 엔비의 모습에 김혜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부들대며 떨어댔다.
그리고 그런 것도 잠시 이내 김혜진은 심호흡을 하면서 그런 마음을 털어내고 엔비를 향해 달려갔다.
-오빠는 누구에게도 안 줘!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가지고 싶은걸!”
그렇게 말하면서 엔비는 칼날과 같이 날카로운 여덟 개의 다리를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김혜진을 향해 겨누었고, 그런 모습에도 김혜진은 겁먹기는커녕 더욱 빠르게 엔비를 향해 달려갔다.
* * *
쾅! 쾅쾅!
“……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그렇게 말하면서 혼자서 마족들을 막아서던 최진혁은 소음의 발생지인 김혜진과 엔비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는 방향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다 저기 있구만. 아니, 불려 간 건가?”
갑자기 사라진 정령왕들의 모습에 무언가 있기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김혜진에게 불려 갔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기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김혜진 쪽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서 앞을 바라봤다.
“나 혼자만 고생을 하는구만.”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앞에는 어느새 수십 명의 마족들이 병장기를 꼬나쥐고 서 있었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한 것이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뿜어내는 살기 하나는 멀쩡했다.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는 마족들을 보면서 최진혁은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안 그래도 혼자 고생해서 짜증 나니 달라붙지 마라. 처리해.”
-캬아아악!
그와 함께 언데드 군단을 뚫고 최진혁 앞에 선 역전의 용사, 아니, 역전의 마족들은 최진혁의 발밑에서 꿈틀대며 기어 나오는 언데드들을 보면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