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18화
세 마왕(2)
“시시싯! 형편없구나! 고작 그 정도로 이 그리드 님에게 덤빈 것이냐! 시싯!”
“……말만 많구나. 그렇게 입을 나불댈 시간에 덤벼라.”
자신을 바라보며 도발을 해오는 그리드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은 아까 전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그리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최진혁 쪽의 언데드들은 그리드의 언데드에 의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동요가 없자 그리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다가 이내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시시싯! 겉으로는 내색 안 하고 있지만 분명 속은 불타고 있을 터! 네놈의 모든 능력이 이제 곧 내 것이 된다니 시시싯! 마신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사실 최진혁의 능력은 그리드로서는 무척이나 탐나는 능력이었다. 그리드는 본래 무력이 강한 마족이 아니었다.
타인의 능력을 빼앗아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왕이라는 이름답지 못하게 본체의 무력은 처참할 정도로 약했다.
하지만 타인의 능력을 빼앗는 능력으로 용케 살아남아 마기를 늘리고 결국에는 마신에게까지 간택받아 마왕이라는 지고한 위치에까지 올랐다.
그렇게 마왕에 올랐지만 그리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마신께서 주신 힘이라면…… 저 탐나는 힘을 모조리 내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리드의 능력은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능력을 가져오거나 지휘권이나 명령권 등을 빼앗아오는 능력이었다.
즉, 아무리 타인의 능력을 빼앗아봤자 그때만 강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마신이 그리드를 강화시켜 준 덕분에 그리드는 이제 빼앗은 능력은 영원히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대상을 죽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최진혁을 죽일 생각이었기에 그런 전제 조건 따위는 있으나 마나였다.
그렇기에 그리드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모조리 때려 부숴라! 시싯!”
그런 그리드의 명령에 홀린 듯이 언데드들이 무기를 휘둘러 댔다.
각종 언데드들에 본래 언데드들에게 가장 친숙한 마기가 강화시켜 주니 무적의 군대였던 최진혁의 언데드들도 차츰 밀리는 추세였다.
자신의 언데드들이 서서히 우위를 점하고 그것을 다져 나가자 그리드의 입가에 걸린 미소 또한 마찬가지로 점점 짙어져 갔다.
하지만 자신의 언데드 군단이 박살이 나도, 그리드가 점점 격해지는 도발을 해와도 최진혁의 포커페이스가 깨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이제 곧이라는 마음 때문에 흥분을 한 그리드가 박쥐 날개를 퍼덕이면서 하늘을 날아 최진혁 주위를 돌며 웃어댔다.
“시시싯! 포기한 거냐? 키시싯! 이제라도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물론 당연하게도 거짓말이었다. 능력을 온전하게 빼앗으려면 전 주인을 죽여야 하는데 최진혁의 능력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물로 보이는 그리드가 그 보물을 포기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리드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쉽게 이기면 좋지. 저 녀석은 조금 께름칙하기도 하고.’
최진혁과 정면 대결을 벌이는 것은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최진혁은 자신의 힘으로 마왕인 그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발을 디딘 이였다.
그렇기에 숨겨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드는 이렇게 툭 하고 던져본 것이었다.
“그래, 그럼 항복하도록 하지.”
“……뭐라고?”
하지만 최진혁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도리어 말을 꺼낸 그리드가 놀라워했다.
믿을 수 없는 최진혁의 말에 그리드가 최진혁을 불신하며 말했다.
“그게 사실이냐?”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후퇴도 하나의 방법이지. 대신 내 동료들도 함께다. 가능하겠냐?”
“시…… 시싯! 당연히 가능하다. 이 탐욕의 마왕 그리드 님은 다른 두 마왕들보다 더 위에 있기 때문이지!”
갑자기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지만 그리드는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최진혁의 말에 답했다.
‘멍청한 놈. 마신께서 특히 유의하라고 한 녀석이라서 걱정했는데 별거 아니잖아? 시시싯! 네 능력은 이제 내 거다!’
하지만 약한 만큼 경계심이 다른 마왕들보다 배는 강한 그리드였기에 마지막까지 최진혁을 경계하면서 말했다.
“일단 네 언데드부터 물려라! 그런 다음에 다시 협상을 시작하지.”
“그럼 셋을 센 뒤, 같이 언데드를 없애기로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여유만만한 최진혁의 모습에 그리드는 불안했지만 어차피 손해 볼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좋다. 하나, 둘, 셋!”
솔직히 셋을 센 뒤, 언데드들을 없애자고는 했지만 최진혁이 진짜로 없앨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진혁은 정확하게 셋을 세고 모든 언데드를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 모습에 그리드가 얼이 빠진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며 최진혁처럼 그 자신도 언데드들을 사라지게 했다.
삼 초가 지나도 한참이나 지나서 언데드들을 물린 그리드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 말이 못 미더웠나 보군.”
“……닥쳐라.”
“그럼 이만 가봐도 되겠나?”
“……그래, 꺼져라. 그리고 다시는 마계를 밟지 마라. 다시 밟는 그 순간이 네 녀석과 네 녀석 동료들의 마지막일 테니까 말이다.”
“그것참 고마운 말이로군.”
그렇게 말하고 최진혁은 등을 돌려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실드와 같은 방어 마법 하나도 없이 무방비로 보이는 최진혁의 모습에 그리드는 속으로 최진혁을 욕하면서 기척을 지우고 순식간에 최진혁의 등 뒤로 이동했다.
‘키시싯! 멍청한 녀석! 네놈의 능력은 내가 잘 사용하도록 하겠다! 네 능력들도 네 녀석 같은 머저리보다는 이 그리드 님에게 사용되는 걸 더 영광으로 생각할 거다!’
그리고 순식간에 최진혁의 등 뒤로 이동한 그리드는 자신의 손을 뾰족하게 만들어 단숨에 최진혁의 심장 부근을 찔렀다.
푹!
그리고 그런 그리드의 손은 최진혁의 몸을 뚫기는 했다.
“이…… 이 자식이?”
“역시, 생각대로 나와주는군.”
물론 그곳은 그리드에게는 안타깝지만 심장이 아니라 어깻죽지였지만 말이다.
최진혁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갔다는 사실에 경악을 하고 있는 그리드를 보면서 말했고, 그런 최진혁의 반응에 그리드는 떠듬떠듬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어…… 어떻게 안 거지? 분명 기척은 지웠을 텐데?”
“물론 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녀석은 잘만 눈치채더군.”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로브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그리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해할 때였다.
으적! 으적으적!
“끄아아악! 놔…… 놔라!”
그리드가 뚫은 어깻죽지 주변의 로브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리드의 손을 으적으적 씹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흉측한 일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끄윽.
그리드를 통째로 집어삼킨 로브, 아니, 탐이 거하게 트림을 뿜어냈다. 그리고 배가 불렀는지 파손된 로브를 복구시키고는 잠잠해졌다.
그런 탐을 보면서 최진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보다가 이내 마족들을 막아내고 있는 정령왕들을 향해 날아갔다.
“아무래도 저곳보다는 이곳이 도움이 필요할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이 실피드 옆에 내려앉자 식은땀을 흘려가며 마족들을 막아서던 실피드가 버럭 소리쳤다.
-닥치고 와서 빨리 막아! 힘들어 죽겠다!
“이런, 고귀한 정령왕이 상스러운 말을 하다니 참 격 떨어지는군.”
-……마족 대신 네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전에 빨리 막아.
“알았다.”
딱!
실피드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 최진혁은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방금 없앤 언데드에 몇 배는 되는 언데드가 땅을 뚫고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다른 두 마왕과 싸우고 있는 자신들의 동료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몰려오는 마족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 * *
“꺄하핫! 재밌어~ 너희 둘 사이 너~무 질투 나잖아! 확 둘 다 찢어버리고 싶게!”
“미친년은 예로부터 매가 약이라고 그랬다!”
“칠 수 있으면 쳐봐~ 대신 못 치면 네 남자는 내가 꿀꺽해도 되는 거지?”
“닥쳐!”
콰과과광!
엔비의 도발에 김혜진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사대 정령 전부를 소환해 혼합해서 싸우기 시작했다.
거기에 분노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정령들과의 동화가 이루어진 김혜진의 모습은 정령여제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혜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비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고, 반대로 엔비의 공격은 막아낼 수 없었다.
촤자자작!
엔비의 날카로운 손톱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마어마한 칼바람이 불어 김혜진의 전신을 난자했다.
“꺄악!”
“혜진아!”
“이이익…… 이 망할 년아!”
“잠시만! 혼자 가지 말고 같이 좀 싸워!”
“저년은 내 손으로 때려죽여야…….”
“김혜진!”
분노로 점철된 김혜진의 귀에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자 도경수는 김혜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지 김혜진이 도경수를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 나 지금 뭐 하고 있던 거지? 뭔가 평소에 내가 아니었던 것 같…….”
“아니, 평소 같기는 했는데 너 지금 너무 흥분해…… 악!”
“에휴, 진짜 내가 이런 사람도 연인이라고.”
자신을 걱정해 주는 줄 알았던 도경수의 배신에 김혜진은 주먹으로 도경수의 옆구리를 후려치면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일어나. 같이 싸우자.”
“쿨럭, 어…… 응, 그러자.”
김혜진의 몹시 매운 주먹에 헛기침을 하던 도경수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엔비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당황해했다.
“어…… 어떻게 내 질투의 권능을 풀어낸 거지? 자기?”
“자기는 무슨. 내 남자 넘보지 마. 죽는다, 너. 내가 왜 시야가 좁아지고 오빠 말이 잘 안 들리나 했더니 네년 짓이었구나?”
“말도 안 돼! 내 권능은 마신님의 힘으로 대폭 강화되어서 연인인 신들조차 깨뜨릴 정도인데!”
“닥치고 입 벌려! 사랑의 힘 들어간다! 오빠, 공격해. 내가 보조해 줄게.”
“응!”
김혜진의 외침에 도경수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도경수의 전신에 정령들의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전신은 깃털처럼 가벼웠으며 주먹을 쥐자 마치 태산이라도 부술 것처럼 힘이 넘쳤다.
그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도경수가 엔비를 향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사랑의 힘, 겪어봐. 질투 같은 하찮은 짓 하지 말고.”
“질투가 어때서! 자기! 넌 내 거야!”
“꺼져. 난 너같이 아무 남자에게나 손 벌리는 여자 필요 없어.”
그 말과 함께 도경수가 땅을 박차 엔비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