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17화
세 마왕(1)
“……넌 누구지?”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마족에게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최진혁은 제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최진혁의 질문에 마족이 이상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키히힛, 탐욕의 마왕 그리드다.”
-마왕? 마왕의 기운이 무슨?!
놀랍게도 최진혁 일행을 막아선 마족의 정체는 지구에 현신해 있는 줄 알았던 세 마왕 중 하나인 탐욕의 마왕 그리드였다.
그런 그리드의 말에 실피드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드의 몸에 내재되어 있는 힘과 마기는 결코 일개 마왕 따위가 보유하고 있을 정도의 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앞의 그리드가 평범한 마왕이 아니라는 증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격을 갖추고 있군.”
“키시싯! 눈이 좋네? 역시 딴 놈들을 죽일 정도의 실력이야! 키싯…… 키시싯!”
그리드는 무려 신격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도 최진혁보다 더욱 강력한 신격을 말이다.
거의 정령왕들과 비견될 정도의 신격에 실피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수가! 고작 마왕 따위가 어찌!
마왕들은 무척이나 강력한 존재는 맞았다.
신격의 개입이 없다면 하나의 세계를 혼자서 지배를 할 수도 있을 정도의 강자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부하 마족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마왕 개인의 무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신격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눈앞의 그리드는 신격을 이루고 있었다. 실피드 그 자신에 비견될 정도의 신격을 말이다.
-그래 봐야 하나다. 빠르게 처리하고…….
하지만 눈앞의 적은 그리드 하나였기에 놀랐던 것도 잠시 빠르게 그리드를 처리하고 마신의 성으로 향하려고 했던 실피드의 말은 그리드에 말에 의해서 잘렸다.
“누가 나 혼자 왔다고 했어? 키시싯!”
-……뭐라고?
그리드의 말에 실피드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면서 착지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는 놀랍게도 두 명의 마족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두 마족 다 앞서 나타난 그리드와 비교해도 그렇게 처지지 않는 이들이었다.
즉!
“난 식욕의 마왕 글러트니! 츄릅! 너희…… 맛있겠다!”
“질투의 마왕 엔비다. 너희 능력 탐나는데…… 나한테 주지 않을래?”
두 사람의 소개에 실피드를 비롯한 다른 정령왕들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태까지는 자신들과 비견되는 급의 강자가 없었기에 마족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버금가는 신격을 지닌 이가 나타났고, 더군다나 그들이 지금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곳은 마족들의 고향이자 마족들이 가장 강해지는 마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마왕들도 다르지 않겠지.’
마왕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른 마족들보다 그 상승폭이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최진혁을 비롯한 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세 마왕을 바라봤고, 그런 이들을 바라보면서 세 마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 이곳에서 죽을 것이고.”
“너희들의 시체는 마수들의 먹이가 될 것이며.”
“너희들의 능력은 우리가 취할 것이다.”
“가라, 마신님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여.”
“마신님을 해하려는 악독한 이들을 지워라.”
“너희들의 노고는 죽어서도 마신께 칭찬을 들으리라.”
세 마왕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조곤조곤했지만 듣는 이들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을 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목소리에 담긴 신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최진혁의 일행에는 없었지만 마족들은 달랐다.
“우오오오! 마신을 위하여!”
“내 목숨을 마신께!”
마치 광신도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에 최진혁 일행은 진땀을 흘리면서 달려오는 마족들을 막아섰다.
콰앙!
-크윽, 이 자식들 방금이랑은 차원이 다른데?
-방심하지 마! 마신이 코앞에 있어서 그런지 더 강해졌다!
방금까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정령왕들의 방어를 깨뜨릴 정도의 공격을 퍼붓는 마족들의 모습에 정령왕들이 인상을 썼다.
사실 그들이 상대하던 마족들도 딱히 약한 마족들이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인 힘 앞에 두려움이 먼저 앞섰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세 명의 마왕의 목소리에 담긴 기묘한 힘에 의해서 버서커 모드에 들어가게 된 덕분에 지금의 그들은 두려움 따위는 모르는 광전사, 광신도가 된 것이다.
“키시싯! 죽어라!”
“큭, 감히 마족 따위가!”
“숙이세요! 루더슨!”
콰과과광!
정령왕들이 마족들의 공세를 막는 동안 나머지 일행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다름 아니라 세 명의 마왕이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정령왕을 제외하면 1 대 1로는 그들을 막아낼 이들이 없었기에 일행 중에서 가장 강력한 최진혁 혼자서 마왕 하나를 상대했고, 나머지 두 마왕은 각자 두 명이서 맡아서 상대했다.
탐욕의 마왕 그리드 – 최진혁
질투의 마왕 엔비 – 도경수 , 김혜진
식욕의 마왕 글러트니 – 루더슨, 엘리쟈
대치 구도는 이렇게 정해졌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팀도 꾸려졌으니 최진혁 일행은 빠르게 마왕들을 몰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네 녀석의 소환수들…… 탐이 나는군. 내가 가지겠다!”
“……뭐라고? 이런!”
그리드의 말에 의아해하던 최진혁은 소환수들의 명령권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 당황해했다.
예전에 도미닉에게 비슷한 일을 당했던 탓에 빠르게 대처해서 소환수들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시시싯! 만족! 만족스럽구나!”
“……4할인가.”
짧은 시간 사이에 무려 4할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소환수들을 빼앗겨 버렸다.
물론 다시 만들어내면 그만이지만 그런다고 해서 또다시 안 뺏길 거라는 보장도 없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최진혁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맺혀 있었다.
“재밌군. 소환수 대 소환수의 대결로 해보자는 건가?”
“크캬캬캿! 내가 뺏은 녀석들의 수가 적다고는 하나 나는 마왕! 언데드들을 강화시키는 방법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 네 녀석의 시답잖은 소환수들을 분쇄하는 데에는 4할로 충분하다!”
“그런가? 재밌군. 나랑 생각이 그렇게 똑같다니 말이야.”
후우우웅!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의 로브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검은 빛의 무언가가 로브를 투과해서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에게 흡수되었다.
“뭐…… 뭐냐?!”
“1 대 1이 아니라 소환수 싸움으로 끌어들인 걸 후회하게 해주마. 데스 오라. 진격하라 나의 군단이여.”
쿠웅! 쿠웅! 쿠웅!
최진혁의 명령에 데스 오라가 완전히 자리 잡은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이 방금까지 자신들의 동료였던 언데드들을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그런 언데드들의 모습에 그리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자신의 마기를 뿜어내어 최진혁과 마찬가지로 언데드들을 강화시키며 말했다.
“시…… 시시싯! 말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과연 그럴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말이 있지. 하지만 지금은 딱히…… 대볼 필요가 없을 것 같군.”
“으득, 끝에도 그렇게 여유만만하기를 빈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내 여유만만한 모습을 네가 볼 일은 없을 거다.”
그 말과 함께 최진혁과 그리드의 언데드가 격돌했다.
* * *
쾅쾅쾅!
“휘유, 저기도 벌써 싸우고 있네.”
“오빠! 앞에!”
“읏!”
카가가각!
멀리서 벌어지는 언데드들끼리의 싸움을 바라보던 도경수는 김혜진의 뾰족한 비명에 깜짝 놀라며 앞을 바라봤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엔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엔비의 날카로운 손톱을 팔을 교차시켜서 막아냈다.
하지만 고된 수련으로 강철과도 같은 몸을 가지게 된 도경수였지만 엔비의 손톱은 막아낼 수 없었다.
손톱 공격을 막아낸 대가로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가지게 된 도경수는 고통에 인상을 쓰면서 엔비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마왕이라는 녀석이 기습을 하냐?”
“한눈을 판 네 잘못이지. 너희들의 사이…… 질투 나는걸?”
“아가리 닥치고 덤벼!”
“꺄하핫! 옆에 촌티 나는 년 말고 나는 어때? 더 잘해줄 자신 있는데 말이야. 물론~ 밤에는 더욱 화끈하게 해줄게~!”
“썅년이 누굴 넘봐!”
“혜…… 혜진아?”
엔비의 말에 김혜진이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고도 분이 가시지 않는지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로 엔비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입 잘못 놀리면 뒤져서도 편히 못 뒤지는 거야. 알아?”
“너 같은 촌년에게 저 남자는 너무 아까운걸~? 지금 내게 넘기는 게 저 남자도 그렇고 너한테도 좋은 일이지. 넘기고 조용히 사라지면 모른 체해줄게~.”
“닥쳐, 너도 죽고 오빠도 내 거야.”
“그으래? 그럼 죽이고 가져가면 그만이지!”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그렇게 말하며 김혜진은 도경수의 팔을 치료해 주고 정령들을 소환했다. 하급, 중급, 상급 가리지 않고 소환된 정령이 주위를 수놓았다.
수천, 수만에 달하는 정령들의 모습에 엔비는 황홀한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하아, 저 정령들이 이제 다 내 거라니~ 너~무! 행복해~!”
“미친년! 오빠!”
“어? 어어…….”
그런 엔비의 모습에 김혜진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면서 도경수를 불렀고, 김혜진의 손에 떠밀려서 도경수는 얼떨결에 엔비를 향해 달려갔다.
물론 시작은 엉성했지만 엔비 앞에 도달한 도경수는 주먹을 정확하게 엔비를 향해 내지르고 있었다.
“어머~ 우리 자기 나 보러 온 거야?”
“……혼나니까 좀 닥치고 죽어!”
그런 처절한 도경수의 비명과 함께 엔비 VS 도경수, 김혜진의 싸움도 시작되었다.
* * *
“네가 분노를 죽인 녀석이구나?”
“……네 녀석을 죽일 녀석이기도 하다는 점 명심해라.”
“츄릅…… 그런 게 일류 식재료이기도 하지.”
“쯧, 역겨운 소리 하지 말고 덤벼라.”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폭식의 마왕 글러트니는 펄쩍 뛰어 단박에 루더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글러트니의 전신에는 날카로운 상어 이빨 같은 이빨이 수두룩하게 달린 입들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입들이 루더슨의 몸과 가까워지자 딱딱거리면서 입맛을 다셔대었다.
그런 흉측한 모습에 루더슨은 혀를 차면서 검을 휘둘러 글러트니의 공격을 막아 세웠다.
드드드득!
“어…… 이건 또 뭐야!”
“후우, 루더슨 나도 있다는 사실 잊지 마요.”
“……깜빡했군. 그럼 짧지만 잘 부탁하지. 정령은 무척이나 유용하니 말이야. 루미.”
-네!
“너도 도와라. 악을 처단하는 일이다. 본래는 어린애의 손을 빌릴 생각은 없었지만…… 후,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쩔 수 없지.”
-괜찮아요! 저만 믿으세요!
“고맙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하는 루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루더슨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간다. 마왕.”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말에 글러트니는 자신의 발목을 감싸고 있는 나무뿌리들을 씹어 먹으면서 빙그레 웃었다.
“얼마든지. 맛있는 식재료가 제 발로 오겠다는데 거절할 미식가는 없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