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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14화 (114/149)

리치, 헌터가 되다! 114화

마계(2)

슈슈슈슉!

“후우, 어지럽군.”

“웩…… 웨웩…….”

“으이구, 오빠는 왜 이렇게 약해! 딴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혜진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컥!”

“됐고, 속은 어때? 아직도 메스꺼워?”

루프르스의 도움으로 차원 이동을 한 탓인지 도경수는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면서 괴로워했다.

아직 제대로 인간의 탈을 벗어던지지 못해서인지 도경수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이곳에 있는 면면들은 하나같이 대단했다.

불, 물, 땅, 바람. 총 네 명의 정령왕과 그들을 이끄는 김혜진과 엘리쟈는 어엿한 한 명의 신이었고 최진혁과 루더슨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에서 조금이나마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사람은 오직 도경수뿐이었다.

그렇기에 도경수만이 차원 이동의 후유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 도경수를 김혜진이 안쓰러운 얼굴로 토닥여 주었다.

신의 기운을 담아서 말이다. 그 덕분인지 도경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상으로 돌아와 부끄러워했다.

마족들과 싸운 것도 아니라 차원 이동 후유증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한 모습이었다.

“어, 고맙다. 혜진아.”

“으휴, 이렇게 약해서야 나를 지킬 수나 있겠어?”

“……너는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킬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흥, 두고 볼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혜진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지 입가에 미소가 맺혀 있었다.

그리고 신파를 찍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최진혁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사랑싸움은 지구로 돌아가서 해라.”

“……누가 사랑싸움을 한다고 그래요!”

“아니었나?”

“……맞긴 맞는데! 암튼 아니에요!”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고 말하는 김혜진의 모습에 최진혁이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그렇다고 치도록 하고. 확실히 여기가 마계는 맞는 건가?”

그렇게 말하며 최진혁은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 풍경은 살벌했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이 각각 두 개씩 떠 있으며 빠른 속도로 떴다 졌다를 반복했다.

그런 탓에 갑자기 더워지기도 했다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 괴상망측한,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날씨를 자랑했다.

거기에 주변 동식물도 이상했다. 식물들의 크기는 어지간한 사람 키의 두 배는 될 정도로 커다랬으며 동물들은 더했다.

사람을 대여섯 명 정도는 붙여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키와 덩치를 자랑했다.

사람의 몇 배나 되는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의 배는 되는 식물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주변 공기는 어찌나 탁한지 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입안에 모래가 씹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주변만 보고 이곳이 마계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실제 마계는 이곳보다 더 괴랄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이 마계인지 아닌지 확답을 해줄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령왕 혹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이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마계에 와봤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최진혁이었기에 한숨을 내뱉으면서 말했다.

“하긴 알 리가 없지. 물어본 내가 잘못…….”

-난 여기가 마계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을 하던 최진혁은 자신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이곳이 마계 같다고 말하는 실피드의 모습에 인상을 쓰면서 말을 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너는 마계에 와본 적이 없을 텐데?”

정령왕이 마계에 일부러 갈 리가 없었으니 실피드 또한 다른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마계는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혜진과 엘리쟈가 나타나기 전까지 실피드를 포함한 정령왕들의 힘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경우, 무척이나 불안전해지고 약해졌기 때문에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마계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넘어갈 일이 있었더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실피드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최진혁의 말에도 불구하고 실피드의 얼굴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실피드가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피드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네 말대로 나는 마계에 와본 적이 없어. 그건 나를 포함한 정령왕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하지만 꼭 와보지 않았더라도 이곳이 마계라는 것을 확인할 방법은 많다.

“많다고? 그게 뭐지?”

와보지도 않고 이곳이 마계임을 확신할 방법이 많다는 말에 최진혁은 두 눈을 반짝이면서 흥미로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마계인지 아니면 그저 생태계가 이상한 다른 차원인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루프르스 정도 되는 이가 실수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물음에 실피드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지.

“그게 뭐냐.”

-마계라면 뭐가 있을까?

“몬스터나 마수……?”

-그래, 그것들도 있겠지. 하지만 ‘마계’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있잖아?

실피드의 말에 잠시 턱을 괴고 생각을 하던 최진혁이 입을 열었다.

“마…… 족?”

-정답. 그래, 마계 하면 마족이지.

“근데 그게 이곳이 마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나?”

-당연히 되지. 니 뒤를 봐봐.

“……? 이런.”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돌렸고 어느새 자신들의 등 뒤를 바짝 쫓아온 수백, 수천이 넘는 마족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실피드가 말했다.

-마계에는 마족이 있고, 우리 뒤에는 마족이 있으니 여기는 마계가 맞지. 어때? 대단하지?

“으득, 대단하긴 대단하군. 적이 바로 뒤에 올 때까지 가르쳐 주지 않다니 말이야.”

-엥? 설마 너 못 느낀 거냐?

“……다른 차원이라서 감지가 약하다. 일단 닥치고 저 녀석들부터 상대해라.”

-알겠다고~

짜증이 가득 담긴 최진혁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실피드는 가볍게 답했다.

그러고는 곧장 자세를 잡았다.

주먹을 꽉 쥐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자리를 잡은 실피드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이내 마족들이 달려오는 방향을 향해 뿜어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

“뭐…… 뭐야?”

“당황하지 마라! 녀석들부터 잡…… 으아아앗!”

“날아가지 않게 땅에 몸을 고정시켜라아아악!”

실피드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저 가벼운 입김에 불과했지만 그 입김이 나와 최진혁 무리를 향해 다가오는 마족들에게 도착했을 때는 거대한 토네이도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실피드가 탄성을 내지르며 말했다.

-휘유! 진짜네! 마계에서도 힘이 전혀 줄지 않았어! 좋았어. 마족 녀석들 다 죽었…… 어라?

그리고 줄어들지 않는 힘에 기뻐하고 있을 때, 실피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크으윽, 빌어먹을 정령왕인가?”

“다들 정비를 마쳐라! 곧장 다시 진격한다!”

“마신께서 우릴 보우하신다!”

자신의 공격에 정통으로 당하고도 마족들은 비교적 멀쩡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피드는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망할, 마신 놈이 뻔한 수작을…….

바로 마족들의 전신을 얇게 두르고 있는 마신의 마기를 본 실피드가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마계. 마신의 손길이 가장 깊숙하게 닿아 있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실피드가 본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마계는 마족들의 고향.

그렇기에 마족들은 마계에 있을 때, 더 강력한 힘을 얻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마신의 마기까지 얇게나마 덮고 있으니 제아무리 정령왕이라고는 하나 단번에 고위 마족들을 죽일 수는 없었다.

본신의 힘을 가지고도 마족들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했다는 사실이 분한지 실피드가 주먹을 말아 쥐고 튀어 나가려고 하는 것을 최진혁이 막아 세웠다.

“가서 무얼 하려고 그러지?”

-당연히 저 녀석들을 쳐 죽…….

“혼자서? 수천의 마족들을? 그것도 고위 마족을? 적진 한복판에서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최진혁의 일침에 그제야 실피드는 분노가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자신의 힘을 견디고 멀쩡히 서 있다는 사실에 너무 지나치게 분노했기 때문에 가라앉는 것도 빨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후우,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같이 가자, 같이 가.

최진혁의 서슬 퍼런 눈빛에 결국 실피드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네 뜻대로 하라는 말에 최진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에 몸 좀 풀겠군.”

“쳐라!”

그 말과 함께 고위 마족들이 최진혁 일행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따악!

드드드득!

최진혁이 손가락을 한 번 튕김과 동시에 전세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키아아악!

고스트형 언데드인 벤시와 가장 많이 모습을 드러낸 스켈레톤들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고위급 언데드들이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듀라한, 데스나이트, 벤시, 거기에 마지막으로 둠 나이트까지! 그리고 그 수는 정령계에 가기 전의 수와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어마어마한 숫자에 마족들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찢어발길 것처럼 굴던 이들이 순한 양이 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분이면 충분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마족들이 언데드들의 군세 앞에 무릎을 꿇는 데는 말이다.

시작은 스켈레톤들이었다. 가장 하급의 언데드인 만큼 물량 하나만큼은 다른 언데드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스켈레톤들이 마족들의 발을 묶었고.

그 뒤를 벤시들이 뒤이었다. 섬뜩한 귀곡성을 터뜨리는 벤시들의 울음소리에 마족들의 고막은 터져 나갔으며.

혼란에 빠진 마족들에게 듀라한들과 데스나이트들이 다가갔으며 그들의 앞에는 둠 나이트들이 서 있었다.

연속적으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언데드 군단의 공격에 마족들은 제대로 된 반격은 하지도 못한 채, 천천히 무너져 갔다.

물론 언데드 군단에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개골이 깨어지고 검을 쥔 손이 날아갔으며 귀곡성을 내뱉던 목을 잘려 나갔다.

하지만 소멸하는 언데드들의 수보다 늘어나는 언데드의 수가 더 많았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며 사기를 돋우던 마족 공작들이 스켈레톤들에게 둘러싸여 생매장당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고위 마족들 사이에서도 피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아비규환을 최진혁은 팔짱을 낀 채,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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