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12화
새로운 신들의 탄생(2)
“헤헤헤, 우리가 조금 수고하기는 했지. 그렇지 엘리쟈?”
“응, 확실히 힘들기는 했어. 그래도 견딜 수는 있었어.”
“그럼그럼!”
힘들었다며 토로하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비에 젖은 손으로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그런데 괜찮나?”
“잉? 괜찮다니까?”
“아니, 그런 신체적인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거를 말하는 거다.”
최진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는지 김혜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진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시험은 완벽히 통과한 것 같은데 기억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거다.”
“……아!”
그제야 김혜진은 탄성을 내뱉으면서 도리질을 쳤다.
“괜찮아!”
“……정말이냐? 혹시 우리가 걱정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맞아, 혜진아. 힘든 거나 이상한 점 있으면 우리한테 다 말해도 돼.”
“오빠 이제 나보다 약하잖아. 아, 들어가기 전에도 약했나.”
“윽…….”
“장난이야, 장난. 그리고 진짜로 우리는 멀쩡해. 다만 김혜진 플러스 알파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엘리쟈, 너도 그렇지?”
“……응.”
“플러스 알파? 그건 무슨 의미지?”
김혜진과 엘리쟈의 말에 최진혁이 이해가 안 된다는 투로 두 사람에게 플러스 알파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질문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에 나섰다.
“그러니까 우리가 시험에 들어가서 정령신의 시험을 치렀잖아, 그지?”
“그렇지. 그리고 그곳에서 힘과 지식을 얻는다고 했었고.”
“그래, 그런데 거기서 중요한 게 있어.”
“뭐지?”
“정확하게는 지식이 아니라 기억을 얻는 거야.”
“기억을 말인가? 아…… 설마, 그 플러스 알파라는 게?”
“응, 우리 둘 다 정령신의 환생인 것 같아. 정확하게는 우리 둘의 정령신의 가장 큰 파편인 것 같아. 그 덕분에 기억도 얻었고. 기억 덕분에 기억이 난다. 어라, 말이 조금 이상한데?”
그렇게 말하면서 큭큭 웃는 김혜진의 모습에 최진혁은 착잡한 얼굴로 그런 김혜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이젠 네 녀석이 네가 아니게 되어버린 건가?”
“에이, 아니야. 아까 말했잖아, 플러스 알파라고. 그저 김혜진이라는 기억 위에 추가로 정령신의 기억이 얹어진 것뿐이야. 나는 김혜진, 얘는 엘리쟈. 오케이?”
“……알겠다. 그리고 늦었지만 축하한다. 엘리쟈 너도 말이다.”
“헤헤헤, 고마워.”
“……나도.”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건네는 칭찬에 두 사람은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네 명의 정령왕이 부복하면서 말했다.
-정령신을 뵙습니다.
하나하나만 해도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들이 넷 모두 부복을 하고 있는 장면은 그다지 보기 쉬운 장면은 아니었기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무뚝뚝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루더슨과 최진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부복을 받는 당사자인 김혜진과 엘리쟈가 느낀 당황스러움은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어…… 그…… 갑자기 이게 무슨……?”
그리고 그런 당혹감을 이겨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김혜진이 아니라 엘리쟈였다.
엘리쟈의 물음에 가장 앞에서 부복을 하고 있던 실피드가 고개만을 살짝 들어서 말했다.
-저희는 왕, 당신은 아직은 미숙하나 우리들의 신인 정령신의 환생이십니다. 물론 저희들의 신이 두 분이 되신 탓에 저희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리고 무언가 바뀐 것은 없습니까?
실피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엘리쟈는 몸 구석구석을 살피더니 이내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런 엘리쟈의 반응에 실피드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정령이 되셨군요.
“……알고 계셨나요?”
-아뇨, 그저 그럴 거라고 추측했을 뿐입니다. 전대 정령신께서도 인간의 몸으로 정령이 되는 기염을 토해내셨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그리고 실피드의 그런 말에 최진혁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며 물었다.
최진혁이 자신의 앞에 서자 실피드 또한 더 이상을 무릎을 꿇지 않고 곧게 서서 물었다.
-무얼 말하는 거지?
“두 사람이 더 이상 사람과 엘프가 아니게 되었다는 건가?”
-흐음, 그렇게도 해석이 되나 보군. 정확하게는 아니다. 반만 정령이 된 셈이지.
“반?”
-그래, 반이다. 정확하게 절반. 절반은 정령 나머지 절반은 사람 혹은 엘프인 셈이지.
“하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반만 정령 반만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믿지 않으면 어쩔 셈이지? 답은 네 눈앞에 있건만 말이야.
“큭…… 그래서 반인 정령이 되면서 생긴 안 좋은 점이 있나?”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침음을 삼키며 정령이 되면서 생긴 안 좋은 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이것에 대해서 묻기에 가장 좋은 이가 눈앞에 있었기에 최진혁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실피드는 ‘태세 변환 한번 참 빠르군’이라며 중얼거리고는 답을 해주었다.
-나쁜 점이 있을 리가. 정령은 모든 종족들에게서 장점이란 장점들은 모조리 가지고 있는 종족이다.
“……어떤 장점이 있지?”
-일단 반 정령이 된 이상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피로는 없을 것이고 정령계 내부에서는 다른 세계에서보다 배 이상은 강해지지.
“호오……? 그런데 정령들은 다른 세계로 넘어가면 그만큼 약해지지 않나?”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그런 페널티는 반만 정령이라는 것 때문에 중화되거나 아니면 아예 없을 거다.
“그것참 편리하군. 좋은 것들은 다 가져가고 나쁜 것들은 다 걸러낸다라…….”
-그런 덕분에 초대 정령신께서 루프르스께 간택받을 수 있던 것이었겠지.
“루프르스……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하긴 하겠군.”
이제 완벽하게 신의 자리에 올랐으니 조만간 한 번 더 루프르스가 자신을 부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여기는 그다지 대화를 나누기 좋은 곳은 아니니 말이야.”
후우우웅!
비바람이 몰아치는 탓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고,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내리는 비는 바닥을 진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럼 김혜진.”
“응? 왜?”
“비바람 좀 그치게 해봐라.”
그렇기에 최진혁은 이 비바람을 멈추어달라고 김혜진에게 부탁했고.
“……나 그런 거 할 줄 모르는데……?”
“뭐?”
그런 부탁에 김혜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하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 말에 최진혁은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지경이었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다니 말이다. 그렇기에 점점 아파오는 머리를 흔들면서 김혜진의 옆에 서 있는 엘리쟈에게 말했다.
“그럼 엘리쟈.”
“……응?”
하지만 시원찮게 대답하는 엘리쟈의 모습에 최진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말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너는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기대를 엘리쟈는 무참하게 짓밟아 버렸다.
“……미안, 나도 아직 그런 수준까지는…….”
“하아…… 그럼 또 걸어야겠군.”
그렇게 말한 최진혁은 자신들이 걸어오기 전보다 배는 거세진 폭풍우를 보면서 한숨을 내뱉으며 실피드에게 말했다.
“앞장서라, 실피드.”
-……또 나인가?
“그럼 이프리트를 앞에다가 세우든가.”
-……후우, 내가 가도록 하지.
불의 정령왕을 폭풍우가 치는 괴상망측한 날씨 앞에 세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실피드는 한숨을 내쉬면서 또다시 앞장서서 길잡이를 자처했다.
“고마워, 실피드!”
“감사합니다. 바람의 정령왕이시여.”
-……이제는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정령신들이시여.
그리고 그런 실피드에게 김혜진과 엘리쟈가 감사 인사를 표하자 실피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그리 말하고는 폭풍우를 뚫고 나갔다.
그리고 그런 실피드의 뒤를 다른 일행들이 뒤따랐다.
* * *
부르르르!
“어우. 춥다, 추워. 이러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쯧, 이제 곧 있으면 신위에 오를 녀석이 감기에 걸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 그건 그렇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도경수가 비에 젖은 몸을 부르르 털고는 마련된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어가며 말리고 있을 때였다.
“으휴, 뭘 그렇게 말리고 있어?”
“어?”
“정령이 된 여자 친구에게 부탁하면 쉽잖아, 안 그래?”
따악!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 도경수의 앞에 김혜진이 나타나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도경수의 전신을 감싸더니 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도경수의 몸을 말려주었다.
더불어 따뜻한 바람 덕분인지 낮아졌던 체온도 정상적으로 되돌아왔다. 사실 말했던 것처럼 도경수는 감기 증상이 있었다.
그냥 비가 아니라 신의 힘이 담긴 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신의 힘이 담긴 김혜진의 바람에 그런 감기 기운은 바람에 휘날려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것도 모르는 도경수는 그저 김혜진이 자신을 위해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쁜지 헤실헤실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따악!
“왜 이리 헤실헤실 웃어? 정신 차려, 앞으로 일 논의하러 가야지.”
“아야야…….”
하지만 그런 웃음도 잠시 이마에 작렬한 김혜진의 딱밤에 도경수는 별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 준비는 끝났나?”
탐과 데크 덕분에 몸이 젖기는커녕 옷도 젖지 않은 최진혁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우린 끝.”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이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확인한 최진혁은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다 말렸냐?
“그래, 나야 말릴 것도 없었지만 저 녀석 때문에 좀 걸렸다.”
-네가 이상한 거지, 저 녀석이 이상한 거냐.
바깥으로 나간 최진혁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실피드의 말에 고개로 뒤따라 나오는 도경수를 가리켰고, 그런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됐으니까 가자. 딴 녀석들 모두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엘리쟈도 먼저 가 있나?”
-그래, 그분도 이제는 어엿한 신이고 자신의 힘에서 비롯된 폭풍우였으니 피해가 있을 리가 없지. 먼저 회의장에 가 계신다.
“네가 엘리쟈에게 존댓말을 할 때마다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 같군.”
-닥치고 가지.
피식 웃으면서 말하는 최진혁의 모습에 실피드가 버럭 화를 냈고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최진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실피드의 손을 잡았고 이어서 김혜진과 도경수도 손을 잡았다.
-그럼 간다.
그 말과 함께 네 사람은 순간 이동으로 사라졌고, 그들이 서 있던 자리에는 그들이 있었다는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