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10화
권능(3)
“후우, 그럼 이제 시작해 보실까?”
그렇게 말하며 최진혁은 마치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죽음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시체를 창조하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시체가 시체일 수 있는 이유인 그 근원, 죽음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이게 죽음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진혁은 처음 죽음을 느꼈다. 생명의 위험이나 그런 것에서 오는 죽음이 아니라 원초적인 죽음 말이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그런 죽음의 기운을 조금씩 느껴가면서 최진혁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조각을 하는 조각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꽤 쉬웠다. 죽음을 느끼는 과정은 이미 많이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최진혁의 삶에서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아르말딘 대륙에서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산다는 용병들조차 최진혁보다 가깝지는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지금에 와서 최진혁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권능: 죽음을 다뤄본 경험도 한몫 해주었다.
모든 생명체에게 공평하게 죽음을 선사해 주는 권능 또한 신의 덕목 중 하나였기에 당연히 익히고 갈고닦았기 때문이다.
물론 권능: 죽음으로는 신들 정도의 존재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최진혁이 창조하는 죽음은 권능: 죽음과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이게 성공한다면…… 신들에게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겠군.’
바로 이 죽음은 신들에게도 통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생, 불멸, 영원 같은 권능들을 기본으로 달고 있는 신들이기에 이름처럼 단번에 죽음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계속해서 적중시킨다면 정말로 신들조차 죽음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최진혁의 무뚝뚝한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이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은 마법사 시절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던 마법보다 더욱 고차원적이고 유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죽음을 느낀 최진혁이 다음으로 한 것은 죽음을 유형화시키는 것이었다.
권능: 죽음은 드래곤들이 사용하는 파워 워드 킬과 비슷했다.
그저 ‘죽어라’라는 한 마디면 그들보다 정신력이 약한 이들은 절명하는 것 말이다.
신들이 사용하니 갓 워드 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권능: 죽음이 파워 워드 킬보다는 한 단계 더 위에 랭크된 능력이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파워 워드 킬이 약한 능력이라는 것은 아니다.
드래곤들보다 약하기만 하다면 소드마스터든 그랜드마스터든 할 것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신이 보고 느끼고 있는 죽음을 다른 이들의 눈에도 보이게 하고 공격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최진혁은 곧장 유형화 작업에 들어갔다.
“후우…… 후우…….”
츠츠츠츠…….
그리고 유형화 작업은 최진혁으로서도 무척이나 힘든 작업임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은 신의 영역, 그것도 꽤 고위의 능력이었다.
그것을 본래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려고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실질적으로는 창조와 죽음 두 가지의 권능을 다루는 셈이었기에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 예로 최진혁의 이마에는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성과도 없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최진혁의 앞에 불완전하게나마 검은색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형태가 유지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꿈틀거릴 때마다 최진혁은 형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힘을 쏟았다.
치이익…… 치이익…….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최진혁과 무언가의 주위가 마치 산이라도 뿌려진 것처럼 거멓게 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 따위에 최진혁은 연연하지 않았다. 물론…….
-꺄아아악! 정령계가 죽어가고 있어!
-왕께 가서 빨리 불러와! 누구든지 좋으니까!
주변에서 뛰놀던 정령들은 상관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나고 자라온 세계가 죽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주 적은 면적만이 그곳에 해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평생토록 오염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정령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탓에 정령들은 평생 내본 적이 없는 최고 속도로 자신들의 왕을 향해 달려갔고, 이내 네 명의 정령왕이 최진혁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 또한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저 녀석이 한 것인가? 믿기지 않는군.
-어떻게 한 것이지? 이곳 정령계는 우리 넷의 힘과 정령신의 힘으로 보호받는 곳. 이제 막 신위를 얻은 애송이가 할 수 있는 이적이 아니다.
-하아, 잠잠하더니 또 사건을 터뜨리는군. 대단하다, 대단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다름 아니라 그들이 지금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정령계는 그들의 힘은 물론이고 이제는 사라진 정령신의 힘이 담긴 세계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신들과 그들 넷의 힘을 합친 것보다 강한 신 하나.
도합 다섯이 넘는 신의 힘이 담긴 세계가 고작해야 이제 막 신위에 오른 최진혁이 만들고 있는 무언가에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범위가 고작해야 몇 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만 놀래고 피해나 줄이자고.
-그래야겠군.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내가 동쪽을 맡지.
-그럼 내가 서쪽.
하지만 그렇게 놀라는 것도 잠시 정령왕들은 각자 최진혁의 방위를 점했다. 그리고 장승처럼 서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점점 커져가는 죽음의 기운을 막기 위해서였다. 네 명의 정령왕 덕분에 간신히 정령계 전체로 퍼져 나가던 죽음의 기운에 제동이 걸렸다.
-흐으으음…….
하지만 최진혁이 서 있는 1m 남짓한 공간까지 정화시키지는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정화를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치이이익!
-쯧, 정화하자마자 바로 저렇게 되어버리니 손쓸 방법이 없군.
최진혁이 서 있는 공간은 정화를 하자마자 곧장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거기에 최진혁이 서 있는 공간을 정화하는 데에 들어가는 힘은 다른 곳을 정화하는 데에 들어가는 힘에 배는 되었기에 네 명의 정령왕은 혀를 차면서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지 않게 막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이 사건의 주동자인 최진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거야?
* * *
‘크으, 이거 죽겠군.’
정령왕들이 네 명이나 모여 있었지만 최진혁은 그들이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최진혁에게는 그런 것을 확인할 여유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정신을 죽음을 창조하는 것에 쏟는 것도 그 이유였지만…….
‘마나…… 마나가 부족하다!’
다름 아니라 권능을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마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창조로 마나를 창조하는 식으로 부족한 마나를 보충했겠지만…….
‘쯧, 한 번에 두 개의 창조는 불가능하다니…….’
죽음을 창조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나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평소 같았으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이었지만…….
‘이대로 가면 마나가 모조리 고갈된다…… 그렇게 되면 끝이다.’
지금 최진혁은 죽음을 만드는 데에 모든 것을 쏟아냈고, 결국 죽음을 유형화시키는 데에 성공해 이제는 그 형태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겨우 한 발자국만 남았지만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사그라질 것 같다는 생각에 최진혁의 마음에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바로 그때였다.
-정신 줄 꽉 잡아라.
‘실피드?’
-그래, 실피드 맞으니까 내 말대로 정신 줄 꽉 잡아라.
‘네 목소리가 갑자기 왜 들리는 거지?’
-……니 옆에 우리들 전부 다 있거든? 눈치도 못 챘냐?
‘……대체 언제 온 거냐?’
-온 지 꽤 됐으니까 정신 줄 꽉 잡아라. 지금부터 우리가 너한테 마나 보내줄 테니까 고통에 기절하면 진짜 다 X되는 거야.
갑작스레 들려온 실피드의 말에 놀라는 것도 잠시 최진혁은 두 눈을 꾹 닫고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그리고.
파아아앗!
최진혁의 몸에 마나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정령왕의 마나라고 해야 할지 정령왕들의 마나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불의 마나가 주입될 때에는 뜨거움이.
물의 마나가 주입될 때에는 차가움이.
바람의 마나가 주입될 때에는 시원함이.
마지막으로 땅의 마나가 주입될 때에는 푸근함이 느껴졌다.
‘……고맙다.’
-알았으니까 그거나 빨리 완성시켜. 정령계 죽는다, 죽어. 혹시나 그거 터뜨리면 진짜 죽는다. 너, 경고했어.
‘알겠다. 반드시 성공시키도록 하지.’
실피드의 살벌한 경고에도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이제 다시 가득 차오른 마나를 느끼며 눈앞에 죽음을 향해 마나를 불어넣었다.
갑작스레 늘어난 마나에 사춘기의 아이처럼 발버둥 치던 죽음은 이내 최진혁의 마나에 의해서 얌전해졌다.
그리고…….
-……넌 누구야?
“……네 주인이다.”
-헤에? 그럼 나는 누구야?
“너는…… 어둠과 죽음의 정령. 데크다.”
-데크? 나 데크야? 마음에 들어!
뭉쳐진 죽음은 하나의 정령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창조를 마친 최진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그런 최진혁의 주위로 정령왕들이 다가와 물었다.
-이게 새로운 정령인가?
-한 녀석은 빛의 정령을 만들어내더니 이제 다른 한 녀석은 죽음과 어둠의 정령을 창조해 내는군.
-아무리 비슷하다지만 두 가지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정령이라니…… 신기하면서도 대단하군.
-그런데…… 저 꼬맹이가 지니고 있는 힘이 우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그리고 정령왕들은 직감했다. 이제 막 태어난 저 작은 정령이 자신들과 비교해도 전혀 처지지 않는 새로운 정령왕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 나보다 강력한 소환수라니…… 색다른 경험이로군.”
그 덕에 최진혁은 자신보다 강한 소환수를 거느리게 되었다.
-나 배고파…….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난 정령왕이 배고픔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정령계에 울려 퍼졌고, 그런 탓에 어쩔 수 없이 정령왕들은 새로운 정령왕을 데리고 자신들의 거처로 데려갔다.
-아빠도! 아빠도 같이 가!
“……알겠다. 나도 같이 가도록 하지.”
……예정에도 없던 아빠 호칭을 가지게 된 최진혁도 함께였다.
* * *
와구와구!
“맛있느냐?”
-응! 이거 맛있다!
최진혁의 물음에 데크는 입가에 묻은 정령석 부스러기를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웠는지 최진혁은 데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곳에는 너랑 비슷한 녀석이 있으니 그 녀석과는 친하게 지내거라.”
-친구? 친구 좋아!
“친구라…… 친구라고 할 수도 있겠지.”
데크의 말에 최진혁은 루미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궁!
정령계에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재해에 최진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실피드! 이게 무슨 일이냐.”
-…….
최진혁의 말에 실피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김혜진과 엘리쟈가 시험을 치르기 위해 들어갔던 방향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