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09화
권능(2)
-쿨럭…… 으아! 또 졌어!
“후우, 이번엔 조금 위험했어, 실피드.”
-젠장! 젠장! 조금 위험하면 뭐 하는데! 어차피 진 건 나고 이긴 건 넌데!
실피드의 울분이 담긴 목소리에 도경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런 실피드의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
질 때마다 겪어온 레퍼토리이기에, 저것에 하나하나 대꾸해 주다 보면 하루가 다 가기 때문이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도경수의 모습에 실피드는 무안한 얼굴을 하면서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났다.
그런 실피드에게 도경수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도경수의 배려에 실피드는 감사 인사를 하고 저 멀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최진혁과 루더슨을 향해 걸어갔다.
-여어, 뭐 보고 느낀 점이라도 있나?
“네가 무참하게 발리는 것에 대한 감상문도 적어야 했나? 이런, 미안하군. 금방 적어서 주지.”
“……나도 깜빡했군. 조금만 기다려 주게. 바람의 정령왕이여.”
-니들 일부러 나 멕이는 거지.
그리고 둘의 반응에 실피드의 이마에 십자 혈관이 툭 튀어나왔다. 그런 실피드의 모습에 무표정한 얼굴로 아공간에서 주섬주섬 종이를 꺼내려던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창조에 대해 조금 더 눈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좋은 경험이었어. 그 바람들도 전부 네가 만들어낸 건가?”
“그래, 이게 나아가면 정령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거지. 어때? 해볼 수 있겠어? 생명의 창조를 말이야.”
“……흐으음.”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턱을 괴고 고민에 빠졌다. 바로 생명의 창조라는 실피드의 말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최진혁은 창조를 무척이나 많이 사용했었다.
마왕들과의 전투에서도 사용했고, 정령계에 와서는 수련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마왕과의 전투에서는 시체들과 마나를 창조했었고, 정령계에서는 돌멩이나 바람 혹은 불같은 것을 창조해 냈다.
정령들처럼 혼자서 생각하고 사고하고 말을 할 줄 아는. 즉, 살아 있는 무언가를 창조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죽어 있는 것은 잘 만들어도 살아 있는 것은…… 못 만들 것 같다.”
-쯧, 어쩔 수 없지. 그러면 루더슨, 너는 어때? 가능할 것 같아?
“……잘은 모르겠지만 될 것 같다.”
-오, 진짜? 거짓말 아니지?
“내가 여기서 들킬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
-큼큼, 뭐 그건 그렇지만…… 그럼 한번 만들어봐. 내가 봐주지.
“알겠다.”
실피드는 그 말을 끝으로 루더슨에게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루더슨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무언가 비켜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최진혁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주위에 방해꾼(?)들이 사라지자 루더슨은 두 눈을 감고 창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파아아앗!
루더슨의 앞에 새하얀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루더슨이 사용하는 신성력과 똑 닮은 색의 빛이었다.
“여기까지는 여태까지 했던 구간이군.”
-조용히 해라. 시도조차 못 하는 녀석이 말은…….
“…….”
실피드의 말 한마디에 격침당한 최진혁은 조용히 루더슨을 바라봤다. 그리고 점차 빛무리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뭉쳐진 빛무리들이 모양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포옹!
-안녕?
“……오, 됐다.”
그리고 뭉쳐진 빛무리가 사람 형상으로 빚어지고 얼굴과 몸까지 완전히 빚어지자 루더슨이 창조해 낸 무언가가 인사를 해왔다.
루더슨이 창조해 낸 무언가를 유심히 보던 실피드의 입이 열렸다.
-……정령이로군.
“다행히 생각대로 창조가 되어서 다행이군.”
-내가 정령들을 만드는 걸 보고 참고한 건가?
“그래, 확실히 옆에서 보니 이해가 잘되더군. 덕분에 이렇게 훌륭히 성공을 이뤘다. 물론 신성력이 다량 소모되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완벽하군. 그럼 이 조그마한 정령이 정령왕인가? 하하하, 동료가 늘었군.
실피드의 농담에 루더슨이 피식 웃었다.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면서 실피드가 물었다.
-그래서 이 조그마한 아가씨의 이름은 뭘로 할 거지?
“빛의 정령. 이름은 루미로 하도록 하지.”
-빛의 정령이라…… 생김새와 잘 어울리는군. 축하한다. 생명의 창조를 해낸 것을 말이야.
“칭찬 고맙군.”
-그래서…… 이렇게 네 동료는 생명의 창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새로운 종족까지 빚어냈는데 너는 무슨 생각이 안 드나?
“……조용히 해라. 고민 중이니까.”
-그래, 그럼 이만 나도 가보도록 하지. 도경수는…… 이런, 벌써 들어갔나.
고민을 하는 최진혁의 모습을 뒤로한 채, 실피드는 사라졌고 루더슨은 자신이 만들어낸 정령이 신기한지 정령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정령의 모습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런 루미의 얼굴은 루의 얼굴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 * *
김혜진과 엘리쟈가 정령신의 시험을 치르러 들어간 지도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물론 현계에서야 이제 막 3일밖에 안 지났지만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있지만 3년이라는 시간도 많은 것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첫 번째로는 도경수의 변화였다. 2년 전, 그러니까 김혜진과 엘리쟈가 들어간 지 1년 차의 도경수도 무척이나 강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도경수는 인간의 범주 내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도경수는 절반 가까이 인간의 탈을 벗어던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정령계에 처음 들어왔을 무렵의 최진혁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지금의 도경수도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루더슨이었다. 루더슨은 2년 전에 처음으로 생명을 창조해 냈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루더슨은 정령계에 다섯 번째 구역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물론 빛의 정령왕인 루미가 가진 힘은 미약했다.
애초에 그녀의 창조주인 루더슨도 아직 완숙한 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탓도 있지만 다른 정령왕과 태어난 시간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탓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하 정령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고, 다른 정령왕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루미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빛의 정령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상급 정령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수만이 넘는 빛의 정령들의 어버이가 돼버린 루더슨은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이내 그런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정령신의 시험을 치르러 간 김혜진과 엘리쟈에 대한 소식이었다.
실피드는 두 사람이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최진혁과 루더슨 그리고 도경수에게 전해주었다.
그런 탓에 세 사람은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제 곧 시험을 마치고 나올 두 사람에게 뒤처질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박차를 가했음에도 최진혁은 아직 생명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후우, 답이 안 보이는군.”
처음 창조의 권능을 다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최진혁이 느끼는 답답함은 무척이나 커다랬다.
지난 2년 동안 시도조차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 또 실패군.”
파스스…….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는 시체들뿐이었다. 그리고 사방에 정화의 기운이 가득 찬 정령계는 그런 불필요한 것들을 곧장 배제했다.
그 덕분에 최진혁의 힘으로 만들어진 시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시체의 최후(?)에 최진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소각로에 던져진 쓰레기처럼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최진혁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었다. 그것도 검을 쓰는 소드마스터 정도 수준의 기사를 말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반만 성공했다. 최진혁이 만든 것은 소드마스터의 힘을 가진 시체였기 때문이다.
“하아……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건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최진혁은 다시 한번 창조의 과정을 곱씹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고 되짚어봐도 과정에서 틀린 부분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2년이나 반복되었으니 최진혁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재밌는 일도 2년이나 쉬지 않고 하면 때려 부수고 싶을 정도로 재미없는 일이 되는데 스트레스를 주고 화를 내게 만드는 일을 2년간 쉬지 않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2년 동안 최진혁이 이것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창조를 제외한 신이 되기 위해 필요한 다른 권능들을 모두 깨우친 것이다.
재능이 넘치는 천재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듯이 최진혁은 빠른 속도로 권능을 익혔고, 그 결과 이제는 당당하게 신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피드의 놀림뿐이었다.
-생명도 창조하지 못하는 신도 있었나?
이런 놀림에 최진혁이 와신상담의 마음가짐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괴로워하던 때에 최진혁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만…… 혹시…….”
그리고 최진혁은 그 생각을 곧장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생명의 창조에 실패하는 이유는 내가 익힌 것들에 대한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부작용은 권능 죽음을 익힌 뒤부터 더더욱 그랬지. 그러니까 생각을 바꿔본다.’
최진혁은 자신이 여태껏 생명을 창조하는 데에 실패했던 이유를 얼핏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직업 특성 탓이라고 말이다.
최진혁의 직업은 엄밀히 따지면 네크로멘서, 죽음을 다루는 자다.
최진혁이 죽음의 군주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그런 직업적 특성 때문이었다.
죽음을 다루는 자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의 기운이 붙어 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수십, 수백 년 동안 쌓여 최진혁의 영혼까지 붙어 다니게 된 죽음의 기운이 거듭된 실패의 원인이라고 최진혁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발상의 전환을 했다.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창조한다. 거기에 권능 죽음을 더한다면 금상첨화겠군.’
굳이 남들이 가던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내가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갈 길은 내가 만든다.’
아르말딘 대륙 시절부터 최진혁은 남들이 닦아온 길, 왕도가 아니라 언제나 사도를 택했다.
그리고 왕도를 택해야 할 때, 사도를 택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최진혁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그런 자신을 자책했다.
‘나도 급했나 보군. 벽에 막혔다는 사실에 말이야.’
평소에 벽에 막혀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런 조급한 마음이 컸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주 겪게 되면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처음 겪는 일은 누구나 당황하게 되고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당황하게 되면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창조의 실패도 같은 이유였다.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실패들의 연속에 당황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최진혁을 사도가 아니라 왕도로 걷게 하였다.
자신도 모르게 택해서는 안 될 길을 택했다는 것을 자책하면서 최진혁은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성공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