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08화
권능(1)
김혜진과 엘리쟈가 사라진 지도 정령계 시간으로 한 달이나 흘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최진혁과 루더슨 그리고 도경수는 정령왕들에게 교습을 받고 있었다.
-아오! 창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봐봐!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똑같지 않았나?”
“내 생각도 그러하다.”
-이 답답한 새끼들아!
하지만 실피드에게 권능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최진혁과 루더슨은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권능을 배우는 일은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둘과는 달리 도경수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훅! 후욱! 훅!”
-그렇지! 잽! 잽! 훅! 사이드 킥!
“……후욱.”
이프리트부터 시작해서 아쿠아와 어스 그리고 실피드까지 총 네 명의 정령왕들과 대련을 하면서 도경수는 단 한 달 만에 독보적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실피드가 건네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확실히 이 투신에 대해서 적힌 책의 도움이 크긴 크네, 후우.”
이프리트와의 대련을 마치고 도경수는 숨을 헐떡이면서 자리에 주저앉아 투신 일대기라고 적힌 조잡한 제목의 책을 펼쳐 들었다.
그렇게 책을 펼쳐 든 도경수는 이내 책에 빠져들었다. 실제로 책으로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혀를 내둘렀다.
“대체 저런 책은 어디서 구하는 거야?”
-내 예전 계약자였다. 재밌는 친구였지. 천생 무투가 주제에 후대를 위해서 대마법사를 찾아가 저런 책을 만들어냈으니 말이야.
“둘 다 미치광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군.”
-너도 그 미치광이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수련이나 계속하지.”
-아니 여기서 끝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니까 혼자서 해봐. 너희들은 조금 감을 잡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권능을 얻을 방법도 생각해 보고.
“후우, 알았다.”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과 루더슨은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권능을 장시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몸에 무리를 주는지를 체감하면서 말이다.
마나는 충분했다. 정령계는 지구의 수 배가 넘는 마나가 대기 중에 떠다녔으니까 말이다. 창조로 마나를 만들 필요조차 없었다.
다만 수십 번, 수백 번을 넘어서 수천 번 넘게 권능을 쓴 대가는 정신력의 고갈이었다.
9서클을 넘어서 신을 바라보는 최진혁의 정신력을 다 닳게 할 정도였으니 얼마만큼의 고단한 수련이었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소드엠퍼러라는 지고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루더슨이 휘두른 검의 횟수를 합치면 아마 수백만 번이 넘었을 거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시간을 흔들림 없이 버텨내던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로 최진혁의 옆에 주저앉아서 숨을 헐떡였다.
“후우, 후우…… 이 권능을 다루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군.”
한 달 동안 루더슨은 창조의 권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네 명의 정령왕 덕분이었다. 아마 혼자서 얻으려고 했다면 수십 년이 흘러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정령왕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둔 덕이었다.
그리고 최진혁보다 권능을 다루는 감각이 떨어지는 루더슨이었기에 더더욱 힘들어했다.
부족한 감각을 무지막지한 횟수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런 둘을 내버려 두고 실피드는 도경수가 빨려 들어간 책을 집어 들었다.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도경수가 들어간 책은 제목대로 투신의 일대기를 적어놓은 책이었다. 그리고 저 책을 읽게 되면 투신이 걸어온 삶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책 속 세계에 들어가 투신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배워 나가는 것이다. 주먹질 하나부터 발차기 하나까지 말이다.
-지금은…… 어릴 적 투신의 삶인가?
그리고 책은 투신의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지금 도경수가 겪고 있는 시기는 투신의 유년기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의 투신도 어지간한 기사들은 두들겨 팼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도경수가 더 강하기에 맞지는 않고 기본기를 배우고 있을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애에게 고개를 숙여가면서 배운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도경수는 그런 티를 하나도 내지 않고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다시 배워가고 있었다.
그렇게 배운 기본기는 현실 세계로 돌아와 대련을 할 때 더더욱 빛을 발했다.
그런 도경수를 보며 실피드는 도경수가 조금씩 다듬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몇 년이 지난다면 도경수도 신좌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던 실피드는 최진혁과 루더슨에게 시선이 가자 인상을 와락 구겼다.
-으휴, 저 녀석들은 어째야 하나…….
최진혁은 분명 재능이 있으나 틀에 갇혀 있고 자신의 방법을 고수한 탓에 자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루더슨은 자신의 말을 하나하나 곱씹는 노력은 좋았지만 가장 중요한 재능이 부족했다.
이래서는 다른 권능들을 얻어서 신이 되기는커녕 창조의 권능을 완벽하게 다루는 것도 무리였다.
그렇기에 실피드는 손을 이마에 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구만 힘들어…….
* * *
-이젠 좀 괜찮네.
“후우…….”
실피드의 말에 최진혁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김혜진과 엘리쟈가 시험을 치르러 들어간 지도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최진혁과 루더슨은 성공적으로 권능들을 익히고 깨우쳐 나가고 있었다.
그 결과 신이 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권능들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신의 권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권능인 창조와 파괴 또한 완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즉, 이제 두 사람은 신이라고 칭해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실피드 또한 두 사람을 인정해 주었다.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신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도경수는 어디에 있지?”
-그 녀석이야 이제는 아예 책 속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도경수는 실피드의 말대로 투신의 일대기 속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책 속에서 보낼 정도였으니 말 다 하지 않았는가?
이제 도경수는 투신의 유년기를 넘어서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본격적으로 투신의 무력이 쌓이는 시점이었기에 도경수도 투신에게 밀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경수는 더더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투신은 뛰어난 무투가이면서 권사였기에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한 도경수는 정령왕들과의 대련과 수련도 제쳐두고 투신과 같이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투신의 주위에는 투신 정도는 아니어도 비등한 강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그들과 같이 모험을 다니면서 도경수의 능력은 점점 더 강해졌고, 수련을 하기 전 루더슨과 최진혁 정도의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인간의 몸으로 신의 자리까지 노리게 된 것이었다.
최진혁과 루더슨처럼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고 본래는 평범한 B급 각성자였던 이가 말이다.
누군가 본다면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로 칭할 정도의 주인공이 된 도경수는 지금도 열심히 투신과 모험을 하고 있었다.
생사를 가르는 전투 속에서 도경수는 자기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었다.
물론 소설 속의 내용이기에 죽어도 정신적인 충격만을 얻을 뿐 진짜로 죽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고련이 조금 덜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죽기 전까지의 도경수는 현실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즉, 책 속의 도경수에게 죽음은 실제 죽음이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나오면 여태까지 얻었던 수련의 성과들을 정신과 몸이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기억까지 얻게 되면서 도경수는 점점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두려움이 사라진 도경수의 주먹은 날카로움을 얻었다.
파라라락…….
-마침 죽었나 보군.
그렇게 실피드와 최진혁이 도경수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도경수가 들어간 책이 펼쳐지더니 이내 도경수가 책 속에서 튕겨져 나왔다.
“허억…… 허억…… 죽음은 아무리 겪어도 고통스럽군요.”
그리고 책 속에서 빠져나온 도경수의 전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죽음의 고통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픔을 잘 참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닌 것과 같았다.
“그래도 눈에 띄는 성과는 있어 보이는군.”
“네, 투신은 착한 스승은 아니지만 좋은 스승이죠.”
도경수는 말을 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도경수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투신은 착함보다는 괴팍함에 가까운 스승이었다.
수백 번이 넘게 투신을 만나봤지만 하나같이 괴팍했다.
접근 방식을 다르게 한 적도 많지만 언제나 끝은 같았다.
끝없이 구르게 했다. 성취는 구르는 것에서 온다는 신념이라도 있는지 정말 주구장창 굴려댔다.
하지만 거기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르면 구르는 대로 실력이 팍팍 늘어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니 투신을 욕할지언정 책에 안 들어가지는 않았다.
“바로 들어갈 건가?”
“아뇨, 오늘은 대련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실피드, 부탁 좀 할게.”
-에휴,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해, 그냥!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실피드는 손을 휘저었다.
휘오오오!
그와 함께 바람들이 모여들더니 커다란 대련장 하나를 만들어냈다.
능숙한 권능의 사용에 최진혁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대련장에 모여 있는 바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런 대련장 위로 실피드와 도경수가 올라가 자세를 잡았다.
-시작해도 돼?
“물론. 언제든지 들어와.”
-아주 그냥 건방져?
“말로 하지 말고 주먹으로 하자고.”
-어휴, 그래. 간다, 가.
그렇게 말하고 실피드가 먼저 도경수에게 달려들었다. 무려 도경수가 정령왕을 상대로 선수를 양보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능했다. 순수 무투만으로 치자면 지금의 도경수는 실피드보다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령왕으로서의 힘이나 권능을 쓴다면 손쉽게 이길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내가 때려눕히고 만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까딱까딱.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도발을 하는 도경수의 모습에 실피드는 짜증을 내면서 도경수에게 달려들었다.
실피드가 무투만으로 도경수를 상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수만 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재미로 무투를 익혔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무투를 배우고 틈틈이 수련해 왔지만 그것만 해도 도경수의 나이보다도 많은 세월을 수련해 왔다.
그런 자신의 무투가 고작해야 수백 년도 살지 못한 도경수에게 깨졌다는 사실이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낸 것이다.
-으랴!
“흐읍!”
“잘들 싸우는군.”
“그러게나 말이야. 이번에는 누가 이길 것 같나?”
“나는 아직도 도경수가 우위라고 본다.”
“나랑 생각이 같군.”
그런 둘의 대련을 보면서 루더슨과 최진혁은 대련장을 구성하고 있는 권능을 분석하는 한편 두 사람의 승패에 대해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