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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05화 (105/149)

리치, 헌터가 되다! 105화

정령계(3)

“후읍! 이프리트!”

-왜 부르냐.

“심심해서.”

-……아주 이제는 마음대로 부르고 장난 삼아 부르는구나.

“경수 오빠도 실피드랑 노느라 바쁘고 엘리쟈도 공무 때문에 바쁘고~ 진혁이 아저씨는 어딜 갔는지 도통 보이질 않잖아.”

-쯧, 얼마 전만 해도 정령왕 하나 소환하는 것도 버거워하던 녀석이 정령화를 제대로 익히더니 그 뒤부터는 갑자기 실력이 확 늘어서는…….

“헤헤, 이게 재능충이라는 거지~”

이프리트의 핀잔에 김혜진은 배시시 웃으면서 잔디밭에 몸을 던졌다.

“흐아, 날씨 좋다.”

-……저 정도라면 정말로 정령신의 후계자일지도 모르겠군.

“잉? 지금 뭐라고 했어?”

-아니다. 날씨가 좋다고 했다.

“히히히,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 맞다. 최근에 나타난 마왕들은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하냐는 거냐?

“아니~ 그 녀석들 가만히 놔둬도 되겠냐~ 이 말이지. 위험하잖아 그 녀석들.”

-마왕들이 안 위험한 게 더 이상하다만…… 어쨌든 우리는 딱히 그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그들이 정령계를 쳐들어온 것도 아니니까.

“에엑? 너무하네. 그래도 계약자가 사는 세상인데 유도리 있게 해주면 안 되냐~!”

-유도리고 나발이고 정령계를 벗어나면 아무리 우리라도 마왕들에게는 힘들다. 혹 정령계 내라면 몰라도.

“오올~ 자신감 봐~”

-정령계 안이라면 그까짓 마왕 놈들 한 명이 아니라 전부 달려들어도 나 하나 이기지 못한다.

자신감 넘치는 이프리트의 말에 김혜진은 허세 부리지 말라며 깔깔 웃었고, 그런 김혜진의 모습에 이프리트는 본래도 빨간 얼굴이었지만 더더욱 빨개진 얼굴로 벌컥 화를 냈다.

그렇게 김혜진과 이프리트가 푸르른 잔디밭 위에서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뭐 하고 있어?”

-이프리트…… 체통을 지켜라. 너는 한 세계의 왕이자 신이다.

“오! 경수 오빠!”

-실피드……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웃통을 깐 도경수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김혜진과 이프리트가 장난치고 있는 잔디밭을 향해 실피드와 함께 걸어왔다.

복근에 그려진 선명한 왕(王) 자는 도경수가 평소에 얼마만큼의 고된 수련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증거였다.

“오우, 점점 더 몸이 좋아지는 것 같아~?”

“쯧, 실없는 소리 하기는. 오늘 수련은 다 한 거야?”

“당연하지~ 끝난 지 오래라구!”

“뻥치고 있네. 아침부터 계속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었잖아.”

“……헷, 들켰네. 어차피 이제 더 이상 늘어나는 느낌도 안 나고…….”

“누구는 강해지는 게 눈에 보여서 매일매일 몇 시간 대련하고 수련하고 하는 줄 알아? 너 그러다가 길드장님 오시면 혼난다.”

“베에, 하나도 안 무섭네요. 우리 버려두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건지! 체엣.”

말은 그렇게 해도 꽤 오랫동안 최진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걱정이 되는지 김혜진의 얼굴에는 최진혁에 대한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런 김혜진의 마음을 알기에 도경수도 더 이상 무어라 타박하지 않고 김혜진의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래도 길드장님 미국에 계신 것 같더라.”

“……에?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뉴스 좀 보고 살아라. 뉴스에 미국에 나타난 마왕을 언데드를 부리는 누군가와 빛을 뿜어내는 검사 하나가 처치했다고 하는 거 못 봤어?”

“……헤헷, 미국은 헌터들이 나뉘어서 싸우고 있다는 말 이후로 딱히 뉴스를 안 봐서.”

“그거 1년 전이잖아…….”

김혜진에게 뉴스 좀 보고 신문 좀 읽으라며 도경수가 타박하고 김혜진은 재미없다며 도리질 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던 이프리트가 실피드를 향해 말했다.

-실피드.

-응? 왜 이프리트. 할 말 있어?

-으음, 단정하기는 이르긴 한데…….

-이르긴 한데?

-아무래도 저 애가 정령신의 후임, 혹은 환생인 것 같다.

-……그거 엄청 위험한 발언인 거 알지?

-알지. 그저 재능이 많던 애 하나를 사지로 밀어 넣는 짓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너도 봤잖아. 저 애가 얼마만큼 빠르게 재능을 개화시키는지를 말이야.

-으으음…….

이프리트의 말에 실피드는 침음을 내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프리트의 말대로 김혜진의 재능은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낼 것을 몇 개월 사이에 이루어냈다.

정말 정령신의 후임 혹은 환생이라고 의심을 해도 될 정도였다. 사실 실피드도 그것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정령신의 시험’은 그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후임이 아니라면 시험에 들어가면 목숨을 버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실피드도 그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정령신이 사라진 지도 수천, 수만 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갑자기 정령신의 후임이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이 실피드의 생각이었고, 재능 넘치는 아이를 그렇게 없애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녀석들한테는 말했어?

-어, 돌땡이한테는 말했어. 운디네는 아직.

여기서 말하는 돌땡이는 땅의 정령왕을 부르는 이프리트만의 별명이었기에 실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운디네에게 말하고 오겠다. 운디네까지 허락을 하면 나도 정령신의 시험을 김혜진이 보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

-뭐, 우리가 보네 마네 해도 어쨌든 저 아이가 선택할 문제지. 우리가 ‘봐도 돼’ 해도 쟤가 ‘안 볼래요’ 하면 끝이니까.

-……그건 그렇지.

갑자기 튀어나온 맞는 말에 실피드는 한 방 먹은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이거 네가 먼저 꺼낸 얘기지 않았나?

-……운디네한테 물어보러 간다며? 안 가?

-어휴, 간다, 가. 도경수! 나 잠시 정령계 좀 갔다가 와야 하니 쉬고 있어라!

“어! 그래!”

꽤 친해진 탓인지 실피드의 말에 도경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김혜진과의 대화에 몰두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던 실피드는 이내 정령계로 귀환했다. 실피드가 사라지고 이프리트가 혼자 남아서 김혜진과 도경수의 모습을 보고 있을 때였다.

-……뭐야? 왜 갑자기 어두…….

별안간 하늘이 깜깜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란 이프리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고, 이내 피식 웃었다.

-하, 참 거창하게도 복귀하시는군.

-캬오오오오!

이프리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푸르른 하늘을 가린 채, 용용이가 포효를 했다.

그리고 그런 용용이의 등장에 둘이서 꽁냥대던 도경수와 김혜진도 깜짝 놀라 하늘을 바라봤고, 이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저씨!”

“길드장님!”

이내 둘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크게 외쳤다. 그리고 그런 외침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는 사뿐하게 지상에 착지했다.

“오랜만이군. 얼마 만이지?”

“몰라요! 아무튼 다시 보니까 좋네요, 히히히.”

“……이런, 도경수가 보고 있는데 떨어지는 게 좋지 않겠나?”

“헤헤, 오빠는 이런 거 가지고 질투 같은 거 안 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김혜진은 최진혁의 품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무언가 푸근한 느낌에 김혜진이 헤벌쭉 웃고 있을 때, 김혜진의 말과는 달리 도경수의 표정은 처음 최진혁이 나타났을 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김혜진이 한 말도 있고, 최진혁에게 ‘내 여자 친구이니 좀 떨어져 주시죠?’ 같은 말을 할 깡이 도경수에게는 없었기에 그저 얼굴만 굳힌 채, 그 모습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런 도경수의 모습에 최진혁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김혜진을 슬쩍 밀어냈다.

최진혁의 반응에 김혜진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는지 머쓱하게 웃으면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제야 도경수의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도경수가 푸근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래간만이네요.”

“꽤 몸이 좋아졌군?”

“실피드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몸도 그렇고 수련도 그렇고 다 실피드 덕분이죠. 덕분에 이젠 제가 배틀메이지인지 권사인지 헷갈릴 지경입니다.”

“그럴 때는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의 너는 두 가지 모두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정점에 오르려면 하나를 확실하게 익히는 게 좋으니까 말이다.”

“……명심하죠.”

“그런데 실피드는 어디 갔지?”

“아, 정령계로 돌아갔습니다. 뭐 할 일이 있나 보죠. 아마 실피드도 길드장님을 봤으면 좋아했을 겁니다.”

“흐음, 알았다. 이만 들어가지. 루더슨! 미셸! 너희도 내려와라!”

도경수와의 대화를 마친 최진혁이 고개를 들어 소리치자 이내 용용이의 머리 위에서 루더슨과 미셸이 떨어졌다.

그런 두 사람을 본 도경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미셸도 왔습니까?”

“그래, 미국에 간 김에 마왕도 잡고 미셸도 데려왔지.”

“……이걸 최진혁 씨답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오랜만에 미셸을 볼 생각을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요.”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된다. 다시 미국으로 되돌려 보내주지.”

“그런 건 아니니까 굳이 그러진 않으셔도 됩니다.”

정색을 하면서 말하는 도경수의 모습에 최진혁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바로 그때 미셸과 루더슨이 땅에 발을 디뎠다.

“오랜만입니다. 루더슨 경.”

“이름이 도경수라고 했었나? 다시 보니 반갑군요.”

“길드장님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모든 것은 루의 뜻대로…….”

그렇게 루더슨과의 짧은 재회를 마친 도경수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미셸을 와락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미셸! 오랜만이야!”

“읏, 떨어져라!”

“역시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그러니까 좀 떨어져!”

하지만 그런 미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떨어지기는커녕 한 명이 더 달라붙었다.

“미~셸~ 보고 싶었다구~!”

“으윽, 둘이서 쌍으로 그냥!”

하지만 둘의 그런 반응이 내심 싫지는 않았는지 둘을 밀쳐내는 미셸의 손에는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체면치레로 싫은 척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 세 사람을 바라보던 최진혁에게 누군가가 살포시 다가와 뒤에서 껴안았다.

자신이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흠칫한 최진혁이 고개를 돌리자 최진혁을 껴안은 누군가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

“……엘리쟈.”

누군가는 다름 아니라 엘리쟈였다.

“바쁘지 않나?”

“에이, 아무리 바빠도 왕국 상공에 본 드래곤이 나타났는데 나와봐야 하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군.”

“헤헤, 그래도 이제 안 떠나는 거야? 응?”

그렇게 말하면서 엘리쟈가 최진혁의 등에 자신을 볼을 비볐다. 그런 엘리쟈의 물음에 최진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잘 모르겠다. 조금 휴식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지만…….”

“마왕들 때문에 그래? 내가 도와줄까? 나도 이제 사대 정령왕 모두 소환할 수 있어. 정령화도 가능하고.”

걱정 어린 얼굴로 말하는 엘리쟈의 말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엘리쟈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됐다. 혼자서도, 아니, 루더슨과 함께 둘이면 충분하다.”

“부우…… 둘보다는 셋, 셋보다는 넷이 낫지 않겠어?”

“많은 수는 오히려 거치적거릴 뿐이다.”

“네에~ 알겠으니까 그럼 조금 오래 쉬자, 응?”

“그것도 고민을 좀…….”

그렇게 각자 해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김혜진, 정령계로 같이 가자. 엘리쟈, 너도 함께.

정령계로 사라졌던 실피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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