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치, 헌터가 되다-104화 (104/149)

리치, 헌터가 되다! 104화

정령계(2)

“주인님!”

“미셸, 오랜만이군. 한…… 1년 만인가?”

“그 정도쯤 됐습니다. 대체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 버리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신들을 좀 만나고 왔다. 정확하게는 끌려간 거지만…… 그게 그거니 그렇다고 치도록 하지.”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최진혁의 말 하나하나에도 과민하게 반응하는 미셸의 모습이 퍽 신기한지 옆에 서 있던 윌리엄 에반스가 최진혁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셸 저 친구가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1년 동안 같이 지냈지만 처음 보는 것 같군.”

“윌리엄인가? 자네도 오랜만이군.”

“그렇겠지. 나도 안 본 지 이제 1년쯤 넘었겠군.”

“아무튼 벽을 넘은 건 축하한다.”

이제 거의 신에 근접한 최진혁답게 윌리엄 에반스가 소드엠퍼러에 올랐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최진혁의 그 말에 윌리엄 에반스는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워했다.

“그래도 내 힘만으로 오른 건 아니네. 가이아께서 힘의 파편을 나누어주신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 그러니 너무 띄워주지 말게나.”

“가이아가 어떤 힘을, 얼마나, 무슨 방식으로 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힘을 네가 갈고닦았기 때문에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거다. 너의 의지를…… 그리고 너의 노력을 그렇게까지 깎아내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고맙군.”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최진혁의 말에 윌리엄 에반스는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최진혁에게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좋으나…… 이제 무얼 할 셈인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다.”

“마왕들이 나타났네. 미국은 지금 자네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어. 우릴 도와줄 생각은 없나?”

윌리엄 에반스의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마왕들의 처치는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고 있다.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두 명을 처치하고 오는 길이다.”

“……정말인가?”

“그중 하나는 내가 잡았다. 제대로 설명해라, 최진혁.”

“큼큼, 어쨌든 루더슨과 내가 각각 한 명씩 상대해서 처리를 했지. 이제 남은 마왕은 단 셋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도 하나하나 없애 나갈 테니 너희는 방어만 잘하면 된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 되는군.”

“그래, 그러면 너는 이제 뭘 할 생각이지?”

최진혁의 물음에 윌리엄 에반스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 황폐해진 도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미국을 되살릴 걸세. 지금은 이렇게 흉물스러운 모습이지만 언젠간 다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이름을 되찾을 걸세.”

윌리엄 에반스의 말대로 지금의 미국은 불과 1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1년 전에는 자신 있게 최강대국 혹은 경찰국이라고 자칭할 수 있었지만 아르말딘 대륙에서 여러 나라들이 넘어오고 도미닉에 의해서 반으로 쪼개진 상태로 1년을 보내게 되자 그 힘은 대폭 줄어 있었다.

아니, 이제는 중국과 일본에게도 밀리는 처지가 되었다. 거듭된 내전으로 도시들은 반파되었으며 이민을 가는 이들도 속출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거기에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 던전들도 제때 처리하지 못해서 몬스터들로 가득한 도시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을 처리할 헌터들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바쁘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너라면 가능할 거다. 네 굳센 의지와 인 외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래도 최진혁은 눈앞의 윌리엄 에반스라면 충분히 1년 전의 미국을 재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는 인망이 있었다. 그리고 힘 또한 가지고 있었다.

소드엠퍼러라는 힘은 지구에서 최진혁과 루더슨 정도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을 정도의 힘이었으니 몬스터들을 몰아내는 데에 시간은 걸릴지언정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윌리엄 에반스의 뒤에는 현 지구의 최강자인 최진혁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용의가 있었다.

당장에 본 드래곤 용용이를 꺼내서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한 도시에 브레스만 한 번 뿜어도 청소가 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그럴 경우에는 도시에도 피해가 가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의 최진혁은 윌리엄 에반스의 미국 재건을 도와줄 용의가 있었다.

“필요하면 한국으로 연락해라. 시간만 있다면 언제든지 도와주지.”

“말뿐이라도 고맙군.”

“아, 아니면 애초에 이곳에 언데드들을 조금 두고 가도록 하지. 물론 지휘권은 너에게 넘겨주도록 하마.”

“그게 가능한가? 미셸의 언데드들은 멀리 떨어지면 알아서 사라지던데 말이야.”

“나와 미셸을 비교하는 건가? 물론 미셸도 뛰어난 흑마법사이긴 하다만 나에 비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에 불과하다.”

“과연…… 알겠네. 그러면 부탁하지.”

“알겠다. 조금만 기다려 봐라. 금방 만들어주지.”

윌리엄 에반스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진혁은 아무도 없는 한구석으로 걸어가 언데드 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뒤를 미셸이 졸졸 뒤따라갔고, 윌리엄 에반스와 루더슨만이 자리에 남겨졌다.

“반갑습니다. 루더슨이라고 합니다.”

“음, 마왕 토벌은 잘 봤네. 나는 부끄럽지만 헌터 총협회장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고 있는 윌리엄 에반스라고 하네.”

“헌터라면…… 기사와 같은 이들을 말하는 겁니까?”

“음……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동지로군요. 저는 성기사들을 이끌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과분한 칭호인 신의 검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루더슨입니다.”

“하하하, 이거 둘 다 아주 과분한 사람들이었군. 앞으로도 잘 부탁함세.”

“이쪽 세계의 신의 축복을 받으신 분을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둘은 서로의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어색했던 것과는 달리 빠르게 친해졌다.

둘 다 검을 쓰는 검사라는 점도 닮았고, 루더슨도 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소드엠퍼러였기 때문에 같은 경지의 인물을 만나서 둘은 더더욱 빠르게 친해졌다.

“검술을 수련할 때는…….”

“대련을 할 때는 이렇게 해야…….”

그리고 둘은 평생 검에 대해서 얘기할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똑같았다.

둘 다 남들과는 달리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탓에 둘은 언제나 외롭게 홀로 검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은 검에 관한 이야기로 빠르게 친해졌다. 그런 둘의 대화는 어느새 언데드들의 제작을 마친 최진혁 때문에 끝이 났다.

“다 만들었다.”

“음, 데스나이트 두어 기와 듀라한 몇 기면 충분…… 흐억?”

그리고 윌리엄 에반스는 최진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최진혁의 등 뒤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숨이 넘어갈 뻔했다.

“저…… 저게 대체……?”

“괜찮아. 나도 보고서 놀랐으니까.”

미셸의 말에 윌리엄 에반스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이 여실히 다가왔다.

“둠 나이트 3기, 데스나이트 30기, 듀라한 150기, 스켈레톤 1,000기다. 전부 다 데스 오라를 영구 적용시켜놨으니 쓸 만할 거다. 후우, 둠 나이트를 창조하는 건 조금 힘들군. 마나가 거의 다 바닥이 났어.”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창백한 얼굴로 마나를 창조해 내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최진혁이 만들어둔 언데드를 바라보던 윌리엄 에반스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리고 이내 최진혁의 두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이들이라면 미국을…… 미국을 다시 재건할 수 있을 걸세. 아니, 재건하고 말 걸세.”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은 윌리엄 에반스의 모습에 당황했던 것도 잠시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부족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내 마나는 언제나 충분하니까 말이야.”

* * *

“이제 가는 건가?”

“그래, 나도 언제까지 이곳에만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야.”

“후우, 알겠네. 그래도 지난 일주일, 자네 덕분에 꽤 많은 곳을 수복할 수 있었으니 감사 인사는 해야겠지.”

“됐다. 고작 그런 걸 받으려고 너를 도운 게 아니니까. 다만 네가 네 입으로 한 약속, 지키길 바란다.”

“하하하, 미국을 재건한다는 약속 말인가? 꼭 지키도록 하지.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말이야.”

“쯧, 목숨까지는 걸지 말고 몸은 잘 챙겨라”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러도록 하겠네.”

“그래, 그럼 이만 가겠다.”

-캬오오오!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이 올라타 있던 본 드래곤 용용이가 포효를 내질렀다.

“잘 가라고!”

“고마웠습니다!”

“미국은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겁니다, 미스터 최!”

“용용아 너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과 용용이를 보면서 미국의 헌터들이 하나둘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그리고 그것은 F급이든 SS급이든 다르지 않았다.

일단 미국이라는 나라에 적을 둔 사람들은 모두 최진혁과 그의 언데드 군단에게 씻을 수 없는 빚을 졌기 때문이다.

-캬오오오!

그리고 그런 감사 인사를 알아들은 건지 용용이도 기쁨과 아쉬움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용용이도 다른 헌터들과 합동작전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안면을 텄기 때문이다.

헌터들과의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용용이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용용이와 최진혁 등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미국의 헌터들과 윌리엄 에반스는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용용이가 점처럼 보일 때쯤 윌리엄 에반스를 위시한 미국의 헌터들은 인사를 마치고 비장한 얼굴로 변했다.

“그럼…… 지금부터 미국 재건을 시작한다.”

“우오!”

“캬악! 크악!”

비장한 얼굴로 미국 재건을 선포한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다른 헌터들이 호응했고, 최진혁이 남기고 간 언데드들도 마찬가지로 그 호응에 동참했다.

이내 수천, 수만이 넘는 이들이 미국 전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재건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말이다.

* * *

휘오오옹! 펄럭!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 좋은데 뭘 하러 가는 거지?”

“내 동료들을 보러 간다.”

“동료라…… 그때 보았던 이들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 녀석들 맞다.”

“분명…… 한 명은 정령사에 한 명은 권사였나?”

“정령사는 맞지만 권사는 틀렸다. 그 녀석은 배틀메이지다.”

“흐음…… 그 사람은 권사로도 대성할 텐데 말이야. 권사로 키울 생각은 없나?”

“내가 키우고 말 것도 없지. 그 녀석이 원한다면 권사로 알아서 넘어갈 거다.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것도 그렇군. 알겠다. 상관하지 않도록 하지. 다만 그 근골이 아쉬워서 그러는 거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니 그만 넘어가도록 하지. 이제 한국이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봤다.

“호오, 세계수가 많이 자랐군.”

“그러게나 말이다. 이제는 한눈에 봐도 엘프 포레스트가 어디 있는지 훤히 보이는군.”

“엘프 포레스트…… 오랜만이군요.”

그리고 그런 최진혁과 루더슨의 말에 조용히 있던 미셸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셸 너는 엘프 포레스트에서 꽤나 곤경을 겪었었지.”

“……크흠. 그건 잊어주십시오, 주인님.”

그렇게 최진혁은 용용이를 엘프 포레스트로 향하게 하고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오래간만에 즐기는 휴식은 달콤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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