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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03화 (103/149)

리치, 헌터가 되다! 103화

정령계(1)

“흐아…… 흐억…… 크윽…….”

“왜 그러지? 설마 벌써 지친 건가? 이런, 그렇게 자랑하던 독의 장막도 내 병사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나 보군.”

전신에 난 상처에서 초록색 피를 흘리면서 벨페고르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싸운 지 벌써 나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의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더더욱 그 수를 불려 나갔다.

수백에서 수천으로, 또다시 수천에서 수만으로…… 마치 둘로 쪼개면 두 개의 개체가 되는 플라나리아처럼 말이다.

하나의 흑골 스켈레톤이 독의 장막에 닿아 녹아내리면 두 마리의 흑골 스켈레톤이 생겨났고, 두 마리의 흑골 스켈레톤이 녹아내리면 또다시 네 마리의 흑골 스켈레톤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상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의 군단을 상대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본신의 무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상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함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마왕인 벨페고르조차 끝이 보이지 않는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에 한층 기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설령 신이라고 할지라도 공포스러워할 장면이긴 했지만 말이다.

“항복…… 하겠나?”

“항복은 무슨…… 퉤! 잔말 말고 그 잘난 언데드나 더 끌고 와보시지.”

“……그렇게까지 원한다면야.”

초록색 피를 바닥에 탁 하고 뱉는 벨페고르를 바라보던 최진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리고…….

드드드득!

“이 빌어먹을 언데드 놈들아! 와라!”

여태까지 벨페고르에게 달려든 스켈레톤과 비견될 만큼의 스켈레톤들이 땅을 헤집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들의 모습에 벨페고르는 이를 앙다물면서 한층 더 짙은 독의 장막을 만들어냈고, 그런 독의 장막을 향해 스켈레톤들이 자신의 몸을 던졌다.

치이이익!

그리고 강력한 독에 의해서 스켈레톤들은 하나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데스 오라 덕분에 강철과도 비견될 강도를 지니게 되었지만 상대는 강철조차도 가볍게 녹여 버리는 극독.

그렇게 수천, 수만의 스켈레톤들이 한 줌의 독수로 변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루더슨이 사흘 전과는 달리 조금 피곤해진 얼굴로 최진혁에게 말했다.

“……저래도 괜찮은 건가?”

“무얼 말하는 거지?”

“저렇게 언데드들을 소모해도 되는 거냐고 물은 거다. 사흘 동안 네가 소환한 언데드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백만은 가뿐히 넘을 거다.”

“아아, 마나 걱정을 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괜찮다.”

“뭐? 그럴 리가…… 아무리 네가 9서클이고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들이라지만 사흘 밤낮 동안 소환했는데 아직도 마나가 여유롭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

루더슨의 말대로 최진혁은 지난 사흘 밤낮으로 언데드들을 소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아직도 여유롭다는 말은 모순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최진혁이 스켈레톤을 벨페고르에게 보내는 것까지는 세 단계가 존재한다.

첫 번째, 창조. 권능을 이용해 창조로 스켈레톤들의 재료를 만들어낸다.

두 번째, 소환. 창조로 만들어진 재료들로 스켈레톤들을 일으켜 세운다.

세 번째, 데스 오라. 강화 마법인 데스 오라로 백골의 스켈레톤들을 흑골의 스켈레톤들로 진화시킨다.

이렇게 총 세 단계를 거쳐서 벨페고르에게 진격시키는 것이다. 거기에 창조는 신의 권능이기에 마나 소모도 크다.

창조로 만든 것이 아무리 약한 스켈레톤을 만들 재료라지만 그것도 수백만이면 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루더슨의 물음은 합당했다. 지금 최진혁이 만약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리고 있다면 그것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마나가 다 떨어져 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존심 혹은 체면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 걱정은 알고 있다, 루더슨. 지금 내가 혹 거짓말로 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렇다. 설마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니니까 걱정 마라.”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그 정도의 마나를 소모하고도 아직도 마나가 여유롭다는 거냐. 분명 너는 사흘 동안 마나를 보충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물음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루더슨.”

“음?”

“혹시 신이 마나가 부족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옛이야기로든 아니면 신화 속 이야기든 간에 말이야.”

“……그런 내용은 본 적이 없다. 애초에 신이 마나 혹은 신성력이 부족하다면 그게 정말 신이기는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래. 네 말대로 마나에 혹은 신성력에 허덕이는 신은 없지. 그리고 나는 어째서 신은 마나와 신성력에 구애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결론에 도달했지.”

“그게 네가 지금 마나가 부족하지 않다는 말에 대한 결론인가?”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그제야 최진혁이 새로운 방법을 개척해 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최진혁의 입에서 그 방법이 나왔다.

“그 방법은 바로 창조에 있다.”

“창조? 네가 가진 권능을 말하는 건가?”

“그래, 쉽게 말해서 권능을 이용해서 마나를 창조해 내는 거다.”

“……그게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이 얼이 빠진 얼굴로 쳐다보자 최진혁이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창조의 권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지?”

“뭐…… 네 녀석처럼 시체를 만들거나…… 아니면 동식물을 만들거나 하겠지?”

“그래,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게 마나의 창조다. 창조라는 권능은 신기하게도 만들어낸 것보다 더 많은 마나를 소모하지는 않는다. 즉, 1의 마나로 2의 마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서는 1의 마나로 10의 마나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아마 이게 신들이 마나와 신성력에 허덕이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아…… 넌 정말 대체…….”

루더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갈하고 싶었지만 결과가 최진혁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최진혁이 지금 마나에 허덕이지 않는 이유를 댈 수가 없었다.

아니면 최진혁이 거짓말을 한다는 가설도 있지만…….

‘저 녀석이 굳이 들킬 게 뻔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겠지.’

최진혁의 성격을 어느 정도 잘 아는 만큼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도 루더슨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더슨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최진혁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스켈레톤만 소환하는 거지? 마나가 반무한인 지금의 너라면 데스나이트들도 마음껏 소환할 수 있지 않나?”

“그건 그렇지.”

“그럼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건 그거대로 이유가 있다. 일단 저 녀석의 독의 장막 앞에서는 스켈레톤들과 데스나이트들이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마나 소모의 차이다. 너는 지금 내 마나가 거의 무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틀리다. 그저 떨어진 마나를 빠르게 채울 수 있는 것뿐이지 무한한 게 아니다.”

최진혁의 설명은 이러했다. 스켈레톤은 1의 마나를 데스나이트는 100의 마나를 소모한다.

그리고 데스 오라도 부여되는 언데드에 따라 마나 소모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데스나이트의 시체를 만들고 소환하고 데스 오라까지 부여하게 되면 스켈레톤에 비해서 몇백 배나 많은 마나를 소모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 녀석을 물량으로 찍어 누를 수는 없게 되지.”

지금이야 스켈레톤들로 독의 장막을 찍어 누르고 있지만 데스나이트로 하게 되면 그게 불가능해진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한층 자유로워진 벨페고르가 최진혁과 루더슨을 향해 공격해 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진흙탕 싸움이 된다.

그런 싸움 과정에서 누구 하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기에 최진혁은 최대한 안전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은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그런가…… 역시 네 녀석의 머리 하나는 인정할 만하군.”

“……머리 말고 다른 것들도 인정해라.”

“그건 고려해 보도록 하지.”

“쯧, 어쨌든 이쪽도 다 끝나가는군.”

“그런가? 그래서 네 녀석과 저 마왕의 승부에서 누가 승리한 거지?”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이 저 멀리 뼈 무더기로 이루어진 작은 산을 보면서 최진혁에게 물었고, 그런 루더슨의 물음에 최진혁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패배 따위를 모른다.”

그 말은 즉,

“네 승리라는 말이군. 그런데 네 녀석은 나한테 쫓겨서 많이 도망 다니지 않았나?”

“……닥쳐라, 루더슨.”

그런 루더슨을 뒤로한 채, 최진혁은 전리품을 수거하러 뼈 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전리품 수거는 승자의 권리였으니까 말이다.

* * *

“끄으으윽…… 빌어먹을…… 이런 식으로…… 이런 식으로 내가 죽게 될 줄이야.”

전신에 뼈 칼들이 꽂힌 벨페고르의 모양새는 썩 좋지 못했다.

칼에 찔린 상처에서는 독이 가득 담긴 초록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런 피가 닿은 땅은 빠르게 부식됐다.

평소의 나른한 얼굴은 사라진 지 오래인 벨페고르의 얼굴을 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

“……자다가.”

“…….”

참으로 나태의 마왕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최진혁이 본 스피어를 하나 소환해 손에 쥐고 말했다.

“남길 유언은 있나?”

“……없어. 졸리니까 빨리 죽여.”

“유언 접수했다.”

푸슉!

벨페고르의 말에 최진혁은 거리낌 없이 벨페고르의 머리통에 본 스피어를 쑤셔 넣었다.

그리고 숨이 끊어진 벨페고르의 가슴팍에서 아직까지도 두근거리고 있는 초록색 심장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 두 개째군.”

“분노와 나태인가?”

“아쉽게도 오만의 것은 사라졌으니까. 내 실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그럼 이제 남은 게 누구지?”

“분노와 오만 그리고 나태와 색욕이 사라졌으니 탐욕, 폭식 그리고 질투인가?”

“그렇게 많던 놈들이 이제는 셋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군.”

도미닉까지 포함하면 벌써 다섯의 마왕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루더슨은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최진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더슨의 그런 얼빠진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루더슨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아아…… 알겠다.”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저 멀리에 루더슨과 마찬가지로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미셸과 오랜만에 보는 윌리엄 에반스 그리고 미국의 헌터들을 향해 걸어갔다.

“꽤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겠군, 미셸.”

그리고 최진혁은 오랜만에 자신의 부하와 대화를 나눌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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