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102화
두 명의 신(3)
“신? 지금 신이라고 한 거야? 너희들이? 가아암히이이!!”
최진혁과 루더슨의 입에서 동시에 튀어나온 신이라는 말에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벨페고르의 얼굴에 실금이 가더니 이내 흉포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런 벨페고르의 모습에도 최진혁과 루더슨은 겁먹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여 자신들의 말이 맞다고 손수 인증까지 해주었다.
그 결과…….
“크아아악! 네놈들의 피로 목을 축이고 살로 배를 채우며 네놈들의 영혼은 영원히 나의 장난감으로 내 무료함을 풀어주게 될 것이다!”
벨페고르의 화를 돋우게 되었다. 하지만 분노를 토해내면서 발을 구르는 벨페고르의 모습에도 최진혁은 고개를 돌려 루더슨과 대화를 나누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마왕이란 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하는군. 피로 목을 축인다든지 아니면 살로 배를 채운다든지 말이야. 지겹군, 지겨워.”
“나에게도 저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하더군. 마왕들은 다 똑같은 것 같군.”
“과연…… 이 녀석도 그렇게 말하는데 네 생각은 어떤가 마왕? 아니 벨페고르라고 해야 하나?”
“으득, 감히…… 네 녀석들 따위가 나를 능멸해? 네놈들의 사지를 찢고…….”
“아아……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힘으로 말해라!”
콰득!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이 검지손가락을 들어 까닥거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벨페고르가 서 있던 바닥에서 뼈로 이루어진 괴물이 튀어나와 벨페고르를 삼켰다.
미사일이나 애로우 계열의 마법은 날아가는 도중에 벨페고르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투명한 독의 장막에 막혀서 사라질 테니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치이이익!
-쿠캬캬캭!
벨페고르를 삼킨 뼈 괴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고, 이내 전신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뼈 괴물이 사라진 자리에는 얼굴에 분노가 가득한 벨페고르가 서 있었다.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지만 분노한 벨페고르의 얼굴은 흉신악살과도 같았다.
“감히…… 기습을…….”
“안 싸울 거면 죽어라.”
터업! 터업! 터업!
벨페고르가 분노를 토해내는 사이 최진혁은 연신 손가락을 까닥거렸고, 그와 함께 방금의 뼈 괴물보다 더욱 커다란 뼈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분노를 토해내는 벨페고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벨페고르를 집어삼킨 뼈 괴물을 또 다른 뼈 괴물이 집어삼켰다.
그러기를 수십 번, 방금까지만 해도 벨페고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뼈 괴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뼈 무더기 산이 생겨나 있었다.
“흠, 죽은 건가?”
“아니, 이걸로 죽을 리가.”
“그런데 이것도 권능을 사용한 건가?”
“그래, 본래라면 다량의 시체들이나 뼈가 필요했겠지만…… 확실히 권능이 있으니 편하군. 따로 재료들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권능의 유용함에 또다시 감탄했다.
지금 벨페고르를 잠시 묶어놓기 위해서 만든 뼈 감옥은 예전 같았으면 수백 마리가 넘는 몬스터의 시체나 그 정도의 몬스터 뼈가 필요했겠지만 지금 그저 마나를 소모해서 만들면 되니 말이다.
물론 그 소모되는 마나량이 어마어마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9서클에 더해서 이제는 신의 자리에 반쯤 걸쳐 있는 최진혁이었기에 그 정도 단점은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다.
쿠르르릉-
“나오는군.”
“한 몇 분 정도 벌었나?”
“이번에는 네가 주다. 내 마법으로는 유효한 타격을 주기 어려워. 저 정도의 독이라면 설령 둠 나이트인 카르한일지라도 역부족이다.”
“알겠다. 그럼 보조 부탁하도록 하지.”
“내가 언제 실수하는 모습 본 적이라도 있나?”
“……없지만 하는 소리다.”
“실없기는. 나온다.”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들썩이던 뼈 감옥이 이제는 굉음을 내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뼈 감옥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녹아내렸다.
그 모습에 최진혁은 소매로 입 주위를 막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독이다.”
“알고 있다. 퓨리피케이션.”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덤덤하게 신성 마법 중 하나인 정화 마법을 사용해서 주위를 정화시켰다.
물론 모든 곳을 정화시키지는 못했지만 루더슨의 주위 정도는 완벽하게 정화시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루더슨의 뒤에 있던 헌터들은 의문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손에 꼽았지만 말이다.
루더슨의 정화 덕분에 독에 중독되는 것은 막은 최진혁이 소매를 스윽 내리면서 말했다.
“시작한다.”
“그래.”
타앗!
“감히이! 너희들은 오늘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갈 줄 알아!”
뼈 감옥을 부수고, 아니, 녹이고 탈출한 벨페고르의 모습은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작은 키에 어린 여자애 같은 모습은 남아 있었지만 마치 곤충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두 개였던 눈은 여섯 개로 불어나 있었고, 다른 마왕들, 그리고 다른 마족들과는 달리 박쥐 날개가 아니라 곤충의 날개가 붙어 있었다.
거기에 검은색이었던 머리는 어느새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헛구역질을 할 만한 모양새였지만 벨페고르를 향해 쇄도해 가는 루더슨은 벨페고르의 끔찍한 외양에 휘둘리지 않았다.
“하앗!”
츠츠츠!
오히려 검을 쥔 손에 더 힘을 불어넣고 홀리 블레이드를 더욱 길게 뽑아냈다.
라스와의 싸움 덕분에 더욱 강해진 루더슨은 이제는 수십 미터가 넘는 크기가 된 홀리 블레이드를 부웅 휘둘렀다.
콰앙!
루더슨의 홀리 블레이드가 땅에 박히고 주위가 초토화되었다.
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만큼 그 중량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간 거지?”
“여기다, 바보야.”
쐐에엑!
하지만 노렸던 목표인 벨페고르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고, 그런 벨페고르를 찾는 루더슨의 귀에 벨페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을 향해 벨페고르가 어느새 사마귀처럼 변한 손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사마귀의 칼날처럼 변한 손에는 보라색의 독이 방울져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극독이었기에 루더슨은 최대한 칼날에 닿지 않기 위해서 몸을 뒤로 뺐다.
다름 아니라 마왕의 독이기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루더슨을 벨페고르는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죽어! 죽어! 죽어어엇!”
오히려 자신의 칼날 같은 두 손을 붕붕 휘두르면서 루더슨을 궁지에 몰아넣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휘둘러져 오는 공격은 루더슨이 피할 수 있는 방위를 점해가기 시작했고 루더슨은 어느새 궁지에 몰려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을 바라보면서 벨페고르의 여섯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었다.
“도망칠 곳은 이제 없네~?”
“…….”
벨페고르의 이죽임에도 루더슨은 무어라 말하지 않고 검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을 뿐이었다.
그런 루더슨의 반응에 벨페고르는 이죽거리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칼날 손을 휘둘렀다.
“재미없어. 죽어.”
휘이익!
“이런, 날 잊으면 곤란한데 말이야.”
드드득! 카앙!
“뭐야!”
최진혁의 목소리와 함께 루더슨과 벨페고르 사이에 거대한 뼈 벽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벨페고르의 공격은 그런 뼈 벽에 가로막혀 날카로운 금속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벨페고르는 자신의 공격이 가로막혔다는 사실이 분한지 연신 뼈 벽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카앙! 카앙! 콰드득!
제아무리 9서클, 그리고 최진혁이라는 걸출한 대마법사가 만든 뼈 벽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마왕.
고작해야 뼈 벽으로 수차례의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씨익…… 씨익…… 어딨어!”
“여기 있다. 벨페고르.”
“……?!”
하지만 무너진 뼈 벽 너머에는 있어야 할 루더슨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진 루더슨의 모습에 벨페고르가 콧김을 내뿜으면서 외칠 때, 그런 벨페고르의 귀로 루더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에 있었던 모습과 소름 돋을 정도로 똑같은 상황에 벨페고르는 신경질을 내면서 두 손을 휘둘렀다.
카강! 카강!
그리고 그런 벨페고르의 방어에 공격을 가하던 루더슨은 공격을 포기하고 다시 최진혁의 옆으로 돌아와 있었다.
“괜찮나?”
“……아아, 괜찮다. 조금 베인 것뿐이다.”
“제때 치료받는 게 좋을 거다. 저 녀석의 손에 독이 묻어 있는 것은 너도 봤을 텐데?”
“……알겠다.”
최진혁의 옆에 내려 앉은 루더슨의 갑옷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갑옷이 걸레짝처럼 변했으니 벨페고르의 두 손이 얼마만큼의 강도를 가지고 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갑옷이 걸레짝처럼 변했는데 그 갑옷의 주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루더슨의 전신은 벨페고르의 칼날 같은 손에 당한 상처로 가득했다.
물론 중상이 아니라 경상이었지만 벨페고르의 손에는 극독이 발라져 있었기에 루더슨은 최진혁의 말에 묵묵히 상처와 독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하늘에 둥둥 떠서 바라보던 벨페고르는 부루퉁한 얼굴로 둘을 향해 말했다.
“너희 둘, 거슬려. 하지만 강해. 그래서 더 짜증 나.”
“알면 곱게 죽어주는 게 어떻지? 그게 편하지 않겠나?”
“……시끄러, 닥쳐. 죽어버려.”
두 사람의 합공은 마왕인 벨페고르로서도 거슬렸다.
최진혁 쪽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줄 방법은 없지만 발을 붙잡을 방법은 많았다.
반대로 루더슨의 경우에는 자신의 발을 붙잡거나 방해를 하지는 못하지만 튼튼한 몸 덕분에 자신의 몸 주변에 쳐져 있는 투명한 독의 장막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지닌 바 검술도 범상치 않아 까닥 방심하면 천하의 벨페고르조차도 목을 내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랬기에 벨페고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늘에 둥둥 떠 있을 때였다.
“후우, 이만 끝을 내도록 하지. 우리도 갈 길이 바쁜 몸이라서 말이야.”
“하! 방금까지도 내 몸에 털끝 하나 대지도 못한 놈들이 끝을 내? 오만하구나 오만해! 루시퍼와 라스를 잡더니 네놈들이 드디어 미쳐 버린 게구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 그리고 그거 아나? 네가 한 말, 그 말들은 앞서서 죽어간 분노의 마왕 라스와 오만의 마왕 루시퍼 또한 마찬가지로 했던 말이라는 것을 말이다.”
“크으윽…… 닥치고 죽어어엇!”
자신감이 넘치는 최진혁의 말에 불안감을 느낀 벨페고르가 손을 들어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독기를 품은 칼날 바람이 최진혁과 루더슨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콰앙! 콰앙!
최진혁과 루더슨의 주위를 무차별적으로 난자하는 칼날 바람에 뒤에 있던 헌터들이 깜짝 놀라며 최진혁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벨페고르를 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벨페고르. 너는 내 언데드들도 녹여버리는 막강한 독을 지니고 있고 그런 독들에게 자동으로 보호받고 있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죽어!”
“누가 먼저 지치는지 시합이다. 진 쪽은…… 목숨을 내놓게 되겠지.”
“그게 대체 뭔…….”
“일어나라 죽지 않는 나의 병사들이여.”
드드득!
최진혁의 그 말과 함께 땅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백골의 스켈레톤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스켈레톤들은 최진혁의 데스 오라를 받아 백골에서 흑골로 변해 갔고, 스켈레톤들이 흑골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승부다, 벨페고르. 네 독의 승리일까 아니면 내 병사들의 승리일까? 기대가 되는군. 가라.”
그 말을 끝으로 스켈레톤들이 괴성을 터뜨리면서 벨페고르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