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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01화 (101/149)

리치, 헌터가 되다! 101화

두 명의 신(2)

콰아아앙!

“흐아아암…… 졸려…… 피곤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지면에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면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니라 조그마한 여자아이였다.

그것도 어깨에서 반쯤 흘러내린 니트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는 여자아이 말이다.

거기에 여자아이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귀찮음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방금까지 두려워하던 것과는 달리 등장한 존재가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등에 박쥐 날개가 달린 괴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많은 헌터들이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에이, 뭐야. 마왕이라더니 어린애잖아?”

“그러게나 말이야.”

“그런데 저 애 꽤 귀엽게 생겼네?”

“저런 얼굴로 피곤에 찌든 표정이라니…… 뭔가 오묘한 기분이네.”

“한번 가까이 가볼까?”

거기에 긴장은 푼 것은 물론이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가는 무리도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의 주 구성원들은 다름 아니라 S급에서 SS급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무리였다.

물론 그들이 다른 헌터들처럼 방심을 하거나 긴장을 풀어서 다가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의 전신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어린 소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제대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마치 블랙홀과 같은 힘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 소녀가 방심하고 있는 틈이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소녀는 멍한 얼굴에 풀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흰 누구?”

“괴물 따위에게 말해줄 이름은 없…… 커억.”

“뭐…… 뭐야? 대장? 대…… 커억…….”

“카악…….”

맨 앞에 서 있던 대장이라 불린 SS급 헌터는 검을 휘둘러 단번에 소녀의 목을 잘라 버리려고 했지만, 이내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뿜어내면서 죽음을 맞이했다.

믿고 있던 대장이 한 호흡 사이에 죽어버리자 당황한 팀원들이 자신들의 대장을 불렀지만, 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장 곁을 따라갔다.

자신의 옆에서 열 명 정도의 사람이 피를 쏟아내면서 죽었음에도 소녀는 놀라기는커녕 피곤한지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하아암…… 졸려…… 괜히 나왔나…… 몰라…… 잘래…….”

그리고 이내 소녀는 정말로 땅바닥에 몸을 누이고 잠에 빠져들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로 그 주위는 피바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몸을 누이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헌터들은 그제야 저 소녀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미셸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멍청한 놈들.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도…….”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저들이 말한다고 들을 위인들도 아니었고.”

“전력 하나가 아쉬운 와중에 저렇게 목숨을 버리다니…… 쯧, 언데드로 쓸 재료들이 늘었군.”

그런 미셸을 윌리엄 에반스가 달랬지만 미셸의 찌푸려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까닥거리면서 잠든 소녀의 옆에 쓰러져 있는 열 구의 시체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8서클 대마법사이자 흑마법사인 미셸이었기에 열 구의 시체는 순식간에 훌륭한 무기로 변모했다.

하지만…….

파스스…….

“이런 젠장!”

열 구의 시체들은 죽음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살과 뼈가 녹아내리면서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미셸의 욕설에 윌리엄 에반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겐가?”

“독이다.”

“독?”

“그래, 저 녀석의 주위에는 따로 능력을 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독이 퍼지는 모양이다. 아마 방금 당한 녀석들도 그 독에 당한 거겠지. 그리고 시체에는 통하지 않는 것 같은데…… 언데드로 변하니 바로 녹여 버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설마 지금 자네는 독에 지능이 있다는 겐가?”

“……믿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겠지. 저 녀석의 주위에는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독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허어…… 그럼 대체 어떻게 저자를 없애야 한단 말인가?”

독 때문에 다가갈 수조차 없고 멀리서 요격을 하려고 해도 가까이 가기만 하면 독에 의해서 녹아버리는 탓에 멀리서 요격할 수조차 없다.

일반적인 총 같은 것은 물론이고 마법까지 말이다.

그런 적을 어떻게 없애냐는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미셸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몇 가지 있지.”

“오! 정말인가? 역시 자네는 똑똑하군.”

방법이 있다는 말에 윌리엄 에반스는 반색했지만 이내 미셸의 말에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첫째로는 저 독에 중독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런 신체를 가진 사람은 그나마 나밖에 없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나?”

상대는 마왕이었다. 그나마 윌리엄 에반스만이 저 독을 견딜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었다. 독을 신경 쓰면서 마왕과 대거리를 할 정도로 윌리엄 에반스는 강하지 못했다.

그런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미셸은 두 번째 방법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방법도 윌리엄 에반스의 굳은 얼굴을 풀어주진 못했다.

“그럼 두 번째로 넘어가지.”

“……이번엔 가능한 방법이겠지?”

“당연하지. 이것도 간단한 방법이 있다.”

“후우, 그래 두 번째는 뭔가?”

“멀리서 요격해도 녹아내리지 않는 공격을 하면 되지. 어때? 간단하지?”

“하아……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이 이곳에 어디 있는 겐가?”

미셸이 장난치고 있다고 생각한 윌리엄 에반스가 표정을 굳히면서 말하자 미셸이 큭큭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장난? 아니, 나는 장난을 친 적이 없어.”

“지금 할 수 없는 일들을 방법이라고 내놓는 게 장난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할 수 없는 건 아니지.”

“뭐? 그게 무슨……?”

“그분께서 오고 계신다.”

키아아아아!

미셸의 말과 함께 어디선가 누군가 내지르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포효 소리에 소녀의 형상을 한 마왕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던 헌터들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것은 곤히 자고 있던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루시퍼랑 라스는 당한 건가아…….”

누군가의 포효에 소녀는 잠에서 깨어나 땅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몸은 피로 얼룩져 있었지만, 소녀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양반다리를 한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런 소녀와 동시에 미셸도 말했다.

“온다.”

“오셨다.”

-키아아아악!

두 사람의 말과 함께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거대한 본 드래곤이 포효를 내지르면서 조금 전의 포효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런 본 드래곤을 보면서 윌리엄 에반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미스터 최가 돌아온 건가?”

윌리엄 에반스의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면서 미셸이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최? 아니지…… 아니야.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겠나? 윌리엄?”

“뭐? 그럼 대체 뭐라고 불…….”

“미스터 최가 아니라…… 죽음의 군주님이시다! 흐하하하!”

그렇게 외치면서 미셸이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까마득한 상공 위에 있는 본 드래곤에 올라타 있기에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미셸은 현재 최진혁의 경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9서클! 하하하! 9서클이라니! 역시 나의 주인이신 죽음의 군주님이십니다!”

미셸의 광소를 들은 헌터들도 죽음의 군주라는 말에 하나둘 고개를 들어 하늘, 아니, 하늘을 가린 본 드래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 드래곤을 바라보는 것은 비단 헌터들만이 아니었다.

“……으, 너희들 거슬려. 죽어.”

푸화아악!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본 드래곤을 향해 검지를 치켜든 소녀의 손가락 끝에서 독무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런 독무는 이내 본 드래곤을 녹일 것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독무를 향해 본 드래곤은 코웃음을 치면서 자신의 입을 쩌억 벌렸다. 그리고…….

푸화아악!

소녀가 독무를 뿜어낸 것처럼 본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뱉었고, 소녀가 뿜어낸 독무는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휘말려서 사라졌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소녀는 양반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내려와! 이 벌레들아!”

분명 여린 소녀의 목소리였지만 그런 소녀의 목소리를 들은 헌터들은 마치 독에 중독된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실제로도 소녀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들어 있었고, 그런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모두 독에 중독되었다.

그리고 그런 독기 가득한 소녀의 외침에 본 드래곤의 위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두 개의 인영이 까마득한 상공에 떠 있는 본 드래곤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 모습에 헌터들은 독에 중독된 상태에서도 경악을 했지만 오직 세 사람만이 놀라지 않았다.

한 명은 당연히 미셸이었고 나머지 둘은 윌리엄 에반스와 마왕 소녀였다.

그리고 이내 까마득한 상공에서부터 떨어져 내린 두 인영이 땅에 발을 디뎠다.

“후우, 오랜만이군. 미셸.”

“최진혁 님! 그런데…… 옆에는 루더슨 아닙니까?!”

두 인영 중 하나인 최진혁을 보고 반색을 하던 미셸은 그런 최진혁의 옆에 서 있는 루더슨을 보고 기겁을 하며 말했다.

그런 미셸의 반응에 최진혁은 고개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주마.”

“……설명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잠시 놀랐을 뿐입니다. 저는 제 주인이신 죽음의 군주께서 하시는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이유가 있기는 하지…….”

최진혁은 미셸의 말에 지금 자신이 루더슨과 같이 다니게 된 이유인 세 명의 신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눈앞에 있는 적을 생각해 내고 고개를 내저어 상념을 떨쳐냈다.

“일단 저 녀석부터 처리하고 해후를 나누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미셸.”

“……아닙니다. 그럼 저는 헌터들을 수습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최진혁의 싸움에 자신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미셸은 조용히 뒤로 빠져서 소녀의 독에 중독되어 있는 헌터들을 도우러 사라졌다.

미셸이 사라지자 최진혁은 고개를 돌려 삐뚜름하게 서 있는 소녀를 보면서 말했다.

“너도 마왕이겠지.”

“그래, 내가 바로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다.”

자신을 마왕 중 하나인 나태의 마왕 벨페고르라고 소개한 소녀의 말에 최진혁과 루더슨도 자신들의 소개를 간략하게 했다.

“나는 죽음의 군주, 최진혁이다.”

“나는 신의 검, 루더슨이라고 한다.”

“너희 둘의 별명과 이름은 꿰고 있으니 따로 말하지 않아도 돼. 졸리고 피곤하니까 빨리 덤비고 죽어버려.”

자신들에게 별다른 관심조차 주지 않는 벨페고르의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과 루더슨은 아직 하지 않았던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구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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