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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100화 (100/149)

리치, 헌터가 되다! 100화

두 명의 신(1)

-쿨럭…….

“……질긴 녀석 같으니.”

루더슨은 그리 말하면서 자신의 발아래에서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는 라스를 바라봤다.

-크흐…… 재밌었다! 재밌었어! 크하하하!

“……미친 건가?”

-내 도발이 성공적으로 먹혀서 기분이 좋구나. 아무래도 네 녀석 잠재력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는데 비리비리한 모습을 보니 화가 나더군. 그래서 조금 긁어보니 잘도 넘어오는구나. 물론 나도 도발에 넘어갔으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리 말하면서도 라스는 또다시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말을 하는 라스의 몸은 정상보다는 비정상에 가까웠다.

루더슨의 칼날 같은 날개에 전신이 난자당한 탓에 전신은 피투성이였고, 거기에 더해서 사지에는 날개들이 틀어박혀 있어서 꼼짝도 못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라스는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라스의 반응에 루더슨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느냐. 죽음이 그렇게 좋느냐?”

-흐…… 싸움질밖에 모르던 녀석이 수천 년 동안 싸움이라고는 하지도 못했다. 그 기분을 네 녀석이 아느냐? 전신을 쇠사슬에 휘감긴 채 심해에 처박힌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너와의 싸움은 그런 응어리진 마음을 단숨에 풀어주었지. 만족했다.

“……고작 싸움질 때문에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인 거냐.”

-거기까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저 잘 즐겼을 뿐.

“……마왕과 내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건지. 잘 가라. 명복은 빌지 않겠다.”

-크…… 성기사에게 명복을 빌어달라고 말하는 마왕은 이 세상에 없을…….

파스스…….

루더슨의 말이 웃긴지 클클대며 웃던 라스는 하던 말도 다 끝내지 못한 채, 루더슨의 마무리 일격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라스가 사라진 자리에는 꿈틀대는 붉은 심장만이 놓여 있었다.

라스의 유품(?)인 붉은 심장을 허리를 숙여 집어 든 루더슨은 최진혁이 싸우던 곳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후우…… 왔나?”

“……루시퍼는 어떻게 되었지?”

“보면 모르냐? 피 한 방울,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저승으로 보내주었다. 그쪽은 어떻게 되었지?”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말없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손에는 아직도 두근대며 뛰고 있는 라스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심장을 본 최진혁은 박수를 치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완벽하군. 그리고…… 보아하니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얻은 게 있는 것 같군.”

최진혁이 말하는 얻은 것은 마왕을 잡고 얻은 전리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루더슨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루께서 힘을 나누어주셨다.”

“……?! 사실이냐?”

“그래, 내가 너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나는 힘들게 혼자서 깨우치는 와중에 누구는 물려받아서 힘을 얻으니 몹시 배가 아프군.”

“그러는 너도 파편의 힘 덕분에 신의 권능을 얻지 않았나?”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루더슨의 통렬한 한 방에 최진혁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자신도 어찌 보면 루프르스의 덕을 본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곧장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너도 이제 신이 된 건가?”

신.

가이아나 루와 같은 신이 된 거냐는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너도 알지 않느냐. 지금 내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말이야.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잘 아는군. 나 또한 지금 힘만은 신이라고 칭해도 무방하나…….”

“신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권능이 없겠지.”

“그래 맞다.”

루더슨의 말대로 최진혁이 가진 신의 권능은 창조와 파괴, 두 개뿐이었다.

물론 이 두 개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한 실정이지만 두 개 가지고 신이라고 명함을 내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번에 권능을 얻었다.”

“호오? 어떤 권능이지?”

“영원이다.”

“영원이라…… 전투에 도움이 되는 능력은 아니군.”

“하지만 신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이지.”

신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루더슨의 말대로 영원 또한 권능이라 칭해도 충분할 만한 능력이었다.

다만…….

“다른 마왕들과 싸우는 데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겠군.”

영원이라는 권능은 시간이라는 적과 싸울 때나 유용하고 쓸모가 있지, 마왕 같은 이들과 싸울 때는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권능이었다.

그걸 루더슨도 알기에 최진혁의 말에 살짝 시무룩한 얼굴을 했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고 본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런 루더슨을 모른 체해주고는 최진혁은 자신도 이번에 얻은 권능, 파괴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나도 이번에 새로 권능을 얻었다.”

“……또 말인가?”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눈에 띄게 부러워했다. 평소와는 다르게도 말이다.

물론 그런 반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걸 보지 못할 최진혁이 아니었기에 최진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루더슨에게 말했다.

“부럽나?”

“……보았나 보군. 솔직히 말하면 부럽다. 아니, 그 누가 부럽지 않겠나? 무려 신의 힘인데 말이야. 부럽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지.”

“흐음, 그것도 그렇군. 이제 일어나지.”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은 걸터앉아 있던 돌무더기에서 엉덩이를 뗐다.

그런 최진혁을 보면서 루더슨이 라스의 심장을 건네며 말했다.

“어디로 갈 생각이지? 엘프 왕국이 있는 엘프 포레스트? 아니면 기사 제국과 마도 왕국?”

루더슨의 물음에 최진혁은 라스의 심장을 아공간에 던져 넣으면서 말했다.

“아니, 우리는 지금부터 미국으로 간다.”

* * *

휘오오오.

“미셸, 받게나.”

“음? 고마워, 영감.”

“……영감이 아니라 윌리엄일세.”

“그거나 그거지. 그리고 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새빨갛게 익은 사과를 받아 든 미셸이 윌리엄 에반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 미셸을 보면서 윌리엄 에반스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자네가 나랑 동년배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리치니까. 언데드가 늙는 거 봤어? 그리고 이건 껍데기야. 내부는 해골이라고.”

예전과는 달리 제법 풀어진 말투로 미셸이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답했다.

“흐허허허, 그것도 그렇지. 그러면 이제 다시 싸우러 가야 하지 않겠나?”

아삭!

“음, 가야지.”

싸우러 가자는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미셸은 윌리엄 에반스가 건넨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미셸의 곁에 있던 흙무더기들이 들썩이더니 이내 스켈레톤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런 스켈레톤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미셸은 윌리엄 에반스가 건넨 사과에 집중했다.

아삭아삭!

“음, 이거 꽤 맛이 괜찮네. 이런 건 어디서 구했대?”

“미국을 위해서 일해주는 자네를 위해서 사과 하나 못 구해준다면 헌터 협회 총협회장이라는 직함은 떼야겠지.”

“그런가? 어쨌든 고마워.”

“그런데 자네는 언데드, 그러니까 리치인데 맛이 느껴지는 건가?”

윌리엄 에반스의 말대로 미셸은 리치, 그러니까 언데드였다. 그리고 언데드는 이미 죽은 존재. 즉,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응, 8서클에 오르면서 느껴지더라고.”

단 미셸이 8서클이라는 어마어마한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8서클은 그야말로 인간의 탈을 벗기 시작하는 경지.

그런 만큼 미셸 또한 언데드라는 것에 어느 정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것 덕분도 있지만.”

폴리모프 마법이 인챈트 된 목걸이를 툭툭 치면서 미셸이 말했다.

사실 8서클 리치일지라도 언데드가 맛을 느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대상으로 완벽하게 변하게 해주는 폴리모프를 장기간 사용한 덕분에 가능해졌다.

그렇게 미셸은 사과를 씹어 먹으면서 천막들을 지나쳐 휑한 공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미셸의 뒤를 수백 기가 넘는 스켈레톤들과 수십 기가 넘는 듀라한 그리고 다섯 기의 데스나이트가 뒤따랐다.

압도적인 풍경에 천막에서 쉬고 있던 다른 헌터들이 천막을 나와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런 헌터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셸은 공터에 도착할 때까지 오로지 사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윌리엄 에반스와 미셸이 공터에 도착하자 윌리엄 에반스가 공터에 마련된 단상 위로 올라가 단상을 발로 탕탕 차면서 외쳤다.

“자자! 다들 오늘도 열심히 싸워서 미국을 탈환합시다!”

그냥 외침도 아니라 마나가 담긴 외침이었기에 윌리엄 에반스의 목소리는 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런 윌리엄 에반스의 외침에 옆에 있던 미셸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야? 벽을 넘었다고 힘을 너무 막 쓰는데?”

“가이아 님 덕분에 얻은 힘. 미국, 나아가서 지구를 위해서 써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그거랑 이 외침이랑 무슨 상관인 건데…….”

루더슨에게 힘을 건네준 루와 마찬가지로 가이아 또한 자신의 힘을 일부 윌리엄 에반스에게 나눠주었다.

그 덕분에 윌리엄 에반스는 막혀 있던 벽을 넘어서 소드엠퍼러라는 단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물론 가이아가 건네준 힘 덕분도 있지만, 윌리엄 에반스가 평소에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벽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에반스는 평소에도 막혀 있는 벽에 절망하지 않고 꾸준히 마나를 모으고 수련을 해왔기에 가이아의 힘이라는 플러스알파가 더해져서 결국 벽을 넘어선 것이다.

그랬기에 윌리엄 에반스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이 힘이라면 미국을 금방이라도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은 도미닉 때문에 반으로 갈라져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도미닉에게 지배되어 마치 광전사처럼 달려드는 이들 때문에 피해도 피해지만 본래 가지고 있던 영토들도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벽을 넘게 되면서 윌리엄 에반스는 미국을 재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윌리엄 에반스의 귀에 한 헌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협회장님! 저…… 저걸 보십시오!”

눈이 좋은 S급 헌터의 말에 윌리엄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도심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괴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백, 수천이 넘는 사람들 그리고 헌터들이 황무지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날붙이들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날붙이들은 그들의 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괴이한 모습에 윌리엄 에반스가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 윌리엄 에반스의 옆에 서 있던 미셸의 몸이 별안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미셸?”

“……아…….”

“뭐라고?”

“막으라고! 저거 당장!”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 말이 제대로 안 들리자 윌리엄 에반스는 되물었고, 그런 윌리엄 에반스에게 미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미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어? 저 사람들 자기 목을 찌르고 있습니다!”

“……큰일 났군.”

“대체 저들이 왜 저러는 겐가? 자네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을 재촉하듯이 묻는 윌리엄 에반스의 말에 미셸은 허탈한 얼굴로 윌리엄 에반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물 소환. 저들의 피와 살, 그리고 영혼으로 고위 마족을 소환하는 거다. 그리고 저 정도의 제물이라면…… 마왕이다.”

미셸의 그 말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그런 미셸의 말을 듣지 못한 이는 없었고, 이내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미셸의 입도 다시 열렸다.

“온다…….”

두려움이 담긴 미셸의 목소리에 헌터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신의 병장기를 손에 쥐었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와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또 다른 마왕이 지구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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