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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99화 (99/149)

리치, 헌터가 되다! 99화

오만과 분노(3)

‘이 힘은 대체…….’

라스를 향해 날아가면서 루더슨은 자신의 몸에서 넘쳐흐르는 힘에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위가 눈에 띄게 느려졌기 때문이다.

흡사 루와 가이아 그리고 루프르스를 만났을 때처럼 느려진 주위의 시간에 루더슨이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네 생각이 맞다.

‘루이시여…….’

다름 아니라 루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도미닉과의 전투로 인과율의 영향을 받아 잠이 들었을 터인 루의 목소리에 루더슨은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루께서는 분명…….’

-그래, 도미닉…… 그 마왕 녀석을 처리한 대가로 나는 잠이 들었다. 실제로도 내 본체는 지금도 잠들어 있지. 물론 그렇다고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런데 여긴 갑자기 어쩐 일로…… 설마 지금 제 몸에서 느껴지는 이 힘이……?’

-네 생각대로다.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힘이 결코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루더슨은 이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에 대해서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고, 거기에 루가 확답을 해주었다.

-지금 네 몸속에 퍼져 있는 힘은 내 힘이다. 정확하게는 나를 이루는 근간 중의 일부가 너에게 전달되어 있지.

‘그런……! 그럼 루께서는 어떻게 신체(神體)를 유지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루께서는 무척이나 약해진 상태일 터인데…….’

-너 말고도 아르타에게도 건네줬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루이시여!’

안 그래도 도미닉 건 때문에 루는 많은 힘을 소모했고 또 잃었다.

그런 와중에도 본인의 신력의 근간을 자신도 모자라서 교황인 아르타에게까지 건넸다는 말에 루더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루더슨을 향해서 루의 목소리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주신으로 나를 받들던 세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신 노릇을 하겠느냐. 나를 이루는 근간 중 하나만, 딱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 있으면 나는 신 노릇은 못 해도 형체는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이미 준 힘을 뺏어올 방법도, 다시 나에게 줄 방법도 지금의 너에게는 없으니 잠자코 받아들여라.

‘알겠습니다.’

-아르타는 인간처럼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자식은 자식이다. 내 신력으로 빚어낸 자식. 그런 만큼 내 근원 중 일부를 이어받았으니 그 녀석도 너처럼 신좌에 오르게 되겠지.

‘신좌……? 그게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루이시여?’

루의 말을 루더슨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루더슨의 반응에 루의 목소리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너는 네가 신의 자리에 오른 것도 모르고 있는 거냐? 네 등에 돋은 날개를 봐라. 신력으로 이루어진 그 날개를 말이다. 물론 언뜻 보면 신성력인지 신력인지 잘 구분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네가 다룰 힘이니 익숙해져라.

‘……예, 알겠습니다. 루이시여.’

-물론 지금의 너는 완전한 신은 아니다. 힘만 센 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 저 멀리 있는 최진혁 녀석은 어찌 파편을 잘 흡수해서 신의 능력 중 하나인 창조의 권능을 얻었지만 너는 아직 그걸 얻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저도 그것을 얻을 방법이 있습니까?’

-신의 능력은 창조 말고도 많다. 너도 이번 싸움으로 네가 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네 안에 있는 파편을 흡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라.

‘알겠습니다, 루이시여. 모든 것은 당신의 뜻대로.’

그 말을 끝으로 루의 목소리는 씻은 듯이 사라졌고, 주위의 시간은 본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죽어라!”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푸욱! 푸욱! 푸욱!

“……컥!”

루더슨의 말과 함께 루더슨의 등 뒤에 달려 있던 8쌍의 날개가 칼날처럼 변하더니 이내 라스의 전신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인 라스는 지금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몰려오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싸움이 일어나고 처음 듣는 라스의 비명에 루더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이게 신의 힘인 건가…… 마음에 드는군.”

“……네 녀석 대체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리고 내 상처는 왜 회복되지 않는 거냔 말이다!”

일반적인 마족들도 어마어마한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다. ‘회복’ 하면 떠오르는 트롤과도 비교를 거부하는 회복력은 마족의 천적인 신성력에 공격당하고도 마족의 신체를 회복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 후작은 되어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마족 후작보다 까마득히 위에 선 마왕인 자신의 몸에 난 상처라면 진즉에 흉터 하나 없이 회복되어야 했다.

하지만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라스가 느끼는 당혹감은 어마어마했다.

“나도 몰랐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신의 자리에 오를 만한 힘을 갖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럴 리가! 감히! 감히 너 따위가 신의 자리를 넘보느냐!”

시종일관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짓고 있던 라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분노가 감돌았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라스의 얼굴을 보면서도 루더슨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는 상황이 바뀐 것 같군. 이젠 네가 장난감인 것 같은데 말이야…… 안 그런가?”

“이노오오옴!”

뿌득!

루더슨의 도발에 라스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날개들이 박힌 자신의 신체 부위들을 뜯어냈다.

그렇게 되자 라스는 사지가 사라진 모양새로 바닥을 굴렀지만 이내 잘린 사지들은 다시 돋아났다.

그리고 다시 팔다리를 재생시킨 라스는 이를 갈면서 외쳤다.

“이 수모…… 제대로 갚아주마.”

“바라던 바다. 덤벼라, 마왕. 이 세계에 네놈들이 발 들일 곳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건방진!”

오연하게 하늘에 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루더슨의 모습에 라스는 이를 갈면서 자신의 심장을 펌핑질 했다.

그와 함께 분노의 힘을 담은 라스의 마기들이 주변으로 터지듯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라스의 모습도 변해갔다.

귀공자 느낌을 풍기던 고급스러운 라스의 붉은 머리는 점점 짙어져 이내 핏빛 머리가 되었으며, 여리여리하던 몸은 헐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근육질의 몸이 되었고 키는 조금 전의 배 이상은 커졌다.

가히 괴물이라고 칭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루더슨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변신을 마친 라스가 입에서 불길을 토해내면서 외쳤다.

-네 녀석의 영혼은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해봐라, 마왕. 다만 나 또한 약속하지. 네 녀석을 비롯한 다른 마왕 하나는 여기서 죽는다.”

확정 짓듯이 말하는 루더슨의 모습에 라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녀석 혼자서 나와 루시퍼를 처리하겠다는 말이냐! 흐하하하! 가소롭구나.

하지만 그런 라스의 웃음도 길지 않았다. 이어진 루더슨의 말 때문이었다.

“언제 나 혼자서 너희 둘을 처리한다고 했지?”

-뭐?

“나는 너 하나만 상대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그럼…….

“그래, 나머지 한 놈은 최진혁…… 그 녀석이 처리할 거다. 그러니 너는 나에게만 집중해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한 약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다.”

-으득, 이놈…… 건방지구나.

“건방은 네 녀석이겠지. 아직까지도 오만을 버리지 못했구나. 아, 혹시 네가 오만의 마왕이었나? 이거 헷갈리는군.”

-이노오오오옴!

평소의 루더슨과는 달리 지금의 루더슨은 라스의 속을 벅벅 긁고 있었다. 태어나서 도발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의외로 루더슨은 도발에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은 여기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거기에 루더슨의 재능에 당한 라스는 이것이 도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쿵쿵 소리를 내면서 루더슨을 향해 걸어…… 아니, 달려갔다.

쿵! 쿠웅! 쿵!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울리는 천둥 번개 같은 소리에 루더슨은 입가에 띠운 미소를 지우고 본격적인 전투 자세를 잡았다.

키이이잉!

그와 함께 루더슨의 등에 달린 8쌍의 날개의 끝부분이 칼날처럼 변하고 또다시 그 칼날의 끝에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푸슝!

-크아아악!

“와라!”

그리고 모여든 빛무리가 라스에게 날아가는 순간 둘은 고함을 내지르면서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 * *

쾅! 콰앙! 콰콰쾅!

멀리서 들리는 폭음 소리와 흩날리는 흙먼지를 바라보면서 최진혁이 중얼거렸다.

“저쪽은 잘 싸우고 있나 보군.”

그리고 그런 최진혁 앞에는 검은 산이 있었다.

-크아아악! 정정당당하게 붙어라! 비겁하게 소환수 등에 숨지 말란 말이다!

그 산의 아래에는 드넓은 마계를 호령하는 마왕 중 하나인 오만의 마왕 루시퍼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산을 구성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키킥! 킥킥!

-캬아악! 캭캭캭!

언데드들이었다. 데스 오라의 힘입은 언데드들이 루시퍼의 위에 얹어지고 얹어져서 종국에는 거대한 검은 산을 만들어냈다.

물론 변신을 마친 루시퍼가 계속해서 오만의 마기를 흩뿌리면서 자신을 깔아뭉갠 언데드들을 얼음과자처럼 부수고는 있지만 부순 만큼의 수가 추가되고 있었기에 눈에 띄는 결과는 없었다.

그런 산을 보면서 최진혁이 말했다.

“너와 싸우면 싸울수록 내 힘이 조금씩 더 강해지는 기분이 드는군.”

-그러니까……! 정정당당하게 싸우란 말이다!!

“이 힘은 너를 죽이면 완전해지겠네. 아니, 신의 자리를 넘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크아아악! 풀어라! 풀란 말이다!

쩌저정! 쩌정! 쩌저정!

고함을 내지르면서 마기를 흩뿌리는 루시퍼의 공격에 주위가 얼어붙고 검은 산을 이루는 언데드들이 터져 나갔지만, 최진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루시퍼는 고함을 내지르고 비겁하다는 둥 정정당당하게 싸우라는 둥 소리쳤지만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루시퍼의 목소리 점점 작아졌고, 종국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최진혁은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파편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또 다른 신의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지만, 최진혁은 새로 생긴 이 힘이 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에 최진혁은 신기해하면서 자신이 새로 얻은 신의 능력을 눈앞에 있는 검은 산, 이제는 오만의 마왕 루시퍼의 무덤을 향해 사용했다.

“파괴.”

창조와 대립하는 신의 힘. 파괴의 힘이 최진혁의 앞에 있는 검은 산에 적중했다. 그리고…….

우득, 우지직, 빠드득!

-키에에엑!

산을 이루는 있는 언데드들이 하나하나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산으로 보일 정도로 많던 언데드들은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밑에 깔려있던 루시퍼의 시체마저도 말이다.

“쯧, 그러고 보니 심장을 빼내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최진혁은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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