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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97화 (97/149)

리치 헌터가 되다! 97화

오만과 분노(1)

쿠구구궁!

“이 진동은…….”

“그래, 녀석들이 온다.”

바닥에 흥건한 피들이 완전한 소환진을 이루자 이내 붉은 빛을 토해내면서 가동을 시작했다.

-끼에에엑!

거기에 더해서 마왕 소환이라는 이름하에 제물로 바쳐진 이들의 영혼들이 내뱉는 귀곡성으로 인해서 마치 철판을 긁는 듯한 소리가 용병 왕국이었던 곳에 울려 퍼졌다.

“……영혼들이 고통스러워하는군.”

“그럴 수밖에. 자신들의 영혼을 제물로 바쳐서 마왕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소환됐으니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저들은 영원토록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목소리에 물기가 있는 루더슨의 말에 최진혁은 담담하게 그들의 최후를 말했다.

그리고 최진혁의 말대로 용병 왕국의 상공에는 억울하게 제물로 바쳐진 이들의 영혼들이 한데 모여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우성들과 함께 땅울림은 점점 더 커져만 갔고,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은 강해져만 갔다.

이내 붉은빛들은 뭉치면서 두 개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크기는 약 180~190㎝ 정도에 덩치는 루더슨 정도 되는 형상을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붉은빛은 완전한 형상을 빚어내고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붉은빛이 무언가를 빚어낸 자리에는 2명의 미남자가 오연하게 서 있었다.

“……왔다.”

“후우…….”

최진혁의 ‘왔다’라는 말과 함께 루더슨은 상공에서 울부짖고 있는 영혼들에게서 눈을 돌려 지상에서 서 있는 두 명의 미남자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푸후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최진혁과 루더슨을 바라보던 두 미남자 중에서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한 남자의 입이 열렸다.

“이렇게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군. 죽음의 군주 아르만, 그리고 신의 검 루더슨. 아, 이곳에서는 아르만이 아니라 최진혁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이런 시답잖은 말이나 하려고 현신한 것은 아닐 텐데?”

현신은 분명 마왕들에게도 무리가 뒤따르는 일이다.

반신을 넘어서 신의 자리를 넘보는 이들의 현신은 다른 이들의 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제아무리 마왕이라고 한들 그들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현신을 하게 되면 본래의 능력을 온전히 갖추고 현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노리는 이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현신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최진혁이 하고 있을 때였다.

“도미닉, 그 멍청한 녀석이 마지막에는 쓸모 있는 짓을 해줬더군. 도미닉 녀석과 루를 맞바꾼 거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지.”

“……알고 있었나?”

“물론. 거기에 더해서 이제 힘도 다 떨어져서 빌빌대고 있는 가이아 정도는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를 막기는커녕 좋은 영양분이 될 테니 나서지도 못할 테고 말이야.”

현재 루와 가이아의 상황에 대해서 잘 아는 듯한 말에 최진혁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진혁과 루더슨의 신경을 거스른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신경도 안 쓴다…… 이건가?”

“루께서 너희들을 심판하지 못할지언정 나까지 너희들을 심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둘은 기세를 내뿜어서 두 명의 마왕에게 압박을 가했다.

그런 두 사람의 기세에 타는 듯한 붉은 머리의 마왕과 시리듯이 차가운 푸른 머리의 마왕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해보자는 거냐?”

“……우리도 많이 얕보여졌나 보군. 고작해야 인간 둘이서 우리 둘을 막을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너희들의 지금 이 선택으로 너희들의 목숨이 사라지느냐 마느냐로 갈린다. 지금 이 선택…… 후회하지는 않겠지?”

두 마왕의 말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후회하면? 어차피 여기서 너희들을 잡지 못하면 나중에 힘들어진다. 지금 너희들이 모든 힘을 온전하게 가지고 현신을 하지는 못했을 터. 마왕 두 놈을 한 번에 잡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흐…… 흐하하하! 재밌군, 재밌어. 좋다, 그 결정, 받아주마. 드넓은 마계의 6마왕 중 하나, 분노의 마왕 라스. 너희들의 도전을 받아주마.”

“……쯧, 라스 네 녀석은 그 성질부터 줄여라. 여기서는 한 발자국 빼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것을…….”

“흐하하하! 루시퍼, 네 녀석은 언제나 그렇게 빼는 버릇부터 없애는 게 좋지 않겠나?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몸을 뺀다고 한들 저 두 거머리가 우리를 보내줄 성싶으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네 녀석은 저 둘과 싸우기 위해서 일부러 이곳으로 현신한 것일 텐데?”

“흐으…… 역시 알고 있었나?”

“네놈을 본 지도 수천 년이 넘었다. 그 정도쯤은 당연히 꿰뚫고 있지.”

자신들을 거머리 취급하면서 대화하는 둘의 모습에 최진혁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으득, 잡담은 거기까지다.”

드드득!

그 말과 함께 최진혁은 곧장 전투를 시작했다. 손을 까닥거리자 땅바닥에서 뼈 무더기들이 우후죽순 솟아오르면서 라스와 루시퍼의 전신을 휘감았다.

“흥! 고작해야 본 계열의 마법이냐? 가소롭군.”

“……이하동문이다.”

최진혁의 견제 마법은 둘이 힘을 한 번 주는 것으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최진혁은 당황하지 않고 계속해서 뼈 무더기를 소환하면서 두 마왕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래, 마음껏 비웃고 마음껏 방심해라.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니까. 가라, 루더슨.”

“……네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가고 있다!”

타다닷!

최진혁이 전력으로 두 마왕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동안 루더슨은 땅을 박찼다.

그것마저도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던 탓에 루더슨이 박찬 땅은 움푹 파이면서 크레이터가 생겨날 정도였지만 그러한 사실에 눈길을 주는 이는 이곳에는 없었다.

그렇게 땅을 박찬 루더슨은 자신의 검을 빼 들고 두 마왕 중에서 분노의 마왕, 라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라스의 코앞에 도달한 루더슨은 곧장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내려 베었다.

카강!

“역시나…… 인간은 인간이라는 건가? 나약하군.”

“크윽!”

하지만 그런 루더슨의 공격을 맨손으로 잡아내는 라스의 모습에 루더슨은 재빨리 검을 회수하고는 뒤로 빠르게 두어 걸음 물러났다.

“느려.”

“……?!”

하지만 물러서는 루더슨을 순순히 보내줄 정도로 라스는 착한 이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마왕이 착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다.

단숨에 루더슨이 벌린 거리만큼을 따라잡은 라스가 어느새 지옥의 불길이 휘감긴 주먹으로 루더슨을 후려쳤다.

“크윽…….”

“호오? 막아?”

하지만 루더슨도 라스보다는 처질지언정 동일 선상에 놓인 강자였기에 충격은 있었지만 라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다만…….

드드드드…….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밀려난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는지 루더슨은 분통을 터뜨렸다.

“제길…….”

“상대는 마왕이다. 그런 마왕의 공격을 맞고 고작 몇 미터 밀려난 거라면 화를 낼 만한 일은 아니지. 앞을 봐라, 또 온다.”

그런 루더슨의 곁에서 최진혁이 말했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웃으면서 달려오는 라스를 맞상대했다.

라스는 무기 없이 오직 자신의 두 주먹에 지옥의 업화를 휘감고 달려들었다.

루더슨이 그런 라스와 맞상대를 하는 동안 최진혁은 오만의 마왕, 루시퍼의 앞에 섰다.

“네가 오만의 마왕, 루시퍼인가?”

“……이미 들어놓고 또다시 묻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인가? 역시 열등한 것들이란…….”

“호오……? 네 녀석은 열등하지 않다는 말인가?”

“당연. 열등? 그런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를 칭하는 말은 우월. 그 말 하나면 충분. 그 이상의 수식 따위는 불필요하다. 다만 너에게는 열등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군.”

“과연…… 오만이라는 수식언이 붙을 법한 말이로구나.”

9서클의 대마법사인 최진혁에게 열등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루시퍼의 모습에 최진혁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이내 자세를 잡았다.

그런 최진혁의 모습에 루시퍼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마주 자세를 잡았다.

“후우, 라스 녀석 때문에 열등한 것과 손을 섞게 되다니…… 쯧, 이 나와 손을 섞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죽어라. 열등한 것.”

“……그 자신감이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지 보겠다.”

드드드득!

그 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던 최진혁의 주위 땅이 들썩이더니 이내 스켈레톤을 비롯한 각종 언데드들이 땅을 뚫고 나왔다.

하지만 그런 언데드들의 깜짝 등장에도 불구하고 오만의 마왕이라는 수식언답게 루시퍼는 동요는커녕 오히려 오연한 눈빛으로 언데드들을 비롯해서 최진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끼리끼리 노는군. 열등한 주인에 열등한 소환수. 어찌 보면 환상의 궁합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 이것도 나름대로 대단하다면 대단하군.”

“……그 표현, 바꾸어주지.”

루시퍼의 도발, 아니, 진심이 담긴 말에 최진혁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면서 말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창조의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진바 마나를 탈탈 털어가면서 최진혁은 언데드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진혁이 소환한 언데드는 늘고 늘어서 이제는 텅 비어버린 기르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불어나자 그제야 루시퍼의 얼굴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최진혁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열등한 소환수가 이렇게 많으니 부담은 되시나 보군?”

“……그래 봐야 열등한 것들이다. 개미들이 아무리 많아 봐야 코끼리를 잡아먹지는 못하는 법.”

루시퍼의 그 말에 최진혁은 빙그레 웃으면서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루시퍼를 향해 말했다.

“그거 아나? 지구에는 평범한 개미들 말고도 군대개미라는 개미들이 있더군. 그리고 그 군대개미들이 수백, 수천 마리가 모인다면…….”

그렇게 말을 늘어뜨리면서 최진혁은 자신의 아공간에 잠들어 있던 언데드들까지 풀었다.

자신이 손수 제작한 수백 기의 듀라한과 둠 나이트 카르한 거기에 더해서 본 드래곤인 용용이까지 말이다.

아쉽게도 데스나이트들과 그들의 리더 격인 칼란은 엘프 왕국에 엘리쟈와 김혜진의 곁에 붙여둔 터라 아공간에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본 드래곤? 거기에 둠 나이트라…… 평범한 열등 종자는 아니었구나. 나조차도 얻지 못한 창조의 힘까지 다루다니! 탐이 나는 능력이로군.”

“언제까지 입에서 열등이라는 말이 나올지 기대가 되는구나. 그리고 나도 가지고 있는 능력을 네 녀석은 가지고 있지 못하니 열등이라는 말은 내가 아니라 너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이놈! 감히 나 루시퍼의 면전에 대고 그런…….”

“시끄럽다. 열등한 소환사의 열등한 소환수들의 맛이나 보아라. 데스 오라.”

그 말을 끝으로 최진혁은 데스 오라를 뿜어냈고, 그런 데스 오라에 물든 언데드들은 검은 안광을 뿜어내면서 루시퍼를 향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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