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헌터가 되다! 96화
용병 왕국(2)
-돌아왔습니다.
“그래. 잘했다, 카르한.”
헥터와의 싸움을 마치고 자신에게 돌아와 보고하는 카르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최진혁은 그런 카르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쨌든 헥터는 카르한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닌 용병이고 검사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카르한은 헥터와는 달리 최진혁에게서 최강의 버프 마법인 데스 오라를 받았지만 그건 언데드인 카르한을 위한 보정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전투는 끝난 건가?”
“그래, 몸은 어떻지?”
“애초에 믿을 거라고는 이 몸뚱이밖에 없었다. 괜한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면서 용용이의 등 위에서 눈을 감고 내부의 치료에 전념하던 루더슨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최진혁에게 물었다.
“저 녀석은 이기고 온 건가?”
“훌륭하게 이기고 왔더군.”
“과연…… 그럼 이제는 무얼 할 생각이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묻는 루더슨의 물음에 최진혁은 피식 웃으면서 용용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캬아아아!
그런 최진혁의 손길이 좋은지 용용이는 기분 좋은 탄성을 터뜨렸다. 물론 그 모습은 알케미의 병사들에게는 공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용용이의 기분 좋은 포효를 뒤로한 채, 최진혁은 루더슨의 질문에 답했다.
“뭐, 정할 게 있나? 우린 기르신으로 간다.”
-키아아악!
그 말을 끝으로 용용이가 자신의 커다란 뼈 날개를 펄럭이면서 상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총알과도 같은 속도로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 방향은 기르신의 용병들이 온 곳. 바로 용병 왕국 기르신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최진혁이 사라지자 최진혁의 언데드들은 그런 최진혁의 뒤를 따라서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알케미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것이…… 죽음의 군주…….”
그리고 그런 알케미의 중얼거림이 끝날 때쯤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본 드래곤 용용이의 위에 올라탄 최진혁을 쫓아서 사라졌다.
그렇게 언데드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용병들과의 전투에서 얻은 상처 때문에 고통에 신음하는 알케미 왕국의 병사들과 용병 왕국 기르신에서 온 용병들의 시체들만이 가득했다.
“이런……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시체들을 한 곳으로 모아라!”
“예!”
최진혁의 뒷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던 알케미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는 멀쩡한 이들에게 명령을 내려 다친 이들의 뒷수습을 맡겼다.
그러고는 최진혁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죽음의 군주시여…….’
* * *
휘오오오.
최진혁 일행은 거센 모래바람이 부는 모래사막의 상공을 날아 기르신으로 향했다.
루더슨은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최진혁에게 물었다.
“기르신으로 가서 어쩔 생각이지?”
“다 죽일 생각이다.”
“……진심인가?”
“내가 여태까지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나? 나는 뱉은 말은 지킨다.”
“…….”
최진혁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루더슨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진혁의 말대로 최진혁이 뱉은 말 중에서 지켜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지금 한 말도 사실일 확률이 백 퍼센트는 아닐지언정 무척이나 높다는 것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진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루더슨에게 물었다.
“왜 그런 반응이지? 우리의 적이 될 이들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그들이 원해서 우리들의 적이 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미소를 지우면서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루더슨의 말에 답했다.
“그럼 루더슨, 너는 그들이 검을 들이밀면 그냥 가만히 목을 내밀어줄 생각인가? 그런 것이라면 나도 그들을 전부 죽이지 않겠다.”
“…….”
최진혁의 그 말에 루더슨은 무어라 반박하지 못했다. 목을 내밀라는 그 말은 목숨을 내놓으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답을 하지 못하는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은 루더슨의 어깨를 툭 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다. 나도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뇌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알겠다. 그럴 경우에는 나도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네 말에 따르도록 하겠다.”
“좋군. 계약 성립이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최진혁과 루더슨은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키아악!
바로 그때 용용이의 포효 소리가 들렸고, 그런 포효 소리에 최진혁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도착이군.”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시야에 용병 왕국 기르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쿠웅…….
기르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용용이를 착지시키고는 최진혁은 모랫바닥에 발을 디뎠다.
-캬아아…….
그리고 그런 최진혁과의 떨어짐이 아쉬운지 용용이는 작은 포효를 터뜨리면서 아쉬워했다.
그런 용용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최진혁은 아공간을 열어 용용이를 집어넣었다.
“본 드래곤은 안 쓰는 건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는 없는 법이지.”
“뭐, 상관없겠지. 우리는 무조건적인 학살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루더슨과 최진혁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을 천천히 건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용병 왕국 기르신의 성문 앞에 선 둘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성문이 열려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도중에 성문을 열어놓다니 대체 이게 무슨…….”
다름 아니라 용병 왕국 기르신의 성문이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실이 눈앞에 나타나자 둘은 당황해했다.
하지만 둘은 반신의 자리에 오른 초월자들답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침입의 흔적은 있나?”
“아니, 그런 흔적은 하나도 없다. 그냥 안에서 평범하게 열어둔 것 같은데…….”
“하아,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함정일 가능성은?”
“자신의 왕국 자체를 미끼로 건다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지 않나?”
“그럼 대체 이 상황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지?”
당장에라도 머리를 쥐어뜯을 것처럼 보이는 루더슨의 모습에 최진혁이 그런 루더슨을 말리면서 말했다.
“고민은 그만하고 일단 들어가 보도록 하지. 들어가 보면 이것이 함정인지 아니면 단체로 미쳐 버린 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말은 했지만, 최진혁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수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만은 아니기를 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루더슨과 최진혁은 기르신의 성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다시 충격을 받았다.
“이게 무슨…….”
바로 성문 안 도시의 풍경이 살벌했기 때문이다.
기르신의 시민, 병사들 모두가 길거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녀노소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기르신의 모든 시민과 귀족 그리고 나아가 왕족까지 말이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인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눈앞에서 최진혁과 루더슨이 지나가는데도 그들을 붙잡거나 말을 걸기는커녕 목에 들이밀고 있는 칼을 내려놓지도 않았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풍경에 최진혁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루더슨 또한 마찬가지로 이 상황을 이해했다.
“최진혁 설마 이건…….”
“그래, 마족 소환 의식과 비슷하다. 다만…….”
-규모가 다르지.
“……누구냐.”
루더슨의 물음에 최진혁은 마족 소환 의식을 거론했다. 그리고 뒤에 말을 이으려는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최진혁의 귀를 때렸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린 최진혁의 눈에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시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시민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평범한 마족, 남작과 자작 등을 소환하는 의식과는 규모도 그 질도 다르다.
“설마 네 녀석…….”
당연히 그 시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목소리는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바로 그때 길거리에 서 있던 모든 이들의 입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목소리는 섬뜩하고 오싹하게도 같은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 마왕이다.
수백 개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였지만 기이하게도 그 목소리들은 하나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담긴 거력에 최진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최진혁을 향해 자신을 마왕이라고 소개한 이가 파안대소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흐하하하, 네 녀석을 기다렸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제물들을 처리하고 소환을 마친 후 은신처로 사라졌겠지만…… 네 녀석을 꼭 한번 보고 싶었거든.
“나를? 왜 나를 기다렸지?”
말을 하면서 최진혁은 심장의 서클들을 회전시켜 만전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 최진혁의 준비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했다.
목에 들이민 칼 때문에 목에는 기다란 검상이 생겨났고, 그런 상처에서 피가 물처럼 흘러내렸지만, 마왕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네가 9서클에 오르면서 제약은 사라졌다. 그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지. 고맙다. 덕분에 내가, 아니, 우리가 지구에 현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왕의 그 말에 최진혁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클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그러면서 루더슨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들을 전원 죽이지 않겠다는 말은 지키지 못할 것 같군.”
“……예외 상황이다. 상관없어. 다만, 빠르게 처리한다.”
그 말과 함께 루더슨도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는 제물로 선정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걸음을 내디디려는 찰나였다.
-그럼 감사 인사도 끝났으니…… 의식을 시작한다!
푸욱! 푸욱! 푸욱!
마왕의 광기 어린 목소리와 함께 수만, 아니, 수십만이 넘는 이들이 자신의 목에 주저 없이 칼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핏빛 선혈들이 바닥에 비처럼 떨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르신의 바닥 전체가 피로 뒤덮였다.
그런 피 웅덩이 위에 서 있던 최진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제길…… 브레스로 쓸어버렸어야 했나.”
하지만 자책해도 이미 상황은 끝이 나 있었다. 발을 적실 정도로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이내 피들은 모여서 하나하나 문자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문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문자들이 전부 그려지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지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마왕 소환.”
드넓은 마계의 지도자들이자 최진혁과 루더슨보다 한 발자국은 족히 앞서 있는 이들. 그런 그들이 지금 지구에 강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