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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95화 (95/149)

리치, 헌터가 되다! 95화

용병 왕국(1)

최진혁이 모습을 드러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키아아악!”

먼저 상공에 모습을 드러낸 본 드래곤으로부터 쏟아지는 브레스에 수십 명의 용병이 쓸려 나갔다.

물론 그중에서도 상급 용병, 다른 나라로 치면 기사급 용병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브레스를 막아냈다.

거기에 용병 중에서도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은 존재했다.

용병들 사이사이에 있는 마법사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브레스에 실드 마법을 펼치거나 여럿이 모여서 거대한 배리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정령사의 경우에는 마법사들과 같으면서 다른 방법으로 대응했다. 거대한 물의 장벽을 세우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용병 마법사와 정령사들 덕분에 용병들은 브레스라는 압도적인 공격 수단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

-키키키키!

하지만 그것은 단 한 번의 공격이었을 뿐 결코, 마지막 공격이 아니었다.

브레스를 시작으로 연금 왕국 알케미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언데드들에 용병들이 우왕좌왕 당황해했다.

물론 최진혁의 데스 오라 덕분에 강화됐다고는 하나 언데드들의 대다수는 스켈레톤.

잘 훈련되고 실전 경험이 많은 용병들은 금세 제정신을 차리고 두 명이 하나 혹은 세 명이 하나씩 스켈레톤들을 맡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는 스켈레톤들은 아까 전의 브레스와 마찬가지로 용병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나서서 마법으로 막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어마어마한 수의 스켈레톤이 아니었다.

-주인님의 명이다! 앞을 막는 적들의 목을 쳐라!

해골마 위에 앉아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는 듀라한들의 등장에 다시 한번 용병들의 사기가 요동쳤다.

애초에 언데드들의 목소리에는 산 자들을 주눅 들게 하는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비단 듀라한들뿐만이 아니었다.

-……주군께서 일어나신 건가?

“이런! 둠 나이트의 기운이…… 크아아악!”

최진혁의 명령을 따라 전선의 가장 앞에서 수백이 넘는 용병들을 홀로 막아내던 카르한의 기운이 갑작스레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최진혁 때문이었다. 아무리 카르한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혼자였다.

하지만 최진혁의 데스 오라가 카르한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본신의 능력이 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알 리가 없는 용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카르한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전원 상급 용병으로 구성된 용병 왕국 기르신의 최정예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카르한의 썩어버린 귀를 때렸다.

“감히! 언데드 따위가 우리의 앞길을 막느냐!”

-……네 녀석은 누구냐?

그렇게 말하면서 카르한이 자신의 애병인 둠 블레이드로 자신을 막아섰던 용병 하나의 목을 베어냈다.

그 모습에 카르한의 앞에 나타난 이가 분개해하며 외쳤다.

“내 앞에서 자랑스러운 기르신의 용병을 죽이다니…… 네 녀석, 다시 관짝에 집어 넣어주마!”

-……재밌겠군. 네 녀석이 이 녀석들의 대장인가?

“그렇다. 기르신의 용병대장 헥터다.”

-헥터라…… 과연 기르는 개새끼다운 이름이로군. 내 이름은 카르한이다.

“……으득. 감히 내 이름을 무시하다니…… 명예도 모르는 언데드 같으니.”

-용병이 명예라…… 그거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아니면 요즘에는 용병들도 명예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었던가? 세상 참 말세로군.

“…….”

카르한의 말에 속절없이 밀려난 헥터가 이를 갈면서 검을 빼 들었다. 말로는 카르한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이 녀석은 내가 막겠다.”

“대장…… 하지만 저 녀석은…….”

“안다. 나와 비등한 상대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방심 따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한낱 언데드 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 너희들은 흩어져서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라. 우리는 알케미를 무너뜨린다.”

“……예!”

그 말을 끝으로 카르한을 막아서던 상급 용병들은 전장으로 흩어졌다. 전장의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흩어짐은 무척이나 잽쌌다.

그런 용병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카르한의 입이 열렸다.

-도망은 다 친 건가? 음? 아직 도망가지 않은 녀석이 있군. 다리가 굳어서 그런 건가? 기회를 주지. 도망치려면 지금뿐이다.

“으득, 닥치고 덤벼라 언데드여.”

-하아, 마왕에게 세뇌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가엾은 양 떼 같으니.

“뭐라? 마왕? 세뇌? 그건 대체 무슨 말이지?”

-내가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 줄 이유 따위는 없다. 내가 맡은 임무는 너희들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제거니까 말이다. 애초에 너희들에게 설명한다고 한들 세뇌가 진행된 너희가 이해할 리가 없지. 그러니…… 죽어라.

마지막 말을 늘어뜨리면서 카르한이 땅을 박찼다.

그그그…… 치이익!

둠 블레이드로 땅을 긁으면서 헥터를 향해 달려간 카르한은 둠 블레이드를 머리로 치켜들고는 이내 휘둘렀다.

그리고 그런 카르한의 공격에 헥터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아내면서 응수했다.

수 미터에 달하는 오러 블레이드의 찬란한 푸른빛은 그가 그랜드마스터의 강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그랜드마스터를 앞에 두고도 카르한의 붉은 안광, 아니, 데스 오라 덕분에 이제는 검게 물든 안광은 흔들림 없이 평온했다.

애초에 카르한은 모든 언데드들의 위에 있는 자, 둠 나이트였다. 상위 언데드라고 불리는 데스나이트일지라도 카르한의 앞에 서면 태양 앞에 반딧불에 불과했다.

그런 카르한이기에 눈앞의 헥터에 위축되기는커녕 파멸의 기운을 뿜어내며 즐거워했다.

자신의 전신을 옥죄어오는 카르한의 기운에 헥터는 전신에 마나를 돌려 기운을 털어내고는 카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르신을 위하여! 용병은 죽지 않는다, 언데드!”

-언데드 또한 죽지 않는다, 용병.

콰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음과 함께 둘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랜드마스터와 전설 속 언데드, 둠 나이트의 결전이었지만 지금 주위에 그것을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승부는 요란하면서도 조용하게 이루어져 갔다.

* * *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나?”

“음? 무얼 말이지?”

“……카르한 말이다.”

용용이의 등 뒤에 올라타 전황을 내려다보던 루더슨의 입에서 나온 말에 최진혁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카르한의 걱정을 하다니 세상 참 말세로군.”

“……크흠흠.”

“어쨌든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카르한은 강하니까.”

“하지만 상대는 기르신의 그랜드마스터다. 카르한이 아무리 둠 나이트라고는 하나 상대도 그에 뒤지지 않는 실력을…….”

“담금질이라고 생각해라.”

“담금질……?”

“아무리 뛰어난 명검도 수십, 수백 번의 담금질이 있기에 존재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카르한에게는 담금질과도 같겠지. 그러니 걱정은 집어 넣어두고 네 몸이나 신경 써라.”

“……알았다.”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은 카르한에 대한 걱정을 집어넣고 자신의 몸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신성력을 이용해 겉으로 보이는 상처들은 모조리 지웠지만, 내부의 상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지금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운기를 하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마족 대공들의 권능과 마기는 소드엠퍼러에 오른 루더슨에게도 강력한 독과 같이 작용했다.

그렇기에 최진혁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수긍하는 것이었다. 싸움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 다음을 위해서 말이다.

자신의 말에 가타부타 반박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운기에 들어간 루더슨을 뒤로한 채, 최진혁은 고개를 숙여 전장의 상황을 확인했다.

‘스켈레톤들은 반파, 듀라한들은 분전 중에 데스나이트들은 완벽하게 압살 중이로군. 내 생각대로야.’

용병들과 싸우고 있는 스켈레톤들은 대부분 망가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켈레톤들은 이미 마족 대공이라는 어마어마한 적들을 붙들었었기 때문에 내구도가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물론 데스 오라라는 사기적인 버프가 걸려 있기는 했으나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그 탓에 지금 용병들과 전투 중인 스켈레톤들은 회복이 불가할 정도로 박살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최진혁의 상정 내였다. 애초에 스켈레톤들을 주 전력으로 생각하는 흑마법사들은 없었다.

그리고 최진혁도 다른 흑마법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듀라한들과 데스나이트였다.

듀라한들은 해골마에 올라탄 채, 자신의 머리를 철퇴처럼 휘두르면서 전장을 종횡무진 움직였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낙마를 당한 뒤, 용병들에게 짓밟히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수보다 용병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듀라한의 수가 더욱 많았다.

듀라한이 그럴진대 데스나이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데스 오라를 몸에 휘감은 채, 죽음의 기운을 풀풀 풍기는 데스나이트는 용병들의 접근도 불허했다.

간혹가다가 최상급 용병(소드마스터)이 데스나이트들의 무쌍을 막으려 들었지만 다른 곳에서 달려온 데스나이트들의 협공에 금세 목이 달아났다.

그런 상황이 되니 용병들은 최대한 데스나이트들과 듀라한을 피해서 스켈레톤을 부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게 최악의 수라는 것을 모르는 멍청한 것들.’

하지만 그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구렁텅이라는 것을 용병들은 알지 못했다. 앞서 말한 대로 스켈레톤들은 버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진짜는 데스나이트와 듀라한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채, 희생을 감내해 가면서 용병들은 스켈레톤들의 수를 줄이고 있었다.

‘부질없는 짓이거늘.’

스켈레톤 같은 하위 언데드쯤이야 창조의 권능을 쓰지 않고도 널려 있는 용병들의 시체로도 만들어낼 수 있는 데다가 창조의 권능을 쓰더라도 그렇게까지 무리가 오지 않았다.

그런 탓에 지금 용병들이 하고 있는 짓들은 목숨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최진혁은 그런 용병들을 보면서 혀를 한 번 차고는 빙긋 웃었다.

‘물론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런 최진혁의 웃음과 함께 두 번째 브레스가 용병들을 뒤덮었다.

* * *

“쿨럭…….”

-……인간치고는 썩 괜찮은 실력이었다.

“……네 말이 사실이냐?”

-뭘 말하는 거지?

“우리가…… 세뇌되었다는 것 말이다…….”

사지가 모조리 잘린 채, 복부에 검이 꽂힌 헥터가 카르한을 바라보면서 씹어뱉듯이 말을 해왔다.

그런 헥터의 마지막 말에 카르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카르한의 끄덕임에 헥터는 각혈을 하면서 허탈하게 웃었다.

“우리가 여기서 죽어가는 것이 왕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왕에게 놀아난 것이라니…… 하……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마왕이든 마신이든 네 녀석들을 뒤따라갈 테니까.

“쿨럭…… 자신감이 넘치는 언데드로군.”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 이렇게 자신하는 것이다.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죽음의 군주 최진혁 님을 믿어라.

“……그럼 한번 믿어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세뇌가 풀린 헥터는 눈을 감았다.

그런 헥터를 데리고 카르한은 저 멀리 브레스를 뿜어내는 본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타 있는 최진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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