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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헌터가 되다-94화 (94/149)

리치, 헌터가 되다! 94화

전성기, 그 이상(2)

짧은 시간 동안 생겨난 언데드 군단은 말 그대로 물량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그 대상은 마족 대공들이었다.

“크아아악!”

그리고 물량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체험한 마족 대공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남성체든 여성체든 가릴 것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평소 마왕에 가장 근접한 존재로 주위에 대적할 자가 없었던 이들이 한낱 스켈레톤들의 뼈 검에 전신이 난자당하고 듀라한의 머리통에 얻어맞는 수모를 겪었다.

거기에 화룡점정은 데스나이트들이었다. 기사답게 유려한 검술로 전신을 난자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한편의 예술과도 같아 보였다.

“이런 망할 언데드들이 감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물론 당하는 입장인 마족 대공들은 길길이 날뛰면서 마기를 주위로 흩뿌리면서 방어하고 상처들을 재생했지만 말이다.

“……끔찍하군.”

“방금까지 네가 당한 걸 생각해 봐라.”

어느새 몸에 아로새겨진 상처들을 신성력으로 치료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루더슨이 최진혁의 옆에 둥둥 떠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다가 이내 최진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군.”

사실 당한 걸로 치면 루더슨이 더욱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한 수 처지는 상대 여섯에게 둘러싸여 갖가지 권능에 조리돌림을 당하고 마기에 전신이 침식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루더슨은 심하다는 생각을 지웠다.

그리고 애초에 저기서 언데드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마족 대공들은 자신의 적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나도 저기 참전하도록 하지.”

“……좀 쉬지 그러나?”

“네가 날 걱정하다니 참 별일이로군. 다만 나는 충분히 멀쩡하고 조금 전처럼 수적으로 열세에 처한 것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걱정한 게 아니다. 그저…….”

“……?”

최진혁의 말에 루더슨이 지상으로 향해 내려가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최진혁을 쳐다보자 최진혁은 되었다며 손을 들어 휘저으면서 대답을 피했다.

그 모습에 루더슨은 피식 웃고는 다시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 루더슨이 지상에 크레이터 자국을 새겼다. 그리고 이내 돌가루를 부스스 휘날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루더슨의 모습에 언데드들의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던 마족 대공들이 깜짝 놀라며 루더슨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네 녀석! 네 그 오만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외치면서 마족 대공은 자신에게 달라붙어서 칼질을 해대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날려 버리고는 루더슨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루더슨을 장난감처럼 몰아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개개인이 강해서가 아니라 여섯 명이라는 수적 우위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걱!

“크악!”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대가는 그의 오른팔 하나였다.

물론 팔 하나쯤은 고위 마족 정도 되면 쉽게 재생시킬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순간에 자신의 팔을 잃었다는 사실에 마족 대공이 얼이 빠진 얼굴로 루더슨을 바라보았다.

그런 마족 대공의 멍청한 얼굴을 바라보고 루더슨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 얼굴은 뭐지? 설마 아까까지 나를 몰아붙이던 게 설마 네 녀석 혼자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설마 정말로 그런 거라면 대체 내가 얼마나 얕잡아 보이고 있는 건지…….”

“이익…… 네 녀석은 고작해야 인간이다! 나는 고귀한 마족! 그것도 수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마족 중의 마족이란 말이다!”

“그래, 네 녀석 말대로 나는 인간이다. 다만…….”

그렇게 말하면서 루더슨은 자세를 살짝 낮추고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베며 말했다.

“그런 인간인 내가 네 녀석보다 더 강했을 뿐이다.”

“크아아악!”

그리고 그런 단순한 올려 베기에 마족 대공의 몸이 두 동강이 났다. 거기에 마족 생명의 근원인 심장까지 같이 절단되었기에 이내 마족 대공의 두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동료의 허무한 최후의 다른 다섯 대공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서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크캬캬캬캬!”

쉼 없이 달려드는 스켈레톤의 파도 속에 갇힌 그들에게는 루더슨에게 신경을 쓸 여유 따위가 없었으니 말이다.

“주인님의 적을 처단한다!”

거기에 더해서 데스 오라가 씌워져 한층 더 단단해진 듀라한 군단의 공격에 마족 대공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공격해도 계속해서 바퀴벌레처럼 살아나 다시 공격해 오는 언데드 군단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도 데스나이트들은 차곡차곡 상처들을 대공들의 몸에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최진혁은 성에 차지 않는지 인상을 쓰고 있다가 이내 한 가지를 생각해 내고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드드득!

그와 함께 또다시 땅거죽이 뒤집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걸어 나온 것은 스켈레톤도, 듀라한도, 데스나이트도 아니었다.

-파이어 볼!

언데드 마법사, 리치였다. 그것도 한 기가 아닌 수십 기가 동시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타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듯이 주위에 마법들을 쏘아내는 그 모습은 마족 대공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수만에 달하는 스켈레톤과 천 기의 듀라한, 수십 기의 데스나이트들만 해도 죽을 지경인데 거기에 최고위 언데드인 리치까지 소환되니 당장에라도 마계로 도망치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마계 오등작의 최고봉인 공작보다도 한 단계 높은 대공이라는 직위가 그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렇게 도망을 가지도 못한 채, 대공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달려드는 언데드들의 골통을 부수고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리치의 마법들을 방어해 내면서 힘든 싸움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스걱!

“젠장! 옆이다! 옆!”

“아니! 앞!”

“뒤다!”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한 번씩 공격을 하고 가는 루더슨의 모습에 결국 대공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크아아악! 용서하지 않겠다!”

그와 함께 여태까지의 마족들처럼 변신을 해왔다. 전신의 근육은 벌크 업이라도 한 것처럼 부풀어 올랐고 키는 마치 고무줄처럼 주욱 늘어났다.

3m의 거구에 보디빌더들을 어린애로 만들어 버리는 근육에, 주위를 짙게 채우는 마기까지.

방금과는 달리 한층 더 강력해진 대공들의 모습에 루더슨이 주춤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변신을 마친 세리엔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네 녀석 따위는 변신한 우리에게 한주먹…… 응? 이건 또 뭔…….”

변신을 마친 세리엔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구어어?

좀비였다. 그리고 세리엔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좀비는 세리엔과 눈을 마주치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세리엔의 귀에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악!

“콥스 익스플로젼.”

최진혁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마법을 영창했다.

콰아아앙!

최진혁의 그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세리엔과 눈싸움을 하던 좀비가 수류탄처럼 터져 나갔다.

“크아아악!”

최진혁의 마나가 담긴 좀비의 뼈와 살 그리고 피가 세리엔에게 닿자 세리엔의 몸이 마치 강한 산성을 띤 무언가를 맞은 것처럼 녹아내렸다.

그리고 비단 세리엔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꺄아아악! 내 몸이! 내 몸이 녹아내리고 있어!”

“갸아아악!”

다른 마족 대공들도 세리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직접 콥스 익스플로젼을 맞은 다리 부분은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그 위로도 그다지 상황이 좋지 못했다.

팔이 녹아내리고 있거나 혹은 얼굴의 살점이 녹아내려서 뼈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흉측한 모습에도 최진혁의 언데드들은 묵묵히 자신의 무기를 휘둘러 마족 대공들을 공격했다.

부웅! 부우웅! 부웅!

“죽어라.”

거기에 더해서 마치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며 검을 휘두르는 루더슨의 공격에 마족 대공들은 속절없이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내주어야 했다.

“그으아아! 내가…… 내가 이렇게 죽는다니! 이건…… 이건 말도 안…….”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곱게 죽어라.”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목숨을 잃는 이들도 나타났다. 최진혁의 한층 더 강력해진 콥스 익스플로젼에 대부분의 재생력을 소모한 탓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노괴들이었지만, 최진혁과 루더슨의 협공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최진혁과 루더슨의 앞에 살아남은 마족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직…….

-캬아아아!

최진혁의 언데드 군단만이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 * *

“몸은 괜찮나?”

언데드 군단을 뒤로 물린 채, 최진혁은 숨을 헐떡이는 루더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최진혁의 걱정 어린 말에 루더슨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내 걱정을 해주는 건가? 퍽이나 고맙군.”

“……사실 저 녀석들 앞에서는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약자 취급을 했지만, 너도 알다시피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었다.”

최진혁의 말대로였다.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세게 나갔지만, 마족 대공들은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었다.

루더슨의 힘을 1로 잡고 지금의 최진혁이 1.2 정도 된다면 마족 대공들 개개인은 0.7에서 0.8 정도 되었다.

그런 이들이 무려 여섯이나 있었으니 최진혁으로서도 상당히 무리였다. 그래서 기준치로 잡은 것 이상의 힘을 사용했다.

아직 창조의 권능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소드마스터급 시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꽤 무리한 일이었다.

그런 탓에 최진혁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챘는지 루더슨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보다도 네 녀석을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그래서 이제는 뭘 할 거지?”

“뭐, 답은 정해져 있지.”

다음은 무엇이냐는 최진혁의 물음에 루더슨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은 곳이 있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서 루더슨의 고개가 자연스레 성벽 너머에서 들리는 병장기 소리를 향해 돌아갔다.

* * *

챙그랑! 챙그랑!

“막아라! 곧 있으면 죽음의 군주가 깨어난다! 그때까지만 막아라!”

포션 병을 던지면서 소리치는 알케미의 말에 알케미의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오는 기르신의 용병들을 향해 창을 찔렀다.

하지만…….

“크하하하! 고작해야 잡졸에 불과한 것들이 우리의 앞을 막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용병들에게 있어서 알케미의 병사들은 온실 속의 화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에 대부분 흉측한 외형을 한 기르신의 용병들의 흉흉한 모습에 자연스레 알케미 쪽의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알케미가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젠장, 최진혁 님…….”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캬오오오!

“저건……?”

알케미의 머리 위를 날아가는 본 드래곤의 모습에 알케미는 고개를 들어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봤고, 그런 알케미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기다렸나?”

당연하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진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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